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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장안산~백운산~괘관산 종주기

  올린이 : 유종선2003/05/29 (올린날)              한국의 산하 | 산행기 게시판

추억의 장안산~백운산~괘관산 종주기

長安山(1237m) ∙ 白雲山(1279m) ∙ 掛冠山(1252m) 종주기
-일시: '01년 6월 9일
-동행자: 없음
-날씨: 맑음, 한낮 30℃
-오전 8시 48분 장수군 장수읍 덕산분교터 도착

이제까지 수많은 산행을 하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長安山(1237m)~白雲山(1279m)~掛冠山(1252m) 종주 산행이었다. 거의 2년전 일이지만 아직도 어제의 일인 양 기억에 새롭다.

6.25 당시 빨치산들이 험한 지리산에서 하루종일 끼니를 거른 채 수십 km를 행군하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여러 문헌에 실려 있다. 사실 그에 약간 못 미치는 산행을 지리산이나 덕유산에서 여러 번 해보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를 제대로 테스트 해볼 겸 이에 걸맞는 코스를 찾다가 長安山(1237m)~白雲山(1279m)~掛冠山(1252m) 코스를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장안산은 한 번 가보았지만 백운산과 괘관산은 처음이다. 물론 시작과 끝은 고개가 아니라 버스가 다니는 마을로 하여야 하고 빈 손(총을 들었어야 하겠지만...)으로 간다. 총 산행 길이는 약 35km 정도 되어 보였다.

(07:45) 새벽에 집을 나서 장계에 이른 뒤 우유 큰 팩을 하나 사 마셨다. 당분간 굶어야 하므로... 7시 50분 발 번암 주선동행 버스를 타고 장수에 이른 시각은 8시 10분 경이었다. 8시 30분 발 덕산행 버스(지금도 하루에 08:30, 17:00 두 번 있음)로 密木峙를 넘어 덕산분교터에 이르니 시각은 8시 48분을 가리켰다. 이 일대의 산중턱은 도로공사로 인하여 흉하게 파헤쳐졌다.

(08:48) 동쪽으로 흙길을 따르니 조금 뒤 아스팔트길로 바뀌었는데, 민박집이 몇 있는 연주마을을 지나 다리를 건너니 ‘여기서부터 수몰지구 EL 619.80’ 표식이 보였다. 즉, 댐 공사로 수몰되는 것이고 그래서 산중턱을 깎아 도로 개설을 하는 것이었다.

(09:06) 범연동 마을에 이르니 ‘장안산 등산로 입구 →, 정상까지 5.8km’ 표식이 눈에 띄었다. 마지막 농가를 지나니 ‘← 장안산 등산로 입구’ 표식이 보였다. 밭과 조그만 계류를 건너니 표지기가 몇 개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능선길이 계속되므로 청정도를 확인할 수 없는 계류물을 물병에 조금 채운 뒤 동쪽으로 보이는 지능선길로 들어섰다. 가파른 오르막에는 군데군데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09:29)‘구조요청번호 1001’ 표시판이 있는 T자 형 3거리에 이르렀는데, 이정표에는 ‘←덕천(덕치남) 3.0km, ↓범연동 3.0km’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걸어온 시간으로 짐작하건데, 3km 표시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동남쪽)으로 올라 언덕을 지나니 완만한 능선길이 계속 이어졌다. 나무계단이 설치된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니 이 일대에는 시누대가 무성하였고, 언덕을 하나 지났다.

(09:49) ‘구조요청번호 1002’ 표시판이 보였고, 56분 경 그리 험하지 않은 곳에 동아줄이 늘여뜨려진 곳을 지났다.

(10:03) 능선 끝 3거리에 이르니 그 직전 ‘↓범연동 2.5km, ↗방화동가족휴가촌 6.0km’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왼쪽(동북쪽) 능선길로 나아가니 오른쪽 앞으로 백운산이 간간히 조망되었다. 호젓한 숲속 길을 따랐다.

(10:18) 길이 Y자로 갈리는 데 이르렀는데, 오른쪽 능선길을 따랐으나 두 길은 곧 만나게 되어 있었다. 조금 뒤 한번 더 갈림길이 나오는데, 물론 직진하였다.

(10:23) ‘↓범연동 5.5km, ↑무령고개 3.0km’ 이정표와 삼각점이 있는 너른 헬기장 정상에 도착하였다. 커다란 표석에는 ‘長安山’ 표시와 함께 장안산이 일명 靈鷲山이라는 등, 그 유래를 적어놓았다. 북쪽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남덕유산, 월봉산, 금원산, 기백산, 거망산, 황석산, 봉우리만 보이는 괘관산, 백운산, 월경산, 봉화산, 천황봉, 사두봉, 팔공산, 선각산, 덕태산, 성수산, 등이 바라보였다. 한마디로 백두대간의 조망대였다. 2년 전엔가 왔을 때 처음(괴목마을)부터 끝(지보마을)까지 폭우 속에서 산행한 게 기억이 새로웠다. 무령고개 쪽으로는 정자가 언덕 끝에 세워진 게 보였다.

(10:40) ‘구조요청번호 1010’을 뒤로 하고 정상을 출발하여 동쪽으로 내려섰다. 초원지대를 지나서 모처럼 부부 등산객을 만났고, 51분 경을 넘어 ‘→샘터’ 표시를 따라가 보니 두 번째 샘은 부유물이 조금 있기는 하나 시원하고 맛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 것도 먹고 마시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57분 경 다시 출발하니 일단의 등산객들이 올라오길래 인사를 나누었다.

(11:13) 왼쪽에 내리막길이 보였는데, 이정표에는 ‘←괴목마을 3.0km, ↓정상 2.8km, ↑무령고개 1km’로 표시되었다. 나중에 미루어보니 ‘무령고개 1km’는 조금 잘못된 표시인 듯하였다. 조금 뒤 임도를 가로질렀고, 17분 경을 넘어 산불감시초소에 이르니 절개지이다. 오른쪽으로 꺾어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니 ‘↓장안산 정상 3.0km, ↑백운산 4.0km’ 이정표를 지났다.

(11:20) 비포장도로(장계면쪽은 포장되어 있음)에 다다랐다. 일단 장안산 산행이 끝난 것이다.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동쪽 절개지 위를 올라서니 가파른 오르막 능선길이 시작되었다.

(11:27) 너덜 계단 밑 갈림길에서 조금 더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1076봉인데, 일명 영취산이다. ‘영취산, 거인산악회’ 표시목과 ‘백두대간 영취산 1075.6.m, →백운산 3.6km, ←깃대봉 7.5km, ↓무령고개 0.4km’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조망은 그렇게 좋지 않은데, 금원산, 기백산, 거망산, 황석산, 월경산, 등이 바라보였다.

(11:33) 다시 출발하여 대간길을 따라 남쪽으로 나아가니 시누대가 무성하였다. 조금 뒤 오른쪽에서 갈림길을 만났고, 38분 경 안부에 이르니 오른쪽에서 또 하나의 갈림길이 합류하였다. 44분 경 공터에 이르니 조망이 좋아 금원산, 기백산, 거망산, 황석산, 괘관산, 등이 바라보였다.

(11:52) 갈림길에서 바위 왼쪽의 우회로를 따랐다. 12시 3분 경을 넘어 나를 보고 깜짝 놀란 등산객 1인을 만났는데, 사람을 만나 의외라 하며 백두대간을 타고 있다고 하였다. 모처럼 바윗길도 지났으나 시누대가 빼곡한 곳도 있었다. 24분 경 두 갈래 길에서 능선으로 바로 올랐다. 이어 가파른 오르막을 거쳐 12시 32분 경 삼각점과 헬기장이 설치된 백운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12:32) ‘白雲山 1278m’ 표석이 있는 정상에서 북쪽과 서쪽은 나뭇가지로 다소 시야가 가렸고 동쪽과 남쪽은 가스로 흐릿하였으나, 남덕유산, 기백산, 괘관산, 1232봉 등이 바라보였다.

(12:39) 백두대간 길을 버리고 표지기가 걸린 동쪽으로 내려서니 조금 뒤 황석산, 괘관산과 원통고개가 잘 보이는 암릉길이 짧게 이어졌다. 암릉을 내려서니 오른쪽에 내리막 갈림길이 보였고, 양쪽 다 표지기가 걸려 있었는데, 왼쪽 주능선길을 따라갔다.

(13:01) 갈림길에 이르렀는데, 오른쪽에 붉은색 표지기가 걸려 있었다. 직진하면 1157봉 오르막길이므로 오른쪽 우회로로 짐작되는 길로 들어섰다. 거미줄이 걸리적거리고 길 흔적이 흐린 데도 있었으나 ‘부산새한솔산악회’ 등의 표지기가 계속 눈에 띄었다. 그러나 길은 남쪽 지능선으로 계속 이어지길래 동북쪽 사면을 거쳐 북쪽으로 풀숲을 헤쳐 오르니 조금 뒤 다시 주능선길을 만나게 되었다.
(13:22) 돌탑이 세워진 언덕에 이르니 표지기와 함께 길이 남쪽으로 서서히 휘어졌다. 조금 뒤 오른쪽으로 풀밭에 이르는 갈림길이 보였으나 노란색의 ‘칠일산악회’ 표지기가 걸린 주능선길로 내려섰다.

(13:32) 오른쪽으로 표지기가 다수 걸린 갈림길이 보였으나 왼쪽(동남쪽)으로 내려섰다. 조금 뒤 Y자 갈림길이 나왔으나 오른쪽(능선)으로 계속 나아갔다. 등산객의 왕래가 조금은 있는 듯, 길 상태는 뚜렷하고 양호하였다. 37분 경 안부 4거리를 지났고, 39분 경을 넘어 바위 둔덕에 서니 조망이 좋아서 기백산, 괘관산, 월경산, 백운산 등이 바라보였다.

(13:52) 지도상의 928봉으로 짐작되는 둔덕을 지나니 곧 이어 풀밭을 이룬 언덕인데, 배낭 2개만 있고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풀밭을 이룬 언덕을 지나 2시 경 바위 바로 전 Y자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나아갔으나 잠시 뒤 두 길은 다시 만났다. 원통고개 쪽에서 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도로공사로 인하여 능선이 끊어진 데서 오른쪽으로 가파른 길을 내려서니 ‘서하면’ 표시판이 세워진 고개 마루이다. 고개 마루는 더위에 달아오른 도로의 열기만이 후끈거렸다. 어떤 잡지에서 근처에 샘이 있다는 걸 본 적이 있으나 오늘은 그냥 참아야 한다. 북쪽으로 조금 나아가니 괘관산 등산로임을 표시하는 표지기가 몇 개 보였다.

(14:04) 바로 출발하여 길 오른쪽(동쪽)으로 보이는 소로를 오르니 조금 뒤 3거리이다. 조금 쉬다가 11분 경 오른쪽 지능선 오르막으로 향했다. 가파른 오르막을 거쳐 17분 경을 넘어 언덕을 지났다. 조금 뒤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입가에는 허옇게 마른 게거품이 계속 떨어져 나왔다.

(14:30) 표지기가 많이 걸린 언덕에 이르렀는데, 이어 삼각점이 설치된 1032봉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백운산과 나뭇가지 사이로 괘관산이 바라보였다. 무심코 남동쪽으로 내려섰는데, 공터를 지나니 길 흔적이 없어졌다. 다시 1032봉에 이른 뒤 표지기를 찾아 북쪽으로 내려섰다. 사태 지역을 지나 표지기가 걸린 데를 지나니 길은 북쪽 내리막으로 계속되었다. 잘못 든 것을 확인하고 되돌아선 뒤 붉은색 ‘광목산악회’ 등의 표지기가 있는 데 이르니 북동쪽으로 덤불 사이로 내리막길이 보였다.

(15:03) 좌우로 흐릿한 내리막길이 있는 안부에 도착하였다. 식사와 물을 못 마신 데다가 긴 여정으로 기운이 많이 빠져 잠시 쉬다가 7분 경 다시 출발하였다. 오르막을 거쳐 9분 경을 넘어 헬기장을 지났고, 18분 경 둔덕인 헬기장에 이르니 시야가 트여 괘관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백운산도 잘 조망되었다. 다음 안부를 지나니 덤불 투성이 길이 이어졌다.

(15:29) 헬기장이 있는 언덕을 지났고, 40분 경 1121봉인 헬기장에 이르니 괘관산 서·동봉이 가까워졌다. 암릉의 왼쪽으로 비껴 나가니 까마귀가 기분 나쁘게 빙빙 돌아다녔다. 힘이 빠져 47분 경 5분 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출발하여 덤불 투성이인 안부를 지났다.

(16:20) 괘관산 정상 일대의 능선길을 따르니 풀숲으로 인하여 조망이 좋지 않았다. 양쪽 다 표지기가 걸린 T자 형 3거리에 이르러 왼쪽(북쪽)으로 내려섰다. 조금 뒤 조금 위험해 보이는(사실 그렇지는 않고 힘이 빠져 그렇게 보였을 뿐임), 조망이 확 트일 바위봉 밑에 이르렀는데, 체력의 한계에 왔는지 다리가 풀려 오를 수가 없었다. 그래, 이 바위봉(서상 쪽에서 보면 괘관산의 정상으로 보임)을 남겨둬야 다음에 또 올 생각이 나겠지!

(16:32) 되돌아서다가 서북쪽 골짜기(그러니까 둔덕을 이룬 괘관산 정상과 바위봉 사이)로 무작정 내려서기로 하였다. 지도상으로 경사가 완만해보이고 오늘 대전으로 돌아가려면 서상 쪽으로 7시 30분까지는 내려가야 장계 행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누대와 덤불 투성이라서 등걸을 헤치며 내려가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러나 한참 뒤 건계 너덜로 바뀌었고 가뭄으로 물이 거의 흐르지 않아 내려서는 데는 오히려 편하였다.

(17:51) 너덜겅에 세운 돌탑이 보여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그 후로도 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오랜 시간 길 없는 골짜기를 내려가보기는 처음이다.

(18:11) 양수용 호스가 보이는 데서 몸에 묻은 땀과 먼지를 씻어내기 위하여 잠시 쉬었다. 27분 경 다시 출발하여 소로 흔적을 따라가 계류를 벗어나니 농가 밑 비탈밭에 이어 출입문을 지나게 되었다. 과수원을 지나니 시멘트 길이 이어졌다.

(18:42) ‘1001 함양 24km’ 표시판이 선 도로에 이르렀다. 폐교된 운정국교는 운정연수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등산을 끝내었으니 조금 더 내려가 가게에서 콜라를 사 먹었다. 이처럼 맛있는 콜라를 마셔보기는 처음이다.

(18:58) 해평마을을 지나다가 트럭을 얻어 타고 서하 3거리에 이르니 휴게소가 있는데, 여기서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 고속도로 공사(그 당시는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공사의 막바지였음) 인부의 트럭을 얻어 타고 서상정류소에 다다랐다. 7시 10분 발 장계 경유 전주행 버스는 이미 떠났고 7시 55분 발 막차가 남아 있었다. 7시 58분 경 도착한 버스를 타고 장계로 향하였다.

이후 다시 이런 무모한 산행을 시도하지 않았다. 過不及이랬던가? 지나치면 毒이고, 蠻勇은 災殃의 시작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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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