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
2002년 4월 4일 22시 40분 ∼ 4월 5일 17시 40분.(19시간)
맑음.
산행인원 :
사이버에서 만난 산님들 15명(남자 12, 여자 3)
상계전철역
개찰구를 나서자마자 일련의 등산복 차림의 산님들이 모여 있다. 그 중
한분에게 여쭤본다.
- 안녕하세요 ? 혹시 오늘 불수. . . - 아닌데요. 저희는 서울의 산을 사랑하는 40대
모임임다. - 아. 네.
1층 1번 출구 우측에 또 여러분의 산님들이 모여있다. 한쪽에 산행 중 도움을 줄 물품들을 담은
배낭들이 그들끼리 모여 인사를 나눈다. 각각의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사이버상에서 사진상으로 뵌 대장님, 그 외 11분과
인사를 나눈다. (죽비님, 기쁨두배님, 칼잡이님, 발해님, 파란하늘님, 청설모님. 겨울아이님, 김귀천님, 이상민님, 초계님,
박찬화님) 배웅나오신 지리산님, 밤도깨비님, 에버그린님, mst님, 비갠오후님을 뵙고 전철역을 뒤로한다. 불암산 입구에서
영산님과 만나 짧은 인사를 나누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은 서울의 동쪽 태능, 육군사관학교 북쪽에 위치한 불암산
상계동 들머리를 시발점으로, 북쪽을 향하여 수락을 거쳐 도봉의 사패능선을 만나 왼쪽으로 돌아 도봉 주능선을 거쳐 북한산 산장, 위문,
대동문, 대남문, 청수동암문을 거쳐 불광동 매표소가 종점이다.
생각만 했지 감히 혼자서는 어림없으리라
생각해왔다. 마음이사 완주하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몸뚱이와 거기에 붙은 다리 몫이다. 무슨 일을 치루는데는 몸과 마음이 하나여야 함은
당근이겠지. 이번 산행은 나같은 초행자에겐 도전이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불암산
불암산은 고딩때 1년 선배와 눈 쌓인 겨울에 한번, 지난 여름 동생과
한번 오른 적이 있다.기념 촬영을 하고 부리나케 오른 잘 만들어진 길을 벗어나 민둥한 바위를 넘고 거북바위쯤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어둠속에서 수락의 서쪽 등짝이 완만하게 숙어있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을 내려다 볼 즈음 정상 아래 헬기장. 거기서부터
끝까지 동행한 젊은 부부를 만난다. 인천에 사시고 둘째와 넷째가 대간중이다. 사이버에서 기사를 보고 무작정 오셨다. 전철역에서
일행을 봤지만 부부는 불암산 정상을 찍고 내려 오셔서 지둘리셨다.
대열에서 앞쪽의 지킴이는 부부이신 파란하늘님과
청설모님 뒤쪽의 지킴이는 대장님, 제일 뒤에 막내인 김귀천군이다. 김귀천군의 배낭은 이 대열에서 부피가 제일 크다. 충만한 젊음과
건강 때문이리라. 말도 없이 묵묵히 따라온다.
한 사람이 쥐가 났단다. 대장님이 걱정이시다.
덕릉고개로 향하는
불암능선에서 바라본 도시 양쪽의 야경은 대조적이다. 한 곳은 어두움이 혹시나 틈새를 자리할까봐 화려한 불빛이 주인이 되어 지키고 한
곳은 어두움과 동무하여 드문드문 반딧불모양의 가로등 불빛이 소곤댈 뿐이다. 화려함 속에서 내재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은 어떤 경우일까
? 정말 땅의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
수락산
랜턴을
끄고 또 다른 즘생이 되어 덕릉고개 즘생통로 연결다리를 넘는다. 우측 아래 예비군교정 초병이 상사에게 보고하느라 불이 켜지고 바쁘게
움직이더니 '산 위로의 진행을 중지하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산으로 향하는 곳에 새로 만든 것 같은 탱탱한 철조망이
가로막고있다.
'알았다'고 우리도 외치고 산 왼쪽 아래로 내려가 시계방향으로 우회한다. 지도를 보면 덕릉고개에서 수락을 향하여
진행하는 길은 이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휘돌아 왼쪽으로 돌면서 수락의 정상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그 길로
진행한다.
불암은. 그 명칭이 마치 송낙(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여승이 쓰는 모자)을 쓴 부처의 모습과 같다하여
불암산이라 불리게 되었다는데, 일반적으로 서울 시내에서(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암을 바라볼 경우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 그리고 남쪽으로
완만한 비탈의 형상이다.
그런데 수락으로 오르는 능선에서 보이는 불암은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여 보게 되는데 정상을 중심으로
동쪽 그리고 서쪽으로 바위가 울뚝불뚝 튀어나와 근육질의 바위산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또 다르게 보이는 것은 태어날
때 혹은 그 이후의 변화이겠지.
생각해보니 수락은 지난 겨울 동생과 한번 오른 것 밖에 없었다. 물론 종주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나 그 때는 중간 석림사에서 올라와 옆으로 빠진 산행이었다. 지금 가는 길은
초행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올라간 즈음 대장님이 불암에서 다리에 쥐난 사람이 무리가 올 것 같아 하산을 권하셨다고
한다.(후에 홀로 따라오심)
이어서 위험한 곳을 두 곳 지나간다. 두 곳 다 암릉의 된비알인데 한 곳은 줄도 없이
조심조심해서 내려가야 되고 또 한곳은 밧줄에 의지해서 내려야 하는데 바위가 꺾쇠의 왼쪽이 펴진∧(꺾쇠)모양이다.
사전
예행연습하신 분들은 빠르게 지나서 어떻게 가셨는지 잘도 가셨다. 한 곳을 조심스럽게 통과하고 두 번째 바위에서 앞서간 부부 중
아주머님이 어렵게 내려가시고 내 차례다.
대장님이 밧줄을 바위 왼쪽으로 걸쳐놓고 하강하란다. 자신이 없어 밧줄을 잡고
좁은 틈으로 내려와 김귀천군이 내려오는 모습을 본다.
그는 지팽이를 아래로 던지고 왼쪽바위에 밧줄을 걸치더니 밧줄을 잡고 몸을
날려 왼쪽으로 돌아 두 다리를 바위에 걸쳐 사뿐히 내려온다.
최근에 바위를 하려고 바위도구를 준비했는데 이렇게 겁이 많고
요령이 없어 어떻게 바위를 할까 ?
수락산 정상 아랫부분 막걸리를 파는 곳에 이르러 식사를 한다. 기쁨두배님이 이곳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 서쪽으로 난 능선을 오르면서 바라보는 경치가 그만이라고. 그곳을 통해 올라오신 분들이 이곳에서 막걸리
한잔하신다고. 식사를 끝내고 조금 더 진행하여 정상 찍고 이제 북쪽능선으로 하산이다.
홈통바위를 지나고 긴 밧줄이 설치된
급경사진 곳을 지나 완만한 하산길이다. 한 분이 스틱을 준비하지 않아 안쓰럽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더욱이 여자분인데. . . 본인도
지금 후회중이란다.
겨울아이가 졸려 미치겠단다. 졸릴 시간이다. 수락을 거의 내려 올 무렵 첫 닭이 운다. 첫 닭이 우니 나도
졸린다. 하산을 하여 전열을 정비하면서 "선두로 진행하시는 분들이 후미에 관심을 갖고 진행을 해 주시라"는 대장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출발이다.
도봉으로 향하는 지점인 이 곳 수락의 북쪽 들머리는 동생의 안내로 한 번 와본 적이 있어 눈에 설지
않았다.
그런데 회룡전철역으로 향하는 길이 지난번에 이 지점에서 회룡전철역으로 갔던 길과는 다른 길로
진행한다. 동부간선로에서 의정부쪽으로 오다가 왼쪽으로 빠져 동두천 가는 중랑천 옆 도로를 횡단하고 미완성 다리를 넘고 마을을 지나
서울 의정부간 국도를 만나니 코앞이 회룡역이다.
이곳에서 물을 구하려고 혹은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하였으나 역문이 잠겨 걍
통과다. 이곳까지 나는 작은 물병 하나를 다 비우지 않아 물이 남아 있지만 갈 길을 생각하여 역 옆의 편의점에서 작은 물병 하나를 더
준비한다. 어느 분은 물병 3개를 다 비운 분도 있다. 이 곳 편의점에서 준비 못한 물품을 보충해도 될 것
같다.
회룡전철역에서 동네를 지나 도봉의 들머리쪽으로 다가가다가 좌측 수돗가에서 물을 받고, 일부는 근처 화장실을
이용한다. 수돗물은 물병에 들어가서 잠시동안은 뿌옇다. 없는 것보다 낫다. 그리고 다시 출발이다.
개천을 지나 의정부
북쪽 외곽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도봉의 들머리까정 일사천리다. 수락의 끝지점에서 도봉의 들머리까지의 길 통과는 이 팀이 그 동안의
준비과정이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도봉산
들머리에서 진행하는 능선이 무엇일까 ? 김귀천군에게 물어보아 이 능선이
범골능선임을 알았다.
살아오면서 도봉능선을 오르기는 이번이 세 번째다. 이제 새벽을 알리는 밝음이 우리 앞에
다가온다. 밤새 선잠을 자게 한 불암과 수락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패갈림길에서 조금 더 진행하여
헬기장에서 식사다. 판을 벌려 놓았는데 진수성찬이다. 달랑 도시락 두 개 들고 온 내가 부끄럽다. 그들의 배낭이 이래서 장난이
아니었구나.
식사를 끝낸 후 조금 진행하여 스틱이 없던 여자 산님이 탈출이다. 비록 탈출했지만 여기까지 따라 온 그녀의 정신력
또한 대단하다.
산불감시초소 전방에서 오늘의 밝음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붉은 태양이 큼지막하다. 파란하늘님이 증명사진을 찍고
나도 한 컷한다.

우이암까지 진행하는데 새벽 도봉을 오르신 몇 분과 만난다.
칼바위를 지나 우이암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대장님이 통화를 하신다. 영산님이 우이암까지 오셨다. 가지고 오신 더덕 막걸리에 삶은 도야지 고기와 김치는 맛이 그만이었다. 이
곳에서 영산님과 불광동까지 동행이다. 후미에서 진행하는 산님들을 챙겨주시며 진행하신다.
북한산
현재 북한과 도봉을 합쳐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만 보아도 두 산이
한 줄기임을 알려준다. 몇 개의 고개를 넘었을까 ? 드디어 하루재다
북한산은 돗대기 시장이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진도가 나가지 않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이제 피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힘이 전해오고 그 힘이 부러워진다. 며칠 전부터는 식사를 가려서 할 정도로 신경을 썼는데도 이지경이다. 북한산은 지금까지 다섯
번째다. 주로 놀토에 와서 이렇게 붐비지는 않았었는데. . .
산장 오르는 계단에서 핑계삼아 또 주저앉는다. 도봉에서
만났던 노란 꽃잎이 5장 달린 꽃이 한곳에 모여있다. 그 꽃들을 한 컷한다.(지금 북한산에는 이 꽃들이 지천이다) 내려오면서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얘기한다. 그 꽃이 "애기똥풀"이라고.

집에
와서 찾아보니 양지꽃 종류인데 잎모양이 차이가 있어 무엇인지 애매하다. 애기똥풀은 꽃잎이 넉장인데 이 꽃은 꽃잎이 다섯 장이다. 솜양지에
가깝다. (이 꽃은 "노랑제비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마중나오셔서 산장에서 지둘리신 분이 두 분 계신다. 아오자이님,
한걸음님. 도봉에서 아침에 도시락 반쪽을, 이제 산장에서 남은 도시락 반쪽에 여러분이 준비해 오신 밥을 먹었는데도 소진된 체력이
나아질 줄 모른다.
산장을 출발하여 처지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위문부터 대동문까지는 내리막이므로 발만 움직이면
된다. 그런데 나한테 달린 발이지만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용암문 못 미쳐 휴식이다. 이번이 위문을 넘어 두 번째
휴식이다.
나는 화장실을 이용하고 물을 보충하려고 쉬지 않고 내려간다. 용암사지 약숫물을 이용하려고 줄을 섰는데 선두가
지나간다. 물을 포기하고 따라간다.
대동문에서 청수동암문까지는 오르막이다. 물론 승가봉을 포함하여 몇 개의 오르막이
남아있다. 갈수록 숨이 차다. 북한산의 진행은 정말 자기와의 싸움이다.
청수동암문 직전 대남문에서 영산님이 선두와 후미를 갈라
진행하자고 제안한다. 일부는 남고 일부는 출발한다. 죽어도 고라고 나는 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승가봉인가에 와서 그냥
퍼진다.(선두를 보내고)
여기서 인천부부가 뒤따라와 같이 진행한다. 조금 내려가니 선두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기쁨두배님이 그리고 뒤이어 이상민군이 내려온다
이 곳에서 선두가 먼저 내려가고 나와 인천부부는 기쁨두배님과
이상민군을 뒤로하고 천천히 발을 옳겨 무임승차한 불수도북을 마친다.
그리고 불광동 매표소 옆 막걸리집에서 전부
모여 자축의 뒤풀이를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진다.
뒤풀이에서
밤도깨비님 뜨거운 꿀차 잘 들었습니다. 영산님 만나뵈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소의녀님도 인사는 못했지만 반가웠습니다. 산장에서 만난 아오자이님 뒤풀이의 정리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행복하시고 부ㅜ∼자되세요.
덧붙입니다.
산행 최종공고 이후 산행
이틀 전에 참가신청을 하여 흔쾌히 산행을 허락하시고 인천의 부부와 제가 비록 무임승차를 하였지만 끝까지 따뜻하게 대해주신 대장님 이하
동행한 산님 여러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모임의 무궁한 발전을 바라옵고 백두대간도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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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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