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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첩첩산중에 산!(신선봉-마패봉-부봉-주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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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새재-연어봉-신선봉-마패봉-동문-부봉-주흘영봉-주흘주봉-주흘남봉-문경읍"산행기(경북 문경, 충북 괴산 연풍, 충주 상모/2002년 11월 30일/날씨 : 맑음/총 산행시간 : 8시간, 휴식시간 : 1시간 38분)
◐ 참석자
: 산진이, 신가이버, 썩어도 준치(3명)
♥ 교통편 갈 때 : 동서울 터미널(06 :
20, 6,100원)-충주(07 : 57, 2800원)-연풍(08 : 50)-작은새재(소조령, 09 : 10, 택시비
6,000원) 올 때 : 문경터미널(17 : 45, 11,200원)-동서울터미널(08 : 40)
♣
산행코스 소조령(374m)-연어봉(680m)-방아다리바위-뾰족봉(757.2m)-신선봉(967m)-마역봉(927m)-북문-동문-부봉삼거리-부봉 1봉-대간 삼거리-주흘산 영봉(1,106m)-주흘산 주봉(1,075m)-주흘산
남봉(1,080m)-550.5m-문경읍(도상거리 약
17km)
◎ 개 요 ▶ 소조령 : 큰 새재 서쪽에 있는 작은재라 하여 소조령이라
한다. ▶ 신선봉 : 옛날 달밤에 신선이 내려와
놀던 산이라 하여 신선봉이라 한다. ▶ 마패(역)봉
: 마패봉은 암행어사로 이름난 박문수가 조령관 위 봉우리에 마패를 걸어놓고 쉬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조령관(제3관문)을 사이에 두고 깃대봉과 마주하며 충북 쪽으로 신선봉과 맞닿아 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으로 지도에는 마역봉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이 지방에서는 마폐봉이라 부르고 있다. ▶ 부봉
: 조곡관(제2관문) 뒤에 우뚝 솟은 바위산을 산 모양이
가마(釜)처럼 생겼다 하여 부봉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것은 부봉의 6개 봉중 제6봉에 해당한다. 백두 대간은 하늘재를 지나 조령까지 주능선이
이어지고 가지를 뻗어 주흘산을 만들며 부봉에 와서 6개의 봉우리를 만들어 놓아 저마다 특색 있는 암체로 이루어져 등산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 주흘산 : 백두대간이 문경을 지나면서
북쪽으로 월악산을 남쪽으로 주흘산을 솟게 하였는데 주흘산이 솟아오를 때에 산밑에 도읍을 정하리라고 생각하고 솟아 올라보니 삼각산이 먼저 솟아
있어서 삼각산을 돌아 등지고 앉았다고 할 정도로 삼각산과 흡사하다. 전국의 모든 산들이 서울쪽을 보고 있는데 유독 주흘산만이 돌아앉은 이유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서라는 이야기도 있으며 문경의 진산(鎭山)으로서 춘추로 나라에서 제사를 올리고 우리나라 역사의 길목을 지켜온 유명한
도립공원 문경새재가 있는 산이다. 주흘산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 더 많다. 문경읍 시내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다른
각도에서 보면 느닷없이 솟아 올라 벼랑으로 서서 병풍을 치고, 병풍 너머로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주흘산에서 가장 높은
주흘영봉(1,106m) 조차 감추고 있어 옛부터 문경사람들은 주흘산 정상을 높이의 정상이 아닌 우러름과 마주봄의 대상인 1076봉으로
삼았다. 주흘산은 예로부터 문경현의 뒤에 자리해 현을 진호하는 문경의 진산으로 신성시 해 왔다. 이 산은 오랜 옛날부터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자연성곽을 이뤄 천혜의 요새로 중시되었다. 고려때 공민왕이 피난을 이 산에서 했다 하여 임금님이 머문산이란 뜻으로 주흘산이라
칭하였다.
◎
산행일기 안개가 자욱하며 시계가 100m도 안 되는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는 뿌연 것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을 보면 오늘은 무척이나 따듯할 것으로 느껴진다. 죽산 톨게이트를
빠져나왔건만(07 : 09) 아직도 안개로 어두움이 깔려 있다. 충주에 도착하여
문경행(08 : 07) 버스에 올라서 기사님에게 소조령에서 하차를 부탁하여 본다. 그러나
부탁도 헛수고로 돌아가고 소조령을 지나서 연풍에서 하차를 하여 이곳에 대기중인 택시를 타고 소조령으로 향한다.
09 :
11 소조령에서 도로를 건너서 고사리쪽으로 들어서자마자 등로가 보이는 좌측의 산사면을
올라간다. 교통호를 따라서 서쪽으로 진행을 하다 교통호가 끝나는 지점에서 산 사면을 올라선다. 서북쪽으로 올라서며 묘 2기를 지나서
455m에서 북쪽으로 흔적도 없는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사면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선다. 작은 능선 둔덕을 오르내리며 안부에 이르니
서쪽으로 화천리로 연결된 등로를 지나서 올라선다. 앞에 우뚝 솟은 632m를 우측으로 우회를 하며 넝쿨이 둘러처진 밭을 가로질러서
632m와 연어봉 사이의 안부로 올라선다. 매직으로 쓴 조그만 이정표(↑연어봉 20분, ↓사시동,
→레포츠공원 20분)를 지나서 흔적이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고도를 높힌다. 이곳의 산들은 모두가 암능으로된 산으로 암반을
올라서고 암반위에 돌탑이 세워진 곳을 지나니 꼭 고래모양으로 생긴 입벌린 고래바위에 이른다. 그런데 이곳에는 "연어봉(680m) 연어바위라 불러주세요"라는 앙증스러운 표시판과 이정표(↓레포츠공원 40분, ↑신선봉 90분, 정상50m) 달려 있다. 고래바위, 연어바위 하며 부르기에
나도 나름대로 "준치바위, 준치봉"이라 명하여 본다.
09 : 52(휴식 : 10분) 준치봉(680m)이다. "이산은 태고부터 이곳에 오르기를
기다렸노라"는 표시판이 조그만 잡목 아래에 매달려 있다. 봄날 같은 따듯한 일기에 땀이 쏟아지듯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조령산과
신선봉의 자태가 보인다. 준치봉을 내려서 안부에 이르니 이정표(↓연어봉 10분,↑방아다리 30분,
신선봉 80분, 석문동 40분↔레포츠공원 40분)가 있는 사거리를 지나서 가파르게 올라선다.
10 : 23(휴식 :
5분) 방아다리바위다. 왜 방아다리바위라 불려지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조망도 좋아서 남쪽으로 깃대봉, 신선암봉, 조령산이
잘 보인다. 이정표(↓연어바위 30분, ↑신선봉 50분, →레포츠공원 40분)가 길을
밝히는 이곳에도 무수한 표시기들이 난무하여 이를 수거를 한다. 이 표시기를 수거하는 나를 비방을 하며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그들의 생각이고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할 뿐이다. 방아다리 바위를 내려서 앞에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를 향하여 오르며 바줄이
매여진 곳을 3군데 지나서 숨을 몰아쉬며 올라선다.
10 :
46 뾰족하다하여 뾰족봉(757m)이라 불리는 곳에서는
바로 앞의 신선봉이 올려다 보인다. 뾰족봉을 내려서니 안부에 는 이정표(→조령산휴양림 1.1km :
40분)와 표시석(정상 10분)이있는 곳을 지나서 바줄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곳을
오른다. 계속적으로 암봉들만 치고 오를 따름이다. 바줄을 4곳을 지나서 암반을 오르니 산불초소가 보인다.
10 : 54(휴식 :
10분) 산불초소와 예의 충정도의 까만 정상석이 있는 신선봉(967m)이다. 정상석은
2002년 10월 18일에 설치하였으며 표시석의 이정표(레포츠공원 2.3km↔마역봉 1.3km, ↓조령산
휴양림 1.2km)는 주변을 잘 알려주고 있다. 정상목에는 970m라고 표기되어 있고 온통 바위로 된 정상은 표시기와
산불초소 앞의 잘라진 바줄과 끈 쓰레기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조치원에서 왔다는 젊은 사람을 만난다. 이곳의
조망은 사방이 막힘이 없이 아주 잘 조망되어 북으로 "북바위산-연내봉-월악영봉-포암산-대미산-문수봉"까지 한눈에 아주 잘 보인다. 첩첩이 산중에 둘러싸여
있는 신선봉에서 동쪽으로 부봉의 날카로운 봉우리들과 바로 앞에 마패봉, 깃대봉, 조령산까지도 막힘이 없이 툭 터져 있는 곳이다. 산진이님은
산행 초반부터 감기로 몹시 힘들어하며 올라오신다. 이정표 만으로도 길을 밝히수 있는 곳에 동,서,남북쪽 사방으로으로 표시기로 인하여 너무
현란하기 짝이 없다. 표시기를 다는 사람도 제 자유지만 수거하는 나도 내 자유다. 내가 자기들에게 수거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데 왜
내 자유를 침해하면 펄쩍뛰며 난리들인지 모르겠다. 추위를 조금도 느끼지를 못하는 따스한 일기를 즐기며 신선봉을 내려선다. 3m 정도의
직벽을 바줄에 의자하여 내려서니 마역봉을 향하여 힘차게 올라선다. 산진이님이 몽이 많이 불편한지 뒤에 많이 처지신다. 해발 950m
등산로 아님 표시판과 이곳부터 월악산 국립공원임을 알리는 경계석을 지나서 해발 940m 이정표(↓신선봉
0.7km 30분, ↑마패봉 0.6km 30분)와 표시석을 지나니 "이등산로는 험준하므로
전문등산인이 아니면 이용을 자제하여 주세요" 표시판을 지나서 앞에 먼저간 조치원에서 온 젊은 사람을 따라 잡으려 부지런히 암봉을
오르고 바줄을 따라서 암릉을 계속 오른다.
11 : 34(휴식 :
8분) 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걸어놓고 잠시 쉬었다하여 마패봉이라고도 부른다는 해발 927m의 충청도에서 설치한 까만 표시석이 있는
마역봉이다. 이곳의 것도 역시 신선봉의 것과 같은 날 2002년 10월 18에 설치한 것으로 이정표(신선봉1.3km↔조령3관문 0.8km)가 함께 있는 정상석이다. 이곳도 역시 산하의 파노라마를 마음것
감상할 수가 있는 곳이다. 조치원의 젊은이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는지 흔적을 찾을 수도 없다. 마역봉을 내려서며 좌측으로 지릅재로
내려가는 계단을 지나며 해발 920m 이정표(지릅재 2.1km↔ 조령3관문 1.1km, 신선봉
1.5km)를 지나서 내려서며 오늘산행중에 초입을 빼놓고는 처음으로 푹신푹신한 등로를 밟으며 돌탑을 지나고 "긴급구조 119 월악 04-04"를 지난다. 이곳은 조령산-조령3관문-마패봉에 이르는 백두대간
구간으로 사람의 왕래가 많아서 등로가 물고랑 모양으로 파여 있다. 해발 880m 이정표(↓마패봉
0.1km, 조령 3관문1.1km, ↑지릅재 2km, 부봉 4km)를 지나며 가파르게 한참을 고도를 죽이며 내려선다. 넓다란
돌 성곽이 쌓여 있는 평평한 곳에는 해발 714m 이정표(지릅재 1.7km 45분↔동화원 1.35km
35분,↑부봉 3km,↓마패봉 0.7km 25분)가 있는 북문으로 이성곽은 견훤과 왕건이 세력 다툼을 벌리던 곳임을 짐작케 하여
준다. 성곽을 지나서 계속 올라서며 북쪽으로 714.2m를 이르킨 능선을 지나며 부봉능선에 있는 뾰족한 봉우리를 헤아려 본다. 송곳과
같이 뾰족한 암봉이 8개나 되었다. 동화원에서 언젠가 이곳을 올라 보겠다고 마음을 다지며 산행 코스를 그려본다. 앞서가는 신
가이버님에게 식사를 할 장소를 물색해 보라하며 764m(12 : 18)를 우회하여 큐숀이 있는
솔잎에 덮힌 육산길을 걸으며 760m를 지나 옛날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은 동쪽을 향하여 쌓여있는 돌성곽을 지나며
내려선다.
12 : 38(점심 :
40분) 동화원과 평천리를 넘나드는 돌성곽이 그냥 남아 있는 동문 성터 자리다. 동화원 쪽 100m 지점에 물이 있다는 대간 주행자를
위한 물,물,물 표시가된 코팅된 종이가 걸려 있는 곳이다. 국립공원 지역이라서 그런지 이곳에도 영락없이 상세한 이정표(↓조령 3관문 3.9km 2시간, ↑부봉 1.3km 30분,주흘산 4.1km, 미륵리 2.9km 1시간↔동화원
1.4km 1시간)가 설치되어 있다. 성곽을 넘어서 양지 바른 묘 이장 자리에 앉아서 점심상을 펼친다. 나는 라면과
스팸을 가지고 와서 라면을 끓인다. 김치를 넣어 끓인 얼큰한 라면을 보니 초 생각이 절로 나며 입술에 혀가 돌아간다. 산진이님은
거창하게 쌍아 오셔서 집의 식단을 이곳에 옮겨 놓은 모습이다. 아침을 하지 않아서 무척이나 시장기가 들었던 차에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있게
먹었다. 뭐니뭐니 해도 겨울철에는 따근한 국물이 있어야 한다. 좌우당간 끓이고 하니 식사시간은 최소한도 빨라도 40분이
소요된다. 밥을 먹고 부봉을 향하여 올라가는 가파른 오름길이 숨결이 턱에까지 치오르며 점심을 먹은 것이 올려 받친다.
13 : 30 부봉
갈림길이다. 이정표(주흘산 3.5km 2시간↔부봉 0.5km 20분, ↓동화원, 조령 3관문
4.6km 2시간 20분)는 상세하게 길을 밝혀주고 있다. 산진이님은 몸이 불편하여 그냥 동쪽으로 뻗은 대간 줄기를 따라서
주흘산으로 향하고 신가이버님과 나는 이곳에 배낭을 벗어 놓고 서쪽으로 등을 져 얼어 있는 가파른 곳을 바줄을 잡고 올라선다. 정상에 다
올라섰는지 큰 바위 암릉을 올라서니 이 높은 곳에 햇빛이 잘 드는 양지로 묘가 있는 육산에 올라선다.
13 : 35 부봉
6봉중에 첫 번째인 부봉 1봉(916m) 이정표와 묘가 있는 곳이다. 서남쪽으로 장막을
둘러친 듯한 조령산-백화산에 이르는 능선이 장쾌하게 펼처진다. 동쪽으로는 우리가 가야할 조령산이 올려다 보이며 또 한차례 땀을 흘리겠구나
생각이 든다. 부봉 주봉은 서쪽으로 있는 936m이나 시간이 쫓기어 그곳을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선다. 얼어있는 내림 길은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배낭을 짊어지고 내려서 안부를 지나서 오르니 큰 암릉이 암을 가로막고 있으며 바줄이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바줄을 잡고 우측으로 트레버스를 하여 암릉을 올라서 959m 대간 분기점을 향하여 계속 오름이다. 온 길을 되돌아 부봉을
바라보니 우리가 올랐던 1봉 뒤로 좀더 높게 보이는 주봉의 모습이 닦아오며 그곳을 포기한 아쉬움이 밀어 닥친다. 한쌍의 등객을 마주치며
동문으로 내려가는 등로와 위험한 곳이 없느냐고 묻기에 이곳에 올라올 정도면은 위험한 곳이 없다고 가리켜 준다. 하기야 트레버스 하는 데가
조금은 그렇치만------!
14 :
03 959m 대간 삼거리에 이르니 이정표(하늘재 3.2km 1시간
30분↔주흘산 2.6km 1시간 30분, ↓부봉 1.3km 40분, 조령 3관문 4.7km 3시간)가 영락없이 설치되어
있다. 북쪽으로 능선을 따라서 백두대간 줄기는 하늘재에서 잠재우는 듯하며 힘있게 솟구쳐 포암산을 일구어 내고 동쪽으로 뻗어
있다. 우리는 남쪽을 향하여 계속 올라서며 뒤돌아보니 하늘재에 이르는 월항삼봉의 모습이 가깝게 보이며 내려서는 곳 안부는 동북쪽으로
바위사이에 협곡을 이룬 곳이 나타난다. 겨울철에 북풍이 불때는 몸서리치도록 바람을 몰고 올만한 곳이다 월항 삼봉을 산행하였던 것도
눈이 한참 쌓인 10여년 전의 겨울로 하늘재로 올라서 미륵리로 하산을 한 것이 기억된되며 정상의 눈에 덮힌 벗겨진 마사토의 붉은 모습 많이
기억된다. 봉우리를 하나 넘어서니 이곳에도 협곡이 펼쳐진다.
14 :
32 삼각점이 있는 육산의 밋밋한 주흘산 영봉(1,106m)이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곳이면 서도 대접을 받지를 못하고 있는 곳이다.
정상석은 고사하고 그 흔하디 흔해빠진 표시기들도 별로 달려 있지 않은 곳으로 서러움을 받고 있는 곳이다. 본 마누라가 얼굴이
못생겨서 안방을 첩에게 빼앗긴 형국이다. 사람이나 산이나 모두가 미모와 형색을 갖추어야 대접을 받는 모양이다. 북쪽으로 흰 속살을
들러낸 포암산과 대미산, 황장산-수리봉에 이르는 연능이 펼처진다. 앞에 오똑한 모습의 주봉을 향하여 내려서니 동쪽으로 한가로운 여유로움이
있는 모습의 농촌의 모습에서 평화로움을 느낀다. 주봉을 향하여 오르며 동쪽으로는 가파른 절벽 지대가 펼처진다.
14 : 58(휴식 :
15분) 주흘산 문경군청 등산회에서 1988년 3월에 세워놓은 자연석으로된 정상석(1,075m)이 있는 주흘산 주봉이다. 이곳에도 슬데 없는 수많은 표시기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제는 수거하는 데도 나도 지쳐 버렸다. 주흘산에 대한 설명이 나무판에 써져서 걸려 있다. "이곳은 주흘산 주봉(1,075m)이라고 하는데, 주봉이란 그 생김새와 산세를 한데 모아 평할 때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곳을 말하며 주흘산은 문경의 진산으로 남아의 기풍을 간직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하늘을 향해 오르는 형세, 또는 관 모습을한
명산입니다." 또 한 곳에는 "정상이란 그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를 의미하는데 주흘산 정상은
이곳 주흘산 주봉부터 약 50분 거리 북쪽에 위치한 주흘영봉을 가리킨다." 가장 높으면서도 생김새와 산세에서 주봉에 뒤따르지
못하여 자리를 빼앗긴 명목상의 영봉의 모습이 측은히 여겨진다. 동쪽으로는 아찔할 정도의 절벽을 이루고 있는 암봉 능선이 접근을 허락지 않는
천혜의 요새다. 동쪽은 절벽을 이룬 암능 이지만 서쪽은 완만한 형세를 이룬 육산의 모습을 갖춘 곳이다. 동쪽으로
문수봉-대미산-운달산의 장쾌한 능선이 오후의 가스로 차여 희미하게 투시된다. 주봉을 내려서며 이정표(→제 1관문 3.5km, 제2관문 4.2km, 혜국사 2.2km, 주흘주봉1.1km)를 지나서 내려서니
이시간에 올라오는 등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남쪽을 향하여 내려선다. 좌측으로 상아 이빨과 같이 들쑥날쑥한 깎아지른 암릉을 밑으로 우회하며
요리 조리 오르내리며 가는 등로는 낙엽에 등로가 묻히어 길 흔적이 없는 곳이 많다. 별로 높지는 않지만 오르내림이 심한 암릉
구간이다.
15 : 48(휴식
10분) 남동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의 암릉인 주흘남봉 표시판(1,080m)이 있는
곳이다. 1/50000 지도의 높이 1,041m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같은 지도에서도
1/25000과 1/50000이 높이가 다르게 표기된 것들이 부지기수니 말이다. 국립지리원은 지명과 높이를 하루 빨리 통일된 표기로 혼동을
하지 않도록 힘 써야 할 것이다. 주흘 주봉을 되돌아보니 영락없는 상이 이빨이다. 바라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다. 남쪽으로는 문경읍 시내와 잣밭산, 횡학산-백화산-옥녀봉에 이르는 능선이 석양을 등지며 검은색으로 바로 앞에 있어
보인다. 우리가 내려갈 납작한 낮게 보이는 능선을 아래로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절벽에 현기증이 일러날 것 같다. 직접 내려갈 수는
도저히 없고 그 능선에는 등로의 모습이 이곳에서도 보인다. 남쪽능선을 따라서 직접 문경 읍내로 들어설 수가 있어 보인다. 서쪽능선을
따라서 내려서며 좌측으로 좁은 협곡이 있어서 그곳으로 내려서 볼 욕심으로 내려가니 절벽이 나나타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다. 다시 되돌아서
능선으로 올라서며 먼저 내려간 산진이님과 신가이버님을 쫓는다. 안부에 이르러 남쪽의 너덜을 향하여 내려서며 동쪽으로 트레버스를 하며 내가
처음 내려서려던 곳을 올려다보니 아찔한 곳이다. 주흘남봉 바로 절벽 아래의 능선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리 달린다. 참으로 오랜만에
유순하며 경쾌한 솔잎 등로를 마음 것 즐긴다. 능선이 남동쪽으로 뻗힌 갈림길에서 남서쪽 능선으로 들어서니 묘가 나온다. 방향이 틀려서
완만한 곳을 트레버스하여 남쪽능선으로가 계속 체중에 맡기며 달려 내려선다.
16 :
43 오래된 군 참호가 있는 550.5m다. 삼각점은 어디에 가고 가운데 참호로 파여진 웅덩이만
있는 곳을 지나서 내려선다. 닥닥한 감촉만을 주던 암릉길에서 이렇게 좋은 등로를 달리니 다리의 피로가 다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안부에 이르니 능선을 향한 곳은 나무로 막혀있고 좌측으로 확연한 등로가 나타난다. 등로를 따라서 내려선다. 평산신씨
가족묘가 7기가 있는 곳에 내려서니 바로 앞에 밭을 지나며 문경읍내가 펼쳐진다. 마을로 내려서 집 뒷 담장에 감이 주렁주렁 열린 곳에서
연시를 따서 하나씩 먹으며 유쾌하고 멋있는 산행을 접는다. 감기로 몸이 불편한데도 투혼을 발휘하여 포기치 않고 8시간의 산행을 무사히 마친
산진이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상경하는 버스안에서 마신 매초주는 몽을 따듯히 녹혀주며 살며신 깊은 잠결로 빠져들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