-금성산 조망처, 비룡산 능선에서 바라본 풍경-




금성산, 비룡산(영남 최고의 명당자리) 

2019007005호         2019-02-17()


자리한 곳 : 경북 의성군

지나온 길 : 주차장-금성산정상-봉수대-절골갈림길-비봉산-여인의 턱-산불감시초소-태마공원-주차장-수정사(차량으로 이동)

거리및시간: 6시간 30(09:00~15:31) 총거리 : 9.2km

함께한 이 : 4(고송부님, 케빈님, 노금정님, 그리고 계백)

산행 날씨 : 비교적 맑아 조망 시원함


지맥이 아닌 금성산, 비룡산으로 바뀐 까닭은?

면소재지라 수요가 미미한 탓으로 아침 일찍 영업한 식당이 없어 늘어지게 여관방에서 늦잠을 즐기고 7시가 넘어서야 아침식사가 가능한 식당을 찾아 나섰으나 허탕치고, 개문하고 영업 준비하고 있는 토박이 마트직원에게 얻은 정보로 가까스로 영업하는 분식집을 찾아가 라면과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있는데, 어제저녁 선약 때문에 대구로 출발했던 노금정님께서 도착했다. 이번산행 기획자인 고송부님 말씀이 오늘산행은 지맥산행이 아니라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특수성으로 접하기가 쉽지 않은 의성군의 명산인 금성산, 비봉산행을 준비했다는 선포해 금성산 주차장으로 이동해 산행을 시작한다.


-금성산 주차장에서 설치된 등산안내도, 전설-


金城山(금성산) : 경북 의성 금성면에 자라한 높이는 531m의 산이다

가마와 비슷하다고 하여 가마산이라고도 부른다. 내륙분지에 솟아 있는 조그마한 산으로, 의성군의 명산으로 꼽힌다. 사화산으로, 한반도 최초의 화산이다. 백악기에 화산이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때문에 정상에 1,000여 평의 평지가 남아 있다. 마주보고 있는 비봉산(飛鳳山:672m)과 함께 절경을 이루고, 울창하게 우거진 숲은 소나무·갈참나무·신갈나무 등의 수목이 주를 이룬다. 화산 폭발의 흔적인 정상의 평지는 천하 제일의 명당자리로서 이곳에 조상묘를 쓰면 당대의 만석꾼이 되지만 주변 지역은 3년 동안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지금도 주민들이 남몰래 땅을 파헤친 흔적이 곳곳에 있다.

금성면이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의 도읍지였던 탓에 산 속과 인근에는 석탑을 비롯한 귀중한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정상 북쪽에는 조문국 시절에 세운 것이라고 추정되는 높이 4m, 넓이 24m의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유정(惟政)이 왜군과 싸우던 곳이기도 하다. 산 속에 흩어져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200여 기는 경상북도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등산로는 금성산 단독 코스와 비봉산과 연계하는 코스가 개설되어 있고, 산행 후에는 '옥색 빛깔의 신비한 온천수'로 이름난 빙계온천과 새로이 개발된 탑산약수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인근에는 조문국의 마지막 왕인 경덕왕의 사적지와 1935년에 세운 문익점 면작기념비가 남아 있고, 군립공원인 빙계계곡(氷溪溪谷)은 여름철 피서지로서 유명하다.                -두산백과-



-시원한 조망과 금성산에 관한 해설판-


金城山(금성산) 정상 안부는 최고의 명당자리란다

정상 부근에 분지가 있는데, 이 분지가 최고의 명당자리라 한다. 이 명당자리에 묘를 쓰면 3년 이내에 큰 부자가 되지만, 인근 30리 안에는 석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수정사의 샘물이 마른다는 전설이 있다. 이러한 전설 때문에 이곳에 묘를 쓰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으며, 날이 가물게 되면 주변 지역의 주민들이 모여 묘를 파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해방 이후까지도 이와 같은 일들이 되풀이 되었다고 한다.                             - 향토문화전자대전 -


-봉수대에서 바라본 풍경과 안내판 설치 내력-


영남 최고의 명당 금성산에 전해온 이야기

금성산은 영남에서 가장 많은 풍수 일화를 간직한 산답게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진기한 이야기가 있다. 이 금성산 산정에 묘(무덤)를 쓴다면 석 달 동안이 산을 둘러싼 인근 30 일대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들고 묘를 쓴 사람은 3년 내에 큰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고종 때 이 지방에 심한 한발이 든 적이 있었다.

나라를 통틀어 보아도 전국 각 지방에는 비가 내려 가뭄이 말끔하게 가셨는데 이 지방만은 그렇지가 못했다그래서 논과 밭은 메말라 갔고 곡식은 타죽어 가니 농민들은 메말라 죽어가는 곡식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비를 기다리다 지쳤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농민들은 금성산 산정을 향하여 모였다. "금성산을 파헤쳐라" 고 외치며 모여든 인근 주민의 수는 수백이 넘었다고 한다.

사실 이 산은 밖에서는 깎아지른 듯한 직벽으로 되어있으나 산꼭대기에는 그 넓이가 600~700평이나 되는 모래밭이다. 진노한 주민들은 모래금을 찾듯이 산정을 뒤졌다. 그 결과 깊이 10m의 땅 속에서 조그마한 석곽을 발견하니 주민들의 울분은 한 순간에 폭발되고 석곽 속의 사람머리는 산 아래로 팽개쳐졌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진노하고 검은 구름이 사방으로 뒤덮어 버리면서 그렇게도 목마르게 기다리던 단비가 산과 들, 논밭에 함빡 내려졌다고 한다. 무덤을 쓴 사람은 그 후 모 지역에 가서 운수 대통하여 큰 부자가 되어 고향에서 논과 밭, 과수원을 사서 잘 살게 되었다고 하며, 그 후 그는 금성산 음덕에 보답할 것을 결심하여 학교가 없는 금성면에 학교를 세우는 등 큰 사업을 하였다고도 한다.                          -한국의 산천-




-비룡산 능선에서 바라본 멋진 풍경-


飛鳳山(비봉산) : 경북 의성군 금성면과 가음면 ·사곡면에 위치한 높이 672 m의 산이다.

비봉산(672m)과 금성산(550m)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 가음면, 춘산면, 사곡면에 걸쳐 있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금성산 서녘자락인 금성면 탑리에는 국보 77'의성탑리오층석탑'이 있다. 또한 28번 국도와 927번 지방도가 만나는 초전리에는 '문익점선생기념비'와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의 '경덕왕릉'이 있어 문화유적답사를 겸하여 한 번은 올라야 할 산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의성 부근은 교통이 불편하여 당일산행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앙고속국도의 개통으로 군위, 의성에 있는 오지의 산도 당일산행이 가능해졌다. 국보 77호인 오층석탑이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월간 사람과산 기사-


-비룡산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본 팔공산, 천년고찰 수정사-


에필로그

金城山(금성산)주차장-금성산성-관망대(450m)-병마훈련장-金城山(금성산:530.2m)-봉수대-절골갈림길-노적봉갈림길-수정사갈림길-비봉산(670.5m)-여인의턱-수정사갈림길-전망능선-산불감시초소-태마공원-금성산주차장-수정사(차량으로 이동) 2개산을 종주했고 飛鳳山(비봉산::670.5m)정상 헬기장에 배낭을 내려놓고 자리 잡고앉아 어제에 이어 이틀연속 노금정님표 호화판 午餐(오찬)90분가량 마음껏 즐기고서야 자리를 정리하고 하산하며 산불감시초소 근무자의 도움으로 대구 팔공산과 영천의 보현산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차장에서 자동차로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온 유서 깊은 고찰인 수정사를 돌아보고 대구의 맛집으로 이동해 하산주를 나누며 작별을 아쉬워하는 것으로 산행을 마감하며 이틀 동안 자가용교통편과 최고의 점심을 제공해주신 대구시내에 거주하는 노금정님께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오며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찾아서~


2019-03-23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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