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했던
설악에서의 하루(미시령에서 오색까지)
1. 날짜 : 2003. 5. 18(일요일) 2. 장소 : 설악산 미시령에서 오색구간 3. 인원 :
이근용(솔개), 강순임(가을), 나 이렇게 3명 4. 구간별 소요시간 -, 05:40 미시령 출발 -,
06:20 첫 번째 천연보호구역 표지석 -, 07:03 1318m봉(?) -, 07:30 황철봉 -, 07:43 저항령이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 -, 08:10 저항령 -, 08:40 오르막 너덜통과(아침 식사) -, 10:10 마등령이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 -, 10:25 마등령(1시간 휴식) -, 11:27 마등령 출발 -, 11:44 나한봉 -,
12:40 1275m봉 -, 13:45 신선봉 -, 14:08 희운각(점심) -, 14:56 희운각 출발 -,
15:52 소청도착 -, 16:05 중청산장 -, 16:25 대청봉 -, 18:22 오색오늘은 언제 가도 설레이는 설악산엘 간다 새벽 3시 나와 집사람과 딸, 근용이 아우님, 가을님 그리고 제일 고마운 최원경(원시인)
이렇게 6명이 춘천을 출발하여 4시 40분경 한계리 검문소 근처 휴게소에서 아침을 매식하고 미시령에 도착하니 5시 35분경이다
미시령 정상엔 안갠지 구름인지로 지척을 분간하기도 힘든 악조건 앞서 가신분들의 산행기가 떠오르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차키를
운전면허있는 원시인답지 않은 원시인님에게 맏기고 집사람이 주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는 솔개와 가을과 같이 곧바로 길을 건너 철책을 우회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천연보호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된 지역을 도둑산행하는 나에게 길가 나뭇잎이 밤새내린 안개비를 한껏 머금고 있다 뿌려대니 몇걸음 가지 못해
허리 아래로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다 계속 이렇다면 ...
한 200여m 올라 갔을까 공연장의 커튼이 걷히며 무대가 밝아오듯 한순간 구름위에 붕 뜬듯 사방이 훤해진다 이제부터는 마뭇잎에 물기도
없고 약간 흐린 날씨 걷기 딱 좋은 조건이다 첫 번째 산다운 산 오르막을 걷고 있는데 앞에 웬 눈?
솔개와 가을은 흰 바위, 나는 눈이라며 의견이 분분하다 이럴 때 뭐라더라 백견이 불여일촉 ㅎㅎㅎ 맞나 계곡이라면 또 몰라도
능선에 눈이 라니 쌓여 있는 양으로 봐서는 앞으로 한달은 있어야 다 녹을 것 같다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다 못해 눈을 비집고 나오다 동상이 걸려 누렇게 뜬 원추리잎인지 뭔지하는 풀을 보니 안쓰럽다(안ㅆ런건 그쪽 사정이고
요것도 카메라에 저장) 지난 겨울 눈이 많이 오긴 엄청 많이 왔나보다(이후로도 등산로에서 조금 빗겨난 곳에 2곳이 더 있음) 한
10여분 지나 첫 번째로 보이는 천연보호구역 표지석을 지나고 1차 너덜이 시작된다
익히 듣고는 있었지만 엄청난 너덜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그렇지 바위에 물기라도 있다면 ...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경치가 좋아서 그런지 너덜도 즐겁다
너덜 주변엔 진달래가 이제사 꽃망울을 터트리며 바위와 어울려 장관이다(이후 대청봉까지 철쭉은 이제사 꽃망울이 올라오고 진달래가
한창임) 솔개아우님은 어제 제천시계 종주를 마치고 눈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이곳에 왔는데도 펄펄난다 솔찍하게 저 체력이 부럽다.
샘이 날 정도로 ...
안개에 쌓인 외설악, 그 위로 솟아오른 울산바위와 주변의 암봉들 절경에 취해 가다보니 삼각점과 천연보호구역 표지석을 지난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이 황철봉인 듯 하다 잡목이 우거진 능선상에 있어 전혀 정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곳이지만 좀 지나 저항령이 내려다 보이는
암봉(이곳이 전망도 좋고하여 황철봉으로 오인하기 쉬움)에서 지도를 놓고 자세히보니 이곳이 황철봉이 맞지 않나 싶다
저항령이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 바위위에 올라서니 구름위에 떠 있는 울산바위가 지척이고 앞으로는 내가 갈 연봉들 다른 수식어 필요없이
그냥 좋다 이제부터는 내리막 너덜 그리고 나타나는 저항령 펑퍼짐한 곳에 민들레와 피나물이 지천으로 피었다
잠시 쉬며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본다 오늘 이러다 대청에 가기도 전에 메모리가 부족하지 않을지 ... 또 다시 이어지는 너덜
차라리 저항령 전 너덜이 좋다 이곳부터의 너덜길은 자갈과 같은 작은 돌로 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지만 걷기는 영 망했다
너덜이 끝날 즈음 어제의 산행과 선잠으로 피로가 밀려오는지 아우님이 아침을 먹자고 해서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침 참을
먹어본다 가을님의 내놓은 김에 쌓아 먹는 양념찰밥과 입가심으로 작년 공룡을 넘다가 뜯어 말렸다는 만병초 다린물(한시간 후에 사단이
벌어짐) 이곳부터 저항령이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까지 구간은 봉우리를 넘는 곳이 하나도 없고 죄다 우회한다
그렇지만 바위 사이로 내설악쪽이 간간이 시야가 터지는데 구름위에 떠있는 공룡과 범봉이 압권이다 좀 조심해야 할 것은 이제 잠에서 막
깨어난 살모사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내 이거 괜히 쓰는건 아닌지, 잡지는 맙시다) 산에는 이런 놈도 많이 있어야 하는데
긴 너덜을 통과하자 마등령이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 봉우리다 전망이 최고다 외설악 어느 한곳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북동으로 울산바위부터 남동으로 공룡을 거쳐 희미하지만 대청봉까지, 설악동과 천불동이 안개구름으로 가려있는 것이 좀 흠이지만
이만하면 나무랄데 없다
마등령 정상 표지목이 있는 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사람과 마주친다 백두대간 종주중인 부산분들이다 마등령에 내려서자 좀전에 본
백두대간을 종주중인 팀원 몇이 쉬고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체사진 한장 찍고 막 출발하려는데 가을님이 어지럽다며
일어서다 다시 주저 앉는게 아닌가
증상도 묘해 이곳에서 하산을 해야 하는건지 기다려야 하는건지 막막하고 두어번 일어서려고 하다 주저 앉는데 안스럽다 본인 얘기로는
마지막 너덜오름에서 너무 힘이 들어 만병초 달인 물 한병을 마신 이후로 몽롱해지더라고 하는데 일단 기다려 본다
미안하다 요즘 시어머니 병수발로 힘들었을텐데 우리 일정만 생각하고 너무 몰아친건 아닌지 암우님은 무료함을 달래려고 참나물을
뜯어 백두대간팀에게 나누어도 주다 그것도 시들해지자 같이 눕는다(무척 피곤한가 보다) 그동안 한무리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며 누워있는 사람을
보더니 진통제라며 주어 그것도 먹어보고 ...
한 한시간여가 지난 뒤 겨우 일어서는데 솔찍히 포기하자고 하고는 싶은데 말이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배낭은 솔개가 메고 천천히
걸어보는데 신선봉을 지나면서도 얼굴이 펴지지 않고, 가능하면 천천히 걸으며 틈만나면 오이도 내어보고 참외도 깍아본다
1275m봉을 앞두고는 조금 얼굴색이 돌아오며 이제 제법 말수가 늘었다 살만한가 보다 포효하는 곰 형상을 올려다보며 숨을
헉헉거리며 1275m봉에 도착하니 한 20여명이 식사중이다 식사중인 분들에게 아우님이 마등령에서 쉬며 뜯어온 참나물을 나누어주자 그 귀한
소주 막잔을 주어 얻어 마시고는 신선봉을 향한다
다행인 것은 전만 같지는 않지만 가을님이 많이 좋아져 그런대로 예상시간과 맞아 간다는 것이다 신선봉까지 오며 뒤돌아 본 공룡이
환상이다 또 군데군데 막 피어난 솜다리(에델바이스), 돌단풍, 앵초(이런거 캐지 맙시다, 솜다리 욕심나시는분 2천원만 들고 절
찾아오세요. 얼마든지 사드리겠읍니다. 참 입장료 천원인가 추가) 이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욕심껏
신선봉은 좌로 올라야 하는데 우로 도는 바람에 중턱으로 돌아 무너미고개를 거쳐 희운각에 도착하니 오후 2시 8분 가을님이 그래도
버텨줘서 마등령에서 이곳까지 2시간 40분 주인이 물길러 가서 자리에 없지만 기다릴 여유가 없다 막걸리 한통 들고와 한잔하고 나니
더바랄게 없다
두어순배 돌 즈음 주인이 돌아와 값을 물으니 물경 9천냥 비싸긴 하지만 이곳까지 운반하려면 그럴만도 하겠다 가을님과 아우님이
싸온 밥과 반찬 거기에 마등령에서 뜯은 나물 진수성찬이다 옆에 계신분들에게 밥과 나물을 나누어 드리니 막 담아 잘 익은 김치를 나누어
주시고 하여간 50분이 넘는 긴 만찬을 끝내고 소청봉 오름길에 들어선다
좀 전에 먹은 막걸리가 물구나무를 서 죽겠는데 아우님은 이제 살 것 같다며 올려치기 시작한다 요런건 한번에 올려쳐야 한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뒤를 보니 안개구름 위로 솟은 공룡과 범봉 그리고 마등령쪽 암봉들 카메라에 몇컷 담을라 치면 달아나니 죽을 맛이다 아까 마신
막걸리를 버렸으면 좋겠는데 9천냥이 아깝고
중간에 딱 한번 기다려주더니 사진찍는 사이에 둘이 또 내빼버린다 죽어라 쫒아가니 소청봉 현재시간 오후 3시
52분 희운각에서 55분, 무지하게 걸렸다 솔개는 여기서 산행을 접기가 아까운 모양이다
오늘 계획대로 혼자 한계령으로 내려갈테니 둘은 오색으로 내려가란다 힘들더라도 의리없이 쓸쓸하게 혼자가게 내버려둘 순 없지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하니 가을도 좋탠다 산에만 오면 나만큼이나 욕심들이 많은 사람들이다
결정을 하였으니 서둘러 중청을 끼고 돌아가려는데 중청대피소에서 직원이 나오며 못 간다고 소리를 지른다 거기 출입금지 팻말이
안보이느냐고 사실 돌아가는 곳에는 출입금지 팻말이 없고 조금 내려와 삼거리 길목에만 설치해 놓았다 중청에 내려가 사정사정해 보지만
막무가내다
다른곳은 다 열어 놓고 공룡구간과 한계령구간만 유독 이번달말까지 출입을 금지시키는 이유가 납득이 가질 않는다(나름대로 이유야
있겠지만) 근용이 아우님이 성질이 났는지 휑하니 대청봉으로 올라간다 애꿋게도 따라가는 나와 가을만 죽을 맛이다(내가 못가게 한 것도
아닌데) 대청봉에 올라가 다음에 오색에서 올라와 남교리로 가자니까 그제서야 안색이 좀 핀다 (하여간 산에 대한 욕심은
...)
16시 25분, 우여골절 끝에 미시령을 출발하여 10시간 45분만에 도착했다 물론 오늘 계획은 한계령까지였지만 힘에 겹지만 책임감
때문에 내색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준 가을님 그리고 어제 제천시계를 돌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최악의 상태에서도 끝까지 같이해준 근용이 아우님
모두 한없이 고맙다 오색 하산길 가을님이 힘에 겨운지 늦어지며 오색매표소를 두어시간만에 통과하니 원시인님이 길 바로 맞은편에 내 차를 같다
놓고 집사람과 한잔하는 중이다
같이 거들고 싶은 맘이야 굴뚝 같은데 운전을 해야 하니 꾹 참고 막히는 길을 뚫고 춘천에 들어오니 9시가 넘어간다 주부인 가을님을
집에 내려드리고 나머지는 식당으로 직행하여 한잔하다 보니 날이 바뀌어서야 집에 들어와서는 대충 씻고 누우니 꿈속에서도 구름위에 떠있는 설악의
공룡를 넘나든다 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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