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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1일 지리산 바래봉 <전북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 해발 1165m, 약 4시간 >
산 아래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한 철쭉은 산 중턱까지 피어 있었고,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바람이 사람까지 날려버릴 듯 거세게 불어오고 있었다. 산의
정상까지 목초지로 형성된 바래봉은 민둥산이었다. 연 이틀 비가 내린 후, 서울은 맑게 개인 날씨였는데, 이곳은 구름이 다 걷히지 않아
다행이었다.
국가적 사업으로, 1970년대 초반 호주에서 면양을 들여와 이곳에서 시험적으로 길러 보았다한다. 그런데 이 면양들이
나무들의 새순들을 다 따먹어 다른 나무들은 자랄 수 없었는데, 철쭉의 잎새는 면양들에 좋지 않은 독이 있어 먹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이 바래봉은
철쭉들만 무성한 목초지로 되어있었다. 지금도 이곳엔 축산기술 연구소남원지소가 있다.
서울에서 바래봉 산행만을 위해 당일로
다녀온다는 것은 사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러나 이 좋은 봄날, 거리가 멀더라도 철쭉이 그리도 아름답다는 바래봉, 게다가
지리산의 또 한 봉우리를 밟아보고 싶었다.
철쭉제가 열리는 기간이었다. 먼 곳에서부터 바래봉 산자락은 철쭉으로 붉게 물들어있었다.
오늘이 노동절이기도 해서 주차장은 관광버스들로 만원이었고, 산 입구엔 천막을 쳐 놓고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철쭉 핀 산행 길은
넓은 임도로 되어있어, 산행의 아기자기한 맛도 별로 없고, 끊임없이 비슷한 각도의 비탈길을 오른다는 것이 지루하기조차 했다. 그래도 가끔
쉬어가기 좋은 곳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여기 저기 지리산의 웅장한 산자락과 능선에 산안개며 하얀 구름띠가 퍼져있어 아름다웠다. 연 이틀 내린 비로
산아래, 논에도 물이 가득 차 있어 풍성한 가을을 예비 해 주는 듯.
정상이 바라보이며 둥근 능선 위에 들어나는 넓은 초원이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바래봉답다. 거센 바람에 키 낮은 풀들이 바닥에 누워있고 다른 산과
달리 나무도 없으니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철쭉을 보기 위해 이곳을 왔지만 꽃으로 인한 감동은 없었다. 꽃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꽃과 어우러지는 환경이다. 아기자기한 산길에 계곡의 물소리, 신록의 나무들 그리고 바위들과 어우러진 봄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는 비슬산의
진달래처럼 전체적인 조망과 함께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인가.
그러나 바래봉 산길의 철쭉은
인위적으로 넓게 만들어진 재미없는 산판길 주변에 피어있어, 그 아름다움이 반감된다. 바람 부는 바래봉 정상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능선길을 따라
더 오래 산행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차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조금 내려가다가 산판길을 벗어나 운지사 가는 길로 방향을
바꿨다. 이 길은 아주 좋았다. 전형적인 산행길이 이어지고, 전날 내린 비로 바닥이 촉촉하여, 마른 솔잎들이 부드러운 카펫을 밟는 것 같다.
오월의 신록이 아름답게 펼쳐지니 오랜만에 노래가 절로,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바래봉이 자리하고
있는 가까이 인월리와 인풍리가 있다. 고려말에 왜구가 이 곳 내륙지방까지 침략해 왔을 때, 이성계가 달이 지지 않도록 끌어당기고(인월리),
바람을 끌고 다니며(인풍리) 왜구를 섬멸시켰다는 곳이다. 바래봉을 떠나는 길에 이성계의 그 공적을 기리는 황산대첩비가 있는 곳에 들렸다. 일제
때 비석의 글씨를 다 쪼아버리고 폭파시킨 것을 다시 복원시킨 것이다.
사람도 알고 나면 친숙해 지듯, 우리가 다니는 곳도 알고 보면
더 가까워지는 법, 처음 찾아간 J산악회 등반대장님은 우리의 문화 전반에 대해 깊은 식견을 가지셨고, 어떤 질문을 해도 다 받아주실 만큼
박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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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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