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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엿장수 마음대로? ("고대산-752m-지장봉-북대-향로봉" 종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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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대광봉-고대산-752m-640m-지장봉-화인봉-북대-삼형제암-향로봉-중리저수지"산행기
(강원 연천군 신탄리·포천 관인 중리/2002년 4월 4일(목)/날씨 :
맑음/산행시간 : 총 9시간 4분, 휴식시간 : 2시간
42분)
♠ 참가자 :
강환구, 문창환, 안일준(이상 3명)
◎ 산행코스
매표소-칼바위-대광봉(827m)-삼각봉(830m)-고대산(832.1m)-752m헬기장-680m-640m-임도고개-5 80m-지장봉(877.2m)-화인봉(804m)-북대(710m)-삼형제봉-임도-향로봉(600m)-중리저수지(도상거리 약 17.5km)
◎ 산행일정
08 : 45 신탄리역 출발
08 : 51 고대산 매표소
09 : 35 칼바위(휴식 : 8분) 09 :
52 삼각봉(830m) 10 : 02 고대산(832.1m,
휴식 : 7분) 10 :
50 752m 헬기장(휴식 : 5분) 11 : 08 안부(W : 대송정, E
: 신흥동, 휴식 : 7분) 11 : 32 680m(휴식 : 15분)
12 : 10 640m(휴식 : 8분) 12 :
30 임도 고개(휴식 : 10분) 13 : 00 헬기장 13 :
33 지장봉(877.2m, 휴식
: 37분) 14 : 45 안부(E : 절터, W : 절터) 15 :
23 북대 헬기장(710m, 휴식 : 30분) 16 :
13 군사도로 안부(휴식 : 5분) 16 : 50 향로봉(600m, 휴식 : 30분) 17 :
55 중리 저수지
◎ 개
요 ▶고대산 : 경원선 철도가 휴전선에 막혀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멈추는 곳에
고대산(832m)이 솟아있다. 경기도 최북단인 연천군 신서면 신탄리와 강원도 철원군 사이에 있는 정상에서는 북녘의 철원 평야와 6.25 때
격전지인 백마고지(白馬高地), 금학산(金鶴山:947m)과 지장봉(地藏峰:877m), 북대산(北大山), 향로봉(香爐峰)은 물론 한탄강(漢灘江)
기슭의 종자산(種子山)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지장봉 :
현재 지장봉으로 불리는 최고봉을 중심으로한 이 일대를 [寶蓋山]이라 불렀다. {東國與地勝覽}을 비롯한 지리지에는 모두 [寶蓋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산이 보개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楡岾寺本末事蹟}에는 閔漬(1248∼1326)가
撰한 [寶蓋山 石臺記]라 는 글이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이 산을 보개산이라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함경남도를 통과한
백두대간 줄기가 강원도 북부에 들어서 남서쪽으로 분기한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의 끝머리에 솟은 암봉이 바로 보개산이다. 산의
상봉이 중의 머리같이 생긴 바위로 되어 있고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의 지붕구실을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우리나라 최북방의 산이다.
보개산은 봉우리와 시냇물 이름들이 모두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산의 상봉을 환희(歡喜)라 부르 고 양쪽 가지는 불견(佛肩)과
삼봉(三峰)이라 이르며 찬취암 뒤로는 무이지천(武夷之川)이다.
지족암, 용화사, 운은사 등 불교와 관련한 사찰들도 많았으나 6.25로
인해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흔적도 없다. ▶화인봉 :
예전에 어떤 임금이 싸우다 피난으로 이 산에 와 있는 동안 바위에다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을 보고 따라 화인봉이라 칭함.
▶삼형제봉 : 이 산에는 똑같은 바위 세개가 촘촘히 있어
바위의 모습이 같다 하여 삼형제암이라 칭함. ▶향로봉 : 이 산은 산봉우리 형체가 향로처럼 생겼다 하여 향로봉이라 칭하고 있음.
◎
산행후기 7시
20분 의정부발 신탄리행 경원선에 몸을 실었다.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꽉차 빈자리는 없었다. 동두천을 지나니 자리는
텅비고 한탄강을 건너서 신탄리에 내리니 08 : 41이다. 08 : 45 철길을 건너서 고대산 상회를 지나 세멘 포장길을 걷는다. 계곡 주변으로는 이곳도 여느
곳과 다름없이 음식점들이 있다. 주차장에 있는 매표소에서 1인당 1,000씩 표를 끊고 남동쪽 도로를 따라서 가니 안내판이 있는
제2등로길 입구에 도착한다.
좌측의 등로를 따라서 제2등산로로 들어가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옛적에 출입금지 구역이었던 이중 철망을
통과하여 교통호를 건너서 바줄이 매어있는 가파른 곳을 올라서 능선에 군 BK가 있는 곳 이정표(정상
2.2km : 1시간 30분)를 지나서 교통호를 건너서 계속 오르니 요란한 총소리가 들리며 전방인 것 을 실감하게 한다.
어느 부대서인지 아침 일찍부터 사격 연습을 하고 있는지 콩복는 소리가 들렸다 끊겼다 한다. 바위봉을 오르고 통나무 계단을 올라서
능선 둔덕을 넘어 바위지대를 오른다. 09 : 27 이정표(정상 1.5km : 1시간 10분)를 지나서 바줄을 당기며 올라 둔덕을 2개 오르니 헬기장이 나온다.
고등어 등과 같은 칼바위 능선을 지나서 칼바위에 올라서(09 : 35) 사방을 둘러보니
시계가 동서북으로 는 확 터져서 좋았고 북쪽으로는 GOP 초소, 남방한계선, GP, 고대산 주둔 부대와 넓직한 철원 평야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다.
긴급조난 고대산(2-3 말등바위)표시판과 이정표(정상 1km : 1시간)를 지나서 말등바위를 지나서 고대산(2-5 구
헬기장) 표시판이 있는 주능선 대광봉(827m)에 도착된다.
대광봉(827m)에 오르니 동서남북으로 시계가 확트여 "금학산-관인봉-지장봉"등이 다
조망된다. 가스도 별로 끼지를 안은 아주 시계가 좋은 일기다.
동쪽으로 방향을 틀며 대광봉을 지나고 보급품 수송용 모노레일을 따라서
고대산에 이르니 초병 2명이 정상을 지키고 있으며 그곳 정상에는 "고대봉"이라는 자연석 표지석이 있다. 역시 정상 통과는 안 되는 것이
뻔하여 북쪽으로 내려서다가 모노레일을 넘어 등고선 타기를 하여 정 상에서 동쪽으로 뻗은 암능선으로 오르고 헬기장을 지나 봉우리를 넘어서니 잡초가
무성한 헬기장이 나온다. 뒤에 따라 오는 줄 알았던 문창환님과 단풍이 따라 오지를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멀찌기 건너 헬기장에서
초병이 무어라 소리 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짐작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 같으나 무조건 앞으로만 갔다. 암릉을 따라
가다가 둔덕을 오르고 봉우리 3을 넘어서 안부에 도착하니 남쪽으로는 대송정에 이르는 등로가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두분은 통과를 안
시키어 되돌아가 남쪽 임도로 내려 섯다가 다시 이곳으로 올라 와 진행을 한 것이다.
언제는 통과하고 언제는 못하고, 누구는 하고 누구는
못하고-----완전히 엿장수 마음 대로다. 이곳을 정상에는 화약고가 있어서 통과를 못하지만 우회하여 통과하던 곳인데 그리고 불과 5일전에
통과를 한 곳이고 별다른 군 시설물도 없고 등로도 빠삭하게 낳아 있고 이곳 안부부터는 표시기도 달려있는 곳이다. 또한 군사지역으로 접근
금지 같은 표지판도 없는 안전한 곳이다. 내 땅을 내 마음대로 못 다니게 하는 월권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안부에서 앞을 막고있는
암봉을 우회하여 가니 암릉과 암릉사이 협곡에서 다시 능선에 오르니 우측으 로는 벼랑인 능선으로 길게된 봉우리를 지나서 안부에서 좌로 우회하여
능선을 밟으며 올라서니 세멘 헬기장인 752m에 오른다. 이곳까지 오도록 그토록 만개하여
활짝 펴 온 산을 붉게 물들여 놓은 진달래꽃들이 이곳은 북쪽이라서 그런지 피지를 않고 있다. 이곳에서 동북쪽으로는 금학산에 연결된
능선이고 남쪽으로는 지장봉으로 가는 등로다. 무지하게 찌며 더운 일기이고 구름 한 점 없는 요즈음 보기 드문 시야가 펼처진 청명한
일기다.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서 지장봉이 바로 앞에 보이며 금학산이 높게 올려다 보인다. 그때 손폰 벨이 울리며 단풍에게서
전화가 왔다. 통과를 안 시키어 남쪽으로 내려서고 있다고 하기에 임도를 따라 안부로 오라고 하니 이곳에서 1시간 을 기다리란다.
1시간 정도는 서서히 쉬면서 진행을 하면 좇아 올 것 같아 금학산에 오르는 등로를 나름대로 아름 해 보고 헬기장을 내려서 암릉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서니 좌측으로 바위 위에 소나무가 한 그루 있는 우뚝 솟은 암봉을 오르려 시도 하다가 너무 시간이 지체 될 것 같아 다시 내려서
대송정에서 신흥동으 로 넘어가는 안부 사거리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대한 산악연맹 철원 금학산악회 표시기가 달려있으며 큰 소나무 10여
그루가 있어서 햇빛을 피할 장소를 마련하여 주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땀을 식혀 준다. 이제부터는 아주 널널한 산행으로 그들이
좇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쉬엄쉬엄 하는 산행으로 바뀌었다. 이곳을 지나니 남향이며 고도도 좀 낮아지고 남쪽이라서 그런지 진달래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아직은 모두가 몽우리를 지어 터질 듯 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둔덕을 하나 둘 넘어서고 바위가 있는 둔덕을 지나고
620m를 지나서 오르니 680m에 이른다. 그곳에는 산악회 표시기들이 많이 달려 있어서
수거를 하고 쌍안경을 꺼내어 주변을 살펴본다. 쌍안경은 항시 가지고 다녀도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나 오늘은 일행이 뒤를 좇아오기를
기다리며 마 음껏 즐기는 산행으로 바뀌어 버렸다.
동쪽부터 "금학산-관인봉-지장봉-644m-고대산-752m"를 차례로 삥 둘러보았다.
그곳을 출발하니 바로 아래 헬기장이 있고 그곳에는 잡초와 많은 쓰레기로 오염이 되어 있었다. 헬기장을 내려서 올라서니 660m 헬기장이고 그곳을 내려서 등로 변은 잡목을 제거하여 놓았으며 안부 를 지나서 바위능선을 지나서
640m에 도착하니 손폰벨이 울린다. "죽비님"으로부터 전화가 와 4/7일 100일
산행에 대한 정보를 전하여 준다. 단지 on line에서만 교류를 하였는데 이토록 관심을 가져 주심에 감사를 드릴뿐이다. 일행에게
어디쯤 있나 궁금하여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는다.
널널하게 걸어오고서도 이곳에서도 휴식을 취한다. 따라 오겠지 생각하며 출발하여
봉우리를 넘어서고 타이어 계단을 오르니 아래로 임도가 보이고 봉우 리 2을 넘어서 푹신푹신한 타어어 계단을 내려서고 뾰족한 모습의 군
BK봉(600m)을 지나서 임도 고개로 내려온다. 군 시설물이 있는 넓은 공터 고개
마루에는 토우 대피호가 있어 그안으로 들어가 후사면을 바라보니 수직 절벽에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밑에는 수많은 쓰레기가 버려저 있어서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임도로 인하여 가파르게 절단된 능선을 그대로 치고 올라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측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타이어로 된 오르는 계단이 있다는 것을 찾아 보지도 안고 돌이 떨어져 내리는 절개지를 아슬아슬하게 올라서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빨간기와 노랑기가 달려있는 곳을 지나서 580m의 참호를 지나고 높지 않은 바위봉 하나 둘을
넘어서 사태로 흙 이 무너져 타이어로 쌓아서 위장하여 놓은 군 BK를 올라서고 봉우리를 넘어 바위둔덕을 2개 넘으며 고도를 높이어 간다.
무더운 날씨로 온몸이 땀으로 젖져 지고 모자챙에서는 땀이 뚝뚝 떨러 진다. 바위 능선을 걸으며 뒤 돌아 보니 고대산과 금학산
사이의 안부에 있는 뻘건 흙이 드러난 탱크 저지선 이 어느 곳보다도 확연히 잘 드러나 보인다. 칼바위 능선을 걷는데 광인으로부터 온
손폰이 울린다. 현재의 위치를 말하여 주고 킬문과 단풍과 헤여진 상황을 말하여 주고 진행을 하니 능선 곳곳에는 소나무가 있어 바위와 잘
어우러진다.
뒤에 헤어진 단풍을 기다리기 위하여 바쁘지 안은 산행을 하며 마음껏 즐기며 한적한 산행을 하며 헬기장을 지나서 고도를 높이어
담터 고개로 가는 동쪽으로 뻗은 능선에 올라서 남쪽으로 올라치니 "긴 급구조 지장산 1-2(지장봉) 표시판을 지나서 드디어 각흘 산악회 표시목이 있는 지장봉(877m)에 헬기 장에 오른다. 서쪽으로는 높이가 비슷한 봉우리가 있으며 주변은 지저분하게 어지러져
있다. 빙뚤러서 막힘이 없이 고대산과 금학산을 비롯하여 내가 걸러온 능선이 한눈아래 펼처지고 관인봉과 북대-향로 종자산이 남쪽으로 곧
바르게 뻗어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하며 뒤에 오는 단풍과 킬문을 기다린다.
어렵게 손폰이 통화되어 물으니 이제 지장봉을 향하여
가고 있으니 이곳에서 한 숨 자라고 한다. 밥 대신 싸온 약밥을 먹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안아 자리를 털고 일어서 서서히 지장봉을 내려선
다. 안부에 내려서 이정표(S:삼형제암 2.6km, 향로봉 4.5km, E:담터고개 1.2km,
N:지장봉 0.5km)를 지나서 바줄을 타고 암봉을 오르니 화인봉이며 "긴급구조 지장산 1-3(화인봉)"표시판을 지나 내려서는 길은 낙엽에 무릎까지 덮이는 가파른 길이다.
봉우리 2개를 넘어서
뚝 떨어져 안부에 이르니 서쪽은 절골로 내려가는 등로이나 다닌 흔적이 없으며, 동쪽 절터로 내려서는 등로변에 표시기들이 길을 안내한다.
이곳부터는 암능과 암봉의 연속적인 지대를 통과한다. 암릉을 오르니 우측으로 바줄이 매여 있는 암봉을 정면으로 치고 오르니 거의
수직 상태인 바줄이 매 여진 가파른 암봉을 오르니 위험한 바위 지대에는 영락없이 까마귀가 배회하여 "까악 까악" 울어 대고 있다.
올라가면 내려오는 정한 이치로 가파르게 내려서 안부에 오니 또 좌측으로 하산 등로가 있고 암릉을 가로 질르고 좌측으로 우회하여 둔덕을
지나니 헬기장이 나온다. 이곳에도 이정표(절터 1.2km, 향로봉 3.5km, 지장봉
1.5km)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니 군 훈련때 사용하던 부서진 통나무 지휘소가 있는 곳을 지나 둔덕을 넘어 헬기장을 지난다.
계속 남서진하며 남대 분기점 710m 북대를 좌측으로 우회하여 소나무 있는 암릉에 올라서 뒤를 돌아 보니 지장봉, 화인봉, 담터가 아주
잘 보이고 조금 더 올라서 북대 헬기장에 도착된다. 이곳에 올라서 뜨거운 햇빛아래 시발을 벗고 편히 헬기장 보도 부럭에 누워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이 오 지를 않는다.
전화를 하니 이제 지장봉에 올라와 있단다. 향로봉, 종자산을 바라보며 이제는 종자산을 포기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10시간 계획으로 "고대산-종자산" 종주를 계획하였던 것이 일괄성 없는 역장수의 행각으로 서로 헤어 저 오늘의
계획이 단축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30분을 기다리며 쉬다가 먼저 출발을 하여 "긴급구조 지장산1-4(삼형제봉)" 표시판이 있는 곳에 이정 표(지장산 4.1km, 절터 1km, 향로봉 2.7km)를 지나고
바위 사이를 지나서 가파르게 바줄을 매어 놓은 곳을 내려서 군사도로 안부 헬기장에 도착되니 헬기장 주변의 많은 쓰레기가 버려 저 있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가 산행을 하며 흔적을 남기고 다니면 이거 또한 자연에 피해를 주는 행위이다. 돌 뿌리 하나 흙 한
주먹이라도 훼손되는 일을 하여 서는 안 된다. 헬기장을 떠나서 둔덕을 오르고 봉우리들을 넘어서며 둔덕을 오르니 동쪽으로 뻗은 가파른
능선으로 등로가 나 있는 등로 삼거리다. 이곳을 자주 다녔지만 전에는 없던 등로 인데 표시기들로 달려 있어 따라 가보니 확인 해 보니
가파른 암능을 내려서는 길이다. 되돌아서 쉬엄쉬엄 여태 이런 형태의 산행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산행을 하며 봉우리를 2개 넘고 전위 봉에
올랐다 내려서 향로봉 헬기장에 오른다.
종자산을 오르는 능선 등로가 확연히 보이고 가스가 낀 종자산이 조망된다. 아래 중리
저수지는 물을 방류하지 않아서 그런지 시퍼란 색깔의 맑은 물이 가득차 보인다. 12년전에 찾았던 보개산하고 지금의 모습은 많은 산행객들의
무지한 행각으로 쓰레기가 버려져 있고 많은 훼손과 군사 중요지점으로서 군 진지 구축 및 도로 개설로 피폐해 있었다. 지난번 산행과 오늘
산행을 연결하여 보니 대한 산악연맹 철원 금학산악회가 종주 산행을 한것을 유추할 수가 있다.
전화를 하니 삼형제봉을 지나서 향로봉을
향하여 올라오고 있다고 말한다. 기장 옆의 바위에 누워 보니 불편하여 헬기장 보도 부럭에 누워 잠을 청한다. 떠들석한 소리에 일어나 보니
도착들 한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대산에서 모노레일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서 임도에서 서진을 하다가 계곡으로 올려친 곳이 고대산에서
잡초가 우거진 헬기장과 752m 헬기장 사이의 대송정에서 올라오는 가파른 안부로 치고 올라
진행을 하였으니 늦을 수밖에 없었다.
시계가 17 : 20을 가리켜 종자산을 포기하자고
하고 향로봉을 내려선다. 서남쪽의 표시기가 달린 등로로 내려서면 멀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짧게 가깝게 내려서는 등로는 동남쪽의
저수지로 향한 가파른 능선을 내려가면 된다. 기존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다가 좌측의 향로봉 수직 암벽 밑으로 돌아서 능선에 접근하는 방법과
향로 봉에서 전위봉으로 가다가 가파른 우측으로 내려가 바위 사이에 있는 소나무 사이를 빠져서 능선에 접 근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가
안전한 코스이고 후자는 스릴을 즐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코스다.
킬문님은 전자를 택하였고 단풍과 나는 후자를 택하여 능선에서 만나
내려서는 등로는 표시기가 달려 있으나 바위와 가파른 경사에 다리가 빠지는 낙엽으로 근래에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는 등로다. 묘가 있는
곳을 내려서니 등로가 좋아지며 긴급 구조 표시판이 부러진 묘를 내려서고 잔디가 없는 삼 각점이 있는 애기 묘를 지나서 소나무 숲을 빠져 나와
주차장 좌측에 있는 밭으로 내려서며 엿장사가 아니었다면 종자산까지 종주가 충분하였던 산행을 아쉬워하며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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