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구름에 쌓인 黎明 (3회차 5구간 백운산 / 중재마을-육십령)
1)접근구간 :
(21:40)-자댁 (22:30)-양재역 (24:00)-천안휴게소 (02:20)-함양(서상
인터체인지) (03:20)-중재마을 회관 앞 = 5:40
2)산행여정 : (04:00)-중재마을
회관 (04:20)-중재 (05:50)-백운산 (07:20)-영취산 (09:10)-깃대봉 (09:40)-육십령 =
5:40
3)복귀구간 : (13:30)-육십령 휴게소 출발 (15:15)-신탄진 휴게소 경유 (16:40)-죽암
휴게소 경유 (17:10)-양제역 도착 (18:20)-자댁도착 = 4:50
4)산행 후기 먼저 지역적으로 유래와
위치를 알아 보자 -대간길 의 위치- 이번에 종주해야 할 대간길 우측 동쪽은 함양군 서상면 좌측 서쪽으로는 장수군 장계면에 속한다.
함양군 서상면으로 흐르는 물은 경호강을 거쳐 진주 남강댐에 저수되어 경남 서부지방의 젖줄 역할을 하고 남해 바다로 흐른다.장수군 장계면으로
흐르는 물은 용담댐에 저수되어 전주,익산,군산 시민의 식수 및 공업용수로 사용하고 금강으로 흘러 금강 하구둑에 저수되어 김제 만경평야의 대지를
적시고 서해 바다로 흐른다.
-장수군 장계면- 장계면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으로 백해군의 관할구역에 속했으며,통일신라
이후 757년(경덕왕 16년)에 군현의 명칭 변경에 따라 백해군을 벽계군으로 개칭하여, 장계면은 벽계군의 관할 구역에 있었다. 장계면의 지형은
동으로는 육십령과 경계를 이루어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접해 있고, 남으로는 동평들을 흐르는 실개천이 경계가 되어 계남면과 접해 있고 서로는
산정수동하는 동정대재와 경계를 이루어 천천면과 접해 있고, 북으로는 깁재와 경계를 이루어 계북면과 인접해 있다.
-함양군 서상면-
서상면은 함양군의 북부에 위치한 남덕유산 아래에 있으며, 면적 90.94평방km, 인구 2,400여명으로서 6개리 22개마을이며
면소재지는 칠형정 이다. 서상면은 조선조 1728년(영조4) 안의현 서상동 1895년(고종32년) 안의군 서상면, 1914년 3. 1일에 함양군
서상면으로 승격 되었다. 서상면의 유적지로는 상남리에 영각사(사찰), 옥산리에 극락사지석조여래입상(경상남도지정문화재 제44호), 금당리에
함미성지, 의암 주논개묘, 도천리에 의병대장 문태서 비,상남리 육십령에 호국영령추모비 등이 있으며 옛부터 산간 오지로 알려져 있다
-중재 마을회관 앞 도착- 새벽녘 운산리 마을회관 앞에 도착한 하늘에는 총총한 별빛이 유난히 빛나고 스무 닷샛날 찌그러진
달빛이 희미하게 우리를 비쳐 준다 우리는 야간 산행에 필요한 장구를 착용하고 차에서 내렸다. 이제 육십령으로 향해 가야한다 새벽4시 우리
일행은 산행에 들어갔다 시멘트 포장 길을 조금 내려가서 우측 소 도로로 오르게 된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길이 질퍽하고 빗물이 흘러
내린다. 지난번에 그렇게도 지루하게 내려갔던 그길 이였는데 오늘은 단숨에 올라온다.
중재에 도착하면 대간길 마루금이 가로로 있다.
우측으로는 대간길 이고 좌측은 남쪽으로 가는 월경산 과 고남산 길이며 줄곧 바로 가면 독가촌 가는 길이다. 여기서 우측으로 보면 언덕빼기
위에 우뚝선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선답자들이 표시기를 주렁주렁 달아 놓았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대간 마루금을
따라 약간 경사 길에는 참나무며 우거진 소나무 등 이름 모를 나무들 가지에는 흐트러진 넝쿨들이 지나가는 우리들을 가로 막는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맺힌 물방울들이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살짝 적신다.
-백운산을 향하여- 중재를 출발하여 크고 작은 능선을 오르고
내리고 또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하여 도착한 곳이 여명이 걷히는 백운산에 장도 하였다. 정상 들머리에 올라서면 이정표가 잘 정리되어 세워져 있고
어둠이 가지 않은 헬기장은 빛 바랜 백색으로 우중충 하게 보인다. 한 걸음 성큼 올라서면 백운산 정상 표지석(1278.6)이 지나는 객을
붙들기라도 하듯이 자리에 주저 않게 한다. 우리는 여기서 몇 장의 기념촬영을 하였다.
백운산을 표현 하자면 이름 그데로 구름으로
쌓인 봉으로 나의 머리에 기억 해 두고 싶다. 때마침 우리가 도착한 날은 어제 비가 내렸고 촉촉한 안개와 운무가 여명이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
정말 경아가 따로 없으리라. 그리고 봉으로 이어지는 마루턱마다 구름 금으로 잘라 놓은 무덤이다. 정상에 서면 남도의 내노라 하는 명산들이
동서남북 어떤 방향에서든 거칠 것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남쪽엔 낮은 구름 금으로 그은 지리산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북쪽 끄트머리에는 넉넉한 덕유산이 태평스레 앉아 있고 그 너머에 황석, 기망, 월봉산이 줄기를 뻗대고 있다. 금원 기백도 가까이 보이고
동북 방향 멀리로는 수도,가야,황매산도 가물거린다. 양쪽 날개 인양 백운산과 맥을 같이한 동쪽의 괘관산과 가을 억새가 멋진 장수군의 장안산이
서쪽에서 마주보고 있다.
소백산맥이 지리산으로 뻗어 달리면서 덕유산이 솟아 남쪽으로 흐르면서 다시 우뚝 솟은 백운산은 번암면의
동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남으로 내려가 남승치 하동 동화댐 두견 시동강, 논곡 유정계곡을 형성하면서 산과
물들, 마을을 이루는 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산이 높고 산맥이 길어 오묘한 경관을 이루면서 번암면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백운산은 장안산과 서로 견주듯 마주보고 서서 그 안 계곡을 형성 지지리가 있으며 양대산은 서로가 의좋게 서로의 산에서 흐르는 물이 무룡궁에서
부터 합수가 되어 흐르고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행은 좌측으로 꺽어진 급경사 길을 내려 가는데 그만 발을 돌 위에 잘못
디딘것인지 낭떠러지 길을 눈앞에 두고 미끄러져 나무가지를 잡고 멈추었는데 아뿔사 우측 손목에는 피가 나기 시작 하는데 백운산 정상의 운무를 너무
많이 감상 하여 산신령이 노하신 것 같다.
털고 일어나 내려가는 급경사 길에는 산죽과 싸리재 나무군락들이 대간길을 인도 하듯이 잘
다듬어져 있다. 날이 밝은 아침 선바위 고개를 지나서 1066봉으로 향해 계속 오러 내린다.
-무령고개- 1066봉을 지나
안부에 도착한 우리는 여기가 무령고개(해발900)임을 알 수있다 무령고개는 여인네의 많은 슬픈 전설을 않고 지나는 대간꾼들을 원망이라도 하듯
양손을 움켜 쥐고 있는 것 같다. 무령고개는 좌측 서쪽으로는 장안산이 웅장하고 북으로는 남덕유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누가 리본 표시를
하였는지 천황봉(134)과 진부령(1105)의 거리를 잘도 표시 하였다 거리를 보니까 섬짖하다.
여기서 무령고개에 대한 유래를 보면
금남 호남정맥의 무령고개는 장계(長溪)의 장수 북쪽 20리 어름의 작은 면소재지다. 아득한 옛날에는 되레 장수를 거느리던 때도 있었지만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내내 장수를 뒤따르던 손바닥 만한 산현(山縣)이었다. 장계를 중심으로 전주, 진안(호남)과 안의, 거창(영남)을 있는 육십령
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부산하고, 한편으로 대전에서 진주로 뚫리는 고속 국도가 더러 개통되어 이즈음은 오가는 차들이 곱절로 늘었다. 장계
땅은 호남 좌도 농악의 이름 난 상쇠들이 많이 살았고, 판소리 동편제의 명창이 또한 흔한 곳이었다.
무령 고갯길을 바라보며 들판이
끝나는 곳에는 논개의 생가 주촌 마을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그 길의 끝은 백두대간의 영취산과 금남 호남정맥의 장안산 사이를 타고 무령 고개가
되어 번암면 지지리로 넘는다.
동쪽의 낙동강, 그리고 서쪽의 금강과 섬진강을 거느리며 용트림하는 영취산의 기세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온통 논개 이야기만 무성한 주촌 마을에서 무령 고갯마루까지는 번듯한 포장 도로이고, 고갯마루부터는 이내 흙먼지 풀풀 나는 자갈길을
10리나 더 내려가야 장수군의 으뜸 오지 지지리에 닿는다.
-영취산(1075.6m)을 향하여- 무령고개를 지나 오르막길을
금방 올라서 보면 장수군에서 세운 영취산 정상 표지 팻말을 보게 된다. 영취산 정상에서 지나온 산을 뒤돌아 바라보면, 깍지를 낀 팔을 앞으로 쭉
뻗어서 좌측 손목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우측 어께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영취산은 백두대간에서 금남, 호남정맥의 시발점이며 서남쪽으로는 장안산
북쪽은 덕유산이 구름위로 잘려진 봉우리만 시야에 들어 온다 운무가 장관이다. 사진을 찍었는데 어떨런지?
덕운봉 갈림길을
멀리하고 바위지대와 942봉을 지나서 전망대 바위로 향했다. 전망대 바위는 사방이 툭터인 시야는 정말 아름다웠다. 일행은 전망대 바위에서 오늘
하루의 아침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민령 갈림길- 키보다도 더 큰 산죽들이 지천으로 깔린 터널 속이라도 가는듯한
기분으로 977봉을 넘고 민령으로 내려간다. 민령은 충절을 이야기 하는듯 하다 선답자들이 대간서 나고 대간에 묻힌 논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이에 전설에 의한 한 토막을 올릴까 한다.
충절의 여신 주논개는 1574년 영취산 북쪽의 대곡리 주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논개가 13세가 되던 해 부친 주달문이 세상을 떠나자 주색잡기에 빠져있던 숙부 주달무는 당시 장수 토호 김풍헌에게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았다.
그러나 논개 모녀가 완강히 반대하자 주달무는 논개 모녀를 상대로 장수 현감에게 소장(訴狀)을 올렸으나 오갈 곳 없게 된 모녀는 현감 부인의
병수발을 하면서 머물렀다. 이후 현감 부인은 세상을 뜨고, 결국 이게 인연이 되어 최경회와 논개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
몇 년이
지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가 된 최경회는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 일어난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함락당하자 최경회는
남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이에 논개는 승전 축하잔치를 연 왜군들 틈으로 기생으로 변장하고 들어가 왜장 게다니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껴안고 10여일간 내린 장마비가 넘실대는 진주 남강에 몸을 던졌다.
현재 최경회와 논개의 묘는 백두대간 육십령 동남쪽으로 십 리쯤
떨어진 함양 서상면 금당리 방지 마을 뒷산에 있는데, 이들 부부의 묘가 여기에 있다. 현재 최경회, 논개의 묘는 함양군에 의해 성역화 작업이
한창 이라고 한다.
-깃대봉(1014.8m)- 깃대봉에서 육십령을 바라보면 북으로 덕유 남으로는 지리 서쪽은 장수군 계남면
백화산 동쪽은 함양군 서상면 거망산(1184)이 운무로 하늘 금을 그은 봉우리가 가까이에 닿는다 이장관을 보고 누가 아름답다고 하였던가, 대전
진주,통영간 고속도로 가 우측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표시된 샘터에서 한 모금 목을 축이고 870봉을 지나 아래로
내려다 보면 비닐 하우스가 보이고 요란한 차들의 소음 소리가 들리는 육십령 휴게소가 눈에 들어 온다.
-하늘 아래 첫 동네, 육십령
마을 -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가 육십령에서 만나 헤어진다. 고갯마루 육십령
마을은 옛적부터 경상도를 따랐으니 여전히 소속은 함양의 상남리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넘어 경상도 땅으로 몇 걸음을 옮기면 거기 후미진 산막처럼
없을 듯 걸려 있는 민가 몇 채가 바로 육십령 마을이다.
-육십령(해발700m)휴게소- 육신으로 지친 우리를 반겨 주는
하늘아래 첫 동네 육십령 휴게소에 도착 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인정 있게 반겨 준다. 전에 여러 차례 기사를 읽어 본적이 있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여 몇 가지 질문을 하자 벌떡 일어나 입구 카운터 책상 서랍에서 잡지 한 권을 꺼집어 내 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 싶은 접어둔 페이지를 열어 보여 준다. 그기에는 모 산행 잡지에서 "백두대간의 사람" 칼럼에서 육십령 휴게소 기사가 실려
있다.
올해로 61세인 조정래 아주머니는 백두대간 사람들과 함께 해온지도 10여 년이라고 한다 작년 아저씨가 지병으로 돌아 가시고
혼자서 장사를 하시는데 몹시 힘들어 보인다. 작년 상중에도 대간꾼 들에게 라면과 밥을 주었다는 기사가 특이하다.
아주머니에게
한가지 청을 하였다 현지에서 조달한 나무 지팡이를 한주지난 다음주에 여기에 올테니 잘 보관하여 주십사 하고 청하니 흔케이 허락 하셨다. 그리고
슬픈 전설이 아닌 비운을 머금은 김창열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전설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 했는데, 실존 인물 이라고 하니까 고개가
숙여 진다.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셔서 승천하신 아들의 몫까지 사셨으면 한다.
그리고 역사속에 묻혀질 육십령 고개는 크고 웅장하였던
표지석도 없어지고 조그마한 볼 뿌리로 만든 표지석이 육십령 휴게소를 처량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또 식당 안에는 뭇 대간꾼들이 저마다 붙여 놓은
표지 리본들이 그져 그렇게 보인다.
아쉽게도 작년9월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을 연결하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육십령터널을 개통
해 버렸다. 국내도로터널 가운데 3번째로 긴 육십령터널이 개통되어 전북과 경남지역을 곧바로 연결해 주행시간을 종전 30분에서 7분으로
단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육십령 식당 아래에 새로 생긴 휴게소가 있고 차량 통행이 뜸하지만 옛 육십령 고개 식당이 대간꾼들이 찾는 곳이라
외롭지 않다는 아주머니 장사가 잘되어야 할 텐데, 아주머니 건강 하시고 오래 사세요.
그 왜에도 도적대 피해 가는 고개, 덕유산
산자락 사람들, 육십령에 얽힌 전설은 너무나도 많다. 육십령 휴게소 전화번호 055-963-0610 조정자 아주머니
61세
-3회차 4구간 종주를 끝내고- 이번 산행은 어제까지 비가 내려서 그런지 어둠이 가지 않은 산정상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구름 금 밑으로 쌓여 봉우리만 우뚝 선 자태야 말로 형언 할 수없는 표현 이며 글로서 남기기가 부족 함이라. 그
운무를 같이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글로서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같이한 회원들에게 무사한 종주에 감사를 드린다.
또 다음을 위하여
준비를 해야지 !
-진행 기록 및 종주 구간 - 총 거리 831.5km / 진행 거리 65km/ 3회차 4구간
거리(매요-중재)25km / 진행율 7.81% 총 시간 373시간 / 산행 시간 19:40/ 3회차 4구간 산행 시간 5:40(10:00)
/ 진행율 5.2%
3. 4회차 5구간 종주 계획 1)산행일정 : 2002. 4 .20 ~ 4. 21 2)산행구간 :
삐재-덕유봉-소사재-삼도-대덕산-덕산재 3)행정구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2002년04월09일 씀 Chari Killo 장채기
|
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
수정,
보완, 추가할 내용이나 접속이 안되는 것을 발견하시면
E-mail 로
보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