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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내설악 봉정암 당일 산행기

올린이 : 유영식, 2002/05/02 (올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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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일어나 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한후 승용차로 가서 간식(초코파이4, 초코렛4, 영양갱2, 소고기포1,등)을 베낭에 넣고 용대리 용담민박집을 나서서 우리 부부는 매표소로 갔다 오늘은 4월 27일 토요일로 평상시 같으면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아야 되는데 오전 6시라고는 하지만 입장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표를 2장 부탁하자 대뜸 사람얼굴을 쳐다보며 어데까지 가냐고 물어왔다. 봉정암에 간다고 하자 불교신도증을 보자하여 왜 그러냐고 묻자, 국립공원 산불방지기간이라 백담사까지만 올라갈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보고 배낭을 매표소에 맏겨 놓고 가라고 한다. 나는 불교도가 아니고 사실은 사진을 찍으려고 배낭에는 사진기와 간식거리가 있어 가져가야 한다고 우기니, 그는 나의 신분증을 보자고 하여 주민증을 주니 성명과 주소를 적고 입장을 하라 한다.

이른 시간이라 사찰뻐스는 탈수 없고 하여 걸어 올라갔다. 날씨는 차가와 재킷을 껴입었다. 걸어가며 백담계곡을 보니 화강암위로 흐르는 계곡수가 깨끗하고 맑다. 단풍나무 참나무 등이 새싹을 막 티우느라고 연한 잎들 메밀꽃 핀것 같다.

수교와 강교를 지나니 고개길이 가파르다. 빠른 걸음으로  세 고개  넘으니 원교를 지나고 바로 백담사가 나왔다. 여기까지 오는데 딱 여자 두분만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그것도 그분들은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백담사로 들어가 보았다.  사찰이 지난번  보다 많이 커졌고  건물이 많이 지어 졌다. 경내를 이곳 저곳을 들러보고 사진도 찍고  시간을 보냈다.  냇가 근처에 라이락꽃이 만발하여 눈이 부시었다.  한국의 산 싸이트의 쇼핑몰에서 구입한 신발 깔개가 높아 앞발바닥  부분이 양쪽다 까져 아파왔다.

백담사쪽으로 한 20여명의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그분들은 봉정암으로 산행예불을 보러온 순례객들이었다.  극락보전에 예불을 드린후 일부가 수렴동쪽으로 오르는 일행을  우리는  따라 갔다.    백담산장근처에서  발이 아파 등산화를 고쳐 매는데  어떤 젊은이가 뛰어오며 다가와서 어데을 가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봉정암에 예불을 드리러 간다하자, 그는 왜 꼬리표를 붙이지 않았느냐고 물어 베낭을 고쳐 매느라고  떨어젔으며 우리 일행이 앞서 가고 있다고 말하자 입산 통제소까지 그는 뛰어갔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그일행을  쫓아갔다.  입산통제소 근처에서 그들과 함께 걸어 올랐다. 영산담부근에서 발바닦이 더 아파오자 집사람이 그일행중 한분한테 대일밴드를 구해와 아픈곳에 붙이니 한결   부드러웠다.

그리고 우리는 속보로 수렴동대피소까지 가서 시간을 보니 오전 11시가 다 되어,  대피소 계곡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따라 오는 일행들이 보였다. 과자와 간식을 먹으며 쉬다  다시 출발하였다. 수렴동대피소를 출발하니  가파른 길에 철난간이 있고 길이 험하였다.

그러나  구곡담계곡은 시작부터 그 웅장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좌측으론 옥녀봉으로 용아장성의 시작이요 ,오른쪽으론 서북능선의 장대한 벽이 있고 그 사이로 깊은 계곡이 V자로 내려 앉아 수많은 바위덩어리들을  큰 망태기에 담아 놓아 있느듯하며,  수천년 억겁을 지내며 흐르는 계곡수에 의하여 깍이고 패이고 휘돌아서 생긴 웅덩이는  보석같이 아름답다.  발거름  옮길때마다 새로운  절경이요, 과연 내설악 제일의 계곡이 허명이 아니구나.

부인이 연신 눌러대는 샤터소리와 절경이 좋다는 탄성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오늘 모처럼 그런모습을 보니  함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되었다. 더욱이 산행하는 사람이 없어 조용하기 그지없다. 마치 무인도에  상륙한 어느 영화의 이야기 같이 말이다.  다만  가끔씩 오르는 예불드리러 가는 신도들을 만나지만  그들은 전국사찰의 순례신도로써 대부분 이곳 산행이 그리 익숙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름다운 만수담과 폭에서 잠시 쉬다가 계곡의 절경을 보며 계속 사진을 찍으며 올랐다. 정오가 지나서  백운동계곡과 만나는 합수지점을 지나  철다리를 건너 큰 멍석같은 계곡바위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였다.  발에 열이 나서 탁족을 하니 한결 시원하고  드러누우니 깜짝놀라 일어 났다.  산기슭에 자라는 소나무 숲위로 파란 하늘과 맞닿은 절벽이 보였는데 직벽이라 바위돌조각이  떨어지면 다칠가 무서웠다.  그것은 용아장성  능선이었다.  여러 봉우리가 이어져 보였다.  나는 가져온 빵으로 점심을 하고  물을 다마셔  계곡수를 반 병정도 담아 베낭에 넣었다.  신발을 고쳐 신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산은 더욱 깊어져 가고,  이곳은 아직도 산벗꽃이 피어있는 곳도 보였다.

폭포수의 굉음이 들려왔다.  서둘러 오르니 이단 폭의 아름다움이 용아능 절벽에 맞닿은 곳에 걸려있었다. 철계단을 30m오르니  윗폭의 담이 세수대야에 담겨있는 맑은 물 처럼 너무 깨끗하고 바닥이 다 보였는데   한 40여평 쯤 되어보였다. 등산 지도를 보니 용아폭인것 같다.

산길은 점점 더 험해지기 시작하고  산고도는 올라 가고있다.  신도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 놓아 반듯하지는 않지만  걸어 오르기에는  좋은 길이다.  철계단은 한 백m 정도 오르니  이곳이 쌍폭이라 말하는 곳에 도착했다.  오른쪽폭은 서북능선에서 쏫아지는 백여m의 폭포요,  왼쪽폭포는 소청과 끝청에서 내려온 계곡수가 한 웅덩이에  폭포수가 떨어 지고있는데  이곳이 토왕성폭포 다음으로 긴폭포라고 한다.  그러나  안타갑게도 사진 각도상  한 장면도 제대로 찍을 수 없다. 협곡이 너무 가까워 아랫부분과 윗부분으로 나누워 찍어야 되기때문이다.  긴장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오르기 시작하니 바로 또 아담한  폭포를  서너곳을 지나고 있었다.  이름은 없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다. 

계곡이 없어지고 너덜지대를 가파르게 오르는 오르막길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고개돌려 올려보니 투구 모양의 바위 첨봉이 보이고,  되돌아 보니 용아능의 웅대한 바위 절벽이 들이 닥칠것  같은 모습으로 닥아온다.  한 반시간동안 정신없이 힘들여 오르다보니 비탈길이 험하였고  고개 안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뒤따라온 신도들에게 물어보니  한 200m 정도 더 오르면 봉정암에 갈수 있다고 한다.
예불일행과 함께 걸어서  드디어 봉정암에 도착했다.  나는  수년전 용아능선을 따라 봉정암을 정오에왔을 때 점심으로 미역국과 밥을 얻어 먹은 적이 있어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되었다. 구곡담 계곡에서 사진을 찍고 쉬느라 좀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사찰 이곳 저곳 구석들을 돌아보고  바로 사리탑으로 향했다.  가는길은 대리석으로 계단을 놓았는데 너무 재화를 낭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검소하게 바닥만 깔것이지 계단 난간까지 대리석으로 하다니 말이다. 봉정암은 옛보다 많이 변하였다. 암자이기 보다 큰 사찰모양 커져있었다. 또한  예불오는 신도들도 사계절 항상 많다는데 오늘도 올라와 보니 한 이백명이상 신도들이  사찰안에 있었다.

사리탑을 올라와 보니 오층으로 되어있는데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한다. 예불드리는 사람들이 한 이십여명 되었다.  우리는  나무기둥과 합판으로 만든 헬기장 (처음에는 몰랐음 )위를 올라가 보니  고도계는 1280m를 표시했다.

아! 아! 오늘의 노고가 헛된것이 아님을 감사드렸다.  보고싶고 보고싶던  공룡능선과 그렇게 높게 보이던 용아장성이 한 눈에 들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정신없이 사진기 샤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그 고생 많던 용아장성과 공룡능선 산행을 생각하며, 그때는 이렇게 원거리에서 장쾌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백두대간이 걸쳐지고 내외설악의 경계인 공룡은 오늘이 맑은 날씨임에 불구하고 그 위용을 자랑하려는 듯  흰 구름을 살짝 쓰고 있었다.  또한 외설악의 파숫꾼인양 힘껏 어께를 펴고 또렸이 쳐다보고 있는 범봉의 모습 자랑할 만 하다. 

우리는 한 시간 동안  봉정암에 있다가  소청산장에 가서 잘까 생각했지만  그곳 사람과 만나 이야기 해보니 입산 통제기간이라 재워줄 수 없을 것이라 하여 봉정암 약수를 마시고 물통에 물을 교체한 후 하산하기로 하였다.  오후 4시 10분이었다.  내러오면서  봉정암으로 오르는 승려들과 신도들을 많이 만나  서로 인사하였다. 왜 자지 않고 내려오니냐고 여러번 물음을 당하였다.  철계단은 뛰어 내리고 부지런히 땀흘리며  수렴동대피소에 내려오니 저녁 6시 30분이었다.

우리는 수렴동에서  라면과 도토리묵에  칡막걸리로 허기를 채우느라고  맞있게  저녁식사를 하였다.  다른 등산인이 없는 우리만의 식탁이었다.  수렴동 관리인 말이 오월 이십일 경 입산 통제가 해제된다 한다.

달빛을 보니 오늘이 보름인 것 같다. 그러나 산이 높아서 그런지 길까지 밝지는 않다. 우리는 준비한 헤드랜턴과 손전등으로 길을 밝히며 하산했다. 백담산장이나 백담사에서 용대리로 나가는 차를 얻어탈려 했지만 나가는 차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어둠과 싸움뿐이었다.  백담사 안내판앞 쉬면서 젖은 속옷을 갈아  입었는데 추위에 노출되어서 인지 몸이 떨려오기 시작하여 젖은 내의를 다시 입었다.

앞으로 두시간을 꼬박 걸어야 어제 묵었던 민박집이 나온다.  우리 부부는 나머지 술과 소주를 소고기포를 안주로 하며 걸으면서 마셨다. 추위가 좀 풀리었다.  나는 지쳐서  사찰뻐스 정류장에서 쉬며 건전지를 바꾸고 절룸발이 되어  걸었다. 그때까지  걸음이 빠른 부인을 먼저 내려 가서 ,승용차를 입구에 대라하며 말하고 보냈다. 

나는 수없는 발걸음을 세며 걸었다.  불빛을 비추어 보니 기둥에 주차장 2Km 표지판을 보고 하나에서 백까지를 17번 반복 했다.  매표소 300m전에 길바닥에 앉아서 쉬며 입구쪽으로 여러번 후라쉬를 비추었지만 차는 오지 않았다. 

나중에 가서 보니 입구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다리는 마비되어 끌다 싶이 하여 차까지 와서 쓸어졌다.  승용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되었다. 
오늘 하루는 힘든 산행이었다. 그러나 보람은 있었다.  다음날 집에와 체중을 달아보니 부인은 3kg, 나는 2kg의 체중감량 되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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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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