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재
→ 노고단개→ 반야봉 → 삼도봉 → 연하천산장
→ 벽소령작전도로 → 지리산자연휴양림
智異山
戀歌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더니 지리산
능선에 내가 있더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더니 지리산 능선에
내가 있더라
우리는 언제나 便益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모든
것이 발전되다보니 일상생활은 날이 갈수록
편리해져 가고 있으나 내면적인 삶은 점점
나약해져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3D(Dirty, Dangerous, Difficult) 기피라는
사회적 병리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지리산에 갈 때마다 자가용을 이용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기억이 희미할 정도다.
80여일 만에 다시 찾은 이번 산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便益性만을 추구하는 습관적
思考를 전환하기로 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이번 주 토요일(5.25)이
쉬는 날이어서 이틀 간의 여유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터미널로 갔다. 이른 아침 택시를 이용하여
터미널에 도착하니 구례 가는 버스가 6시10분에
있어 일단 차에 올랐다. 버스는 곡성에
잠깐 정차하고 다시 구례로 향한다. 물안개
펴오르는 섬진강의 서정적인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포근하게 다가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섬진강변을 달려 구례에 도착한다. 피아골을
거처 반야봉에 오를까? 하는데, 버스가
직전마을까지 가지 않고 연곡사까지만
간다고 한다. 그러면 성삼재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훨씬 고생이 덜 되기 때문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토록 내 자신도
편의주의에 깊게 물들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8시에 출발하는
버스에는 대부분 산행 객들로 오늘 산행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은 듯 약간 소란스럽다.
천은사에서 성삼재를 거처 달궁으로 넘어가는
도로는 항상 다녀봐도 위험하게 느껴진다.
인간들이 편리함을 추구하다보니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여 위험스런 도로를 개설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성삼재까지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다. 시꺼먼 매연을 내뿜으며
힘겹게 성삼재에 올라온 버스에서 내려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니 8시 35분이다.
노고단 산장으로 오르는 길을 왜 이렇게
넓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가끔 필요할
때만 차가 다니기 때문에 넓은 노폭을 조금
줄여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포장된 길을
걸어가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는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땀이 나려고 하니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화엄사를 출발하여
코재를 힘겹게 올라 백두대간인 지리산능선에
도달하는 첫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3시간
정도 수고를 해야만 이곳에 오를 수 있었으나
지금 너무나 쉽게 이곳에 서서 섬진강의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그토록 힘겹게 이곳까지
올라왔던 그 날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말로 편리함을 추구하는
내 자신을 달랜다.
노고단산장에 도착해서 이온 음료수 한
병을 사서 배낭에 넣고 노고단 고개를 향해
출발한다. 폐허가 되어 버린 선교사 별장의
흔적들이 보인다. 영원히 지워버리기에는
너무나 가슴아픈 상처를 남긴 민중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노고단 산자락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철쭉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노고단 고개에 도착하니 반야봉이 바로
눈앞에 서있다. 저 멀리 천왕봉에서 시작된
지리산 능선이 뚜렷하게 다가선다. 노고단
정상에 오르기 위하여 기다린다면서 열심히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젊은 연인들이 다정스럽게
보인다. 젊음은 너무나 값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낸다면 곧 후회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후회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노고단 고개에서 돼지평전을 지나 임걸령으로
가는 길에도 철쭉이 피어있어 역시 꽃은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산책하듯
한참을 기분 좋게 걸어 임걸령 샘터에 도착하여
시원스런 샘물로 목을 축이고 노루목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을 오르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숨을 고른다.
산행과 삶은 너무나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또 오르막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엮어 가는 人生旅程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가식적인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자기 능력으로
산 정상에 오르지 않고 다른 방법을 이용하여
올랐다면 그 어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
노루목으로 오르는 길에서 뒷사람들이
추월해서 간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출발이 늦었다고 반드시 뒤쳐진
것은 아니니까? 경주하듯 야생마처럼 오르는
산악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젊음이
한없이 부러움을 느끼면서 힘들게 노루목에
도착한다.
아까 추월했던 학생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반야봉을 오르지 않고 삼도봉으로 바로
간다고 한다. 종주 할 때 반야봉을 올라갔다
내려 올 것인가를 항상 고민스럽게 하는
곳이 이곳이다. "기회는 자주 찾아오는
것이 아니므로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잡아 활용하는 사람이 후회하지 않는다"
면서 종주하면서 반야봉에 오르는 것이
좋다고 했더니 다음 기회에 오르겠다고
하면서 서둘러 출발한다.
이곳 노루목에서 반야봉까지는 1.0Km로 표시되어있다.
그러나 반야봉에 올라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1.0Km 라는 거리가 왜 그렇게 짜증나도록
먼길로 느껴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나 혼자
자유스러운 산행을 하면서 지혜의 봉우리인
반야봉에 오르지 않는다면 뭔가 허전하고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아 1시간을 내 인생의
한 부분에 투자한다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좌측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선다. 정상에
곱게 피어있을 철쭉을 그리면서 흐르는
땀을 씻어 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보니
어느덧 반야봉 정상이다.
반야봉에 정상에 오르니 천왕봉이 눈앞에
다가선다. 노고단도 만복대도 불무장등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다 조망된다. 그 동안
많은 시간을 지리산과 함께 보냈지만 오늘처럼
깨끗하게 사방이 조망되는 날이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화창한 날씨다. 반야봉정상에
세워 놓은 표지석에는 높이를 1,728M로 표시되어
있으나 옆에 서있는 또 다른 표지에는 1,732M로
표시되어 과연 반야봉의 높이는 정확하게
얼마나 될까?
그러나 산 높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오로지 자기 능력으로
이곳에 올라온 사람들의 표정에는 성취감에
사로잡혀 모두다 하나되는 동질성이 느껴진다.
그래서 산은 우리들에게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쳐주는 것인지 모른다. 반야봉 정산
부근의 철쭉은 완전히 만개 되지는 않았으나
화사한 꽃망울과 피어나려는 꽃망울이
한데 어울려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조금 전에 힘들게 올라왔던 길이었는데,
내려가는 길은 왜 이렇게 쉽게만 느껴질까?
어느덧 삼도봉에 도착한다.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98.10.18 전남, 전북,
경남 산악인과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서
三道和合碑를 제막하면서 축제의 한마당을
개최했던 그 날이 엊그제 같기만 하다.
조그마한 삼각모형의 조형물에서 반짝이던
빛도 세월에 묻혀버리고 어느덧 거무스름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구에서 왔다는 산행객이 자동차가 성삼재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 되돌아가야 한다면서
아쉬워한다. 서로 작별 인사를 하고 화개재로
향한다. 나무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과
마주친다. 어느 길이든 올라오는 사람은
힘들고 내려가는 사람은 쉽고 편하다는
평범한 이치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계단을 반복적으로 내려가니 현기증을
느낀다면서 아줌마들이 계단에 주저앉아
쉬고 있다. 인간에 의하여 파괴된 등산로를
복구하여 편리함을 추구하다보니 그런
정도의 댓가는 감수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끝없는 욕망으로 편리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화개재에 도착하니 일행을 잃어버린 단체산행객이
안절부절못하면서 반야봉에서 혹시 이런
사람을 만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산행하다가
일행과 헤어지면 안내하는 사람의 심정은
당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한다.
지리산은 능선에 올라서면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아 많은 애로를 느낄 때가
많다. 지난 늦가을에 불무장등을 거쳐 삼도봉에
올랐다가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었던
일행이 연락이 되지 않아 가슴 태웠던 그때
일이 떠오른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점심을 먹기로 한다. 새벽 일찍 정성스럽게
싸준 김밥을 먹으면서 집사람의 내조에
대하여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화개재에서 뱀사골거쳐 반선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는데, 12시 30분밖에
안돼 뭔가 허전하게 느껴져 일단 연하천산장으로
가기로 했다. 토끼봉으로 오르는 길은 점심을
먹고 바로 올라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거북스럽게
숨이 차 오른다. 토끼봉 정상부근에 철쭉이
소담스럽게 피어있다. 이곳 철쭉과 반야봉
철쭉을 비교한다면 이곳은 화장하지 않는
처녀와 같고 바래봉 철쭉은 곱게 화장한
얼굴과 같지 않을까? 생각하면 웃어본다.
이곳에서 칠불암으로 내려가는 하산 길이
있으나 야생동물의 생태보존을 위하여
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 내려갈 수 없다고
한다.
오고가는 산행객이 눈에 띠게 줄어 너무나
한적하다. 이름 모를 새소리만이 적막감을
일깨어준다. 숲 그늘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숲이 풍기는 서늘함과 함께 풋풋하고
향긋한 숲내음이 코끝을 스치니 그 동안
동반 산행했던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언젠가는
또다시 우리들이 같이 산행하면서 오늘을
얘기할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꿈을 가져본다.
연하천산장으로 가는 길은 그다지 어려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지리산 길이 어찌
편하고 쉬운 길이 있겠는가?
연하천산장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 만들어진
철계단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끙끙거리면서
종주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대견스럽다.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진정 아름답게 보인다. 연하천산장은 외관상
다른 산장에 비하면 볼품 없어 보이지만
그 옛날의 추억을 고이 간직하면서 지금도
산행객을 포근하게 감싸주며 맞이한다.
점심을 먹는 사람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누워서 자는 사람들, 시원한 물로 땀을
닦는 사람들 그 속에 나도 끼어 당귀차
한잔을 마시면서 모처럼의 여유를 가져본다.
벽소령산장을 거쳐 세석산장에서 자고
천왕봉에 오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오늘 모처럼 서울에서 큰아들이 내려온다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마음을 정하지 못하다가 아쉽지만 종주의
꿈을 접어버리고 삼각고지에서 음정마을로
하산하기로 했다. 지리산 주능선이 삼각고지에서
갈라져 삼정산으로 가는 능선을 만든다.
키만큼 자란 산죽 길을 혼자 걸어간다.
나는 왜 이렇게 걸어가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진짜로 산에 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은 그 무엇인가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듯이
폐부 깊숙히 이글거리는 자존심을 삶의
활력소로 재생하기 위하여 나는 산에 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지쳐 쓰러지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山頂에 오르면
거기에는 우리가 살아 가야할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우쳐주기 때문에 나는 산에 간다.
富와 權力을 쫓는 사람들이 생각할 때,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웃더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인생의 장과 삶의 질이
다르기에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가듯 나는
산에 간다.
수없이 오갔던 길이지만 계절의 문턱에서
어김없는 변화의 실제를 보면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듯 산과 하나되는
소중한 시간을 갖기 위하여 나는 산에 간다.
능선을 타고 한참 내려 가다보니 "등산로
아님" 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능선으로
계속가면 영원령을 거쳐 삼정산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음정으로 가려면 좌측으로 내려가야
한다. 여기서부터 급경사 바윗길이 시작된다.
무사히 안전하게 내려간다는 일념으로
외줄타기 묘기를 하듯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만약 불의의 사고가 발생된다면 아무런
연락을 취할 수 없어 조난을 당할 수밖에
없다. 항상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길로
다닐 것을 당부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위험스러운 내리막길을 지루하게 내려오니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신작로 같은 길이
나온다. 넓은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조그마한
쉼터바위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면 광대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아직도 태고의 원시가
간직된 곳이란 것을 느낄 만큼 음침한 길이
이어진다. 많은 나무들이 넘어져있어 간신히
고개를 숙이고 빠져나가야만 한다. 시간은
자꾸만 간다. 물소리가 가깝게 들려온다.
이젠 다 왔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한참을 걸어 내려오니 지리산 자연 휴양림에
도착한다.
예전같으면 車가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이런 사치스러움을 접고
조금은 힘들어도 기다림의 속에서 뭔가를
찾고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더니 어느덧 지리산 능선을 헤매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8시간의
고독한 산행도 절반의 종주라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서 접어야한다.(끝)
《산행코스》
성삼재 → 노고단산장 → 노고단고개 →
돼지평전 → 임걸령 → 노루목 → 반야봉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산장 → 삼각고지 → 벽소령작전도로
→ 지리산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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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
수정, 보완, 추가할 내용이나
접속이 안되는 것을 발견하시면 E-mail 로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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