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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 종주를 아시나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지는 꽃
말이예요.
가수 송창식의 "선운사" 노랫말의 일부분이다. 이처럼 선운사 하면 동백꽃을 연상케 한다. 선운사 뒤편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동백이 빨간 꽃망울을 터트리는 자태는 한마디로 장관이다.
禪雲이란 구름에 누어 참선한다는 불가의 參禪臥雲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인지 선운산에는 대가람 선운사를
비롯하여 많은 암자와 유서 깊은 불교유적과 더불어 천혜명소들이 산재되어 불자들과 탐방인파로 붐비고 있다.
선운산은 非山非野같은 나지막한 산들이 말굽형태를 이루고 있다. 주능선에는 송림과 어우러진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들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20여Km가 넘는 능선은 오르내림이 심해서 다른 산에서 느낄 수 없는 묘미가 있어 요즘 종주코스로 인기가
있다.
어딘가를 무작정 걷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지리산을 찾지 못한 허전함을 달래기 위함인가. 아니면 골치 아픈 머리를
말끔히 정리하기 위한 도피행각인가. 그 어떤 이유라도 좋다. 초겨울이라 해가 짧아 어려움이 있겠지만 하염없이 걷고 싶어 종주산행에
나선다.
선운사 입구에 자리한 삼인초등학교에서 형제봉 능선에 올라 시계방향으로 산행하여 경수산을 거쳐 집단상가가 있는 곳으로
하산하기로 결정하고 첫 들머리인 학교 옆 文學碑公園에 들어선다.
조각작품처럼 서있는 같은 詩碑에는 문인들의 주옥같은 詩語들이 아로새겨져 잠시 여유를 가지고 작품감상을 해보는 것도
좋으련만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走馬看山으로 훑어보고 돌아서니 괜스레 아쉬워진다.
그리 어렵지 않게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접어든다. 형제봉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태풍으로 넘어진 나무들이
등산로를 가로질러 발길을 더디게 한다. 도립공원이지만 이쪽은 관리하지 않는 듯 자연 그대로의 산길이 계속된다.
아직도 때묻지 않는 오솔길은 고향의 뒷동산과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길을 걸어가니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가쁜 숨소리가 오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뒷마무리에 떨고 있는 마지막 단풍잎새가 고운 자태를 드러내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표지판이 없어 구황봉인지 알 수 없으나 山頂에 묘지가 특이하게 조성돼있다. 널찍한 묘역 주변을 돌담으로 쌓아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여기서 본다. 어딘가에 명당이 있는지 길목 곳곳에 어김없이 묘지가 있다.
전망이 좋은 바위를 지나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묘지에서 왼쪽이 비학산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오른쪽으로 들어서
한참 진행하다보니 도솔제가 바로 눈앞에 내려다보인다. 순간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돌아가는 것이 귀찮아 산길을 헤치고 옆으로
오른다. 맹감나무 넝쿨과 잡목들이 가로막아 짜증스럽다.
이처럼 산행하다가 예기치 않는 상황이 발생되어 복귀하려면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순간의 판단 착오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누구의 잘못만을 탓하지 말고 빨리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20여분을 허비하고 능선에 올라서니 겸연쩍은 웃음이 나온다. 산행하면서 이 정도의 고생은
기본이라 자위하면서 손해본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줄달음치듯 속도를 낸다.
멋있는 암봉을 우회하여 올라서니 사위가 확 트인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포근한 농촌풍경을 바라보면서 잠시 가쁜 숨을
고른다. 곰솔 사이로 아기자기한 길을 따라가니 비학산 1.2Km 라고 써있는 표지판을 만난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오늘 처음으로 반대편에서 오는 산행객과 짧은 인사를 나눈다. 정상 조금 못 미쳐 낙엽이 수북히 쌓인 안부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산행 시작 2시간만에 가져본 달콤한 휴식이다. 땀흘려 열심히 일하고 맛보는 성취감 같은 기분이다. 이런 기분에 한없이
도취할 수만은 없기에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서야 한다.
쉬고 싶다고 쉬고 싶은 만큼 쉬면서 산행하는 것은 진정한 산행이 아니다.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신을 되찾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 산행의 본질이 아니던가!
넘어진 나뭇가지에 걸쳐있는 비학산 정상 표지판은 왠지 초라해 보인다. 여기서 희어재로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급경사에
조그마한 돌멩이가 널려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사거리인 희어재에서 청룡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쥐바위라고 표기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사뭇 다르게 오르내리는 흔적이 뚜렷한 길이 이어진다. 저 건너 쥐바위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곳에 빨리 가야한다는 욕심으로 내친걸음으로 줄달음친다. 사방이 훤히 조망되는 쥐바위에 올라서니 앞선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마치
신기루를 쫓아 달려온 기분이다.
앞에 보이는 산정에 태극기가 휘날린다. 거대한 암봉을 우측에 두고 돌아간다. 희미한 갈림길에서 좌측은 마을로
내려가므로 태극기가 보이는 우측으로 올라서야 능선으로 오른다. 시간이 있으면 암봉을 타는 것이 좋으련만 모든 것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내팽개치는 자신이 얄밉다.
산정부근에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돌탑이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누가 이곳에 정성스럽게 돌탑을 쌓았을까? 태극기가
펄럭이는 암봉에 올라서니 저 건너 매처럼 생긴 배맨바위가 눈앞에 성큼 다가선다.
청룡산으로 가기 전에 338봉에서 갈라지는 지능선을 타면 사자바위, 투구바위를 거쳐 자연의 집으로 내려간다.
선운산의 또 다른 비경이 숨겨있는 이 능선을 밟아보리라 마음먹고 발길을 재촉한다. 표지판이 설치된 청룡산 정상은 이미지와 달리 볼품이 없어
보인다.
낙조대와 천마봉이 눈앞에 다가선다. 시장끼가 들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그곳에 도착해 점심을 먹기로 하고 터벅터벅
발길을 옮긴다. 수도자의 고행만큼이나 힘든 여정이다. 저 멀리 바다를 조망하면서 엄습해온 피로를 달래본다.
병풍바위 난간을 힘겹게 내려서니 낙조대에서 천마봉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유산객으로 북적거린다. 도솔암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사자바위가 건너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늦은 점심으로 허기를 달랜다.
선운산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차분하게 답사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부지런히 걷는
것이기에 유적답사는 다음기회로 미루고 발길을 옮긴다. 무엇이 그리 바쁜 것인지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삐 살아온 지난날들이 속절없이 느껴진다.
선운산의 전망대 구실을 하고있는 낙조대를 뒤로하고 천상봉을 향해 듬성듬성 계단을 만들어 놓은 길로 내려간다.
도솔암 방향에서 올라오는 탐방로와 연결되는 갈림길이 곳곳으로 이어져 어지러워 보인다.
천상봉에 올라서 뒤돌아보는 낙조대와 천마봉의 비경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 그 자체이다.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 모습이 달리는 기묘한 형상은 눈요기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소리재에서 개이빨산으로 가는 길은 정면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잘 닦여있는 우측 길은 창당암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아늑한 분위기의 산길을 조금 오르니 신의대가 우거진 집터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개이빨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산악회 리본이 많이 붙어있는 곳으로 내려서야 창당암을 거치지 않고 도솔산으로 이어진다. 무심코 단체
산행객을 따라가다가 보니 창당암으로 내려가고 있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내려온 것 같다. 창당암에서 포갠바위를 거쳐 도솔산으로 올라갈 수
있기에 경사진 내리막을 조심스레 내려온다.
도솔산 즉 수리봉으로 가는 길은 창당암 입구에서 포갠바위 0.7Km라고 표기된 오르막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야생녹차
군락과 상사화의 싱그러움을 바라보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며 목을 축인다.
산행하다가 내리막을 내려와 또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문바우등을
거쳐 느진목재까지 내려왔다가 엄청나게 손해 본듯한 기분으로 새삼스럽게 왕시리봉을 올라가야만 한다. 이런 기분에 젖어 포갠바위를 향해 오르막을
오른다.
그 누구를 위한 산행이 아니고 내 자신을 위한 산행이기에 밀려오는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이 고비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정신력으로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해보지만 밀려오는 피로 때문인지 한 발자국 옮기기가 힘들다. 지나치게
오버 패스한 탓일까?
포갠바위는 그리 크지 않는 바윗돌 두 개를 포갠 형상을 하고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다소 실망감이 앞선다. 누군가가
소원을 기원하면서 하나 둘 올려놓은 돌멩이가 수북히 쌓여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포갠바위를 뒤로하고 조금 더 오르니 도솔산 정상 수리봉에
도착한다.
과연 선운산의 主山은 어느 산일까? 높이로 본다면 경수산(444m)이다. 그러나 경수산과 개이빨산(345m)의
중간에 있는 도솔산 수리봉(336m)을 선운산을 대표하는 산으로 여긴다. 그래서 선운산을 도솔산이라고도 부른다. 도솔산은 선운사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이곳에 서니 百濟古刹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햇빛을 받아 짙푸른 동백 숲이 유난히 돋보인다.
경수산이 1.7Km 남았다는 표지판이 서있는 마이재에 도착한다. 조금만 더 가면 선운산 종주를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잠시 피로가 풀린 듯 하다. 그러나 불적답사를 끝낸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석상암 내려가는 길로 들어선다.
어떠한 목적을 이루려고 했다가 이루지 못하고 돌아서는 좌절감은 한없이 찜찜하다. 그러나 다음 기회로 종주를 미루고
언짢은 기분전환을 위해 콧노래를 흥얼거려본다.
석상암 입구에 동백 한 그루가 싱그러운 잎새를 드러내 보이면서 길손을 맞이한다. 오늘 처음으로 동백을 대하니
반갑다. 울안의 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까치 밥 홍시가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암자 부근에 집단적으로 조성한 녹차 밭을 따라 내려오니 어느덧 일주문에 도착한다. 갑자기 왁자지껄한 삶의 소리에
취해 버린다. 참선에 정진하다가 법계의 문턱을 넘어선 기분이다.
전쟁터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선운산에 올라 그리움의 노래를 불렀다는 슬픈 전설이 깃든
禪雲山歌碑가 저녁놀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외로움에 떨고있다.
〈 발자취 〉
o 산행일정 : 2002. 12. 1 (일요일) o 산행코스 삼인초교→ 문학비공원→ 형제봉→ 노적봉→
구황봉→ 안장바위→ 비학산→ 희여재→ 쥐바위→ 338봉→ 청룡산→ 배맨바위→ 낙조대 → 천마봉→ 천상봉→ 소리재→ 개이빨산→ 창당암→ 포갠바위→
수리봉→ 마이재→ 석상암→ 일주문 → 선운산가비 → 공원관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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