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장엄하고 장중하고 장쾌하다...
열네 명의 후배와 한 명의 친구에게 자랑삼아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노고단을 거쳐 지리산 종주에 나섭니다. 시간나면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내내 하루 동안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만 오고 함께 가겠다는 이는 없다. 하긴 주중인 듯, 주말인 듯 애매한
날이라 그러려니 여기고 길을 나섰다. 서울역으로 가는 도중에 고교 동창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부터 준비하여 동행하리라고
하니 한편 반갑고 한편 걱정이다. 도대체 서너 시간 동안 어찌 준비하여 같이 간다는 것인가? 그러나, 연전의 종주를 포함한 두
차례 지리산 등산 동행과 지난 겨울 심설 설악산 산행의 동행을 떠올리며 이내 걱정을 접기로 했다. 오히려 그 친구가 나를 걱정할
지경이니 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렇게 5월의 지리산 종주가 시작되었다.
2003. 05. 17 05:52
노고단산장을 떠났다. 노고단에 오르니 반야봉과 지리 연봉의 능선이 눈에 부시다. 06:03 노고단에서 아침 햇살의 마중을 받으며 힘찬
종주의 첫 발을 내딛었다. 매년 종주를 해 오긴 했으나 5월 지리산 종주는 처음이다. 능선 따라 돼지평전, 임걸령, 삼도봉, 화개재,
토끼봉, 명선봉을 거쳤다. 그리고 연하천대피소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었다. 13:17 연하천대피소를 출발하여 벽소령대피소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벽소령대피소에서 1박하기로 맘먹었던 일정을 바꿔 세석까지 가기로 했다. 15:12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하여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을 거쳐 세석평전에 도착한 시각은 18:55이었다.
다음날 아침 06:18 세석대피소를
출발했다. 상쾌한 날씨에 세석평전의 화원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천천히 즐기며 촛대봉에 오르고 삼신봉을 지났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연하봉의 경치를 한껏 구경하는 기쁨을 누렸다. 08:35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고 차를 한 잔 끓여 마신 뒤, 08:50
지리산 종주의 종착점인 천왕봉을 향하여 출발했다.
근래에는 백두대간 일부 구간 종주 때와는 달리 즐기는 산행을 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영 글러먹은 건달처럼 한눈을 팔면서 느릿느릿 간다. 멀리 가까이 보다가, 가까이 멀리 보기도 하고 작게
크게 보기도 하다가, 크게 작게 보기도 한다. 무슨 선문답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한 호흡, 한 걸음만 늦추면 영 달리 아주 많은
것이 보인다.
드디어 09:55 천왕봉에 올랐다. 천왕봉에서 취사를 하는 난장판은 별로 입에 담고 싶지 않다. 그 천왕봉
표지석을 감싸고 앉은 어느 산악회원들의 술타령은 영 그렇다. 그렇거나 말거나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지리 연봉은 참으로 장엄하고
장중하고 장쾌하다.
종주 내내 표지목을 헤아리며 위치와 거리를 가늠했다. 천왕봉 01-52번에서 끝난 표지목은 500m마다
부설되어 있다. 01-12를 지나면 화개재-뱀사골대피소가 나온다. 01-29를 지나자마자 벽소령대피소가 나오고, 01-41을
지나면 곧 세석대피소가 나타난다. 01-42는 세석대피소를 출발하자마자 만날 수 있다. 표지목 간의 거리가 500m 정도이니
노고단에서 세석까지는 약 21km일 것이다.
연하봉은 01-47에 있으며 01-48을 지나면 곧바로
장터목대피소이다. 01-49는 제석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초입에 있고, 01-52는 천왕봉에 있다. 하산로도 마찬가지이다.
작년에 보니 대원사 하산로 유평리까지는 천왕봉 아래에 있는 07-27부터 줄어들어 07-01에서 끝난다. 유평에 가면 표지목
07-07과 함께 천왕봉 10.2km, 치밭목대피소 6.2km, 새재 3.7km, 대원사 1.5km라 쓴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백무동 하산로는 장터목대피소 아래의 10-12에서 시작해 10-01에 끝난다.
어쨌든 그렇게 종주가 끝났다. 종주를
하며 아주 많은 꽃들을 만났다. 역시 고산에서 맑은 이슬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뭔가 달라도 달랐다. 꽃과 산 그림들을 정리해야 할
텐데 맘먹은 대로 될지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