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위치 :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호리 특징, 볼거리 포항시 신광면 호리동 호리못의 상류에서 서쪽으로 조금 지나 올라가면 사방주위가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중앙에 우뚝 솟은 독립된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 산을 독산이라고 부르며, 혹은 일봉(日峰)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혹은 관봉(冠峰)이라고도 하는데, 높이가 약 100여 자이고 주위 둘레가 약 600여 자의 높은 릉으로 평지에서 뚝 불거져 나온 것이 이상할 정도다. 여기 독산으로부터 약 300여 m 지점에 같은 봉우리가 또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속칭 월봉(月峯)이라 부르며 일봉과 월봉사이에 신기한 빛이 있어 신광이라는 유래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월봉 위에는 고려시대 신을현(神乙縣)이라 할 때 향교의 터가 있었다고 전하며 우물이 있어 아무리 큰 가뭄이 와도 이곳은 마르지 아니하였다 한다. 옛날 촌로들의 말에 의하면 일봉산 꼭대기에도 자연히 솟아나는 샘이 있어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매우 따뜻하여 음료수로 매우 적당하여 음료수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늙은 소나무가 울창하여 여름철에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되었으나 한일합방 이후 손씨 문중에서 그 샘을 묻어서 묘지로 사용하였다. 풍수설에 의하면 학이 알을 품고 있다는 형상이라 하여 대명당이라 하였다. 이 독산을 중심으로 신광토성 등은 신라 동북방의 방어선이였는데, 이 부근이 수 차례 왜적과 신라군이 접전한 옛 싸움터였다고 한다. 신라 제17대 내물왕 38년(서기 393년) 지금으로부터 1573년 전 5월에 왜적이 동해로 침입하여 금성(경주)을 포위하고 5일간이나 공격을 해옴으로 신하가 왕에게 성문을 열고 아군 쪽에서 먼저 공격을 가하고자 권하였으나 임금은 듣지 아니하고 성문을 굳게 닫아 성을 보호하고 방어하니 왜적들은 식량이 모자라고 심한 비가 내리고 계속 천둥이 쳐서 천지를 진동함으로 전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북으로 도망하였다. 왕은 기병대 200여명을 급히 출동시켜 추격하고 왜적은 신광 독산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다시 반격하여 옴으로 신라군은 적을 포위하여 습격하니 왜적은 크게 패하여 수 백명이 포로가 되고 반 이상이 참살당하였다고 한다. 신라 제18대 실성왕 4년에는 왜적이 경주 명활산성에 침략하였으나 성을 지키고 있던 군졸들에게 패배당하여 도망감으로 왕은 친히 수천의 기병대를 데리고 신을현(神乙縣) 독산 남쪽에 나가 요새지에 매복하여 있다가 왜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급습하여 격파하고 300여 명의 적을 참살하였다고 하며 신라 19대 눌지왕 28년에는 왜적이 동해로부터 쳐들어와 금성(현재의 경주)을 포위하고 10일간이나 피차 공방전을 벌이다가 적은 군량이 떨어져 도망 후퇴하였다. 이때 왕은 군사를 동원 왜적을 추격코자 하였으나 신하가 말하기를 "병법에 쫓기는 적은 쫓아가지 아니합니다"하고 말씀드리니 왕은 말을 듣지 않고 수천기병을 거느리고 추격하여 신을현(神乙縣) 독산 동쪽에서 접전하였으나 대패하여 군사태반을 잃었다. 이리하여 왕은 홀로 왜적에게 포위되어 신변이 위급함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분전하던 중 홀연 안개와 구름이 꽉끼어 왜적이나 아군이 분간을 할 수 없어 왕은 무사히 적을 피해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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