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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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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산행기
2003.5.15(목)
무등산관광호텔 앞 구멍가게에서 점심 대용으로 쵸크파이와 비스켓을 구입하고 등산로 입구를 여쭤보니 할아버지께서
케이블카 아래로 등산로가 있으니 따라 올라가면 된다고 친절히 가르쳐 주신다.(10:00)
포장도로가 끝나고 등산로 따라 한 구비를
돌자 골프연습장과 동원사의 대웅전이 한눈에 보인다. 아니! 절 안마당에 골프연습장을 세운 꼴이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사찰과 가장 가까운 곳에 세워진 골프연습장일 것이다.
동남쪽으로 이어진 등산로 따라 한참 올라가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 쯤 능선에 도착한다.(10:20) 장원봉 ↔ 향로봉 제2지점이라는 119구조요청 신고안내 표지판이 있다. 남서쪽 능선을
따라 가면 매점과 식당이 있는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하고(10:25) 계속 진행하면 팔각정에 도착한다.(10:40)
아마
이곳이 366m봉일 것이다. 광복50주년 기념으로 건립한 국기게양대가 있고 광주 시내를 조망하는 유료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발아래 인구130만명이 거주하는 광주가 펼쳐져 있다. 간밤에 비가 온 뒤라서 인지 시야가 깨끗하다. 산으로 에워싸고 있는
분지 위에 형성된 도시가 크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경사가 급하게 떨어지는데 일단의 아줌마 등산객이 지나가면서 지산유원지 가는
길이 맞는다고 묻는다. 내가 지산유원지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자세히 알려준다. 사실은 무등산 정상 가는 길이 맞는다고 내가 묻고
싶었는데 일이 묘하게 되었다.
고도가 점점 낮아져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동쪽에 중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보인다. 아마도 팔각정 뒤에서 갈라지는 능선 같다. 되돌아 가니 능선으로 트래버스 하는 소로가 뚜렷하고 능선에 도착하자 넓은
등산로가 이어져 있다.
조금 전 지나친 아줌마들과 다시 조우하고 이 길은 지산유원지 가는 길이 아니다라고 하니 바람재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그들을 앞질러 남동쪽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부지런히 걷는다.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작은 봉우리 위에 서자
바람재에서 중봉으로 이어진 무등산이 가까이 보인다.(11:40)
북쪽으로 545m봉 위에 세워진 산림감시초소가 보이고 남쪽으론
증심사 계곡이 보인다. 휴식을 취하면서 점심대용으로 쵸코파이5개와 비스켓 반봉지를 먹고
출발한다.(12:15)
바람재(470m)에 도착하니(12:30) 안내판과 의자가 갖추어진 휴게시설이 있고 원효사로 가는 도로는
포장되었지만 중머리재로 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지만 잘 정돈 되어 있다. 남쪽으로 정겨운 산보길과 같이 느껴지는 단풍나무 터널 속을 걸어가면
너덜경 약수터에 도착한다.(12:40) 시원한 물을 한 컵 가득 마시고 생수병에 물을 보충한다
터널지대 속에서 펑펑 쏟아지는
약수는 한국의 100대 명수라는 안내판이 있다. 이곳은 덕산너덜지대이다. 너덜은 너덜경의 준말으로써 돌이 많이 깔린 비탈을
말한다. “∼너덜은 화산암이 풍화되면서 흙으로 되돌아가는 자연의 윤회과정을 볼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다.∼” 라는 안내판이 있고 태양열
공중전화 부스도 세워져 있다.
토끼봉(460m)을 지나고(12:50) 봉황대에 도착한다.(13:05) 200m거리에는
천제단이 있다. 돌탑과 허름한 제단이 이제는 어느 누구도 이곳에 와서 재를 올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무등산 산허리를 가로 지르는 등산로는 백운암터(540m)로 이어져 있다.(13:20) 산죽지대를 지나 중봉에서 세인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안부에 올라서면 평탄한 초원이 펼쳐진 중머리재(560m)에 도착한다.(13:30)
말잔등처럼 넓은 초원에 소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것을 스님의 머리에 비유하여 중머리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무등산은 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등산로 곳곳에
샘터가 있다. 이곳에도 샘터는 있다.
동쪽으로 등산로 따라 산행 하는데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비는 곧 그치고 다시 햇빛이 비친다. 5월의 태양도 무척이나 뜨겁다. 용추폭포에서 올라 오는 계곡길과 만나는
용추삼거리에서 북쪽에 있는 중봉을 향하여 오른다. (13:50)
중봉하단삼거리(820m) 능선에 올라 서자 바람이 세차게
분다.(14:00) 땅 위에 붙은 키 작은 철쭉이 피 빛보다 더 붉은 꽃으로 활짝 피어 있다.
23년 전 광주의 5월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불 붙은 민중항쟁이 붉은 피로 얼룩졌다. 무등산은 알고 있다. 그날의 진실을! 그 못 이룬 꿈이 한 송이
붉은 꽃으로 아름답게 피워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멀리 광주의 도심은 무심한양 회색의 건물로 채워져
있다.
작열하는 태양을 온 몸으로 받으며 올라가면 중봉에 도착한다.(14:20) 1965년 군부대가 주둔한 곳인데 1998년
이전하고 1999년 식생복원이 완료한 곳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정비된 등산로 따라 가면 한국통신 중계소로 가는 도로를 만나는 구
군부대정문에 도착한다.(14:30)
도로 길섶에는 노랑 민들레가 무리 지어 피어있다. 입석대 올라가는 등산로로 접어든다.
10여분 올라가면 수십m의 돌기둥이 열을 지어 솟아 있는 입석대(1017m)에 도착한다.(14:50)
사진으로만 보았던
해금강 총석정을 산 위에 옮겨 놓은 것만 같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총석정의 신묘함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금란굴 돌아들어 총석정에 올라가니, 옥황 상제가 거처하던 백옥루의 기둥이 네 개만 서 있는 듯하구나. 옛날 중국의
명장(名匠)인 공수(工수)가 만든 작품인가? 조화를 부리는 귀신의 도끼로 다듬었는가? 구태여, 육면으로 된 돌 기둥은 무엇을 본
떴는가?”
돌기둥에 새겨진 음각 글씨는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희미하다. 석간수가 방울방울 맺히는 곳에는 녹색의 이끼가 자라고
있고 물이 고인 돌 웅덩이에는 까만 올챙이가 무리 지어 노닐고 있다.
서석대로 올라가는 능선에는 키 작은 관목만이 자라고 있어
무등산 정상이 한 눈에 보인다. 천왕봉(1186.8m)을 중심으로 앞에는 뾰족한 절벽으로 솟은 인왕봉이 있고 뒤편에는 지왕봉이 있는
사이에 남향의 군막사가 여러 채 있다.
저녁 노을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난다는 서석대 꼭대기는 의외로
평탄하다.(15:10) 깎아 지른 절벽 아래는 오금이 저려 보지 못하지만 광주 시가지는 한 눈에 보인다.
장불재에서 안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마능선이 부드럽게 뻗어있고 빛나는 햇빛을 받은 철쭉이 요원의 불길처럼 붉게 피어 있다. 산상의 호수인양 동복호가 물을 가득
담고 있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작은 산 뒤에는 더 높은 산이 중첩되어 파노라마처럼 검게 솟아 있다. 아마도 앞에 있는 산은 모후산,
백아산 등이고 뒤에 있는 산은 천관산, 팔령산, 조계산, 백운산, 지리산 노고단일 것이다.
철조망으로 막아 놓은 정상은 갈 수 없고
이제는 하산한다. 입석대를 지나 장불재(900m)에 내려 선다.(15:45) 표지석은 비스듬히 기울어졌고 통신 중계소 입구에는
방송국 사륜구동 승용차가 주차해 있다.
장불재를 넘어서면 화순군 이서면이다. 샘이 있고 원두막이 있고 식탁이 있는 쉼터를
지나 동쪽에 있는 규봉암으로 간다. 숲 속으로 나 있는 외길은 고도차가 거이 없는 등산로이다.
지공너들을 지날 때 석불암을
찾아 보지만 허탕을 치고 규봉암에 도착한다.(16:17) 간식을 먹고 인기척이 없는 경내를 둘러본다. 무등산 3대 석경(石景)
가운데 가장 빼어나다는 규봉(950m)과 어울린 규봉암이 고즈넉하게 앉아있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잘 다듬어진
돌기둥 사이에 관음전과 삼성각 및 요사채가 있고 종각에는 큰 종이 있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은 고여 있고 작은 뜰 모퉁이에는 분홍색
패랭이꽃(?)이 예쁘게 핀 조그마한 화단이 있다.
넓고 반반한 바위가 보인다. 광석대이다. 광석대와 서석대, 입석대를
무등산3대 석대라고 한다. 앞에 보이는 것이 삼존석(여래존석, 관음존석, 미륵존석)일 것이다.
규봉에는 두 바위 사이로
길이 나 있고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어 문바위라 하는 데, 조선시대 인물인 김덕령 장군이 문바위에서 화순 동면 청궁마을 살바위까지 화살을
쏘고 백마가 먼저 도착하는지를 시험하였다가 화살을 찾지 못하고 백마가 늦었다 하여 백마의 목을 치니 그제서야 화살이 날아와 바위에 꽂혔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또한 규봉에는 십대가 있는데 광석대를 제외한 송하대, 풍혈대, 장추대, 청학대, 송광대, 능엄대, 법화대,
설법대, 은신대는 보인다 해도 찾을 길 없다. 특히 도선국사가 은신대에 앉아서 조계산의 산세를 살펴 송광사 터를 잡았다고 전해오는
은신대는 꼭 찾고 싶지만 청정도량이어서 물을 곳이 없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주변 경치를 조망한다. 발아래 물을 가득 담은
논이 펼쳐진 마을은 한적한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저 멀리 동복호 너머에 있는 조계산을 가름해 본다.
빈 절은 인적이 없어
고요한데 솔잎에 스치는 바람소리만 허공에 맴돌아 허전하기 그지없지만 아쉬운 마음을 안고 출발한다.(16:30)
북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 따라 30여분 산행하면 북산으로 뻗은 능선 위에 꼬막재(710m) 안내판이 있다.(17:05) 지도와 다른 곳에 설치되어 있어
의아하지만 19:30분 비행기를 타려면 부지런히 가야만 한다.
한참 이동하니 까만 대리석의 꼬막재(640m)표지석이 또
나타난다.(17:20) 명색이 무등산 도립공원인데… 안내판의 정비가 필요하다. 샘터에서 물 한 컵을 단숨에 마시고 빠르게 계곡으로
하산한다. 오성원을 지나고 몇 명의 등산객을 추월하여 무등산장에 도착한다.(17:45)
버스 종점에 대기하고 있는 시내버스를
타자마자 출발한다. 시내로 접어들자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에게 공항 가는 버스 타는 곳을 여쭈어 보니 자신이 내리는 곳에 하차하면 된다고
하여 시내에서 함께 내렸다.
교차로 신호등을 건널 때 공항 가는 버스가 신호 대기 중이다. 뛰다시피 걷는 모습이 다리가
약간 불편한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친절히 버스정류장을 가르쳐 주면서 빨리 가라고 하신다. 고마운 마음 이를 때 없다.
버스를 타고 공항 입구에서 하차하여 약간 걸어서 공항라운지에 도착한다.(18:55) 무등산 산행은 광주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면서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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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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