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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동행 조계산 등반기 2002년 11월 20일(수). 흐림. 순천 역에 08:40분까지 집합. 1,2학년 학생
24명(3학년은 현장 실습중이라 불참), 교사 9명. 총 33명. 집에서 나와 주차장에서 차 트렁크를 열고 등산화로 갈아 신고
있는던참에, 이웃인 아래층아저씨를 만났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산에 가시는가 봐요." 하시길래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고, 학생들하고 같이
간다고만 했다. 출근은 안하고 소풍철도 아닌데 평일날 무슨 산에 가나 할까봐 쓸데없는 오해를 안 했으면 하는 조바심에서 둘러댄 말이다.
오늘은 연간 교육계획에 의거 학생들과 같이 산에 가는 날이다. 좋은 말로 사제동행이지. 실제로는 학생부 선생님들과 각반의
문제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기 위해 때로는 고충을 털어놓을 수도 있는, 친목을 다지기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매년 학생부에서 실시하는
행사이다. 나머지 전체 학생들은 정상수업을하고 각반에서 1명꼴로 이번행사에 참가하는 셈이다. 헌데 해마다 이 행사에 참석하려는
학생들이 줄어드는 게 문제이다. 교사들이 지목한 학생들을 일일이 설득하여 산에 데리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목 당한
학생들의 반발이다. "왜 제가 문제학생입니까? 저는 빠지렵니다." 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이해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있기에 그들 외에 다른 학생들이 타겟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09:00시 조금 넘어 1번 버스를 타고
선암사에 도착하였다. 학생들의 복장을 보아하니 가관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운동복에 운동화 그리고 빈손이다. 몇 몇 학생들은 일반
바지나 청바지에 구두까지 신었다. 소형 배낭을 메고 온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500ml짜리 이온음료만 손에 달랑 들은 학생이 몇 보일
뿐이다. 매표소에서 학생부장 선생님의 주의말씀을 듣고 10:12분에 매표소를 출발하였다. 승선교(홍교의 일종. 훼손위험이 있다고
출입을 막는 띠를 쳐놨더군)를 지나 선암사(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 취화선등을 촬영한 곳) 경내를 구경하고 약수로 목을 축인 후 대각암길로
접어들었다. 중간그룹을 책임지기로 했지만 걷다보니 어느새 선두에 있는 나를 볼 수가 있었다. 쉴새없이 무전이
울린다.
선두에서 학생 두명과 가고 있다고 응답을 보내면서 걷다보니 정상(장군봉) 바로밑 마지막 샘터에 도착했다. 나와 함께
선두에선 학생들에게 초코렛등 간식을 나누어주며 정담을 나누고 있으니, 하나둘 마지막 후미그룹까지 모두 도착하였다. 인원점검 결과 모두
이상 없다. 휴식이 길어서인지 추워지기 시작한다.
정상도 얼마 안 남았고 몸도 으스스해서 먼저 오르려고 배낭을 메는데 한
학생(지금부터 Y군이라고 하자. 참가 학생 중 가장 키가 큰 학생으로 기억된다. 180cm가 훨씬넘는키에 얼굴도 잘생겼다. 몸 전체가
뻗뻗해서 온몸이 깁스를 한 것같은 걸음걸이로 어그적어그적 걷는다. 걸음걸이가 특이해서 역전에서부터 내눈에 들어왔었던 학생이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교통사고가 나서 허리를 다친 후부터 걸음걸이가 그렇게 되었단다. 2학년인데 제대로 다니면 지금 3학년이 되어야
한다. 작년에 출석일수 미달로 제적당했다가 복학한 학생인데 180°바뀌어서 결석도 안하고 청소도 아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란다.)이
오른쪽계단으로해서 오르기 시작한다. 그 뒤를 10m정도 간격을 두고 내가 따라나섰다. 잠시후 나머지 학생들은 줄이 매달려있는
직선코스로 오르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Y군이 위에서 지켜보는 것을 내가 밑에서 분명히 보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Y군을 한
동안 볼 수가 없었다.
Y군을 따라 잡으려고 쉬지 않고 부지런히 올랐지만 장군봉까지 Y군의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었다. 산께나
탄다는 나였는지라 바로 따라잡을 줄 알았지만 아무리 위를 쳐다보아도 보이질 않아 기억에서 잊혀지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884m)에 올랐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내가 오른 산 중에서 세 번째로 많이 오른 산이라 애착이 많이 가는 산이다.
시계를 보니 11시 40분. 매표소에서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헌데 당연히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Y군이 보이질 않는다. 중간에 내가 못 보는 사이에 친구들하고 같이 올라오는 것이겠지하고는 이내 기억에서 잊어버렸다. 무전으로
정상도착을 알리고 잠시 쉬고 있으니까 학생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올라온 것 같다. 학년별로 사진촬영과
간식을 먹고 잠시 쉰후, 하산하려고 하였으나 문뜩 Y군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는지라 학생부장선생님에게 인원점검 좀
해보라고 했더니 Y군이 없는 것이다. 비상이 걸렸다. 학생들이 입을 모아 사방으로 Y군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답이 없다.
보리밥집으로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내려가 보자고 했다.
배바위코스로 하산 시작. 이번에는
중간그룹에서 학생들과 같이 내려갔다. 얼마안가서 선두가 굴목재에 도착했다는 무전 연락이 왔다. 이상하다. 선암굴목재까지 그렇게
빨리 도착할 수가 없는데.... 선두가 기다리고 있는데 도착하니 여긴 선암굴목재가 아니다. 이정표를 보니 장군봉과 선암굴목재의 중간지점인
중간(작은) 굴목재이다. 동은 선암사요, 서는 보리밥집 및 송광사, 남은 선암 굴목재, 북은 장군봉으로 가는 사거리이다.
방향을 틀어 서쪽 보리밥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제법 큰 계곡이 나오는 것이 큰 산 중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다.
보리밥집에 도착하였지만 기대와는 달리 Y군은 보이질 않는다. Y군은 구두를 신었고 휴대폰도 없단다.
모두들 등산화를 벗고
평상에 올라 앉아 대책회의를 열어 보았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오질 않는다. 내 생각은 Y군이 연산봉쪽으로 간것같았다. 그곳에서 이곳으로
내려올 지도 모르니 좀더 기다려보자고 하였고, 한편으로는 Y군이 선암사로 다시 내려갔을 수도 있으니 선생님 두 분이 식사 끝내고 그쪽으로 가서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전체학생들과 교사는 송광사로 넘어가고, 그곳에서 학생들을 파하고 교사들만 남아 그 학생 소식 접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보리밥이 나왔지만 시장하던 차에 나온 먹거리인데도 좌중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 즐거워야할 식사시간이
무겁기만 한다.
보리밥이라고 해서 과거에 유행했던 꽁보리밥에 열무, 배추 그리고 된장과 고추장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보리가 약간
섞인 밥에 기사식당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반찬(대부분 근처 텃밭에서 재배한 무공해 채소와 나물)들이 나오는 것이 꽤 먹을만하더군(1인분
5000원). 이런 집이 두군데가 있었는데 우린 아랫집에서 먹었다. 학생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공기 밥을 보통 두세 그릇씩 비운다.
주인 아저씨의 인심이 후해서 추가 공기밥값은 받지도 않는다. 도시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렇게 장사해서 남는 게 있을까? 나중에
알았지만 이집 주인 아들이 우리학교 학생이더군. 학부형집이라는 얘기다.
식사가 끝나고 지도교사의 주의사항 전달이 있었지만 그때까지
Y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예정대로 산행을 하기로 하고 1학년을 선두로 송광사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이때였다. 보리밥집에서
송광사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 저기 Y군이 오는데요." "뭐? 어디어디?" 하며 선두를 보니 진짜 Y군이 우리 쪽으로
오는 게 아닌가. 어찌나 반갑던지 녀석의 어깨를 툭치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고 이놈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선생님 한 분이
남아서 녀석에게 밥을 먹여서 데리고 오도록 하고 선암사 쪽으로 가려던 두분 선생님도 송광사 쪽으로 같이 다 내려가기로 하였다. 모두들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중간에 대피소에서 잠깐 쉬고, 마지막 고개(송광굴목재. 여기가 마지막 오르막길)에서 마지막으로 쉬고
약간 지루한 내리막길을 한참 걷다보니 송광사가 나온다. 단풍이 한창일때오면 멋있을 것 같다. 이미 잎이 말라 오그라든 단풍나무가 하산길
내내 등산로 양옆에 즐비하게 서있다.
헌데 Y군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다 왔단 말인가! 혹시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 돌아온
것은 아닐는지? ㅋㅋㅋ Y군의 얘기를 들어본 후 그의 족적을 추적해보았다.
장군봉⇒배바위⇒중간굴목재⇒선암굴목재⇒선암사⇒선암굴목재⇒중간굴목재⇒보리밥집 이해가 가실는지......
유명한
청량각(우화각)을 지나 송광사에 들어가니 해우소가 나를 반기는지라 민생고를 해결한 후 옛 기억을 더듬어 불화, 고승들의 초상화 등이 있던
성보박물관으로 가보았으나, 출입이 제한 되있는 것 같기에 발길을 돌려 대웅전 쪽으로 가보았다. 대웅전을 정면으로 보았을 때 왼쪽에 못
보던 건물이 있는지라 자세히 보았더니 출입구가 큰 철문으로 되있는 것이 예사건물이 아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까이 접근해보니
박물관이다. 문도 자동문(철문)이다. 등산화를 벗고 안에 들어가 보니, 전에 보았던 T. V.프로그램(KBS일요스페셜)에서 흥미있게 본
기억이 있는, 보조국사 지눌이 평생을 지니고 다녔다는 8세기초에 만들어진 국보 42호 목조삼조불감을 보는 감격을 맛보았다. 손바닥만한
나무에 어찌 그리 정교하게 조각을 했는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밖에 부처님 진신사리, 고승들의 사리, 불화,
고서적등 많은 국보급문화재들이 진열되어있는 아주 훌륭한 박물관이다.
오후 3시 20분쯤에 주차장에 도착. 총 산행시간
5시간 10분(선암사 매표소에서 송광사 버스주차장까지). 정상적으로 걷는다면 3시간이면 족한 코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