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하 "산행기 게시판"에 올려진 산행기 입니다.


☞ 백설의 설원!(한치령-봉화산-검봉산)

올린이 : 썩어도 준치 , 2002/12/26(올린날)
게시판 : 
한국의 산하 | 산행기 게시판

☞ 백설의 설원!(한치령-봉화산-검봉산)

◈ "경강역-△466.5m-△410.3m-한치고개-봉화산-검봉산-강촌 유스호스텔"산행기(춘천시 남산면, 남면/2002년 12월 25일/날씨 : 맑음/총 산행시간 : 8시간 10분)

◐ 참석자 : 또마, 썩어도 준치(이상 2명)

♥ 교통편
갈 때
: 청량리역(07 : 50)-경강역(09 : 17)
올 때 : 강촌역(17 : 30)-청량리역(09 : 05)

♣ 산행코스
경강역-△466.5m-487.5m-450m-△410.3m-한치고개-450m(문배마을 분기점)-봉화산(△486.8m)-구곡폭포상단능선-관리사무소-자전거 보관소-405m-검봉산(△530.2m)-강촌유스호스텔(도상거리 18.5km)

◎ 개 요
북한강 물이 의암호에서 모여 서쪽으로 흐르며 가평에서 남쪽으로 휘돌아 치며 남이섬을 일구어놓고 남쪽에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홍천강 물줄기와 합수를 하며 삼면이 강에 둘러 쌓여 마치 큰 섬과 같이 보이는 춘천시 남삼면, 남면, 신동면에 걸쳐있는 산줄기를 경강역에서부터 밟았다.
▶ 봉화산 : 옛날에 이산에서 봉화를 올렸다 하여 봉화산이라 부르고 근년에는 두리봉이라고 한다. (삼각점:486.8m)
▶ 검봉산 : 산모양이 칼을 세워 놓은 듯 뾰족하다 하여 칼봉이라 한다.(삼각점:530.2m)

◎ 산행일기
"석룡산-화악산-촉대봉" 종주를 계획하였다가 주변에 정리를 하여야할 일들이 있어서 회원들의 만남을 자제하기 위하여 취소를 하고, 교회를 가려다 이미 세운 산행 계획이기에 갑작스레 24일 밤 10시를 넘어 산행을 고시하였다.
누가 와 주기를 바람에 의하여 서가 아니라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또마님에게서 전화가 와 무박 지리산을 가려고 하였는 데 버스를 놓쳤다며 "쉭쉭" 거리는 그를 달래어 내일 함께 "봉화산-검봉산"에 가자고 꼬시니 순수니 응한다.

여느 산행과 같이 부지런을 떨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충분한 출발이다.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많은 젊은 친구들의 여행으로 무척이나 북적거린다.
07 : 50 춘천행 통일호 열차는 눈살이 휘날리는 속을 헤치며 "마석-대성리-청평"을 지난다.
차창밖에는 많은 눈이 뿌리며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나로 만들어 주려 하고 있다.
눈 오는 날의 기차여행의 정취를 함께 즐기는 행운이 따른 산행날이다.
모처럼 맛보는 White Christmas의 산행을 기대하며 마음은 부풀었지만 뿌옇게 낀 가스는 시계를 불량하게 하여, 오늘 산행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마음을 부담스럽게 하여 주곤 한다.
가평역에 도착하니 흰눈이 계속뿌리며 함박눈으로 바뀌어 지고 있다.
09 : 17에 북한강변이 내려다보이는 해발 70m의 경강역에 내리니 쌀쌀한 일기가 몸을 바짝 움츠리게 하고 있다.
표를 개찰하는 역무원도 없는 역사에는 추위에 떨며 기차를 기다리는 나이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
표를 사무실에 밀어 놓고 산행준비를 한다.

09 : 20
불안하였던 눈도 그치고 시야도 이 정도면 산행하기에 good이다.
도로를 건너 바로 절개지를 올려 칠까하다 도로를 따라서 마을로 들어가니 낮선 이방인의 방문에 경계심 어린 개들이 무지하게 짖어 대고있다.
바로 능선로 올려치니 능선상에는 눈 속에 살포시 감추어진 등로 흔적이 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을 밟으며 자국을 내며 가는 발걸음은 아주 상쾌하고 신선하다.
안부의 햇골과 샘물을 넘나드는 등로사거리를 지나 묘를 연달아 3기를 지난다.
나지막한 야산이라서 많은 묘들이 있을 것이 예상된다.
등로 삼거리에서 좌측등로를 버리고 계속 올라쳐 묘를 지나서 군 벙커위에 올라선다.
묘를 지나고 전주이씨 선희지묘를 지나서 앞을 보니 뭔 골프장 공사를 하며 산허리를 잘라서 좌우로 모두가 골프장으로 공사중이다.
작년 11월 말에 등선봉에 올라서 이곳의 운동장 같이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 하였던 의구심이 1년만에 풀리는 순간이다.
배수로를 따라서 오르니 능선에는 희미한 자취가 나타난다.
능선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골프장이 펼쳐진다.
204m를 오르고 내려서려니 정면은 골프장으로 절개되어 잣나무가 식수되어 있는 가파른 곳이라서 우측의 사면으로 내려선다.
골프장 도로를 건너 210m의 인공폭포에서는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물이 흐른다.
하얀 흰눈이 덮인 설원 골프장을 가로질러 인공호수를 지나서 암반을 절개하여 만든 폭포 밑으로 가 올려다보니 족히 30m는 넘어 보인다.
폭포 절개 사면을 좌측으로 올라서 폭포위로 올라가니 폭포물이 떨어지는 곳, 인공수조에는 깨끗하고 물들이 철철 넘쳐흐르며 아래로 물보라를 피운다.
골프장이 개장되면 이제는 이곳의 산행도 끝이 나는 것이로구나 하며 마치 잘 왔구나 생각한다.
널따란 골프장을 가로질러서 반 지하 형식의 관리 사무소 시설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올라서 능선을 따라서 골프장의 영역을 벗어난다.
철탑을 지나고 묘가 있는 곳을 지나서 370m 오르면 이 봉우리가 십자로 분기점임을 알 수가 있다.
동쪽으로는 259.6m 능선이고 서쪽으로는 햇골쪽 360m능선이며, 남북으로는 우리가 걷고 있는 능선이다.
골프장이 완성되면 앞으로는 경강역 앞에서 바로 산행을 못하고 샛말을 지나서 능선을 올라붙어 259.6m를 거처서 이곳으로 산행을 하여야 된다.

10 : 34
365m를 좌측으로 우회하여 묘를 지나고 330m를 넘어서 좌측으로 내려서는 길목에 빨간 비닐 끈의 표시기가 길을 밝힌다.
지금까지 하나도 없던 표시기며 비닐 끈에 스템프로 찍은 것이 신기하여 들여다보니 그 유명하신 "영춘 박성태"님의 표시기였다.
표시기를 따라서 절개지를 내려서니 도리골에서 문의골로 연결된 임도다.
임도를 건너서 절개지를 올라서 능선을 따라서 남쪽을 향하니 이방인의 침입에 놀란 큰 산토끼가 후다닥 튀기 시작한다.
그의 평안함을 깨트려 버린 것에 미안한 마음이 가져진다.

11 : 20
466m를 넘어 좌측으로 내려서니 "영춘"님의 표시기가 길을 밝힌다.
확실히 산을 사랑하며 자신을 나타내기를 거부하는 행동이시다.
산행을 통하여 님의 표시기는 모두 봉우리에는 하나도 없고 내려서는 10m정도 길목에서 정확히 길을 안내한다.
뭇 사람 모양 "내가 여기 왔다 같소"하는 표시가 아닌 "이곳이 등로입니다"를 알려 주고 있다.
그분의 산행 마음가짐을 엿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표시기를 부정하는 듯이 앞뒤를 잘라버려 거두절미하며 말을 하는데 부정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영춘"님과 같이 검소하며 표시기의 기능을 따라서 사용하라는 것이고, "내가 여기 왔다 같소"식의 자신을 나타내려 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한다.
여기서 이름은 인위적인 행동에 의하여 남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행적과 공으로 후대가 평가를 하여서 남는 것을 말한다.
내가 하는 산행은 피와 땀을 남에게 나타내려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만족하고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안맞는 사람과 산행을 하면 그런 기쁨과 즐거움을 탐익할 수가 없는 것이다.

11 : 35
△487.5m넘어 내려서며 좌측으로 아주 고요한 흰 눈을 뒤집어 쓴 집 서너채의 샛말 농가가 펼쳐진다.
완만히 내려서며 450m를 넘어서고 나무 가지가지마다 흰 꽃을 피운 설화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곤 한다.
모두가 하얗게 변하여 버린 백설의 설원이다.
오늘 산행에 나선 코스는 400m~500m를 넘나드는 비교적 얕은 산이지만 해발 70m에서 시작하였으므로 해발 1,000m에서 1,300~1,400m을 넘나드는 산행과 똑 같으나 낮은 야산은 높은 산보다도 굴곡의 구릉지가 많다.
방하리 큰골과 샛골을 넘나드는 안부를 지나서 오늘 산행중에 그래도 가파른 곳을 오른다.

12 : 11(휴식 : 6분)
570m 슬어니고개-한치고개 분기점이다.
이곳에서 좌측 한치고개 쪽으로 내려서니 영락없이 "영춘"님의 검소한 표시기가 길을 알려준다.
비닐 끈의 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인 것을 보면 1달 이전에 산행을 하신 것 같다.
좌측의 까만 비석이 있는 묘를 지나지만 여름에 녹음이 우거졌을 때는 보이지 않을 만한 거리다.
날이 개이며 햇빛에 반짝이며 반사하는 눈에 눈이 부시어 sun grass의 필요성을 느낀다.
6분간 쉬며 뒤에 떨어진 또마님이 오기를 기다린다.
△410.4m를 넘어서 급하게 내려선다.

12 : 35(점심 : 55분)
남산면과 남면을 넘나드는 한치고개 임도다.
이곳에는 "한치령"이라는 자연석으로 된 큰 표시석(1972년 11월 10일. 8586부대)과 Mountain bycle 코스로 이용되는지 한국 마운틴 바이클 강원도연맹의 "춘천시 25km" 표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지금까지 발자국이 없는 곳을 산행하였는데 이곳에는 사람 발자국과 차동차 타이어 자국이 눈위에 선명하다.
이곳에서 오늘 산행 후 처음으로 물을 마신다.
이곳에서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라면을 끓이고 참초에 곁들여 한잔을 즐긴다.
잠시 쉬는 시간은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어느덧 50여분이 후딱 지나 버렸다.

13 : 30
한치령을 떠나나 절개지를 가파르게 오르니 점심을 하고 하는 산행이라서 다리도 무겁고 힘도 무척이나 든다.
동쪽으로 가파르게 오르며 430m를 넘어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가파른 내림길이나 사람의 흔적이 없는 길아라서 그리 미끄럽지는 않게 내려선다.
410m를 넘어서고 앞에 우뚝 솟은 450m를 우측으로 우회하여 능선에 오르니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있다.
이정표(문배 3km 30분-봉화산 4km, ↙검봉산 530m)를 밝혀 주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많은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서 내려서면 문배마을을 통과하여 검봉산으로 오를 수가 있는 곳이다.
우리는 봉화산을 오른 다음 검봉산을 오를 계획이라서 이곳으로 Back을 하던지 관리 사무소로 내려섰다가 다시 검봉산으로 올라야 한다.
사람바위가 있다는 암봉과 사자바위가 있다는 바줄이 설치되어 있는 암봉을 연달아 넘어 서지만 어느 것이 사람바위인지 사자바위 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전망이 아주 훌륭한 바위에 올라서니 북동쪽으로 문배마을과 검봉산과 동쪽으로 봉화산이 한눈에 들여다 보인다.
바위를 내려서는 등로는 많은 사람의 발자국으로 다저저 무척이나 미끄럽다.

14 : 33
구룡폭포관광 관리사무소와 가정리로 연결된 임도다.
이곳에는 많은 발자국이 구룡폭포 쪽으로 연결되어 지고 이정표(문배 2.5km 30분↔봉화산 1km 10분, ↑가정리, ↓주차장 4.5km 1시간 10분)과 Mountain Bicle 표시판이 있다.
봉화산을 향하여 오르니 봉화산에서 구룡폭포 쪽으로 뻗은 능선에 오르며 이정표(주차장 4.2km 1시간 20분↔봉화산 1km 10분)를 지나서 바줄이 매여진 곳을 오르니 오늘 산행에서 처음 으로 사람 구경을 한다.

14 : 45
봉화산(486.8m) 정상이다.
두구룹의 젊은 사람들이 있고 등산로 안내판과 춘천 그냥산악회에서 설치한 스텐리스 삼각기둥에는 487m로 표기되어 있다.
바로 지척 동쪽에는 510m이 솟아 있으며 남서쪽으로 멀리 호명산과 뾰루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북동쪽 등로로 내려서다가 보니 이곳은 관리사무소로 내려가는 등로다.
다시 Back하며 봉화산으로 올라서서 스텐 정상봉 뒤로 흔적이 없는 가파른 곳을 내려선다.
이정표(주차장 4.2km 1시간 20분↔봉화산 1km 10분) 있는 곳에서 북쪽의 능선을 따라서 계속 내려서니 관리 사무소로 가는 임도로 떨어진다.
임도는 굽이굽이 돌고 있으므로 두곳을 산 사면을 가로지르며 임도로 떨어저 편의시설 통나무벤치가 설치된 능선을 지나 내려서면 이정표(봉화산-문배마을)표시판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남서쪽 소로를 따르면 문배마을을 거처서 검봉산으로 오를 수가 있다.
그러나 남쪽에는 "등로없음" "폭포길" 표시판이 사람을 궁금하게 하여 문배마을 길을 버리고 폭포쪽 길을 향하니 "폭포쪽 암릉 위험 출입 금지"를 알린다.
암릉을 밟으며 가니 좌측으로 추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철망이 설치되어 있고 까마득한 절벽으로 구곡폭포 쪽 도로가 아득히 보인다.
암릉 전망이 좋은 곳에는 작은 돌탑이 무수히 있으며 절벽의 경관은 정말도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찔할 정도다.
암릉을 따라서 계속 내려선다.
급하게 내려서는 암릉길이다.

15 : 40(휴식 : 5분)
등산로 아님 표시판과 철망을 넘어 내려서니 관리 사무소 바로 위의 다리 있는 곳으로 내려선다.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즐기려 찾아 왔다.
모두가 젊은 사람들로 저마다 즐거운 표정이 넘치며 사진을 찍고 심지어 순간을 이용하여 애정의 표시까지도 과감하게 나타낸다.
매표소를 빠저나와 자전거 보관소가 있는 주차장에서 좌측의 흔적이 있는 능선을 오른다.
이곳은 해발 110m 바닥이니 다시 420m는 치고 올라가야 되는 고행이다.
묘를 지나고 "입산통제" 벌금 10만원 현수막을 지나서 연달아 묘 2개를 지나고 계곡을 따라오르나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 묘를 넘어서고 가파른 능선의 오름 길이다.
산행 시작 같았으면 문제가 되지 않으나 많은 시간의 흐름에 지친 몸은 오름 길이 무척이나 힘이 든다.
암능을 좌측으로 우회하며 후사 면에서 능선으로 오르고 능선은 북쪽을 향하여 올라서며 봉우리 2개를 넘어서니 기운도 딸리고 허기도 져서 몸에서는 진땀과 식은땀이 범벅이 되어 흐른다.
또마님은 한번도 쉬지않고 계속 산행을 한다고 투정을 한다.
잠시 주저앉아서 간식을 하며 힘을 복 돋는다.
찹쌀떡과 쥬스로 원기를 복돋으며 좀 더 쉬려고 하였으나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며 능선상에는 찬바람이 몰아치며 추위가 엄습하여 오므로 바로 그냥 내달려 올라간다.

16 : 32
삼각형 정상석과 삼각점, 이정표(강촌리조트 2km, 강선사 3.2km, 구곡폭포1.7km), "119 긴급구조 7지점" 표시판이 설치된 뾰족한 봉우리 검봉산(530.2m)이다.
국립지리원 지도첩에는 검봉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이곳에는 검봉산으로 표기되어있다.
서북쪽으로는 강촌리초트의 스키스로프와 사람들이 목도되고 그 너머로는 우리가 거쳐온 허리가 잘린 산줄기와 골프장이 보인다.
허리가 잘린 모습에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먹어가며 마음도 여려지는 모양이다.
몸도, 마음도 여려지게 하는 것이 세월인 모양이다.
서쪽을 향하여 내려서며 "119긴급구조 6지점" 표시판과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의 등로로 들어선다.

17 : 00
"119긴급구조 6지점" 표시판과 철탑을 지나며 완만한 등로를 달린다.
해는 어느덧 서쪽을 붉게 물 드리며 사라지고 있다.
좌측 북쪽으로는 시원히 흐르는 푸른색의 북한강 물줄기와 마을의 전등불빛이 반짝이며 등성봉의 위용이 나타난다.
삼거리에서 좌측의 능선길로 접어들고 앞에 보이는 마지막 오름 435.6m 바로 처 올라야 되는 것을 우측의 우회등로도 들어선다.
힘에 부처서 30m 정도만 오르면 될 것을 우측으로 우회하여 남쪽 능선상의 철탑있는 곳으로 간 것이다.
Back를 하여 435.6m에 오르면 되지만 그 곳에서 그냥 동남쪽의 흔적을 찾아서 내려선다.
주위는 어둠이 찾아들며 내려서는 등로는 순한 숲길 등로다.
어느덧 빨강 스레트 지붕의 농가가 보이며 온 동네 개들이 짖어대며 반기어 주고 있다.

15 : 30
개들의 소리를 뒷전으로 흘리며 초록의 네온 불빛이 밝히는 강촌유스호스텔 앞 도로로 내려선다.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어둠이 물드는 도로를 행군을 하듯이 줄지어 가고 있다.
우측의 자전거 도로에는 질주하는 바이킹족들이 환호를 지르며 달린다.
휴식 시간이 별로 없는 8시간 10분에 걸친 산행을 접고 매운탕 집에서 소주로 몸의 피로를 풀고 19 : 30 열차에 몸을 의지한다.
골프장으로 개발되며 사유지화 되어 산행을 할 수가 없는 곳을 산행하게 되어 가슴 뿌듯한 생각이 져며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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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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