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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에 펼쳐진 설원
11일 10시 13분, 경부고속국도 언양 나들목을 통과 후 24번 밀양 방향 국도에 차를 올렸다.
10시 25분, 궁근정 삼거리에서 좌회전 석남사를 지나 69번 배내골쪽 지방도를 타며, 고개를 넘어선 후 이천리 방향 배내천을 따라
경남 양산시 원동면에 들어선다.(도경계 이정표가 있다) 백련에서 청수골을 가리키는 손짓따라, 배내천 건너 파래소 유스 호텔 뒤로 파고 들며
백련암으로 올라설 때, 검은 도포 소매 자락으로 백련암을 감싸안은 기암이 어서오라 반긴다. 11시 10분, 신불산 자연 휴양림에
도착 그니와의 산행은 시작 되고 있다. 지난 여름 태풍 "루사"로 인한 벼락같은 물살에 허리가 휜 목교가 제구실 못하고 신음하고 있으며,
기암과 바위들을 흩어놓은 왕방 골짜기(지역민들의 통칭 용어)는 볕에 몸 드러내 놓고 겨울을 즐기 고 있다. 11시 26분,
신불산 정상으로 곧장 오르는 길 버리고 좌측 파래소 폭포 방향으로 오름탄다. 겨울 문턱을 훨씬 너머선 햇살이 발길 잡아끌며 오름길을
발가벗긴다. 그의 품을 헤집는 발길이란 들뜬 기분으로 삭혀 들고, 어렵사리 정을 느낄 수 있는것은 드넓은 가 슴이 있기때문
아니겠는가, 간혹 떠도는 새털 구름이 흰분칠 하고있는 간월산 기슭을 감돌면서 사그 라들고, 바람끼 한점없는 냉기는 오르는 열기에 저만큼
물러 앉는다. 왕방골 가득 흐르는 맑은 물의 손놀림에 기암은 간지럼 타고, 병풍같은 괴석 치마폭 아래로 줄줄이 엮여있는 고드름이,
거꾸로 든 삼지창을 꽂으며 뭇 손길 거부한다. 바람은 어디있는지 낙엽 조차 생글 거리고, 계곡을 흔들어대는 물흐르는 소리만 해맑은
공간으로 퍼 져 나간다. 11시 45분, 생살 뚫어 아연을 파먹던 인공 동굴 앞 얼음 기둥이 종류석 마냥 막아서며, 아물어가는
아픔을 또다시 덧나지 않게 열림을 거부한다.(들어가지 못하게 쇠창살로서 막아 놓고 있다) 패여진 쓰린 과거를 진액인 양 눈물 흘리는
고드름의 흘김에 등을돌려 파래소 폭포로 올라선다. 잎푸른 계절의 장막 걷어내고, 가루분 처럼 하얀 물살 붓고있는 그는 오르는 발길을
그대로 묶어 둘 심산이다. 높이 15여 미터 떨어져 내리는 물살을 흰 갑옷으로 가두어 놓고있는 폭포는 둘레가 100여 미터에
이르고 깊이는 3미터 나 된다. 12시, 폭포를 우측에 버리고 상단지`간월재 쪽으로 오른다. 자꾸만 뒤를 당기는 물보라에
급한 오름길은 걸려 넘어지고, 눈길은 돌아 보는 지쳐감없이 실한타래 깊은 소(沼)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오름길은 폭포를 발아래
두고 계곡 속으로 묻혀 들어가다가 뱉어 냄을 당하면서 까지 원망 치 않고, 능선을 기어 오르다 내침을 당해도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에는
차라리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며, 두 눈 가득 들어찬 겨울빛에 그을려 앙상해진 초목도, 어깨를 힘껏 누르는 신불 능선도 그를 막지
않는 것은 깊게 밴 땀 냄새를 그리워 함이 아니겠는가, 그 냄새가 정열의 결실임을 아는지라 오르는 발길 에 힘이 들어간다.
12시 13분, 전망대 길을 좌측으로 버리고 숲속의 집으로 파고 든다. 눈이불이 오름길 덮으며 반사 된 빛이 눈동자를 찌르고,
푸른 진물감을 쏟아 낼 것만같은 하늘은 신불 능선 자락을 물들인다. 물모임 이룬 작은 소(沼)들은 하얗게 얼어붙어 계곡을 감추며
갈라진 기슭을 맞잡아 어우린다. 12시 35분, 자동차 야영장을 지나 죽림굴로 오른다. 간월 능선이 흰살결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으며, 가마솥 바닥같이 둥글게 밀어낸 간월재를 가 로질러 저보다 덩치 큰 신불산의 흰살 마저 털어 내려 한다. 능선 허리 가르며
뻗힌 임도를 앞서 걷는 그니의 발길이 눈길 잡을 새 없이 눈속에 묻히고, 훨씬 어 떤이의 자욱이 찢어놓은 한지 마냥 비틀대며 앞선다.
13시 22분, 조릿대에 둘러싸인 천주교 성지의 죽림굴에 오른다. 입구는 좁고 낮아 어둠이 활개치고, 온기는 감돌아 온몸 달아오른
열기를 밀어 내려 한다. 죽림굴을 뒤로한 오름 길에서 올려 본 신불 암봉이 흐르는 구름을 잡아 찢고, 간혹 일기 시작한 느 긋한
바람이 왕방골 앙상한 숲머리를 쏴아하고 훑으며 지나간다. 때이른 솜털 움을 달고있는 버드나무는 계절을 잊고있으며, 잃어버린 시간을 주워
담고 있는 억새는 연신 고개를 주억 거린다. 눈속에 허리를 반쯤 묻은 싸리 나무의 반김에 가슴이 열려지고, 오름길 안고 돌아서며
춤추는 고사 목의 되새김 추억이 간월 자락에 수놓여 지면서 목을 비끌어 매는구나. 14시 10분, 차디찬 눈바람이 넘나드는 간월재에
올랐다. 상북면이 깊은 해수면 속으로 빠져 들고, 울산 광역시가 희붐한 대기에 갇혀 숨을 몰아 쉬고 있다. 신불산으로 오르는
능선길 우측 멀리 재약산(사자봉과 수미봉)이 흰 가운을 걸치고 바라보고 있으며, 바람이 달아놓은 잎 버린 활엽수 가지위에 핀 눈꽃이,
하나같이 깃발 나부끼 듯 작천천 쪽으로 고개 를 내밀고 있다. 정상을 1키로 미터 쯤 두고서 발바닥에 호랑이 발톱(아이 젠)을 달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을 힘겹 게 오르나, 능선에 펼쳐진 설원의 아름다움은 가슴속의 희열을 한층 돋운다. 14시 57분, 1209미터
신불산 정상에 올랐다. 그동안 이이의 어깨위에 몇번 올랐었지만, 눈 바다를 뒤집어 쓴 이녁 품에 안기긴 처음인지라 느끼 지 못한
사랑이 아른 거린다. 울산 광역시 상북면과 삼남면, 경남 양산시 원동면 일대를 경계로 지척에 간월`취서산을 두고 있으 며, 해발
1000미터 이상의 영남 알프스 7대(가지,운문,재약,취서,고헌,간월)산 중 하나이다. 능동산에서 시작된 배내천을 치마폭으로 감추고,
뼈발린 공룡 능선을 상북 작천정으로 흩뿌리며, 신 불 평원 억새의 사랑을 간직하고서 찾는 이들과 함께 노래한다. 정상 이어선지 하늘
바람이 기온을 끌어내려, 등산복으로 감싼 몸뚱이를 냉기가 파고 들며 땀에 젖 은 살갗을 엔다. 면장갑 낀 손끝이 아려 오면서
감각은없고, 펼쳐놓은 도시락을 먹으려 해도 꼬여 헝클어진 젓가락이 닿기도 전에 미끌어 떨어져 집어 먹을 수 없다. 아래턱의 떨림을
멈추려고 어금니에 힘을 주지만 의지와 관계 없이 착암기 바위 뚫듯 부닥치며, 오 그라든 어깨는 팔꿈치를 수월하게 접 펴지를 못하게 굳는다.
영하 5~6도의 날씨 이나 바람불어 체감은 훨씬 더 하다. 방한모 틈새로 눈과 입만 내놓고 짚이는 대로 볼 터지게 쑤셔 넣은 후
급하게 일어서며 신불 평원으 로 내리 꽂는다. 15시 30분, 5~600여 미터 아래 신불 평원에 내려 선 후, 삼남면 가천 마을의
반대쪽인 백련암으로 내리는 길이 눈속에 묻혀 찾을 길 없다. 한참 찾아 헤매다 포기하고 신불 평원을 지나 취서산(영취산) 방향으로
능선길 탄다. 좌측 아리랑 능선이 검은 자태를 깎아 세우고 산그림자를 갉아 먹고 있으며, 평원을 쓸어내린 설풍 은 그의 암벽에
부닥쳐 계곡 깊이 곤두박질 친다. 15시 55분, 취서산(영취산) 정상을 500여 미터 남겨 두고 우측 청수골의 깊음을 알지 못하기에,
길 라 잡이인 리본 쫓아 눈밭을 헤치며 쉼없이 내린다. 정적에 싸인 계곡을 오후 네시 반 넘기면서 까지 벗어나지 못하는데 해는 영취
서쪽 능선에 매달려 마지막 안간힘 쓰고, 금시 어둠이 올것만 같으므로 그니를 다그쳐 발길을 잰다. 다행인것은 계곡 숲이 바람을
잡고 있어, 쥐어 짜는 듯한 정상에서의 살벌함 볼 수 없다. 주둥이를 들어 올린 늑대 잇빨같은 고드름이, 산그림자 어두운 계곡 건너편
기암을 세로로 찍어 누 르고 있는 기세에 온몸 굳어지며 할 말 잃고, 상처난 기슭에서 흘러 내린 바위 거품은, 저무는 하루 의 끝을
잡고 안녕을 빌어 준다. 17시, 청수골 초입에서 한피기 고개로 오르는 갈림길 버리고, 수없이 찾는다 해도 싫어 하지 않을 이이의
품속에 정을 삭여 두고서 보금 자리로 스며 든다.
- 안 녕 -
_ 2002,12,11. _
_ eaolaji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