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다 . 아침 일찍 투표하고 주섬주섬 보따리 챙기는데 지난번 기백산 산행이후 계속되는 독감의 횡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내가 부탁을 한다 . 멀리 가지말고 가까운 산으로 가랜다. 아니그래도 아픈 아내를 팽개치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찜찜했는데
그말을 들으니 더더욱 속이 시리다.
삼산(악견산, 금성산, 허굴산 ) 종주 산행이나 하자싶어 댐으로 들머리를 잡는데 웬 아주머니
한분이 도로변에 서 계신다. 혹시 대병으로 가시면 타시랬더니 목을 빼고 한참이나 내 얼굴을 주시한다. 흉악범으로 뵈지는 않으셨든지
올라오신다. 대병 신소재지 식당에서 일하신다네 . 그나저나 악견산 부터 시작할려든 계획이 틀어졌네 . 아주머니를 내려드리고 다시 악견산으로
갈려니 그렇고 해서 허굴산으로 길을 잡는데 문득 모산재 묵방사 등로가 그리워져 두심리로 길을 고쳐잡고 매표소로 향하니 튀어나온 앞니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아주머니가 입장료 주차비 포함 2800원이랜다. 합천 사람은 좀 깎자는 실없는 소리를 던지고 영암사 주차장으로 길을 구르니 도로
확장 포장 공사가 한창이다.
영암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배낭을 메고 몇발자국 걷다가 묵방사 초입까지 갈 일이 그만 까마득해져
미련없이 발길을 돌려 애초 계획되로 악견산으로 변덕을 부린다. 얼마전까지 뵈지 않던 납골당 왼편으로 또한기의 늠름한(?) 묘지가 주위
경관을 헤치며 자리하고 있다. 안타까운일이다.
아무도 없는 호젓한 산길을 쉬엄 쉬엄 오르니 집에 누운 아내 생각이 간절해진다.
요만큼 올랐으면 쉬어가자며 내 발길을 붙들고 과일도 깎아주고 간식도 챙겨주며 지서방에게 공을 들이련만 없으니 많이 아쉽다. 첫번째
철계단에서 두꺼운 쟈켓을벗고 세번째 철계단을 지나 전망대에서 장갑과 모자 마저도 배낭 속으로 들어갔다. 꼭 봄날 같다.
바위를
돌고돌아 소나무 숲길을 지나는 길은 산행내내 합천호를 등에지고 오른다 . 은어의 하이얀 뱃살같은 햇빛의 편린이 부서지는 호면을 바라보는
멋은 장쾌하고 아름답다. 답답한 가슴이 뚫리는 시원한 청량제로서 부족함이 없다. 천천히 걷노라 걸었건만 어느덧 악견산성터에
닿았다. 거반 다올라온 셈이다.
임진왜란때 곽재우 장군이 건너편의 금성산에 줄을 매어 놓고는 붉은옷을 입은 허수아비를
띄워 왜놈들을 혼비백산케 했다는 얘기는 합천인이라면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유명한 전설이다. 재미난 김에 한두가지 더
주절거려보자. 곽장군이 입었다는 갑옷(홍의)은 여자의 초경을 모아 칠한것으로 음기가 강해 능히 화살과 철환이
뚫지못하였다한다.
그리고 장군의 신묘함중에 기중 특출한것이 목소리인데 보통 사람은 기함할 정도로 컷다한다. 장군이 약관때에
심신을 단련하고 호연지기를 기르기위해 평소 사냥을 즐겼었는데 어느 심산궁곡에 서 길을 잃고 헤메다 작은산을넘어 어찌어찌 겨우 한칸 초막을
찾아들었는데 초막 주인은 상상을 절하는 덩치의 남매였다한다. 남매의 얘긴즉 천계의 어떤 사악한자가 죄를짓고는 하계로 내려와 범으로 변해 항차
인간세계를 어지럽히려하므로 그를 잡으로 온 선관들이라 했다.
그래 내일 자기들이 그범과 싸울때 한번 소리만 질러주면 범의 부주의한
틈을 타 자기들이 그 범을 잡겠으니 일조해 달라며 간곡히 부탁한다. 의협심 강한 장군은 쾌히 응락하고 다음날 그들의 싸움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범의 엄청난 덩치에 압기가 되어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 선관들의 타박에 마음을 다잡은 장군은 다음날 약속대로 겨우 모기만한 소리를 내게
되는데 어쨌던 범의 시선을 뺐는데 성공해 선관들이 범을 잡게된다.
선관들의 치하를 들으며 산을 내려온 장군은 주막에 들러 "여보
주모 " 하고 부르는 순간 주막 집채가 와르르 내려앉았다 한다. 천계의 능력이 장군에게 전이된 까닭이였다. 임란 삼대첩에 빛나는
진주성 싸움에서 장군은 진주성이 잘 보이는 높은 산에 올라 왜진을 향해 한번 소리를 내놓으니 뇌성 벽력 같은 사자후가 터져나와 왜놈들을 벌벌
떨게 하였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정상에는 하늘의 선관들이 가지고 놀았을 법한 공기돌 같은 거대한 바위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어 이채를
띈다. 먼저 온 한무리의 산꾼들이 단체 사진을 찍어 달래며 부탁을 한다. 그들은 악견산 가든으로 하산한다면서 통천문 쪽으로 사라진다.
모처럼 의룡산으로 한번 산행을 이어보고 싶었으나 돌아올 길이 막막해 그냥 온길로 다시 내려간다. 평소 하산로로 이용하던 버섯농장 길도 버리고
합천호를 원없이 바라보며 천천히 길을 더듬으니 젊은부부 산꾼 한쌍이 다정히 앉아 쉬고있다 . 몸아픈 아내가 떠올라 금성산 허굴산 연계산행을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내달렸다. 점심때는 아직 멀었고 해는 중천에도 오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