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榮山北岐脈 縱走記(제2차) : 산계고개 - 하루재
일시 : 2002. 6. 22. 토 /맑음
행정구역 : 全南 木浦市,
務安郡 三鄕面, 一老邑, 夢灘面, 淸溪面
산행거리 : 총 21km * 기맥 거리 : 12 .4 km
산행시간 : 총
12시간(07 : 00 ~ 19 : 00)
산행구간 : [811번 지방도로 임성리지점(1.6km) - ] -
산계고개(1.6km) - 서해안고속도로(3.6km) -△국사봉(2.5km) - 815지방도(감돈리)(3.5km) - 僧達山(1 .2km) -
하루재[ - (7km) - 甘遁(감둔)저수지 아래 감돈리 마을]
지형도 : - 1 : 5만 木浦 [‘97. 11.
인쇄] - 1 : 2만 5천 木浦[‘00. 8. 인쇄], 務安[’97. 11. 인쇄].
산행후기 :
피로가 계속 누적되어 몸의 컨디션이 별로이기도 하지만 더구나 오늘이 우리 나라와 유럽의 축구 강국인 스페인과의 월드컵 축구
8강전이 있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을 뒷머리에 받으면서 어제 저녁에 배낭과 지팡이를 들고 집을 나섰다. 조금은 미안한 감이
든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찾아보려는 나의 방랑심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그러면 아마 병이 나니까... 비록 같은 시간에 응원을
하지는 못하지만 나중에 재방송을 보면 되니까 하면서 자위를 한다. 내심으로는 내일까지 해서 이번 이틀간에 적어도 감방산 이후까지 갈
계획을 세우고 지형도 연구와 박성태 산성님의 산행기까지 숙독하였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왔다. 그 대신 이 곳의 주요 관광지와 특산물을
접하고 둘러볼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긴다. 이번 구간은 대체로 낮은 산이 많은 편이라 지형이 고만고만하여 독도하기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아니할 뿐 아니라 녹음이 짙어 시야가 제한되어 애를 먹었다. 또한 왜 그리 잡목이 많으며, 잡목 가지와 간벌한 나무들, 그리고 가시나무와
덩굴나무 등이 많은지 짜증스러울 정도이다. 특별히 독도주의지점은 그때그때 지적하여 두었으니 나침반과 지형지물 등을 십분 활용하여 기맥을 잘
파악하여 나아가야 할 것으로 본다. 식수는 중간에 보충할 수 있는 지점이 더러 있으므로 배낭의 무게에 신경 쓰이는 분은 적당히 식수를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긴팔과 긴바지는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기맥의 일부가 절개되어 훼손되었을 뿐 아니라 쓰레기들이
많이 투기되어 있어서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기맥이 바다와 인접해서 달리고 있으므로 간간히 내려다보이는 평야와 바다 등 조망이
좋다. 그리고 유명한 산이 승달산과 국사봉 등도 있고, 비록 보물 이상급의 문화재는 없지만 아담하고 한적한 사찰과 유물들도 볼 만하고, 특히
연꽃방죽은 꼭 들러볼 만하므로 적극 추천하여 둔다. 특히 이번 산행시 박성태 산성님의 표지기를 다수 볼 수 있어서 여간 기쁘지 않았으며,
그 외에 종로구청 답사팀과 목포의 노적봉산악회, 서울산수회 등의 표지기도 반가왔다.
★ 811번 지방도로 임성리지점(1.6
km) - 산계고개
목포역에서 나와 우회전하여 한국은행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808번 시내버스(첫차 6시)를 타고 임성리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좌측(서)은 목포시 석현동이고, 우측은 무안군 삼향면이다. 811번 도로를 건너 논 사이로 난 길로 진행한다. 논길을 벗어나 상점이
나오면 우회전하여 오른다. 여기서 산계고개까지는 목포시와 무안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3거리에서는 좌회전하여 저수지 쪽으로 오른다. 이어
신기저수지가 나오고 조금 후에 좌측으로 국립목포결핵병원이 나온다. 이를 지나 뒷골마을이 나오고 그 마을 끝지점에 있는 동성축산목포도계장을 지나고
약간 좌회전하여 비포장 도로를 오르면 산계고개에 오른다. 오늘 기맥 종주의 산행기점이다.
(1) 산계고개(1.6km) -
서해안고속도로
산계고개 비포장 도로를 지나서부터 서해안고속도로까지는 길이 나쁘다. 산계고개 정상에서 도로를 건너 큰 길로
오른다. 좌측으로 가까이에 남해환경공장이 보이고, 멀리로는 서해안고속도로가 보인다. 길 좌측으론 잔디밭이 잘 관리되어 있고, 묘군락이 위치하고
있고 우측은 억새밭이 형성되어 있다. 묘지군락을 지나 3갈래길에서 우측(남동)으로 완만히 오른다. 묘지 서너기와 낮은 솔밭이다. 우측으로
지적산이 우뚝 서 있다. 좌측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보인다. 이어 둔덕에 이른다. 평평하고 공터가 있다. 우측에 목포결핵병원과 신기저수지가
보인다. 쉬기에 좋다. 주변은 낮은 오리나무숲이다. 완만하게 내려간다. 우측에 송전탑(No.75)이 나오고, 이어 아주 완만하게 오른다.
좌측에 무슨 도로공사를 하는지 기맥을 절반이나 잘라내어 높은 절개지를 형성하여 놓았다. 아주 가까이에 서해안고속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도 여기에
별도로 경제적인 효과가 있어서 도로를 닦는 것일까? 산을 온통 깎아내어 아까운 기맥 능선이 훼손되어 안타깝다. 무조건 도로를 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텐데. . . . 이어 절개지에 이르는데 직진할 수가 없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이어 공사중인 도로에 내려선다. 공사중인 도로를 건너
깎아놓은 절개지의 좌측벽으로 오른다. 공사중이라 온갖 날카로운 돌들이 마치 구석기시대의 뗀석기처럼 언제든 접근자에게 상처를 줄 요량으로 잔뜩
벼르고 있는 곳이다. 조심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힘겹게 오르니 다시 억새밭이 나온다. 억새를 헤쳐 나가니 잡목과 덩굴나무들이
성가시게 하더니 이윽고 90m봉에 이른다. 지형은 평평한데 공터가 없다. 주변은 잡목과 잡초, 그리고 가시덩굴로 무성하여 길이 분간되지 않는다.
조망은 제로상태다. 정상 조금 아래 송전탑(No.74)이 있다. 우측 아래로 과동저수지와 새터 마을이, 그 너머로 전봉산(×183m)이
보일듯도 한데, 무성한 잡목과 잡초등으로 도무지 보이지 아니한다. 우측 남서, 남동, 동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따라서 통로를 찾아내기기
여간 어렵지 않다.
90m봉 정상에서 송전탑 번호를 확인하러 송전탑으로 나아갔더니, 그 우측으로 아주 양호한 길이 나 있어
무턱대고 이 길로 따라 내려갔더니 한참 후에 골짜기로 빠지면서 동쪽으로 난 소능선과 기맥 능선과의 사이가 되는 지점으로 과동저수지와 새터마을
쪽으로 하산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다시 백하여 90m정상으로 되돌아와서 정상에서 송전탑까지 가지 말고 소나무숲/억새 등 잡목숲을 찾아보니
좌측(북동)으로 내려가는 희미한 길이 보인다. 도로공사하는 절개지의 우측편이 되는 셈이다. 이를 따라 좌측(북동)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밤나무들이 많은데, 밤꽃 향기가 좋다. 이어 도로공사지역의 우측 절개지역을 따라 내려간다. 3갈래길이 나오면 좌측을 택한다. 좌측으로
석교마을이 보인다. 종로구청! 다시 3갈래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바로 평탄한 안부가 나온다. 밤나무와 소나무가 많이 보인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인데, 좌측으로 하산로가 보인다. 둔덕같은 아주 밋밋한 곳을 넘어서 아주 완만하게 내려간다. 주변은 소나무숲인데, 통로엔 잔디가 나 있는
좋은 길이다. 이어 십자로 안부에 이른다. 좌측은 석교마을, 우측은 새터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어 직진하여 오르막을 진행한다.
북동방향이다. 나무를 쳐내어 길을 낸 것처럼 되어 있다. 좌우로는 소나무숲이 이어진다. 종로구청!
이 길로 약간 완만하게 오르면
×83m봉이다. 좌측(북)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보인다. 도로소음이 크게 들린다. 정상엔 간벌이 잘 된 소나무숲이다. 그러나 잘려진 나무들이
어지러이 불규칙하게 널려 있다. 고사리가 많이 보인다. 정상은 밋밋하고 넓고 평탄하다. 우측(북동)으로 내려가는데, 간벌된 소나무들을
타고 넘어야 한다. 몹시 걸리적거린다. 이어 평탄하게 나아간다. 그런데 잘 관리된 묘 1기가 나오기 직전에 노란색의 표지기가 눈에 확 들어온다.
바로 박성태 산성님의 표지기인 것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 분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 영원히 감히 넘어설 수 있는 거목이시다. 묘를
지나 좌측으로 완만히 오른다. 종로구청! 또 묘 1기를 지나면 바로 70m봉이다. 주변은 오리나무와 소나무숲이다. 조망은 별로이고, 휴식하기에도
별로이다. 다만 좌측 바로 아래 잘 관리된 쌍묘가 있다. 둘레엔 이채롭게도 노간주나무가 빽빽하게 둘러쳐져 있다. 우측(북동)을 내려간다.
여기에도 나무를 베어내어 길형태가 넓다. 그 길이 끝날 무렵에 좌우로 하산로가 보인다. 직진하여 잡목숲과 싸우며 마구 헤쳐 나아가니 우측으로
길이 나오고 이를 따라 오른다. 이윽고 억새와 칡넝쿨 지대를 지나 능선마루에 오른다. 간벌을 해 놓아서 조망은 트이나, 간벌된 나무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어 걸리적거린다. 좌측 아래에 천일공장건물이 있다. 우측으로 오르는 능선은 전봉산(×189m)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서해안고속도로와 다음에 이어질 능선을 가늠하여 좌측(북서북)으로 내려간다. 간벌된 나무들이 몹시 걸리적거린다. 이어 억새와 잡목, 칡넝쿨을
간신히 헤쳐나가 좌측에 천일주물공장이 보이는 지점에서 우측의 오리나무숲으로 내려간다. 이어 평탄하게 억새 및 칡넝쿨 군락 사이길로 나아간다.
좌측에 지형도상에 나와있는 천일주물공장이 있다. 지금은 가동이 중지되어 있는지 분위기가 썰렁하다. 길 우측엔 가축 똥을 쌓아두고 검은 천으로
덮어 두어 오염물이 나오고 냄새가 지독하다. 상수원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닌가! 저 물은 바로 목포시민이 마시는 것이 아닌가! 이어 작은
콘크리이트 포장도로에 이른다. 우측에 在木靑山鄕友共靈山이라고 새긴 비가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비포장도로로 진행한다.
백록식품공장(0631-282-6493)앞에서 좌회전한다. 묘 1기가 있다. 이어 다시 시멘트포장도로를 지나 지하통로(통과높이 3.8m)를 지나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넌다.
(2) 서해안고속도로(3.6km) -△국사봉
서해안고속도로는 인천광역시와 전라남도 목포시를
잇는 고속도로로서, 길이 353km로 경부고속도로에 이어 한국에서 두번째로 긴 고속도로이다. 1990년 12월 27일 착공되어 2001년 12월
21일 완공되었다. 제1단계 공사구간인 135km 가운데 인천~안산(28km) 구간은 1994년 7월 개통되었고,
안산~당진(61km)․서천~군산(22.7km)․무안~목포(23km) 구간도 1998년 완공되었다. 도로폭은 인천~안산 구간이 왕복 6차선으로 폭
30m, 안산~목포 구간은 왕복 4차선으로 폭 23.4m이다. 서해안시대를 맞이하여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은 교통량 분산 및 지역 발전에 커다란
영항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서해안고속도로밑 지하통로를 나오니, 바로 누군가가 대형 냉장고를 버려 놓았다. 기회만 되면 남의 눈을 피해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큰 일이다. 남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하지 않는다. 저런 것을 보면 산행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 정신혁명운동을 펼칠 때다. 그리고 국민들도 과감히 신고를 해서 저런 류의 사람들을 뿌리뽑아야 할 것으로 본다.
서해안고속도로밑 지하통로 끝에서 좌측의 시멘트포장도로로 오른다. 좌측 멀리 지적산이 보인다. 뒤로는 죽림저수지의 일부가 보인다. 도로
정상에 올라 우측 사면을 타고 올라야 한다. 돌이 있고 싸리나무가 뻭빽하여 헤쳐 오르기 쉽지 않다. 이윽고 길이 나온다. 우측으로 오르니 인공
수로가 나오고, 그 위로 시멘트 두껑들이 덮여 있다. 이를 따라 끝까지 가면 좌측으로 시멘트 계단이 나온다. 이를 오르면 공동묘지가 나온다.
8부 능선 쯤에서 묘지가 끝난다. 우측 멀리 죽림저수지가 보인다. 이어 희미한 길로 오른다. 간벌되어 어지러이 흩어진 나무들이 걸리적거린다.
이어 능선마루에 이른다. 좌측(북서)으로 아주 완만히 오른다. 종로구청! 여기서 기맥은 우측으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좌측으로 오르면
130m봉에 이른다. 정상은 평탄하다. 좌측(서)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참나무와 소나무숲이다. 조망은 보통이다. 도로 소음이 여전하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븍서쪽으로 유교리 관동마을과 관동저수지가 보인다. 여기서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다시 되돌아 내려와 우측(북동)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정상에서 서쪽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나오는 3갈래길에서 우측(북동)으로 잘못 들어섰다. 초입에는 길이 있더니 점점 갈수록
길이 없어진다. 그야말로 관동저수지가 있는 골짜기로 떨어지는 아주 작은 능선으로 진입한 셈이었다. 오늘 참 독도를 자꾸 실수한다. 누가 봐도
너무 쉬운 지형에서 실수를 하다니... 어이가 없다. 게다가 잘못 진입한 것을 알고 나면 빨리 백을 하여야 하는데도 그대로 나가다가 원래 위치로
가려고 하니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흘러버린다. 이번에도 다시 130m봉으로 올라와서 능선마루 초입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간단한데도, 굳이
내려간 지점에서 그대로 능선을 넘어 능선마루로 오르려고 하니 온통 청미래 덩굴과 잡목숲으로 인하여 전진을 못하겠다. 한참 헤쳐 나가다 보니 이젠
뒤로 돌아오는 것도 힘들어져 버린다. 그래서 할수 없이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다리와 팔에는 생채기가 나고 땀이 나서 쓰라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계속 피로의 연속이라 어느 하루 충분히 쉬지 못하여 그런 것이다. 최소한 하루 전에는 충분히 쉬어야 하는데
....
각고 끝에 아까 공동묘지가 끝나고 오른 능선마루지점에서 우측(북동)으로 내려간다. 서해안고속도로와 평행되게 진행한다.
여기도 잡목 및 가시나무 등이 대단하다. 이젠 정말 지겹다. 씨름씨름하며 겨우겨우 희미한 길을 찾아 내려간다. 이어 십자로 안부에 이른다.
종로구청! 안부는 넓고 평탄하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주변은 잡목숲이라 조망은 별로이다. 좌우로 하산로가 있는데, 좌로는 관동저수지,
우로는 와동/죽림저수지로 이어진다. 이 십자로 안부에서 직진하여 약간 가파르게 오른다. 소나무숲에 측벽나무와 노간주나무들이 보인다. 잡목
가지와 벌목된 나무들이 몹시 걸리적거린다. 갈비가 많이 쌓여 있다. 다시 잡목숲을 지나 우측으로 빙돌아 소나무숲을 오른다. 능선마루에 이르면
좌측으로 오른다. 종로구청! 이어 ×155m봉에 이른다. 소나무숲에 싸리나무와 옻나무가 보인다. 공터가 조금 있어 휴식할 수 있다.
조망은 별로이다. 돌이 몇 개 있다. 서해안고속도로의 소음이 들린다. 여기서 약간 우측(북동)으로 아주 완만히 내려가다가 약간 가파르게
내려간다. 잡목 및 가시나무숲이 나온다. 종로구청! 이어 양호한 길을 아주 완만히 내려가면 십자로 안부이다. 좌측은 관동저수지로, 우측은
서해안고속도로와 죽림저수지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측으로 농장이 나오고[과수원임], 농가가 1채 있는데, 개를 열 마리 이상 사육하는지,
10마리가 한꺼번에 나를 잡아먹을 듯이 짖는다. 안부에서 직진하여 묘 우측으로 오른다. 종로구청! 잡목숲길인데, 그늘이 깊어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이내 좌측으로 사면길이 나오는 3갈래길에 이른다. 여기서 사면길을 버리고 우측 능선길로 잡목가지들을 헤치며 오르면 송전탑이 있는
능선마루에 이른다. 이어 좌측(북동)으로 아주 완만히 내려간다. 이어 조금 전의 사면길과 만나는 3갈래길이다. 박성태! 여기에서 우측으로
아주 완만히 오른다. 잡목숲에 이어 소나무숲이다. 이어 3갈래길에서 좌측(북동)으로 오른다. 종로구청! 이어 우측(남동)으로 소능선이 분기하는
곳에서 좌측(북서)으로 완만히 나아간다. 중키의 소나무숲이다. 좌측 멀리로 아파트가 보인다. 한참 후에 가파르게 오른다. 3갈래길에서는 좌측을
선택한다. 종로구청! 다시 잡목숲을 지나고, 이어 능선 3갈래길에 이른다. 종로구청! 좌측으로 조금 오르면 이내 200m봉에 오른다.
좌측으로 서쪽과 남서쪽으로 지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200m봉 정상은 밋밋하고 공터는 없다. 주변은 잡목숲이다. 좌측 북서쪽으로 사수원지와
군산동마을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서해안고속도로와 송산마을이 보인다. 200m봉 정상에서 3갈래길로 되돌아와서 우측(북동)으로 잡목숲을
잠시 내려간다. 종로구청! 박성태 산성님! 이어 평탄하게 진행한다. 낙엽이 많다. 나무등걸과 잡목가지들이 매우 걸리적거린다. 이어 묵묘 1기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다가 우측으로 휘어 오른다. 좌측으로 사수원지와 군산동마을이 보인다. 이내 220m봉에 이른다. 우측으로 어렴풋이
서해안고속도로와 넓은 장항포 들이 아주 어렴풋이 보인다. 정상은 소나무숲에 잡목들이 있다. 조망은 별로이다. 공터가 조금 있어 쉴 수는 있다.
종로구청!
여기서 좌측으로 그늘이 좋은 잡목숲으로 내려가면 얕은 안부를 지나 얕은 둔덕에 이르니 '水'자가 새겨진 경계석이 서
있다. 여기서 대봉산까지에 이런 경계석이 2개 정도 더 있다고 박성태 산성님은 말씀하시나, 대봉산 지나 290m봉 아래에서 하나 밖에 더
발견하지 못하였다. 완만히 잡목숲을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3갈래길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이어 평탄한 십자로 안부이다. 좌측은
사수원지, 우측은 죽림제로 이어지는 길이다. 여기서 직진하여 완만하게 오르다가 좌측(북동)으로 오르다가 다시 우측(북동)으로 완만히 내려가다가
다시 오른다. 3갈래길이 나오면 좌측을 택한다. 그늘이 좋은 잡목숲이다. 갈비도 많다. 이어 3갈래길에서 좌측 사면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오른다.
잡목을 헤쳐가며 희미한 길을 진행한다. 이어 가파르게 오르면 대봉산이다. 해발 240m정도. 북동쪽과 남쪽과 동쪽으로 지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우측으로 서해안고속도로와 장항포들이 넓게 보인다. 그리고 이 대봉산은 무안군의 一老邑과 삼향면의 경계를 이룬다. 이 경계는 국사봉을 지나
×222m봉까지 이어진다. 정상에는 묘 하나가 있다. 주변은 잡목숲이고, 공터가 넓어 쉬기에 좋다. 조망은 보통이다. 서해안고속도로의 소음이
대단하다.
대봉산에서 기맥은 좌측(북서)으로 휘어져 진행되므로 독도에 유의하여야 한다. 대봉산 정상에서 좌측(북서)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잡목숲이고 통로가 양호하다. 이어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나아간다. 종로구청! 둔덕을 넘어서 안부에 내려서고, 이어 3갈래길에서
우측으로 한참을 완만하게 오른다. 우측으로 너른 들과 서해안고속도로가, 좌측으로는 삼, 사수원지가 보인다. 이어 평지에 이른다. 다시
좌측(북서)으로 완만히 오른다. 우측에 큰 웅덩이가 있다. 이내 작은 봉 3갈래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종로구청! 이어 우측으로 틀어 오른다.
장송들이 넘어져 있다. 대나무가 있는 둔덕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오르면 덩굴나무 군락지를 통과하고 이어 간이 원두막을 지난다.
잠시 평탄하게 나아가다가 이어 오르막이다. 우측에 이어 좌측에도 하산로가 나온다. 직진하여 가파르게 오른다. '水'자가 새겨진 경계석이 서
있다. 이어 290m봉에 이른다. 우측(동), 좌측(남서)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지형도상 국사봉에 삼각점이 있는데, 여기에
삼각점이 서 있다. 아마도 여기가 고도가 더 높고, 또 국사봉에는 헬기장을 건설하다 보니 이리로 삼각점을 이전한 것인가 보다. “ 목포 306,
‘99 재설”. 깃대와 깃발은 없다. 조망은 좋아 좌측으로 바다와 저수지들과 여러 마을들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815번 지방도와 서해안고속도로와
넓은 들과 큰 감돈저수지가 보인다. 잡목숲이 울창하고 공터가 없어 쉬기에는 별로이다. 돌이 몇 개 박혀 있다. 290m봉에서
좌측(북서)으로 내려간다. 안부에는 좌측에 희미한 하산로가 나 있다.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나온다. 관리상태가 엉망이다.
등산로라고 쓰인 팻말이 좌측(남서)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우측(북)으로 잠시 진행하면 국사봉 정상에 이른다.
(3)
△국사봉(2.5km) - 815지방도(감돈리)
해발 283m. 정상은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있으나, 휴식하기에는 별로다. 주변은
잡목들이 보인다. 조망은 별로이다. 그리고 북쪽과 서쪽, 북동쪽과 남서쪽으로 지능선이 많이 분기하므로 독도에 주의하여야 한다. 지형도상으로는
삼각점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삼각점이 없다. 헬기장은 아주 잘 관리되어 있다. 이곳에서 좌측(서쪽)으로 능선을 타고 잡목숲을 잠시
내려가니 엄청 양호한 길로 내려선다. 종로구청! 잠시 평탄하게 나아가다가 완만하게 오른다. 3갈래길에서 좌측의 좋은 길을 버리고[좌측길은
지능선으로 해서 내려가는 길이다], 우측 능선길로 오른다. 종로구청 표지기들이 많다. 독도주의! 얕은 지형이 애매한 둔덕에 오른다. 좌측 아래로
삼수원지가 보인다. 여기서 우측(북서)으로 내려간다. 종로구청! 이어 3갈래길이 나오면 우측(북)을 선택한다. 박성태 산성님! 또 3갈래길이
나오면 우측(북)을 선택한다. 종로구청! 서울수산회! 잡목숲을 지난다. 이어 거의 평탄하게 진행한다. 좌측 아래로 장골마을이 보인다. 둔덕에
오르면 우측(북)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박성태 산성님! 누군가 통로에 걸리적거리는 나무가지들을 쳐 주어서 산행하기에 아주 편하다. 그분들의
노고를 높이 치하하는 바이다. 좌측으로 장골마을이 보이고, 저 멀리로는 바다가 평화로이 보인다. 이어 오르막이다. 조그만 봉우리에 오르니,
공터가 조금 있다. 주변은 잡목숲과 소나무가 눈에 띈다. 잠시 우측(북)으로 내려가다가 안부 지나 오른다. 여기도 계속 나무가지치기가 되어
있다. 이어 봉우리에 오른다. 정상은 평탄하며, 공터가 조금 있으며, 소나무숲에 잡목들이 있다. 쉬기에는 좋다. 이 봉우리 너머 오른쪽(북동)
잡목숲길로 접어들어 내려간다. 목포노적봉산악회!(이하에서는 “노적봉”이라고 약칭한다.) 이어 평탄한 안부가 이어진다. 이어 잠시 오르다가
둔덕을 넘어 내려간다. 평탄한 안부에 이르니 좌측에 하산로가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은데 감나무가 특이하다. 안부를 지나 북동 방향으로
오른다. 좌측에 웅덩이가 있다. 공터가 조금 있는 봉우리에 이른다. 소나무숲인데 쉬기에 좋다. 돌이 조금 있다. 조망은 별로이다.
우측(북동)으로 내려가서 평탄하게 진행한다. 우측으로 큰골, 좌측으로 장골마을이 보인다. 이어 내리막이다. 안부에 이르니 덩굴나무군락과 잡목이
무성하고, 나무가 베어져 있다. 묘 1기를 지나 오르막이다. 암릉이 나온다. 우측으로 큰골 저수지가 보인다. 3갈래길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이어
×222m봉에 이른다. 소나무숲에 잡목들이 섞여 있다. 묘 1기가 있다. 잡초들도 무성하기만 하다. 조망은 별로이다. 공터는 없으나 쉴 수는
있다. 이 봉우리는 무안군 삼향면, 청계면, 일로읍의 경계를 이룬다. 좌측(북)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좌측으로 바다와 815번 지방도로가
, 우측으로 큰골저수지와 815번 지방도로가 나무가지 사이로 내려다보인다. 북쪽으로 아주 작은 능선이 분기한다. ×222m봉부터는 기맥은
일로읍과 청계면의 경계를 이루면서 815번 지방도 직전의 능선마루에 이르기까지 그 경계가 이어진다. 3갈래길에서 좌측(북동)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3갈래길에서 우측(동)으로 내려간다. 노적봉! 독도주의 ! 좌측으로 가면 암봉이 나오고 거기 바위에서 휴식할 수는 있다.
가파르게 내려가다가 이어 완만하게 내려간다. 잡목숲의 나무가지들이 걸리적거린다. 다시 평탄하게 나아가다가 완만하게 오른다. 이어 완만하게
내려가면 십자로안부이다. 좌측은 한치마을, 우측은 큰골저수지로 이어진다. 직진하여 완만히 오르면 밋밋한 봉우리에 이른다. 장송과 큰 참나무가
있고, 노간주나무도 보인다. 공터가 조금 있으나 쉬기에는 별로이고, 조망도 나쁘다. 이어 좌측(북동)으로 내려간다. 박성태 산성님! 안부를 지나
오른 후 봉우리에 오르니 철로 된 기둥이 높이 서 있고, 3개의 꼰 철선으로 고정되어 있다.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다. 주변은 소나무숲인데,
감나무가 있어 이채롭다. 조망은 없으나 공터가 있어 휴식하기엔 좋다. 우측(북동)으로 내려간다. 종로구청! 이어 완만히 오르니 장송 2그루가
있는 밋밋한 봉우리이다. 조망은 없으나 공터가 있어 휴식하기엔 좋다. 주변은 참나무 등의 잡목숲이다. 3갈래길에서 우측(남동)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잡목숲으로 한참 오른다. 다시 소나무숲의 밋밋한 봉우리를 지나 계속 직진하여 내려가다가 오른다. 계속 잡목이 엄청나게 울창하다.
이윽고 통신 중계탑이 서있는 180m봉우리의 직전에서 왼쪽(북동)으로 내려간다. 목포 산우회!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잡목숲에다가 가시나무와 덩굴
군락지를 헤쳐가며 내려가면 안부에 이른다. 이어 오르막이다. 묘 3기를 지나 둔덕에 오른 후 우측(북동)으로 내려간다. 십자로 안부에서는
직진하여 완만히 오른다. 이어 몽탄면과 일로읍과 청계면의 경계점이 되고 통신 중계탑이 서 있는 완만한 봉우리의 직전 봉우리에 이른다. 여기서
기맥은 청계면과 몽탄면의 경계를 이루면서 대치령 직전의 능선분기점인 240m봉까지 이어진다. 좌측(북)으로 다시 조금 꺾어 엄청난 잡목가지와
가시나무와 덩굴 군락지를 헤쳐가며 내려서면 815번 지방도의 삼거리이다.
(4) 815지방도(감돈리)(3.5km) -
僧達山
2차선 아스팔트포장도로이다. 우측에 몽탄면 4-H안내판과 3거리를 이루고 있으며, 그 아래로 넓은 甘遁저수지가 보인다.
좌측으로 독골마을이 보인다. 좌측 아래로 목포장애인요양원과 무안자립원이 있다. 여기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여기 3거리에는 쓰레기투기금지
경고문과 순복음교회 송죽교회 안내판과 주요 음식점 간판, 이정표(회산연꽃방죽 8.6km, 목우암 3.5km, 법천사 5km) 등이 복잡하게
다닥다닥 서 있다. 이중 연꽃방죽은 무안의 자랑거리이므로 꼭 한 번 들러봐야겠다. 오늘 좀 일찍 마치고 둘러보고 산행은 내일 더 열심히 하기로
한다.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완만히 오른다. 우측 아래로 보이는 감둔저수지가 엄청나게 크고 넓다. 남양홍씨산이라고 쓴 비석과
남양홍씨 가족묘와 무덤 2기를 지나 숲으로 들어가 헤쳐 오르니 양호한 큰길이 나온다. 노란 테이프를 길가의 나무들에 쳐 놓았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 이어 둔덕에 이른다. 우측(남동)으로 아주 작은 능선이 분기한다. 이어 내려가다가 이내 오른다. 노란 테이프는 계속 이어진다. 이어
가파르게 오르다가 완만하게 오르면 ×130m봉에 이른다. 우측(북동)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소나무숲에 공터가 조금 있어 쉬기에 좋다.
조망은 비교적 양호하다. 여기 3갈래길에서 좌측(북서)으로 완만하게 내려간다. 노적봉! 이어 오르막이다. 우측 멀리 죽전, 노송정마을이
보이는데 제법 큰 마을이다. 노간주나무가 많이 보인다. 묘 2기를 지난다. 이어 126.8봉에 오른다. 삼각점이 있다. “목포 426, ‘ 86
재설.” 깃대와 깃발은 없다.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다. 우측으로 법천사 가는 도로가, 좌측으로 月仙二堤와 신촌마을이 보인다.
우측(북)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평탄하게 나아간다. 우측으로 소능선이 나오는 곳 3갈래길에서 좌측(북)으로 완만히 잠시 내려간다.
노적봉! 좌측으로 월선이제와 신촌마을이 보인다. 잡목가지와 가시나무들이 걸리적거리고, 노간주 나무들이 많다. 이어 꽃장마을 고개이다. 십자로
안부이다. 좌측은 신촌마을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법천사 가는 길과 일로읍으로 가는 봉명리 3거리의 법천식당이 나오므로 요기를 할 수
있으며, 목포에서 출발한 시내버스가 법천사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와 일로읍으로 가므로 일로읍에서 목포가는 좌석버스를 바꿔 타면 되므로 이 고개에서
탈출하려면 우측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꽃장마을 고개에서 직진하여 좌측(북서)으로 오른다. 소나무숲이다. 묵묘 2기를 지나고,
낙춘제밀양박씨 합장묘외 3기를 지난다. 이어 능선 3갈래길에서 좌측으로 오른다. 노적봉! 노간주 나무들이 많다. 이어 둔덕같이 평탄한
140m봉에 오른다. 공터가 있으며 소나무숲에 잡목이 가득하다. 이어 우측(북동)으로 완만히 내려가다가 오른다. 우측에 묘 6기가 나온다. 이어
넓은 길을 평탄하게 진행한다. 우측 아래로 묘 여러 기가 보인다. 우측으로 내려가다가 넓은 길을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진입한다. 박성태 산성님!
이내 3갈래길이 나오면 우측(북)으로 진행하다가 소나무숲을 오른다. 평평한 소나무 둔덕을 넘어 아주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다시 오른다. 한참후
봉우리에 이른다. 다시 직진하여 내려간다. 좌우로 희미한 하산로가 있는 안부를 지나 오르니 이내 ×188m봉에 이른다. 우측(남동)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주변은 소나무숲이고, 조망도 좋다. 관리가 잘되어 쉬기에 좋은 묘 2기가 있다. 다시 좌측(북)으로 잡목을 헤치며
내려간다. 노적봉! 안부에 이르면 좌우로 하산로가 있다. 좌측 길은 지제마을, 우측 길은 죽전마을로 이어진다. 쓰레기가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다.
안부를 지나 오른다. 이어 흙묘 1기를 지나고 잡목을 헤쳐 오른다. 소나무숲을 지나고, 묵묘를 지나 잡목숲을 오르면 이어 190m봉에 이른다.
공터가 넓고 쉬기에 좋다. 주변은 소나무숲이다. 조망은 좋아서 우측으로 농경지와 마을들이 보인다. 좌측(남서)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노적봉! ] 평탄하게 진행한다. 이어 오른다. 좌측(남서)로 소능선이 분기하는 지점인 능선마루에서 우측(북) 완만하게 오르면 바로
×203m봉이다.
×203m봉에서 좌측(북)으로 내려가다가 평탄하게 나아간다. 이어 내리막에 이어 오르막이다. 둔덕에 이르면
우회전하여 오르다가 봉우리에서 내려간다. 우측(북동)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여기서 좌측(북서)으로 내려가면 안부이다. 이를 지나
오르막이다. 이어 평평한 봉우리에 이른다. 공터가 있어 휴식하기에 좋다. 소나무숲이고 조망은 별로이다. 박성태 산성님! 이어 좌측(북서)으로
내려가다가 오른다. 묘 1기가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좌측(북서)으로 다시 내려가니 안부이고, 다시 오른다. 좌측으로 학천마을이 보인다. 둔덕에
오르니 소나무숲이다. 다시 우측(북서)으로 내려서면 십자로 안부에 이른다. 좌측은 수정동, 우측은 영춘동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십자로
안부에서 직진(북서북)하여 완만하게 오른다. 가선대부/공조참의 한양조씨 묘 1기를 지난다. 이어 가파르게 오르면 봉우리이다. 소나무숲이고 공터가
조금 있다. 쉬기에 좋다. 우측으로 영춘동 마을이 보인다. 노간주나무들이 많다. 직진하여 내려간다. 잡목들이 걸리적거린다. 평탄하다가 다시
완만한 내리막에 이어 다시 오르막이다. 좌측 뒤로 월선제가 보인다. 3갈래길에서 우측으로 으르면 능선마루에 이른다. 좌측으로 평탄하게 장송숲을
진행하다가 우측으로 내려간다. 숲이 깊다. 안부에 이르니 우측에 하산로가 보인다. 조금 오르다가 우측으로 난 사면길로 오른다. 능선마루
3갈래길에서 우측(북동)으로 오르다가 다시 좌측(북)으로 오른다. 묘 1기를 지나 다시 우측(북북동)으로 완만히 오르다가 완만히 내려가다가 다시
완만히 오르면 3갈래길이다. 여기서 우측으로 오르면 僧達山에 이른다.
(5) 승달산(1.2km) - 하루재
해발
317.7m. 삼각점이 있다. “ 목포 11, ‘90 재설.” 깃대와 깃발은 없다.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있고, 잘 관리되고 있다. 정상에는
이정표가 서 있다. “정상 333m, 달산저수지 0.8km, 수월동 3거리 0.2km, 산불조심, 무안군수.” 다만 해발 높이만 통일해 주었으면
한다. 무안군 청계면과 몽탄면에 걸쳐 있다. 무안군에서 가장 큰 산이다. 영산북기맥의 마지막 부분에 솟아 있는데 그리 높지는 않지만
남도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발고도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조망을 즐길 수 있으며, 겨울에도 훈훈한 훈풍을 느낄 수 있어 목포의 유달산과
쌍벽을 이루는 노령산맥 4대 명산이다. 그래서 고지도에서도 빠지지 않던 산이었다고 한다. 정상에서 보니 영산호와 크고 작은 섬들과 드넓은
호남평야가 내려다보이는 등 주변 경관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높이에 비해 계곡이 제법 깊은 편이고 수림도 짙기 때문에 산세가 수려하면서도
사시사철 계곡이 마르지 않으므로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 편이라고 한다. 등산객들을 비롯한 가족단위 피크닉장으로 많이 애용될 것 같다.
또한 蘭자생지로 유명한데, 토양이나 기후조건이 야생난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지니고 있어서 산 곳곳에 난이 자라고 있다. 90년대
초반까지도 이들 희귀종 야생란을 얻으려는 수집가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산림이 훼손되는 곤욕을 치루기도 했으나 군에서 명산 가꾸기 일환으로 등산로를
정비하고 관망대를 세우는 등 체계적으로 가꾸어 명산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꿔나가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측(북동)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좌측 아래로 1번 국도, 국립목포대학교와 마을들이 보이며, 우측으로 달산저수지가 보인다. '고려 인종때 원나라
승려 원명이 이 산에 올라와 교세를 크게 떨쳤고 그를 찾아온 제자 500여명이 한꺼번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승달산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처럼 이 산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3천년에 이르도록 문무백관이 탄생한다는 호남의 4패 명혈
중의 제 1의 혈처를 안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여하튼 풍수상으로는 고승이 제자들을 모아 놓고 불공을 드리는 이른바
老僧禮佛, 혹은 好僧禮佛의 지세라고 한다. 그 때문이지 또는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승달산 자락에는 국립 목포대학교, 초당대학교, 목포기능대학 등
3개 대학교가 소재하고 산 곳곳에 무덤들이 유달리 많이 보인다. 특히 새로운 전남 도청이 들어설 삼향면 남악리 지역은 풍수적으로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의 선황산과 목포 유달산, 그리고 무안의 승달산 정상이 이룬 삼각형의 중심이어서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천하의 명당이라고 말한다.
능선길을 걷노라면 멀리 서편으로 서해 푸른 물이 늘 눈을 맑게 씻어주고, 점점이 떠있는 섬들은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동쪽으로는
호남의 젖줄 영산강을 따라 넓은 평야는 보는 이에게 풍요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승달산에는 황소가 절터를 잡았다는 牧牛寺와 불법이 샘솟는 듯하다는
뜻의 이름으로서 1,500여년을 이어온 법천사가 자리해 승달산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일부 내용은 박성태 산성님의 것을 인용하였음))
승달산 산행은 목포대학교 정문을 기점으로 매봉~ 깃봉~ 하루재~ 천지골을 거쳐 정문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 코스가 가장 인기가
높으며, 하루재를 지나 남쪽으로 더 내려가서 정상을 밟은 뒤 서쪽 능선을 타고 목포대 운동장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도 애용된다. 반대로 무안군
청계 1리 속칭 구암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약 4㎞ 정도 더 나가면 감돈 저수지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원령동
마을을 지나 달산 저수지를 끼고 왼쪽 산길을 따라 법천사 쪽으로 오르는 방법도 있다. 또한 등산보다는 가벼운 산책을 원한다면 목포대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올랐다가 목우암(지형도에는 목우사라고 잘못 표시하고 있다)에 들러 약수에 목을 축인 후 잠시 숨을 돌렸다가 올랐던 길을 따라
되돌아오는 것도 좋아 보인다. 옛날에는 이 지역이 목포지역 학생들의 단골 소풍장소였고, 목포에서 걸어서 참배할 정도로 대단한 절이었으나 일제가
달산저수지를 식수원으로 건설하고 나서 사람과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고 나서부터 그 유명세가 한풀 꺾였다고 한다.
승달산 정상에서부터
기봉까지는 등산로가 잘 나 있고 전망도 좋다. 승달산 정상에서 이정표가 있는 좌측(북서)으로 내려간다. 숲이 좋다. 길에는 돌이 많이 박혀
있고, 산죽들이 보인다. 3갈래길에서 직진한다. 통로가 아주 양호하다. 우측으로 하산로가 보인다. 묘 1기가 나오는데 길이 4갈래다. 좌측의
첫째 길의 아래에는 무슨 진사묘인데 무척 호화롭게 해 놓았다. 온갖 석물이란 것은 다 구비하였는데, 마치 황제의 릉을 연상케 할 정도이니 기가
차다. 어이가 없다. 기맥은 두 번째 좌측길(서)로 진행한다. 사람이 많이 다녀서인지 길이 넓고 뺀질뺀질하다. 산죽이 많다. 이 지점에서
집으로부터 승부차기로 우리 축구국가대표팀이 스페인을 누르고 4강에 진출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참으로 대단하다. 나는 축구도 보지 않고 또 응원도
하지 않고 산에 와서 오늘은 조금은 힘이 든 모양이다. 3갈래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묘 1기를 지나 능선에 이르러 우측(북서)으로 내려간다.
서울수산회! 목포 대성산악회! 이어 십자로 안부이다. 수월동 3거리인데 이정표가 있다. “월선제 1km, 하루재 1km, 승달산 0.2km."
좌측은 수월동, 우측은 법천사로 가는 길이다. 직진하여 오른다. 3갈래길에서 좌측으로 오른다. 능선마루에서 우측(북서)으로 진행한다. 박성태
산성님! 이어 3갈래길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300m봉이다. 좌측 북서 및 남서로 각 지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산불감시초소가 있으나 사람은 없다.
쓰레기가 버려져 있어 불쾌하다. 얼마나 복을 받으려는지 여기에 묘가 2개나 있다. 이정표( 목포대정문 2.9km, 승달산 0.2km, 하루재
0.7km)도 있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으며, 조망도 좋다. 좌측 아래로 농가, 도림제, 목포대와 바다가 보인다.
여기
3갈래길에서 우측(북)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 돌길과 산죽이 보이고 숲이 좋다. 이어 평탄하게 나아간다. 3갈래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통로가
좋다. 이어 송달산 3갈래길에 이른다. 청계면로타리클럽의 산불조심 안내판과 땅에 떨어져 있는 이정표(목포대 2.3km, 승달산 0.6km,
하루재 0.6km)가 있고, 좌측에 하산로가 보인다. 직진해서 내려가다가 오른다. 4갈래길에서 직진하다가 평탄하게 진행한 후 내리막이다. 돌이
있고, 공터가 있다. 좌측 도림리 일대와 목포대전경 및 골프연습장 등이 조망된다. 우측(북)으로 내려간다. 산죽이 많다. 3갈래길이 나오면
좌측으로 내려간다. 목포꿀벌신협산악회! 바로 3갈래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이어 우측으로 법천사로 가는 하산로가 나온다. 이어 완만히 내려가면
안부인데 좌측에 하산로가 있다. 이어 오르막인데 3갈래길이 나오면 좌측을 선택한다. 이어 250m봉에 이른다. 암봉이다. 전망이 좋다. 우측으로
암릉을 내려가니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우측에 하산로가 있다. 좌측으로 내려가다가 3갈래길에서 좌측으로 오르다가 내려가니 십자로안부이다. 여기가
바로 하루재다. 해발 236m. 이정표(사자바위산 0.8km, 승달산 1.2km, 목포대 2.8km, 법천사/목우암 0.3km)가 있고, 큰 묘
1기가 있다. 좌측은 도림동과 국립목포대학교로, 우측은 목우암, 법천사와 달산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다. 멋진 통나무 식탁이 있어 쉬기에 좋다.
벤취도 하나 있다. 청계면 청년회의 산불조심안내판, 제6회 무안연꽃대축제 광고문(‘02. 8.15~8.18. 장소는 일로읍 회산 백련지),
목포용호산악회와 목포청솔산악회의 산불조심안내현수막이 보이고, 사고발생/산불발견시 긴급연락처 안내문(119 또는 061-283-8380; 군청
450-5423~5, 읍사무소, 무안군수/목포소방서장 명의), 그리고 무안군의 “ 2002년은 월드컵 16강의 해, 유엔이 정한 세계 산의 해,
무안군이 정한 산불없는 해”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있다. 오늘은 여기서 하산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목우암과 법천사를 둘러보고 달산저수지와
감둔저수지를 둘러보고 일로읍으로 나가서 회산 연꽃방죽을 보러 가야겠다. 꼭 산행만이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오늘은
일로읍에서 나는 막걸리를 구해 먹어야 겠기에...
★★ 하루재(7km) - 감둔저수지 아래 감돈리 - 일로읍 -
연꽃방죽
하루재에서 그냥 내려가서 휴식을 취하려면 좌측으로 목포대 쪽으로 하산하는 게 좋다. 거리도 가까울 뿐만 아니라 교통도
편리하여 목포로 나가는 좌석버스도 15분 간격으로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무안에서 유명하다는 법천사와 목우암을 구경하고 일본인들이
자기들만의 깨끗한 수원지를 건설하여 잡인의 범접을 금했다는 달산저수지의 모습과 두 면에 걸쳐 있어 애환이 서린 감둔저수지를 보기 위하여 좀
힘들지만 목우암과 법천사 0.3km라는 이정표 방향대로 좌측으로 내려갔다. 길이 양호하다. 이어 좌측으로 틀어 조금 내려서니 능선마루인데 좌측은
목우암 100m, 우측은 법천사 역시 100m라 되어 있다. 그러면 법천사와 목우암은 겨우 200m정도의 거리인 것이다. 먼저 좌측으로 목우암을
향했다. 넓은 계단으로 된 길을 내려가니 부도탑과 어떤 비구니 기념비가 서 있고, 좌회전하여 입구에 두껑이 덮힌 우물을 지나 오르면 목우암이
나온다.
목우암은 法泉寺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고려시대의 법당으로 본래 원나라 승려 원명이 초암을 지었던 자리로서,
소 한 마리가 초암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는 새로 암자를 짓고 목우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82호로 지정되었으며, 법당 안에는 나무로 만든 높이 2m가 넘는 전형적인 아미타불과 협시불인 관세음보살상․대세지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정말
조각 솜씨가 훌륭해 보인다. 현재 법당은 최근 건립한 요사채 우측편에 있다. ㄷ자집 모양으로 양날개가 1칸씩 나와 있고, 중앙은 3칸 규모이다.
17세기의 유물로 조각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牧牛庵三尊佛은 1988년 12월 21일 전남문화재자료 제172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의 조각류로
분류하고 있다. 전형적인 아미타불로 목우암의 ㄷ자집 법당 안에 봉안되어 있다. 본존불의 양편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본존불은
좌상으로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표현되어 있다. 상호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원만상이다. 수인은 中品下生印을 결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이
취하는 통인을 하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오른쪽 어깨에서 몇가닥의 의문(衣紋)이 등뒤로 넘어가는 형식이며 가슴 아래에서는 U자형이 나타나고
있다. 어깨에서부터 내려온 법의 자락이 무릎 중앙에서 겹쳐지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를 취하였는데, 비교적 그 너비가 넓게 벌어진 편이다.
양협시불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인데,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화려한 천의로 장식되어 있다. 대세지보살은 양팔에 팔찌를 끼고 있고,
왼손바닥에는 뚜껑이 달린 상자를 가볍게 쥐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왼팔을 들어 천의 자락을 걸치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길게 늘어뜨린 정병을 들고
있다. 재료가 나무이며,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가슴에서 보인 U자형의 옷주름이라든지, 그 사이에서 연꽃형의 내의 자락은 조선 초기
양식에 가깝다. 더구나 어깨의 부드러운 선,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감돌고 있어 조선 후기 작품으로는 수작에 속한다. 이같은
표현은 강진 無爲寺의 아미타 삼존불의 형식과 유사한 점이 보인다. 법당 앞에는 석등이 있다. 법당 뒤에는 축성각이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전각으로 조선 후기 인조 때 중창하면서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는 나한전과 산신당의 2칸으로 나뉘며 나한전에 24구의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목우암에서 나와 우물에서 물을 떠먹고 나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와 법천사로 내려가는데, 대나무숲이 너무 크고
울창하여 금방이라도 호랑이가 뛰쳐 나올 정도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법천사(무안군 몽탄면 달산리 승달산 남쪽 기슭에 자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불법이 샘솟는 듯하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與地圖書에 의하면 725년(신라 성덕왕
24) 서아시아 金地國에서 온 淨明이 창건하였다. 1030년에 불에 탄 뒤 약 100년 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것을 고려 중기인 1031년(인종
9)에 원나라 臨川寺에서 온 圓明이 중창하였다. 원명은 처음에는 초암을 짓고 수행하였으나, 500명의 제자가 몰려들자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
절의 승려들이 모두 도를 얻어 절이 있는 산 이름을 승달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타자 불상 등을 산내
암자인 牧牛庵으로 옮겼다. 1662년(현종 3) 靈旭이 중창하였으나, 1896년(건양 1) 다시 폐허가 되었으며 1913년 나주에서 온 丁丙愚가
암자를 짓고, 1964년 승려 活然이 법당을 짓는 등 불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축성각(목우암 소재)․요사채가
있고, 유물로는 총지사지와 초석 10여개, 석탑재 및 좌물파편 각 1점, 흙으로 만든 불두 1점 그리고 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24호로 지정된 법천사 입구의 석장승 2기가 전한다. 절 입구에 있다가 지금은 목우암 입구로 옮져진 것으로 조선 후기에 조성된 고승들의 부도
5기와 마당에 세워진 1681년(숙종 7)의 석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법천사가 조선 후기까지 상당한 규모를 갖춘 가람(伽藍)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오르면 넓은 마당에 대웅전이 있다. 그 앞에 석등과 사찰의 연혁 안내문이 있다. 노여승 1분이 보인다.
좌측으로 요사채, 우측으로 건물이 있다. 다시 일주문을 나와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심산에 온 것처럼 숲이 많이 우거져 있었다. 한참
후에 3거리에 이른다. 좌측으로는 목우암, 우측으로는 법천사로 가는 갈림길이다. 법천사 안내석은 넓고 큰 돌에 보기좋게 되어 있고, 목우암의
것은 초라하기 이를데 없다. 이어 한참을 내려가노라면 바로 법천사 석장승이 나온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법천사 석장승은 승달산 남쪽 산기슭 절 입구에 있는 고려시대의 신앙자료이다. 12세기 중반 중국 원나라의 승려 원명이 법천사 중창
당시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원의 경계표시와 재액과 잡귀를 막는 수문장의 역할을 하고, 절을 지키고 사찰 내의 살생, 수렵과 나무채취 등
부정스러운 짓을 감한다. 사원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을 가진 무교와 불교가 어우러진 신앙석상이다. 조각 기법이 유사해 처음 엔 남장승과 여장승
구별이 어렵지만, 법천사를 오르는 길에서 오른쪽의 할아버지 장승은 몸 아래가 파묻혀 있긴 하지만 자연석을 그대로 살려 `대머리`에 꿋꿋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이 남장승은 높이 170cm, 너비 48cm의 네모난 몸체와 긴 얼굴에 왕눈과 콧대가 긴 코를 하고 있는데 코뿌리는 문드러져 깎여
있다. 건너편의 조금 큰 할머니 장승 역시 자연석 그대로를 이용하여 얼굴부분만 다듬어 놓은 것이나, 자유스러움이 느껴진다. 이 여장승은 높이
166cm, 너비 41cm으로서 돌무더기 서낭당위에 세워져 있는데 역시 네모난 몸체에 둥글고 길쭉한 얼굴로 왕눈, 길쭉한 주먹코, 미소짓는 듯한
일자로 다문입, 방방한 턱이 특징이다. 투박한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황소눈, 주먹코, 조용한 웃음을 선각하였다. 얌전하고 수줍은 모습이다.
얼굴이나 몸체만을 표시하는 등 과감한 생략을 보이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 신도들은 아들을 얻으려고 이 석장승 앞에서 고사를 지내거나, 장승코를
떼어다 갈아서 청정수에 타 마셨다 하며 부인의 배를 장승의 배에 맞추면서 잉태한 아이가 튼튼한 아들이기를 기원하였다 한다. 또한 장승 밑에 돌을
던져 쌓아서 가정의 무병과 평안을 빌기도 하였다. ‘87 6. 1. 전남도의 민속자료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연석을 거의 그대로 살려
나타낸 것으로 앞에서 보는 것과 옆에서 보는 모양이 제각각이라 이채로왔으며, 꿋꿋이 명맥을 이어온 우리 민간신앙의 끈질긴 한 면모를 볼 수 있는
것으로서 표정이 살아있어 재미있었다. 본래 이 장승은 총지사라는 절을 지키던 것이었다고 한다. 총지사는 신라 성덕왕때 서역의 승려인 정명에 의해
백운산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고려 현종 7년(1016)에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의 자리인 승달산의 자리로 옮겼으나 후일 임진왜란으로
또다시 불에 타 중수하였다. 이 당시에는 승려의 수가 800여 명에 이르고 부속 암자만도 9개에 달해 큰 절이었지만 조선 선조
10년(1810)을 전후하여 폐찰되었다. 그 연유는 충청도의 현감을 지내던 임면수 부친의 묘소 때문인데 절의 뒤에 묘를 쓰자 승려들이 반대하여
묘에다가 말뚝을 박았고 이에 승려들과 임씨 일가와의 싸움이 벌어져 불타 없어졌다 한다. 지금은 불당골,중샘,절안 등의 지명만이 남아있는 곳으로
온전한 것은 총지사를 지키던 두 장승밖에 없다. 하여튼 길목을 외롭게 지키고 선 석장승을 만나면 맘속으로 나마 "오메, 너 왔냐" 며
혼연히 반길 성싶다. 그리고 해학적이기 보다는 웬지 여릿한 슬픔과 애잔함을 담고 있는 듯 한 표정이다.
이어 차 1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도로가 계속되며 길 왼편으로 달산 수원지가 펼쳐지고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린다. 차량은커녕 사람도 다니지 않아 혼자 명상에
잠기며 걷노라니 기분이 아주 좋다. 참으로 청량하고 소쇄한 기분을 안겨 준다. 일본인들이 자기들만의 식수 공급을 위해 이 저수지를 건설했다고
하니 여하튼 수질은 아주 좋아 보인다. 아직도 사람이나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는 듯저수지 가장자리로는 철망이 견고하게 쳐져 있다. 저수지가 끝나고
우측으로 돌아내리니 저수지 관리인 사택이 있고, 승달산 등산안내도도 있다. 주변은 큰 키의 대나무숲이다. 이어 달산리의 여러 마을(금곡,
사기점, 월영동 등)을 거쳐 꽃장마을 앞 4거리 법천가든 앞을 지난다. 주로 오리고기 등을 하는 것 같다. 매점도 있다. 좌측으로 가면 몽탄면
소재지로 간다고 한다. 직진하여 나아가니 넓은 감둔저수지가 눈에 들어오는데, 상류에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더 넓히려는 것인가 보다. 이어
3거리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가면 청계면소재지로 간다. 좌측으로 가니 산수정이란 음식점이 있다. 저수지에는 여기저기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이들에게 도구와 물건을 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봉고차를 몰고 다니면서 물건을 공급하는 모양이었다. 참 벌어먹고 사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다시 도로 따라 한참 가다가 감둔저수지 뚝을 지나 감돈리 버스정류장을 지나다가 이 마을 사람이 트럭을
몰고 가다가 태워 주었다. 일로읍 택시대기소에서 내려주어 여기서 택시를 타고 회산연꽃 방죽으로 갈 수 있었다.
택시로 약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무안군 일로읍 복룡리 복룡저수지[회산 백련지라고도 부른다]이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웠다.
10만 평 넓이의 연꽃 저수지에 연잎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 나라의 못이나 저수지 등에서 흔히 보던 그러한
연꽃이 아니라 너무나 넓고, 그리고 몸을 던져도 괜찮을 것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빽빽하게 수면이 몽땅 연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곳이 유일하리라. 지름이 1m는 됨직한 둥근 연(蓮) 잎의 바다가, 끝이 어디인지를 알려면 한참 주위를 둘러보아야 할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다. 그런데 비록 넓이만 넓은 게 아니다. 나아가 여기의 연꽃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홍련과 수련이 아니라 그리 흔하지 않으면서도
佛家에서 신성시하는 희디흰 白蓮이어서 한결 귀해 보인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백련만 피는 연못으로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최대"라고 침을
튀기면서 강변을 토하고 있었다. 법정스님이 이 연못을 보고 “마치 정든 사람을 만나고 온 듯한 두근거림과 감회를 느끼고 살아있는 기쁨을
누렸다”고 격찬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연은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로서 동아시아의 열대에서 온대에 걸쳐 널리
분포한다. 종자의 수명이 길어서 2000년 전의 종자가 발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놀랍다. 연꽃은 흙탕물 속에서 맑은 꽃을 피운다. 뿌리는
더러운 진흙탕에 두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특성이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같다고 하여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송나라 때 유학자 주돈이는 연꽃을 보면서 "나는 연을 사랑하나니 연꽃은 진흙속에서 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이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비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도 없다.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으며 우뚝 서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아야 참 맛을 느끼게
하니 연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 라고 애찬하지 않았던가! 연꽃은 씨주머니 속에 많은 씨앗을 담고 있다고 해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여 그림이나
건축물, 의복, 자수등에 많이 새겨지고 있기도 하다. 인도와 이집트가 원산지인 연꽃은 7월과 9월사이에 일시에 피지 않고 3개월동안 피고진다.
연꽃의 종류는 다양하나 홍연이 대부분이며 백련은 희귀하면서도 꽃이 연잎사이에 수줍은 듯 피어나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 것이다. 최근 이곳에는
충남 이남 지방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가시연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등 자연 생태계의 보고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자아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70년쯤 전인 일제때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방죽을 쌓으며 저수지가 생겨났다고 한다. 즉, 일제의 암울했던 시대에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축조된 저수지이란다. 2개의 저수지가 합해져 인근 250ha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농작물의 젖줄 역할을 하였으나 영산강 하구둑이
건설된 후 사실상 농업용수 기능을 상실하였다고 한다. 당시 저수지 옆 덕애 부락에는 6세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마을에 사는 주민이 蓮根을
수확하기 위해우물옆 저수지 가장자리에 백련12주를 구해다가 심은 후 그 날밤 꿈에 하늘에서 학12마리가 내려와 앉은 모습이 흡사 백련이 피어있는
모습과 같아 그날 이후 매년 열과 성을 다해 연을 보호하고 가꾸었다. 그런 정성이 헛되지 않았음인지 해마나 번식을 거듭하여 10년쯤 지나며 결국
이렇듯 저수지 전체로 번식했으며, 지금은 동양최대의 백련 자생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곳 마을이름이 回山으로 온 세상의 기운이 다시
모인다는 의미로 유래되고 있어 앞을 내다보는 옛 선현들의 높은 안목과 슬기를 엿볼 수 있다. 봄에 잎을 내기 시작해 6월이면 수면을 거의
뒤덮는다. 절정인 때는 7월부터 약 3~4개월이며, 9,10월에는 어김없이 순백의 꽃을 피워낸다. 커다란 잎 사이에 수줍은 듯 피어나지만,
크기는 주먹만하여 꽃으로선 매우 큰 편이다. 밤이 되면 꽃잎을 오므렸다가 아침이면 다시 활짝 피어나 신비롭다고 한다. 그러나 꽃보다는 1m
가까이 널찍하게 퍼지며 자라는 연잎이 10만평의 연못을 뒤덮은 모습이 더 장관으로 보인다. 연잎으로 조그만 빈틈 한 점 없이 이루는 완벽한
초록의 바다--. 볼수록 장관이라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가니 커다란 연잎들이 일제히 몸을 젖히는 모습도 가히 환상적이다.
이 연못에는 동서로 가로질러 목재 다리를 가설해 두고 그 중간 중간에는 연못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끔 다리보다 1m쯤 높게 만든 전망대가
3군데 있다. 이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는 사람, 연못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 등이 부지기수다. 잔교 옆의 연잎에는 사람들이 던져둔
동전이 신기하게도 얹혀 있다. 특이한 것은 이 저수지에는 팔뚝만한 가물치가 살고 있었다. 이것도 주민들이 소득 증대를 위해서 치어를
방류해 자라난 것으로서, 이따금씩 연잎 아래의 물을 크게 철벅이며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 연못에서 키워 잡은 가물치 요리집이 일로읍내에 몇 군데
있을 정도라니 그 유명세가 대단한 편이다. 무안군은 ‘97년부터 매년 9월 중순경 연꽃 만개 시기에 맞추어 연꽃대축제를 개최한단다.
무안군과 무안 불교사암연합회가 공동주최하며, 4~5일간 여러 종류의 관광객 참여행사를 비롯, 풍물공연, 길놀이, 가요제 등이 펼쳐진다. 이
축제는 전남 10대 축제중 하나에 든다.
다시 일로읍으로 돌아와 일로읍에서 생산한 생막걸리와 함께 저녁을 든든하게 먹은 후
파크장에서 잠을 청한다. 내일 산행을 잘 하기 위해서 .....
교통 :
갈 때는 영등포역에서 목포행 호남선
열차를 타고 목포역에서 하차하거나, 강남 호남선 버스터미널에서 목포행 고속버스를 이용하여 목포버스터미날에서 하차, 좌석버스 800번이나,
시내버스 108번[요금 630원, 15분 간격 소요, 약 30분 소요]을 타고 임성리 811번 지방도로정류장에서 하차후 산행기점까지는 도보로
이동.
올 때는 하루재에서 목포국립대학으로 하산하여 목포역이나 목포버스터미날 행 200번 좌석버스를 이용, 목포역이나
목포버스터미날에서 영등포행 열차나 서울 호남선 고속버스터미날행 버스를 이용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