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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것을 고루 갖춘
종주코스(수도산-양각산-흰대미산-보해산-금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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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1.220m-양각산-흰대미산-840m-회남령-721.3m-660m-보해산-800m-금귀산-범어치재-당동"산행기(경남 거창 가조·가북·/2002년 5월 5일/날씨 : 맑음/도상거리 약
23km/총 산행시간 : 10시간 25분, 휴식시간 : 2시간 51분)
◎ 참석자 : 강환구, 광인,
높은산, 바랭이, 곽상훈, 이사벨라, kkk, 또마, 날뫼골물소리, 밤도깨비. 날은모자, 이한성외 4명, 그외 다수(이상 40명)
◎ 산행코스
수도리-수도사-수도산(1,316.8m)-1,220m-1,140m-양각산(1,140m)-흰대미산(1,018.1m)-940m-900m-806m-840m-회남령-820m-721.3m-660m-730m-보해산(911.7m)-800m-금귀산(827m)-범어치재-당동마을
◎ 산행일정 04 : 35 수도리 수도 출발 05 : 00 수도사 05 :
22 헬기장 05 : 35
수도산(1.316.8m, 휴식 5분) 06 : 04 1,220m 우두령 분기점 06 : 35 양각산(1,140m, 휴식 :
9분) 06 : 55 헬기장(휴식 : 5분) 07 :
10 흰대미산(1,018.1m, 아침 :
26분) 08 : 46 820m
산불초소(휴식 : 21분) 09 :
22 회남령 09 : 44
820m 10 : 34 660m분기점(휴식 : 27분) 11 :
55 보해산(911.7m, 점심 :
45분) 13 : 09 화채봉(휴식 : 9분) 15 :
35 안부(용산리-보기리, 오침 :
20분) 14 : 22 금귀산(827m, 휴식 : 4분) 14 :
47 범어치고개 15 : 00
당동마을
◎ 개
요 경남 김천시와 경계를 이루며 서북 경남의 후미진 오지로서 경남 거창군
"가북면-웅양면-가조면-거창읍-주상면"에 걸처서 면계를 이루는 산줄기로서 5개산 모두 정상부는 아름다운 암릉으로 일구어진 봉우리와 밀림을
연상시키는 울창한 숲과 송림으로 연결된 솔잎이 깔린 폭신폭신한 등산로등 산행의 모든 것을 다 갖추어진
곳이다. ▶ 수도사 : 수도암은 수도산 상부에
위치한 도량이다. 옛날 도선국사가 이 도량을 보고 앞으로 무수한 수행인이 나올 것이라 하여 산과 도량 이름을 각각 수도산, 수도암이라 칭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백 여년 전부터 부처님의 영험과 이적이 많다 하여 사람들이 불영산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수도암은 통일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이래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경내에 있는 석불상과 석탑, 그리고 지형을
상징한 석물 등도 모두 천 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매우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서 암자까지 걸어 오르는 숲이 우거진 오솔길은 아늑한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 수도산 : 가야산 북서쪽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의 경계에 우뚝 솟은 해발 1,316.8m의 준봉인 수도산(修道山)은 불령산, 선령산이라고도 한다. 참선 수도장으로 유명한 신라말 때의
수도암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양각산 : 경남
거창군의 웅양면과 가북면의 경계에 자리한 암봉으로 양뿔과 같이 생겼다햐여 양각산 이라 한다. ▶ 흰대미산 : 상당히 높은 산으로 바위가 많아 산이 희게 보이므로 흰대미산 또는
백석산이라 하였다. (1018.1m) ▶ 회남령 : 가북면
회평리 회남마을 서북쪽에 있는 고개로 마을명을 따서 회남령이라 불렀다. ▶
보해산 : 아주 옛날 이 일대가 바다였을 때 배를 메었었다는 말목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어 보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 금귀산 : 금귀봉(金貴峰·827m)은
금구산(金龜山) 또는 산의 모양이 탕건 같다고 하여 탕근산이라고도 한다. 산형이 귀한새가 앉아있는 형이라하여 금귀봉(金貴峰·827m)이라
하며 또는 산형이 거북이와 같이 생긴것도같다 하여 금구산(金龜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예전에 봉화를 올렸던 귀중한산이라는 의미로
금귀봉 또는 봉화산이라 불렀고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봉우산 또는 봉수산이라고도 부른다.
◎
산행일기 어지간하면 차에서 잠을 못자는 버릇 때문에 오늘 무박산행을 하기 위하여 낮에서 부터 계획을
세웠다. 술의 힘을 빌리어 잠을 좀 자기로 하고 낮에 김이권님과 권태진님의 상의 전달식에 참여하여 낮부터 광인 후배를 포함하여 4명이tj
동대문 히테에서 맥주와 점심 냉면을 마시며 소주를 비웠다. 집에 돌아와 오는 잠을 참으며 Pack을 꾸려 남보다 이르게 버스를 타고 종로
제일은행 본점 앞으로 나가니 아무도 없다.
제일은행 주차장을 한 바퀴 도니 최봉선 대장이 나오셨다. 잠시 있으니 kkk가 나와서 함께
한정식 식당으로 가 저녁과 소주를 1병 비웠다. 시간이 되니 우리 일행도 모두 나왔고 40인승 버스에 가득 차서 20 : 03분 출발을 한다. 서초구청 앞에서 또 태우고 박도님이 신청을 하셨다가 사정상 못 가신다며
백세주 1box를 사가지고 우정 찾아 주셨다. 박도님 감사히 잘 마셨습니다. on-line 상에서만 보던 밤도깨비님, 물뫼골소리님,
낡은모자님등과 인사를 하니 처음 뵙는 것이지만 예전에 만났던 知友처럼 바로 친숙해 진다. 차는 고속 도로를 달린다.
의자에 앉아서
자는 것이 불편하여 아예 통로에 누워서 잠을 청한다. 옥천휴계소에 들려 잠시휴식을 취한 후 다시 어둠 속을 헤치며 30번 고속도로를
달린다. 술의 기운을 빌리어 다른 사람보다도 편히 통로에 누워서 잠을 잤다. 목적지에 도착하였다는 방송을 듣고 깨어서 차 밖으로
나온다. 새벽공기가 시원하며 아름다운 계곡 물소리와 함께 마중을 한다. 잠시 산행준비를 하니 한사람 한사람 세멘 도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04 : 35 수도리 수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 랜턴
불을 밝히며 올라간다. 좌측의 계류와 함께 고도를 높히며 올라선다. 그 때 찦이 1대 올라선다. 대구의 이한성님 일행이 타고
오신 것이다. 수도사 추차장을 지나서 수도사 앞을 가로질러 좌측 등로로 들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사면을 계속처 오르며
05 : 08에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 오르는 등로는 산죽 가운데로 잘 나아
있다. 오르는 길에 광인님의 주선으로 그동안 필명으로만 들어오던 이한성님과 어스프레한 어둠속에서 인사를 나눈다. 고도를 높이어 처음
올라서는 소나무있는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꺽이어 잠시 내려서더니 가쁘게 올라서며 헬기장을 통과하고 조그만 소나무가 있는 바위봉을 올랐다 내려서며
다시 오르는 등로는 암릉으로 바위를 오르내리며 "긴급구조 소방9" 있는 봉우리를 우회하여 바위를 건너뛰며 오르니 돌탑과 삼각점(무풍 4)이 있는
수도산(1,316.8m)에 정상에 오른다.
동녘하늘을 붉게 물드리며 떠오르는 일출과 함께 어스룸하게 보이는 가야산의 연릉이
펼처진다. 사방으로 터저서 불어 오는 바람에 추위가 느껴지며 그곳을 출발하여 북서쪽으로 암봉을 가파르게 내려서며 방향을 남서쪽으로 바꾸어
내려서다가 다시 바위 봉에 올라서고 진행하는 등로 좌우측은 깍아지른 절벽의 날등이다. 1,220m에 완만히 오르며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내려섯다 다시 1,220m 우두령 분기점에 올라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암봉을 가파르게 내려선다.
맑은 파아란 하늘을 벗삼고 록음이
우거진 5월의 싱그러은 초록이와 속사이며 완만한 능선길을 걸어간다. 능선의 등로는 많은 사람이 다니어 흔적이 뚜렸하였으나 사람이 다닌
흔적만 있지 다른 산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쓰레기들은 눈에 잘 뛰지를 않는 상쾌한 등산로이다. 이곳을 찾아드는 등산인들의 수준을 알 수가
있는 바로 메터다. 이곳부터는 sbs가 산행을 주도하며 길을 안내한다. 날등을 넘나드는 바람은
땀에 젖은 몸을 시원하게 식혀 주고 있다. 앞에는 두 뿔모양으로 오뚝히 솟아 있는 양각산이 바로 앞에 보인다.
수도산 2.5km
이정표를 지나서 급한 오르막을 치고 올라 두 뿔모양중에 하나인 바위를 당기며 가파르게 올라선다. 내려서고 또 다른 뿔 아주 가파른 바위를
당기며 올라서면 드디어 양각산의 유래가 각인되어 있는 표시석이 있는 양각산(1,140m)이다. 봉우리를 넘어서 마당바위 같은 넓적한 바위를 지나서 가파르게 내려서고 완만한
육산의 능선을 밟으며 서서히 오르는 길이다.
암봉이 나오며 가파르게 지금까지 힘들어 올라왔던 것을 아깝게 까먹으며 내려서고 봉우리를
좌측으로 우회하여 울창한 숲속길을 지나간다. 이곳의 등로는 모두가 쿠션을 느낄 수가 있을 정도도 아주 상큼한 등로다. 헬기장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헬기장을 급하게 내려서고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둔덕을 하나 오르고 고도를 높이며 또 하나의 둔덕을
올라서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가파른 숨결의 고르며 3번째의 둔덕을 오르고 마지막에 힘을 모아 오른 곳은 산불 초소가 있는
흰대미산(1,018.1m)이다.
어디선가 아침을 먹자며 자리를 찾다 흰대미산을 바로 아래
축대를 쌓아 반반한 잔디가 만들어진 묘가 있는 곳에 앉아서 식사들을 한다. 조상을 명당에 잘 모셔서 복을 받기 위한 욕심이 이 높은
곳에까지 묘를 만들었다. 관을 들고 어떻게 바위가 있는 험한고 가파른 이곳까지 올랐는지가 의구 스럽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수도산을
향하여 포효하는 범과 같이 올라서든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는 완연히 선두와 후미 구룹이 나뉘어 졌다.
별로 먹고 싶지 안아서 kkk님이
가지고온 도넛츠 2개와 과일로 배를 채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는 가야산과 의상봉이 조망되고 서쪽으로는 지리산의 주능선과 덕유산이 잘
조망되고 있다. 남쪽의 산행을 별로 하지 않아서 잘 모르므로 광인의 설명을 듣는다. 누워서 잠시 쉬며 그곳을 내려서니 전망이 좋은
전망대 바위를 좌측으로 가파르게 내려서니 평편한 등로가 펼처지며 묘가 나오고 조금 더 내려서니 또 묘가 나오는데 그 주변은 고사리가 지천인
고사리 밭이다. 등로변의 고사리를 뜯으며 완만한 오름을 오르며 모든 사람이 뜯은 고사리를 모두 나에게 준다. 940m를 지나서
장방형의 넓은 곳이 나오는데 남쪽으로 등로가 확연하고 능선의 모양을 갖춘 곳을 따라서 가면 이건 우량동 마을로 떨어저 알바를 한다.
현
위치를 파악을 하고 있었기에 동남쪽으로 내려서니 문창환님의 노란색의 표시기가 발견된다. 우리 팀의 표시기를 보니 되지게
반갑다. 940m를 내려서며 묘를 지나서 올라서며 똑바로 내려선다. 900m 능선을 지나며 고사리를 뜯느라 뒤에 처진 사이에 나를
앞질러 앞으로가 함안 조씨묘가 있는 곳에서 모여 있는데 그곳으로 내려가 보니 이건 방향이 동남쪽으로 잘못 내려 왔다. 그곳에도 고사리가
많아서 무척 뜯었다. 대게 묘 주변의 평평한 곳에 고사리가 많았다. 이곳에서 Back를 하여 최초 1분간의 알바를
한다.
900m 능선으로 다시 되돌아 올라서 정남쪽의 방향으로 내려서 묘를 지나고 완만한 송림 숲길을 밟으며 진행한다. 안부에
내려서니 넓은 공터가 있고 우측으로 우량동 내려서는 임도가 있는 곳을 가로질러서 오르며 806m를 넘어서, 우측으로 거창 시내의 아파트와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신 맑은 저수지를 한눈에 바라보며 완만한 등로를 따르면 봉우리 앞에서 좌측의 확연한 등로가 있고 능선으로는 희미한 족적만 있는 곳이
나온다. 꼭 생각하기에 좌로 우회하여 가는 등로로 생각이 된다. 그동안의 산행 경험으로 모르는 지형에서 우회등로 같아서 따르다 엄한
곳으로 내려서며 알바를 한 경험이 있어서 모르는 곳에서는 무조건 능선을 따른다는 신조를 따라서 나와 kkk는 능선을 오르고 나머지는 좌측
우회로로 간다. 산불초소가 있는 820m에 오른 것이다. 지형을 보니 우회로가 아니고 중촌으로 내려가는 등로다. 소리를 질러서
일행를 부르고 우리는 초소 아래 두릅밭에서 두릅을 딴다. 그곳에서 쉬며 간식을 한다. 필사적인 무게 줄이기 운동이
펼쳐진다. 조금있으니 이한성님을 포함한 2진이 올라온다. 이한성님과 두분만 제길로 올라오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돌아서 몇분씩 늦게
올라온다. 어둠속에서 인사를 나누어 잘 보지 못하다 지금 보니 첫인상이 그리 순하게 보이며 얼굴이 동안이시고 항시 웃음을 뛰고 있는 온화한
인품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회남령 아스콘 도로가 잘 보인다.
남쪽으로 잘 나있는 등로를 따라서 640m를 넘어서고 묘를 지나서
내려서면 소나무 숲속길을 지난다. 묘가나오고 한번 올라섯다 내려서면 절개지 회남령 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건너서 좌측으로 교통
표시판이 있는 곳에서 우측의 절개지 깔닥 향하여 치고 올라간다. 등로의 흔적이 없는 곳을 잡목을 헤치며 솔잎과 낙엽이 석인 사면을 갈
之자로 오가며 고도를 죽인다. 능선에 올라서 남서쪽으로 향하며 회남령과 윗보강을 넘나드는 등로를 지나서 고도를 높인다. 한차례의 숨을
몰아쉬고 820m에 올라서 서쪽으로 잘 나아 있는 등로를 따라서 가면은 안된다. 그곳에서 남서쪽으로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
서야한다. 찾아가는 지형에서는 한시라도 지도에서 눈을 뛰어 현 위치를 망각하면 안된다. 남서쪽으로 진행하며 고도를 낮추며 760m를
지나고 721.3m에 오르기 전에 좌측으로 난 등로를 따라야 하는데 잠시 망각을 하여 능선을 고집하고 721.3m를 넘어서 내려서니 철망과
사냥개 조심이라고 쓰여진 곳을 향하여 내려서다 보니 이곳이 지도의 지형과 완연히 다르다. 다시 Back를 하여 721.3m을 향하여 오르니
우측으로 우회하는 코스가 있어서 그길을 들어서 가니 우회도로와 만나고 묘가 나온다.
이곳이 독도의 가장 난이 구간이다. 모두들 그곳에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다. 이곳에서 알바를 15분하였지만 원인은 침착치 못하여 한 것이다. 묘에서 방위각 160도 쪽으로 향하였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우리 문창환님의 표시기가 알바에 일조를 하였다. 무덤에서 160도 방향으로 내려서니 흔적도 없는 잡목이 우거져
진행하기가 무척 힘든 사면이다. 그러나 그곳이 정상적인 산줄기인 것이다. 잡목속을 잠시 헤치다 묘로 올라와서 방위각 120도 사면을
내려서는데 문창환님의 노란 표시기가 달려있어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분이기에 표시기를 따라서 내려서 또 묘를 지나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계곡으로
향하고 있어 방향이 틀린 것을 감지하고 다시 묘로 돌아와 위에 있는 묘로 Back을 하려니 너무나 가파라서 방위각을 잡아서 등고선 타기로
트레버스를 한다.
가파른 사면을 트레버스하여 남으로 남으로 향하니 능선에 오른다. 능선에서 소리를 질러 나의 위치를 알려주고 내려서
흰색 비닐끈들이 지저분하게 매여 있는 곳을 지나며 방위각 160도를 따라서 계속 내려가니 송이버섯 출입금지 프랜카드가 펄럭인다. 그곳을
지나서 올라치니 660m 능선 분기점에 이른다. 동남쪽 능선은 연곡쪽으로 가는 능선이고 우리는 서남쪽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잠시
7분정도 지나니 모두들 찾아든다. 위에 묘에서 바로 내려서면 되는 것인데 이곳 능선이 송이버섯 재배구간이라서 위에 묘 있는 곳에서부터
등로를 없에고 능선 종주를 금지하여 동쪽사면으로 계곡까지 내려 쳤다가 계곡에서 다시 이곳으로 올려치는 우회 등로를 사용한 것이다.
참으로
가관이다. 송이버섯 때문에 이토록 15분씩이나 알바를 하다니------! 이곳에서 모두 오기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분기점에서
남서쪽으로 내려서며 헬기장을 지나고 상석이 있는 쌍묘를 지나서 내려서고 662m를 넘어서 안부를 지나서 둔덕을 올라서고 고도를 높이며 730m를
내려서고 완만히 오르내리며 보해산을 향하여 본격적으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앞에 보이는 것이 보해산이겠지 하며 둔덕1을 넘어서니 다시
앞에 봉우리가 있어서 저게 정상이겠지 하며 가파르게 올라서니 둔덕2고 앞에 있는 것이 정상이겠지 하며 가파른 암릉을 계속 오른다. 가파른
암릉을 손으로 당기며 올라서니 이 또한 정상이 아닌 둔덕3이다. 앞에 보이는 암봉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오르니 둔덕4고 앞에 있는 봉우리는
정말 정상이라고 마음먹고 암봉에 오르니 이또한 아니다.
암봉에서 평평한 바위를 가다가 암봉 우측 사면 바위를 타고 조심스레
오른다. 이 바위는 화강암이 아니라서 비가 오면 무척 미끄럽고 겨울에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우측이 절벽인 곳이다. 암봉을 오르니
지금까지와 달리 육산길을 올라서니 보해산(911.7m, △무풍 25) 정상이다. 동쪽을 바라보니 멀리 비계산 그앞으로 가야산, 장군봉,
의상봉이 가깝게 조망되고 좌측아래로 우혜리와 우측으로 용산리의 농촌 마을 풍경이 펼처진다. 사진에서 보았던 풍성한 처녀의 젖과 젖 꼭지
모습을 하고 있는 오도산도 잘 조망되고 있다. 우리가 가야할 남쪽으로는 보해산의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극치의 아름다운 암릉과 멀리 뾰족한
금귀산이 눈앞에 다가온다. 이곳에 앉아서 점심을 한다. 이곳은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을 입증하듯이 수많은
쇠파리떼의 극성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이제 이곳부터는 외길이니 먼저들 가시라고 출발을 시키고 이곳까지 제일 앞에서
찾아가는 산행을 주도해온 광인, kkk, 또마, 나 4명이서 후미그룹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한성님을 위시하여 열 댓명이
올라온다. 새벽에 보고 못본 이사벨라님과 바랭이도 올라온다. 이한성님의 주선으로 사모님과 인사를 나눈다. 순하시고 조용하며
겸손한 분이시다. 이럴때에 부창부수라고 말을 하던가------! 많은 사람이 내려가고 우리는 그곳에서 쉬며 놀며하다가 금귀산을 향하여
내려선다. 가파른 암봉으로만 일구어진 곳이다. 앞으로 가며 펼처지는 전경에 아! 하고 입만 벌어질 따름이다. 설악의 암릉에
버금갈 만한 아름다운 전경이다. 바위의 이름을 몰라서 어찌나 아름다운지 설악의 화채봉 이름을 따서 "화채봉"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암봉에서 마음것 즐기며 사진도 찍곤한다. 동쪽에 펼처진 용산리일대도 아름답게 그려 보여진다.
내가 시인이었더라면
아름다운 글로 표현을 하여 모든 사람이 그곳에 함께 있는 마음이 들게 할텐데---! 화채봉을 내려서는 등로에 바줄을 잡고 내려서고 다시
바줄을 잡고 오르고 또 바줄을 잡고 내려온다. 겨울에는 등반하기에 무척 신경을 쓰고 완벽한 장비를 갖추어야 할 곳이다. 바위
암릉구간을 모두내려서 고송이 우거진 숲을 지나서 800m를 우회하여 내려서니 "용산리-보기리"넘나드는 안부 사거리에는 용산리 쪽으로 많은
산악회의 표시기가 달려있다. 안부를 지나 올라서니 평평한 솔잎이 깔린 숲길을 가다가 적당한 곳에 누워서 잠을
청한다. ^*^~zzzz^*^~ㅋㅋㅋㅋzzzzzz----.(오침 : 20분)
잠시의 꿀잠에서 깨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그때
또마님이 올라 오신다. 잠자는 사이에 많은 사람이 올라갔다. 둔마리-보기리 안부를 지나서 거짓말 안보테고 75도는 족히 넘을 만한
금귀산을 오른다. 등로도 갈지자로 수직으로 요리저리하며 잘나있다. 오늘 오신 분들은 산좀 탄다는 분들이신데 힘이 드는지 중간에 앉아서
쉬며 숨을 고르고 계시다. 한발 한발 옮기며 바위를 당기어 오르기도 하며 밑에서 보면 수직으로 보이는 금귀산에 도착한다. 금귀산에는
금귀봉 이라고 표시판이 세워져 있다.
최봉선 대장이 올라와 계시고 산불초소가 있으며 알미늄 샤시로 지은 막사가 있고 밑에서 올려다보면
뾰족한 곳이 위에는 제법 넓직한 평지가 있는 곳이다. 북동쪽의 둔마리 평야 곡창지대와 북서쪽의 당동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 높은
산이 있는 곳에 둔마리와 같은 평야 곡창지대가 있는 것이 이채롭게 보인다. 북쪽으로 내려서다가 땅재0.5km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있는 등로를 따라서 범어치고개 쪽으로 내려선다. 이곳 내려서는 등로도 모두 암봉이다. 오늘 산행한 산은 모두가 정상부위에 속하는 곳을
암릉으로된 산이다. 암릉을 따라 내려서다가 묘(14 : 43)를 지나서 계속 내려가니 안부사거리 범어치 고개가 나온다. 당동에서
법천을 넘어가는 고개다.
북동쪽의 당동쪽으로 완만한 숲길을 따라서 내려가고 경운기가 다니는 농로를 지나서 물소리를 들으며 농가 있는 곳에
오니 거창시내 전경이 펼처진다. 시골이나 서울이나 이제는 모두가 콘크리트 아파트 숲으로 변하여저 버렸다. 아스콘도로를 따라서 금귀봉
등산안내도 있는 곳을 따라내려 오니 당동마을 버스 있는 곳에 도착한다. 도상거리 총 23km의 10시간 25분에 걸친 산행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과 달리 광인을 비롯하여 kkk, ksh님등 우리 sbs회원들의 찾아가는 산행능력을 여지없이 발휘한 산행이었다. 찾아가는 산행과
조릿대, 소나무숲,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 암릉, 포근한 등로, 첩첩산중에 밀림을 연상케하는 우거진숲, 조망이 사방으로 터진 아름다운 풍경,
지천인 나물류등 모든 것을 고루게 갖추고 있는 비장의 산행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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