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진:토함산.
아랫사진:추령.


동끝기맥=4회차=토함산 산행기

코스:가나안(토함산)목장-동산령-토함산-추령
날짜:2004년6월29일 화요일
날씨:맑음

인원:(9명 : 소수 단체인원)
조삼국, 유민형, 박덕주, 허건자, 김수인, 최경섭, 성성자, 이하인, 김종국.

산행도상거리 = 약 9킬로미터
산행 실거리  = 약 11.7킬로미터

산행 상행 어프로치시간 = 없슴
산행 하행 어프로치시간 = 없슴

총산행시간 : 약3시간5분 (필자기준)


++ 토함산 ++

경주의 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토함산은 높이 745m로 경주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신라인의 얼이 깃든 영산으로 일명 동악(東岳)이라고도 불리며,  

신라 5명산 중의
하나로 옛부터 불교의 성지로  자리잡아 산 전체가 마치 하나의 유적지로 보일 만큼 유물과 유적이 많다.  
또한 소나무, 참나무 숲으로 덮여 녹음이 짙다.  

불국사에서 동쪽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석굴암이 나타나는데
이 산길은 산허리를 따라 돌아가는 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에 관광객들이 이용한 길이다.

60년대 이전에는
이 산길을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오르내렸다.
토함산이라는 명칭의 의미는 이 산이 바닷가에 위치해서 안개가 자주 끼는데,  
산이 바닷쪽에서 밀려오는 안개를 들이마시고 토해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 석굴암 ++

석굴암은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10년(751)에 재상 김대성(金大成)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토함산의 동쪽 봉우리 아래에 동남향하여 동해를 마주하고 있는데
석벽의 석재를 짜맞추어 인공 석굴을 만든 것으로 인도나 중국의 석굴사원을 본뜬 것이다.

석굴은 전방후원의 형식이고 원형주실과 방형전실, 간도(間道)로 구성되어 있다.
주실은 구릉형으로 그 위에 봉토로 덮었으며 전실에는 원래의 지붕이 없어져 1963년 목조건물을 새로 덮었다.

굴 중앙에는 높이 3.48m의 석가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고 전실과 굴 입구 좌우 벽에는 팔부신상,
인왕 및 사천왕 등의 입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본존불 주위에는 천부입상 2구,

보살입상 2구 및 나한입상 10구를 배열하고 본존불 뒤에는 11면 관세음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천장 주위 10개의 감실안에는 좌상의 보살과 거사 등이 안치되어 있다.
따라서 석굴에는 모두 40분의 불(佛), 보살(菩薩), 천(天), 나한(羅漢)이 모셔져 있다.

+산행+
오늘도 긴 여행길에 오른다.
양재역에 도착해 반가운선배님들과 인사를 나눈다.

경주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점심식사를 마친후, 토함산의 목장에 도착하니

12시40분
아스팔트위에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제일 더운시간에) 동료들의 산행이 시작된다.
난, 자동차를 돌려 하산지점인 추령으로 향한다.
추령에서 택시를 대절해 다시 토함산목장에 도착한다.

오후1시40분
토함산목장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는다. 아스팔트길이 기맥 마루금!
뜨겁다. 불국사와 석굴암 이정표가있는 삼거리위의 약5-70미터 전방에서 좌측의 능선으로 들어선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가지않고 숲이있는 능선으로 들어서니 살것같다.

오후1시55분
능선의 숲길을 따라가는데 길이 끊어지다가 희미하게 이어지고, 또 끊어지곤한다.
우측의 도로를 참고해 움직이니 길잃을 염려는없다.

오후2시5분
능선분기점에서 좌측 (서,북) 으로 진행한다.

오후2시27분
석굴암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일방통행 삼거리에 도착했다. (좌측의 길따라 올라감)
뒤쪽에 사람들이 줄지어있는 것을 보고 가보니 약수가 나온다. 나도 한컵!!!
이내 석굴암주차장에 도착했다.

일본에서온 학생들의 수학여행인가 보다.
또한, 국내의 여행객을 태우고온 버스도 주중인데도 주차장의 빈공간이 없을 정도이니...
경기불황이래도 여행은 여행인가???

석굴암 매표소에서 좌측으로 들어선다. (표를 구입해 안으로 들어서면 석굴암가는길)
오후2시50분
성화채화지에 도착해 기념사진을 남긴다. (배낭만 딸랑 세워두고)

토함산 바로아래 헬기장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돌아 내려간다. (방금전, 채화지에서 수통을 놓고 왔으니 생명수인데,,,
아이고 힘들다, 선배님들을 따라가야하는데 식수 때문에?? 약25분을 까먹고 말았다.)

오후3시27분
토함산 정상에 도착했다.
선배님들을 만났는데 석굴암도 구경하고 기분이 엄지손가락 이란다. ^^ ㅎㅎㅎ
난, 시간에 쫒겨 석굴암도 못보고 토함산에 오기에 바빴는데,,,

날씨는 무덥지만 그래도 조망이 팔방으로 트인다.
참! 오랜만에 올라왔다. 얼마나 되었을까? 약10년, 아니면 약15년, 아니면 약20년?
하도 오래되어 생각도 나지않는다.

잠깐?
좌측에 산불초소가 보여 확인차 가보니 추령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바로 이러한 이정표 때문에 혹은, 잘못 걸려있는 표지기 때문에.. 알바를 할 수 있다.
추령으로 내려가는 이정표를 따라 내려서서는 안된다.

토함산정상 표시석에서 우측의 능선으로 되돌아가면 첫 번째능선이 있는데 이 산줄기도 기맥 마루금이 아니다.
그 아래에 있는 능선인데 약간 까다롭다고 할수 있겠다. (주의)

오후4시15분
478고지에서 좌측(북)으로 90도 꺽으며 내려선다.
조삼국,최경섭선배님이 기분이 좋은가? 하산해 어데 갈꺼지??? 감은사지와 문무대왕릉.
박덕주선배님이 한마디 거든다. 경주까지 산행하러왔나, 아니면 문화탐방하러 왔나?
아! 바닷가의 자연산 회!!

오후4시29분
438고지를 통과한다.

오후4시37분
우측(동)으로 진행한다.
능선분기점이다. 우측(동)으로 진행한다.

오후4시40분
이동중계탑이있는 (우측으로 추령으로 내려가는 좋은길과 로프줄로 내려가지않음)
방향으로 들어서니 역시 전혀 길이없다.
그러나
김수인,최경섭선배님이 길을 뚫고 내려선다. 그사이 성성자님은 꽤나 커보이는 더덕 한뿌리를 캐내고 있다.

오후4시45분
추령에 도착했다.
추령고개는 터널이 뚫리기 전만해도 엄연한 국도인데 지금은 거의 자동차가 다니지않는다.
멋있는 찻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것처럼... 운치가있다. 머물고 싶은곳이다.

이젠
경주에서 울산으로 이동을 해야되겠다. 아까 산행중에 이야기한 문화탐방을 위해..
그리고 바닷가의 자연산 회를 시식하기 위해서...

오후5시30분
감은사지에 도착했다.

+ 감은사지 +
경북 경주의 감은사지는 옛날 신라시대에 감은사라는 큰 절이 있던 자리이다.

현재 절은 없어지고 이 터에 국보 제112호인 삼층석탑 2기만 남아 있다.

감은사는 681년에 신문왕이 부왕인 문무왕의 뜻을 따라 완공했다고 전해진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바닷가에 절을 세워 불력으로 왜구를 격퇴시키려 했으나 절을 완공하지 못하고 죽었다.
이에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감은사라 하였다 한다.

문무왕은 죽으면서 '내가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겨서,
죽은 후 시신을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에 수장했는데 감은사지는 이 대왕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오후5시47분
감은사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울주군 봉계리 바닷가의 문무대왕릉에 도착했다.

바다와 산!
산과 바다!
우리팀은 문무대왕릉 바닷가에 앉아 일어날줄 모르고,,,  

+ 문무대왕릉 +

신라의 제 30대 왕(재위 661­681) 성 김씨 이름 법민 태종무열왕 문명왕후의 맏아들 비는 파진찬 선품의 딸 자의왕후 외모가 뛰어나고
머리가 총명하며, 지략이 많았다.

650년(진덕여왕)왕명으로 당나라에 가서 대부경을 받았고, 654년(태종무열왕) 파진찬으로서 병부령이 되었다.
655년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김유신과 함께 5만 군대를 거느리고 분전, 백제를 격멸하였다.

661년 태종무열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고, 이듬해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쳤으나 고구려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하였다.
그뒤 복신도침등의 백제 부흥운동을 저지하였다.

668년다시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고구려를 쳤는데, 왕제 인문은 당나라의 이적과 합세하여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이로써 고구려는 멸망하였으나, 당나라가 고구려의 옛 땅은 물론 백제의 옛 땅까지도 자국영토로 삼으려 하자,
문무왕은 김유신에게 명하여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게 하였다.

고구려 유민의 부흥운동을 원조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나라에 대항하여,
677년 그 세력을 몰아내고 대동강/원산만 이남의 땅을 차지하는, 삼국통일대업을 완수하였다.
이때부터 한반도에 단일국가가 등장하였다.

문무왕은 당나라 문화를 수입하는데 힘을 기울여 664년 부인들의 의복을 당제에 따르게 하였고, 또 당악을 수입하였다.
674년 당나라의 역술을 본떠 신력을 제정하여 사용하였으며, 675년 동인을 만들어 중앙 백관과 지방의 주군에서 사용하도록 하였다.

676년 의상으로 하여금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 부석사를 창건하게 하였다. 681년 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화장한 뒤 경주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 대왕암에 안장하였다.

오후7시
가곡항의 고래등횟집에 도착해 등대가 보이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1급 조망지의 편상에 우리는 둘러앉았다.
이집은 자연산회만 취급하는곳으로 우리는 회로 배가 불룩,,,

오후9시
울주군의 뉴-하얏트 모텔에 도착해 2박3일 첫날밤을 바닷가에서 보낸다.
내일은 경주 콘도에서 숙박을 하게 될터이고,,,슬기둥 - 청사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2-20 2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