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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5(목요일)
월악산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요"
동창교(입구)에서 40여분 걸었을 때, 아내가 걸음을 잘 옮기질 못하고 울상이다. 산으로 오를수록 안개는
점점 짙어진다. 아내는 안개 낀 날을 특히 못견뎌 한다. 몇 걸음을 걷고는 심호흡을 하고, 날씨가 이럴 줄 몰랐지. 어제는 30년만인가 최고
기온이라더니, 봄날같이 따뜻해서 날씨 아깝다고 시간을 내서 산행길에 나섰는데, 안개 낀 산속만 헤매다 돌아가게 생겼다. 더구나 아내가 괴로워하고
있어 걱정이 된다. 돌에 걸터 앉아 커피를 내서 마시고, 심호흡하고, 좀 진정이 되는 듯, 그래도 산행길 내내 전에 없이 힘들어
했다.
새벽 5시에 출발했는데, 중부고속도로 일죽IC, 생극, 여기서 약간 헤매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길을
물어 찾아왔다. 이 시간에 깨어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은 주유소 뿐이었다.
"여기서 5k정도 오던 길 돌아가서, 첫 번 째 신호등 만나면 우회전 하세요, '주덕,충주'란 이정표
방향으로요. 3번 도로요..." 우리가 가던 길은 '음성,괴산' 방향이었다. 집에서 지도를 숙지하고 와야하는데 잘 아는 곳이라 생각하고 나섰다가
밤길이어서 쉽지 않았다.
'주덕,충주' 이정표를 보고 찾아가면 수안보까지 고속도로 못지 않는 왕복 4차선의 반듯한 길이 뚫려
있다. 지금 공사중이니, 몇 년 안으로 이길이 고속도로와 만나 개통될 것이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일죽을 벗어나면서 한두 방울 차창에 떨어지던 빗낟이 점점 심해진다. '날씨가 너무
따뜻하더라니' 걱정은 되지만 돌아갈 수야 있나. '수안보, 월악산'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비는 그쳤는데, 밝아오기 시작한 하늘이
낮게 드리워 좀체 좋아질 것 같지를 않다.
충주호 배타는 곳 지나서 동창교 입구, 송계계곡 매표소 앞이다. 여기서 '자광사'절 쪽 (왼쪽)으로 오르면
월악산이다.

오늘은 여기서 정상을 거쳐, 덕주사로 내려가는 코스를 잡았다. 월악산이 세 번 째인데 주로 이 코스로 올랐다. 산을 올려다보니,
온통 안개에 덮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진에 담아가려 잔뜩 별렀는데 낙심천만이다.
입구 휴게소 주차장도 텅비어있다. 동창교에서 샘터까지는 1k정도 거리로 약간 경사가 진 오솔길이다. 여기
온지가 5, 6년 됐을까, 그 때는 길을 구분하기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돌을 반듯반듯하게 깔아서 잘 정비해 놓았다. 평일이고 아직은 이른
아침이고 이슬비에 안개까지 끼어서 산에 들어선 사람은 우리 부부뿐인 것 같다.
9시 22분 샘터 이정표, 30m 내려가면 '샘터'라 이정표에 씌여 있는데 가본적은 없다.
이 샘터 이정표로부터 2K정도가 가파른 오르막 길이다. 길은 돌을 놓아 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는데,
주변 볼거리도 없는 믿믿한 산중의 오르막 길이다. 안개속을 하염없이 올라야 하는 길이니, 더구나 10m 앞도 안 보인다. 그래서 아내가 답답해
하는 것 같다. 아내가 그러니, 나까지도 가슴이 답답해 온다. 미로속을 헤매는 듯 어떻게 벗어날까 발버둥치고 있다.
"우리는 10여미터 앞이 보이질 않는 걸 가지고 이 야단을 치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하긴...."
"안개 공포증에 걸린 모양이다. 여기서 '야~호~' 소리쳐 보자"
산중에 아무도 없이 우리 둘 뿐이라는 것이 더 숨막히게 한 모양이다.
둘이 목소리를 합하여,
"야~~호~~"
"....~~~...."
산울림뿐이었다.
첫 번째 오르막길 끝지점,오르막 중간지점이다. 능선에 앉아 귤 사과 까먹고, 다시 두 번째 오르막길,
오늘 따라 유난히 긴 것같다. 흙길이어서 등산화가 온통 흙투성이가 되고, 첫 번 오르막길과 거의 같은 거리,1k정도를 다시 오르니 보이는 것은
없고 숨은 막히고 정말 답답하다. 안개는 오를수록 더 짙어진다. 마음속으로 제발 안개가 걷히기를 기원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열시 오십분, 두시간여 만에 두 번 째 오르막길 끝나고, 덕주사 코스와 만나는 능선길에 올랐다. 조그만
대피소도 있다. 대피소 안에 들어가서 지나는 사람들을 기다려 봤는데 10여분 지나도 인기척이 없다. 대피소에는 구급약도 있고, 다녀간 몇 사람의
낙서도 보인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늘 사진은 못찍어요."
내가 시간을 지체하고 있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다른 날처럼 서두르지 않으니, 이제는 아내도 내 속 마음을 꿰뚫고 있다. 나는 어떻하든 안개 걷힐 시간을
벌어보려고 늦적 대다가, 마음을 읽혔으니,
"나 마음 비웠어.....빨리 가자구....."
'이럴바엔 가까운 북한산에 오르는게 나았을 걸.....'
이제 정상 바로 아래까지는 능선길이다.
'후둑후둑' 나무에 모아진 물방울이 목덜미로 떨어져서 섬뜩하다.
정상아래 '위험' 표지판이 앞까지 왔는데, 안개가 심해서 절벽 조차도 보이질 않는다. 봉우리를 좌측에
두고 돌아서 뒷편으로 정상을 오른다. 낙석 방지 철책을 세운 길을 돌아서, 숨을 돌리며 안개 속의 경치 몇 컷을 찰깍.....,
길쪽에서 사람소리 들린다. 반갑다. 몇 분을 지체 했는데 소리만 들리고 오지 않는다. 우리는 산행을
계속했다. 내 기억으로는 여기서 길이 좀 험해서 그렇지 단 걸음에 오르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녔다. 주변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다. 길도 전에 없이 모두 계단길을 만들어 놓았다. 한 계단이 끝나면 또 다른 계단......,
어느 사람이 '30층 아파트 두 번 오른다고 생각하세요' 하더니, 그것보다 더한 것 같다.
숨이 턱에 닿으며 계단을 오르고 올라, 11시51분 드디어 정상에 섰다. 동창교에서 4.3k. 세
시간여의 힘든 산행길이었다. 해발 1,097m, 월악산 영봉(靈峰), 정상은 온통 안개로 한치 앞도 보이질 않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밀려가는
운무의 행진 뿐이다.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오르다니, 허망했다. 그래도 여기가 영봉이 아니냐, 천길 단애의 바위 위, 표지석 옆에 앉아 숨을
돌리며, 두리번 거려보았자......그러나, 산의 정상이 영봉이라 불리워 지는 곳은 백두산과 월악산 뿐이란다.
안개에 싸인 영봉에서 우리는 안내 표지판을 읽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송계 8경중 하나인 영봉은 월악산의 주봉이다. 웅혼 장대한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남성적인 산이라 표현, 일명 국사봉이라고도
한다. 영봉, 중봉, 하봉 등의 기암으로 형성된 암벽은 높이150m 둘레 4k로써 산허리를 감도는 운무와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 정상에서는 멀리
소백산의 비로봉, 금수산, 대미산, 신선봉이 보이고.....'
아무것도 못보고 마음이 아프지만, 배는 고파, 컵라면으로 시장끼 때우고, 하산하기로, 라면 먹는 동안 삼사십대 네명과, 나이
지긋한 어른 세 사람이 더 올라 왔다.
'야~호~' 소리 뒤로하고 하산길,
갈림길에 와서 아내가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 가잔다. 표지판을 보니,갈림길에서 덕주골까지는 4.5k, 올라온 길로 내려가면
2.8k,
가까운 길로 내려 가자는 것을 내가 또 억지를 부렸다.
'월악산의 백미는 여기서 매애불까지 내려 가는 길인데, 혹시 아느냐, 안개라도 걷히면....,'
갈림길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아내를 두고 몇 걸음, 걸음을 옮기자, 아내는 하는 수 없이 따라 나선다. "산에만 오면....."
입이 한발은 나와 있다.
안됐지만 이렇게 먼 길와서 허무하게 그냥 돌아갈 수야 있나. 우리가 올라온 길은 시간을 단축하려고 가파른 길, 별 경치도 없는 곳을
힘들여 올라 왔다. 여기서 덕주골 까지는 암석과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동양화, 실물의 길이다.
안개라도 좀 걷혀 준다면........
내려 오면서 올라 오는 사람들 늘어 난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얼마나 남았습니까?' 묻는 이들도 있고,
젊은이 두사람이 올라 오면서 우릴 보고
"이리로 내려가지 마세요. 길이 험해요. 여자들은 내려가기 힘들걸요."

960고지부터 마애불까지는 길이 험하다. 그러기에 경치도 장관이다. 내려가다보니, 곳곳에 계단을 만들어
놓아 험한 길은 모두 없어졌다. 아마도 그 젊은 친구 고소공포증이 있었나 보다. 우리를 걱정하면서 그렇게 만류를 했는데, 우리는 사진도
찍으면서, 감탄사도 발하면서...., 다행스럽게 내려올수록 안개도 걷히면서 비경이 드러난다.
아내도 이제는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갔으면 얼마나 후회를 했겠느냐고 하며, 그래서 내가
"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산행로를 잘 아는 사람도 드물지...."
한 껏 뻐기며 내려 왔다.
사진도 200컷이 넘었다. 안개 경치가 더 환상적인 것도 있고.....
전체 10k가 넘는 길, 여섯 시간여 산행길이었다.
수안보에서 온천욕, '영화식당'에서 산채정식으로 저녁식사, 맛깔스럽다. 온천장에서 관리 아저씨한테 물어보았지. 저녁 식사 먹을
곳을... 올라오는 길. 7시 출발하여 두시간 삼십여 분 걸렸다. 하나도 막히지 않아서 정속도로......
제 홈(hom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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