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인 구미 장천에서 사과농사를 하시는 부모님이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적과(=사과 열매솎기)를
하신단다. 올해는 예년보다 열매가 많이 달려서 동네 사람들을 여럿 일꾼으로 구하고 온 가족이 매달렸더니 점심때쯤 다 끝나버렸다. 그냥 낮잠을
청하기에는 아까운 시간이라 지척에 있는 천생산에나 올라보기로 한다. 아무 준비도 없는터라 등산화대신 운동화를 신고 물 한병 챙겨들고 이마에는
흐르는 땀을 훔칠겸 수건하나 동여매고서다.
천생산은 동쪽에서 보면 하늘 천자로 보이고, 사면이 깎아지른 단애라 하늘만이 이렇게
할수 있다 해서 천생산이라 부르지만 방티산 또는 한일자로 보인다 해서 일자봉, 병풍을 둘러 친 것 같다해서 병풍바위라고도 부른다. 고향인 장천면
일대에서는 산성을 박혁거세가 처음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혁거산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난 왜 들어본적이 없을까.
고등학교때인가
수학여행때 와본이후로 처음이니 족히 25년만에 처음이다. 천생산에는 경상북도 지방기념물 12호로 지정된 천생산성이 있고 천생산 상봉 가까이는
미득암이 있다. 미득암은 천생산 고스락에서 남서쪽으로 쑥 내민 거대한 바위로 세 면이 그대로 천길 바위 낭떠러지이다.
천생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구미시 장천면 신장2리(삼학동/작골)을 거쳐 쌍용사 방면으로 오르는 코스, 무지개마을쪽에서나 인동중상고 방면, 산동마을쪽에서도
오를수 있다. 407m의 천생산은 그리 높지 않아 오르는데 힘이 들지 않고 산마루가 길고 평탄하며 숲이 우거져 있는데다 암벽의 장관 등
경관도 훌륭하여 산행뿐만 아니라 소풍지로도 좋다. 천생산 남쪽에는 미득암이 있고 북쪽에는 통신바위가 있어 어느 곳에서 시작하든지 미득암과 통신
바위를 이어야 한다.
신장리 너른 들판길을 가로질러 삼학동을 지나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리다보니 왼편으로 운동기구들도 보이고
천생산의 유래에 대한 입간판이 서 있다. 여기서 차를 세우고 혼자서 쌍용사 방향으로 천천히 오른다. 5분여 오르다보니 쌍용사인가보다. 근데
쌍용사는 생긴것부터가 보통의 사찰과는 다르게 생겼다. 내려오면서 들러보기로 하고 내친김에 마저 오른다. 사위가 조용한게 너무 호젓한 산행이다.
여기서 천생산성 지킴이라는 장교수氏(전화 : 016-331-0053 / 054-471-5353)를 만나 천생산성에 얽힌 많은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무척 다행이었다. 얘길 나누다보니 아버지와 친구분이시란다. 하긴 워낙 가까운 동네라 그럴만도 하다.
가파란
길이라 잘 미끄러진다. 등산화대신 운동화라 영 조심스럽다. 오른쪽에 뭔가 유래가 있을 것 같은 바위가 두어 보인다. 임진란때 무기를 보관해
두었다던 무기고였단다. 20여전에는 학생 3명이 여기서 고시공부인지, 대학공부하던 방이 있었단다.
급경사가 이어진 길을 져
20여분을 마저 오르다보니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편으로 접어들자 말자 그 유명한 천생산성의 흔적들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 이곳 사람들은 천생산
산성으로 피난하였다 한다. 왜군들이 이곳을 함락하려 했지만 곽재우 장군의 지휘 아래 있던 천생산은 난공불락이었다. 뿐만 아니라 공격한 일본군들을
전몰시킨 곳이기도 하다.
조금 오르다보니 천생산성의 북문에 이른다. 양쪽에 큰 돌들을 쌓고 그 사이에는 붉은 색을 칠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다. 철문은 최근에 새로 설치한 듯 싶고, 더 자세히 살펴보면 양쪽의 돌들이 차이가 있다. 왼쪽의 큰 돌들은 수백년 풍상에도 끄덕없는
임진란때의 그 돌들이지만 오른쪽의 돌들은 근래 복원한 것인데도 벌써 갈라진게 보인다. 북문을 지나 조금 오르다 보면 이번에는 동문이 나타난다.
동문을 지나기 전 왼쪽으로는 넓직한 바위동굴이 있고 동굴입구에는 쌍용의 형상이 바위에 양각되어 있다.
동문을 조금 지나
오른쪽으로는 작은 연못이 나타나고 분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임진란때 말먹이 우물로 사용한 곳이란다. 말먹이 우물뿐 아니라 사람도 이용했을
것이란다. 왼쪽으로는 넓은 산딸기밭이다. 재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넓이로 보아 밭이라 함이 맞는 말일 듯 싶다. 대구에서 왔다는 아줌마들이 큰
용기 한 가득씩 산딸기를 따고는 맛보라며 한움큼 쥐어준다. 남자들 정력에는 복분자라 불리는 산딸기가 그만이라며, 오늘 저녁 사랑받을 거라는
걸쭉한 농담 한마디도 거든다.
미득암으로 가는 왼편길을 접어드니 군데군데 옛날 군기를 꽂아 두었던 바위구멍이 눈에 띈다. 오른쪽
아래로는 아찔한 절벽이지만 멀리 금오산과 낙동강, 구미공단이 한 눈에 들어온다.
미득암(米得岩)에 이르니 기념사진 촬영중인 사람들이
몇 보이고 사위가 훤하다. 미득암에 올라서면 서쪽으로는 낙동강과 금오산이 한눈에 들어오며, 북쪽으로는 해동제일가람인 도리사가 있는 냉산이
보인다. 또한 남쪽으로는 6·25 전쟁 때의 격전지였던 유학산과 가산이, 그리고 동쪽으로는 팔공산 자락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장교수씨의 설명에
따르면 천생산은 동서남북으로 모두 이름난 명산들의 위호를 받는데다, 거기에 덧붙여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까지 끼고 있으니 그야말로 外氣朝元이요,
內氣 不洩인 명산 중의 명산이라 할 수 있단다.
미득암은 임진란 당시 왜군들이 산성을 포위하고 산성에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장기전에 들어가자 이를 알아챈 곽재우 장군이 검은 말을 미득암 위에 세워놓고 하얀 쌀을 말등에 부어 목욕을 시키자 멀리서 이를 지켜본 왜군들이
물이 풍부한 것으로 알고 스스로 포위를 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지는 곳이다.
미득암 부근에는 천생산성을 알리는 석주가 서 있고
산불감시초소도 있다. 여기서 대구미래대학에서 서양요리 강의를 한다는 '쟌 돌친코'씨와 구미 경운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한다는 '프레드릭'씨를
만났다. 근데 프레드릭은 천생산이 좋아 자주 찾는다는 천생산 예찬론자이며 장교수氏와는 아주 잘 아는 사이란다. 한국의 자연, 역사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해가며 오던 길을 더듬어 하산이다.
하산하다 보니 천생산 쌍용사이다. 이곳에는 石佛스님이 수행중이다. 먼저 내려와
장교수氏가 차나 한잔 하자길래 잠시 스님의 방으로 들어갔더니 천장에는 여러 기괴한 바위들이 그대로 있다. 아마 여러 큰 바위는 그대로 두고
스님방을 만든 모양이다.
구미 오천불교대학(전화 : 054-456-1661)의 설립자이기도 하다는 石佛스님으로부터 잘 우려낸 녹차를
여러잔 얻어마신다. 녹차뿐 아니라, 중국의 고산차, 인도의 최고급차등 각종 진귀한 차들이 가득하다. 스님의 넉넉한 차인심에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그제서야 하산한 돌친코와 프레드릭과 함께 스님으로부터 일제가 박았던 쇠말뚝얘기, 불교기초교리, 서예, 회화, 시등에 대한 끝없는 얘기를 듣고
통역하기에 바쁘다. 하루에 한 장씩 280여자 반야심경을 10분만에 쓰시기도 하시고 달마도인지 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그림 얘기등도 이어지고,
또한 9번찌고 9번말려서 만들었다는 최고급 홍삼 절편과 홍삼 엑기스까지 덤으로 맛본다. 다른 등산객이 한 보따리 따온 산딸기도 하나 가득
곁들여져 산사의 맛은 멋까지 아우른다. 스님이 직접 쓰셨다는 불교기초교리 책자에 스님의 멋진 서명까지 받아들고는 두 외국인과 몇몇 등산객들은
모두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들이다.
스님이 전하시는 불교교리등을 두 외국인에게 한참이나 영어로 통역했더니 스님이 그간 쓰셨다는
200여편의 詩를 영어로 옮겨서 외국에 널리 알려보시고 싶었다며 나보고 그 일을 좀 해달라신다. 그 어려운 것을.... 다음에 오면 좋은
건강비법등도 전해 주겠다시며 자주 올라오라신다.
이런 넉넉한 인심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산행이다. 스님의 정성으로
달인 귀한 녹차 한잔 맛보면서 불교의 깊이에 취하고, 멋진 글씨, 그림등에 취해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산행이 아니더라도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쌍용사이다.
좋은 분들을 만나 즐겁기만 한 이만한 산행만 있다면야 이 세상 무엇이 부러우랴 싶다.














>
영남대 총동문산악회 홈페이지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