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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시 : 2002.11.24 09:30~13:25
2. 산행형태 : 원점회귀산행 → 상담리 주차장(09:45) → 오서산
정상(11:45도착, 11:55 출발) → 상담리 주차장(13:25)
3. 산행자 : 김규용과 장옥자
4.
산행기(장옥자 씀)
어제 대둔산 산행을 마치고 광천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집에 떼어놓고 온 아이들 걱정이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이왕 숙박까지 하며 두 탕(두개의 산을 오르기로)을 결심했으니 집 생각은 접어 두라고 남편이 말했다. 오늘의
산행지는 오서산이다.
광천의 명물인 토굴새우젓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어디를 가나 토굴새우젓 간판이 즐비한 걸 보니 가히
젓갈의 본고장 다웠다. "산행할 사람이 우리 밖에 없으면 어쩌지요?" 산은 너무 텅텅 비어도 적막하고
무섭던데...... 오서산으로 가면서 남편에게 말했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등산만 하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고
했다.
호젓한 시골 마을 농로를 따라가니 주차장이 나왔다. 조금 전, 내 생각이 기우였다는 걸, 그 곳에 가자마자 알게
되었다. 대형버스 십 여대에서 쏟아져 나온 등산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오서산이 그렇게 유명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을 앞을
가로 질러 등산로로 접어 들었다.
여느 명산 아래처럼 삐까번쩍한 음식점들이 진을 치고 호객행위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호젓함이 좋았다. 이미 단풍은 진지 오래지만 등산 진입로엔 울긋불긋한 행렬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등산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정암사 라는 절이 나왔다.
정암사? 나는 하나의 이름으로 또 다른 이름을 연상시켜 보는 버릇이 있다. 문득 조선 중종때의
비운의 개혁가 조광조가 떠오른다. 공신들의 득세를 막고, 도학정치를 꿈꾸던 젊은 선비가 그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반대파의 모함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 기개 높은 선비 조광조의 호가 바로 정암이 아니던가! 정암사와 조광조는 분명 아무런 연관도 없을 진데
약수 한 바가지 마시면서 잠시나마 조광조가 스쳐간 건 사실이다. 약수 한 바가지를 남편과 나누어 마시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산악회에서 온 40,50대 아저씨, 아줌마들의 베낭이 도톰해 보였다. 가파른 길을 오르는데 가방 무게도 여간 일이
아닌 듯 보였다. 나의 산행은 언제나 빈 몸으로 지팡이를 짚고 오르는 게 전부이다. 산행에 필요한 짐은 언제나 남편이 모두 짊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한건 지난 7월초 주5일 근무제에서 비롯된다. 남편은 건강을 위해 여가 선용을 등산으로
선택했다.
그때부터 등산용품을 한가지씩 사다 나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등산용품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남편이
지금껏 사다 나른 등산용품(의류, 베낭, 신발. 모자, 양말. 랜턴 이이젠, 방수커버...) 나는 사실 등산하는데 그렇게 많은 용품이
필요한 줄 몰랐다. 죄다 1등급, 즉 알아주는 메이커 제품으로만 구입했다.
조언자들의 말을 철저히 따르다 보니, 이왕 구입하는
거라면 좋은 걸로 구입하라고 했다나. 내 생각으로는 무엇을 입던, 신발 하나만 제대로 된 걸 구입하면 땡이겠다 싶은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어떤 비싼 용품을 사와도 빙그레 웃어주었다. 평소 씀씀이가 헤픈 사람이 아니니까! 정말 살
만 해서 샀겠지! 비싸면 비싼값 하겠지! 남편이 사고 싶다는데 무언들 못 사줄까! 나는 남편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해 주고
싶었다.
정암사 뒤쪽부터 줄곧 가파른 고갯길이 이어졌다. 베낭 등짐만 해도 한짐인데 남편은 뒤에서 나의 등을 떠밀어
올렸다. 옷차림이며, 걷는 폼은 영락없이 등산 초짜 같겠지만, 나는 왕초보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간 남편 따라(반은
강제적이지만) 간 산만해도 몇 산인가? 속리산, 소백산, 강화 마니산, 계룡산, 수락산, 청계산(수회)...... 나는 아무래도
등산이 나와는 안 맞는 운동인것 같다.
평지에서 조깅을 거의 매일 8KM씩 꾸준히 하고 있지만 등산은 언제나 버겁다. 더군다나
어제 대둔산 한 탕 뛴게, 오늘 등산을 더욱 힘들게 했다. 나는 하산하는 사람에게 얼마를 더 가야 정상에 도달하나요? 라고 힘들 때 마다
습관처럼 물어본다.
그러나 대답은 한결같다.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라고 한다. 다 오긴 개뿔이
다와? 다 왔다는 말에 속아 한시간을 더 가기가 일쑤니까. 그래도 힘들면 또 물어보게 되니 나도 되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남편은 인터넷으로 갈 곳을 철저하게 사전 답사를 해서 가니, 여긴 어디쯤이다, 여긴 또 어디쯤이라는 걸 훤히 알고
있었다.
오서산은 끊임없이 나를 속였다. 다 왔다 싶으면 또 다른 능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발 밑에는 안개가 자욱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어려웠다. 오서산에 오면 서해 바다가 보이고, 억새풀이 장관을 이룬다더니, 안개 때문에 지척 분간이 힘들고,
억새풀의 향연은 이미 끝나버린지가 오래고 도대체 뭘 보러 이곳을 죽을동 살동 오르는지 회의가 들었다.
첫번째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입산금지구역" 이라는 현수막이 걸쳐져 있고 철망으로 막아 놓았다. 아! 얼마나 고맙던지!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가지 말란다고 안 가는 사람이 어딨을라고! 모두들 옆으로 돌아서 보란듯이 가고 있었다.
남편도
그랬다.'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지" 하며 철조망 뒤를 돌아갔다. 나는 마음속으로, "우리 나라 사람들 되게 말 안들어 먹어.
가지 말라면 안가지 말라꼬 기를 쓰고 가노 말이다"를 중얼거렸다.
거기서도 30분을 더 가지 않았나 싶다. 정상이
가까워 질수록 공기가 차가웠다. 베낭에 접어놓은 파카를 꺼내 입었다. 안개가 머리위에 흩날리듯 지나가고 머리카락엔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억새풀 군락지가 펼쳐졌다. 그러면 뭐하랴? 억새꽃은 이미 지고 앙상하기만 한데...
늦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전쯤 왔어야 했다. 못내 아쉽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힘들게 와서 본 거라고는 산 위를 떠도는
운무뿐이다. 오서산 비석을 끌어안고 사진 몇 장을 찍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남편의 어깨위에도 하얀 안개비가 내려앉았다. 여태
등산을 하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 온 적은 거의 없는데, 오늘은 그냥 왔던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산을 내려오면서도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남편과도 몇 번 나눈 이야기지만 내가 생각하는 등산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등산은 단순히 등산을 위한 등산이
되어서는 안되는 거라고!" 적어도 산에 소풍 오는 기분으로 새소리도 듣고, 길섶에 함초롬히 핀 이름모를 꽃들에게 눈맞춤도 하여야
하지 않는가?
산 속에 뛰노는 청설모도 신기하게 바라볼 줄 아는 여유가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내가 산을 찾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런 거지만, 남편은 전혀 그렇지 않는 것 같다. 더 높이, 더 멀리 , 더 빨리 가고 싶어 하니 말이다.
프랑스
등산가 조지 멜러리 경의 말은 등산가들에게 그 어떤 환희를 주는 지는 모르겠다. "거기 산이 있으니까 간다"고. 그럼, 바다에 갈땐
"거기 바다가 있으니 간다" 라고 해도 말이 되는가!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산행기를 쓰면서 어디에 도착하면
무엇이 있고 또 몇 키로를 더가면 무엇이 나온다는 가이드격의 산행기가 되지 않으려고 했다. 그건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으니까.
그저 등산을 막 취미로 붙여 신바람나 하는 남편에게 큰 산은 못 따라가도, 작은 산은 따라 다니며 도란도란
산동무해 주고 싶은 마음, 그저 그것 뿐이다. 그래서 그런 산행기를 적어보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두 탕 뛰었다며 큰 소리로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