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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양산(999m)과 봉암사 산행기

  올린이 : 박현숙    2003/05/16 (올린날)              한국의 산하 | 산행기 게시판

희양산(999m)과 봉암사 산행기

희 양 산 (999m)봉 암 사


2003. 5. 8(음력4.8 석가탄신일)
경북 문경시 가은읍, 충북 괴산면과 연풍면



만일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단 하루밖에 없다면 과연 나는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의 가족들을 모두 불러 둘러앉아 그냥 이야기하며 즐거운 척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 못한 모든 일을 생각해내서 반성을 할까?
그러기에는 너무 잘 못한 일이 많다.
그도 아니면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찾아다니며 일일이 빌어 볼까?
누구에게 무엇을?
그렇다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고......
이렇게 주어진 기회에 부처님 찾아뵈러 떠나는 것도 극락왕생의 길이 되려나?
속된 중생의 머리가 갑자기 혼란 속에 빠지며 어느새 무아지경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연둣빛 싱그러운 오월의 둘째 주 목요일,
여기가 어디쯤일까.
새로이 돋아나는 새순 끝에 피어있는 송화를 솔가지가 흩뿌리는 바람에 멀리 산 중턱이 뽀얗게 피어오르다 가라앉는다.
저만큼 언덕에는 이미 피었다 저버린 사과나무의 연록색 새 순이 토실한 열매를 잉태한 채 비바람에 자신을 희생하며 영글어 가고 있는 분주해 보이는
들녘을 지나 일년에 단 하루 초파일에만 일반인들에게 출입을 허가한다는 문경시에 있는 봉암사 찾아가는 길이다.
괴산군의 좁디좁은 은티 마을길을 커다란 산악회 차량들이 가득 매워버려 교통 대란이 일어나고 있어 일년에 단 하루라고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번거롭고 괴롭겠다는 조금은 염려스런 생각이 들며 바쁜 농사철이라서 더욱 미안해진다.

은티 마을에서 지름티재로 오르는 길의 중간쯤 갈림길에는 일명 해골 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오른쪽은 지름티재로, 왼쪽은 성터로 오르는 길이다.
우리는 지름티재 쪽인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부지런히 오르는데 앞서 올라간 다른 산악회 팀 몇 명이 되돌아 내려오면서 지름티재에서 스님과 처사들이 그 곳을 통과하지 못하게 지키고 있다며 우리보고 별수 없을 거라며 서둘러 내려간다.
왠지 맥이 풀리는 이 기분은 지금까지 가벼웠던 발걸음을 천근 만근 만 천근으로 만들어 결국 돌아서게 했다.
눈앞에 목적지를 두고 올라 왔던 길을 되돌아오면서 그래도 봉암사 측에 박수를 보냈다.
산군들의 얄팍한 생각에 맞서 부처님을 모시는 도량을 지키겠다는 스님들을 그 누가 잘못이라 탓하겠는가?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으로 다시 땀을 쏟아가며 내 오늘 어떤 고행이라도 감수하겠다 마음먹고 힘을 내어 오른 산성 터는 신라와 후백제가 국경을 두고 다투던 접전지로 929년 신라 경순왕 3년에 쌓은 성터로 원형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힘이 들었다. 다리도 아프고, 다행이 배속에서는 오늘따라 무척 얌전했다.
전날 호우 주의보까지 내려 많은 비가 와서 산 전채가 물에 빠져 넘실대고 질퍽거려 길이 엉망인 곳을 두시간을 쉬지도 못하고 오르내렸더니 무릎이 아파 죽겠다며 쉬어 가자 아우성이다.
시원한 바람에게 땀방울을 내어주며 잠시 쉬는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어서 오라고 남자 분들이 올라가며 재촉을 한다.
확 트인 너른 바위 위에 올라서니 기막힌 광경이다.
이 기분 때문에 힘들여 오를 것이다.
와!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연둣빛에서 녹색으로 변해 가는 잎새 사이로 거대한 바위 절벽이 수직으로 버티고 있고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우리에게 바람까지 보너스로 제공한다.
고개를 쑤욱 빼고 끝이 어디쯤인지 보여주지도 않은 깊은 계곡을 내려다본 나는 얼른 뒷걸음질을 해야 했다.
시퍼런 가지를 뻗어 낙아 챌 듯이 꼿꼿이 서있는 오월의 싱그러운 나무들 기상이 마치 나를 부르는 듯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여기서 내려가면 언제 올라올지 모르겠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계곡을 향해 중얼거리며 또 발길을 옮겼다.
거짓말 쪼금해서 열 발자국쯤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서 있는 곳이 있어 헤집고 들어가며,
"여기가 정상입니까?"
"그렇다네요."
"정상 표지석은요?"
"스님들이 오래 전에 뽑아 버렸답니다."
어느 회원의 말씀이 계속 이어져서 귀동냥을 해본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지만 들은 데로 옮겨 보자면, 20여 년 전, 그 고장 젊은 청년들이 봉암사 계곡의 멋진 풍경을 탐하러 왔다가 패싸움이 벌어지면서 그중 한 청년은 사망을 하고 또 한 청년이 불구가 되는 불상사가 생겼었다 한다.
신성한 사찰 내에서 그런 끔찍한 사고가 생겼으니 스님들께서는 당장 사찰을 봉쇄하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시키면서 봉암사로 향하는 산행로 까지 막아 수행 도량을 보호함과 동시에 스님들께서도 수행하시는데 전념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지킨다는 이야기와 민간인들 출입이 금지되는 바람에 비구니가 되겠다는 분들의 수행 도량으로, 또 민간인들의 출입을 금지 시켜도 좋다는 허가를 문공부에서 정식으로 지정까지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어깨에 바랑을 메고 또다시 고행 길을 서둘러 울산에서 왔다는 에델바이스 산악 팀을 따라 하산을 서둘렀다.
남의 팀을 따라 가게된 동기는 어이없게 우리 팀은 처음부터 우왕좌왕 가이드들이 오합지졸처럼 흩어져 믿을 수가 없이 되 버렸다.
대장이 팔을 다쳐 산행을 못하게 되자 이렇듯 리더의 빈자리가 크게 생긴 것이다.
안내 지의 일정대로가 아닌 전혀 다른 계곡으로 하산이 됐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죽 밭은 키가 작은 곳을 지나면 어느새 키를 훌쩍 넘어 산죽 터널을 만들어 주며 헤쳐가라는 듯 길을 막고 애를 먹인다.
과연 산죽의 시퍼렇게 선 날은 그들만의 자존인가?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서인지 무성한 산죽 밭을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대줘가며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계곡의 급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쏟아진 비는 산군들을 그저 쉽게 보내려 하지 않는다.
징검다리를 멀찍멀찍 띄어 놓고 어디 건너 뛰어 보라는 듯 급한 물살은 쏜살 같이 바위 위를 점령한 채 재촉하는 듯 짓궂은 표정으로 다가온다.
투명한 맑고 멋진 물살이지만 어찌나 많이 뭉쳐 다니는지 산군들은 급류를 피하여 연신 큰 바위를 이리 뛰고 저리 훌쩍 몇 차례나 뛰어 다녔는지......
그러다 어느 산군 그만 급한 물살이 발목을 잡는 바람에 한동안 사정사정 하더니 빠져 나온다.
어느덧 하산 끝 지점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스님과 처사들께서 지키고 있었는데 이미 내려온 산군들을 나무라진 않아 별탈 없이 지나왔다.

몇 가구 되지 않은 이름 모를 마을에 들어와서 뒤돌아 희양산을 올려다보니 아!! 정말 교옹장하다.
정상이 저렇게 생겼었구나!
하늘에서 쏟아 놨는지 땅속에서 밀어 올렸는지 한 덩어리의 거대한 바위가 초록빛 방석 위에 올려져 있는 듯 위풍당당하게 우리를 내려다 보고있었다.
내가 저기를 다녀왔구나. 또 한번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진다.
사람이 모습이나 생김새가 각각 다르듯이 산 역시 똑 같은 형태의 모양이 없음을 새삼 느끼며 봉암사로 발길을 재촉했다.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897년) 지증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계종 특별 선원으로 이 땅의 마지막 남은 청정 수행 도량으로 일반인은 물론이고 불자들까지도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곳으로 오직 단 하루 사월 초파일 하루만이 출입이 허용되는 날이다 보니 끝도 없이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봉암사의 꼿꼿한 자존은 해방 직후 1947년에 성철스님, 자운, 청담, 향곡, 월산, 혜암, 법전스님 등이 해방을 맞아 이곳으로 집결하여 조선 500년을 일제 36년이 짓밟고 망가뜨린 불교의 모습을 찾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치심대로 살아 보자 다짐하고 스스로 농사짓고 나무하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규정을 지켜가며 칠성단과 산신각을 허물고 뒤죽박죽 되어버린 가사, 장삼, 발우를 새로 만들어 사용했으며 그로부터 지금까지 조계종은 이를 계승하고 있다한다.
사찰 내에 도착해서 대웅전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합장을 한 뒤에 본 눈에 띄는 특이한 광경은 연등이 아닌 순백의 등을 가득 달아 놓아 봉암사 전채가 하얗게 변하여 오히려 대웅전의 단청이 낯설게 느껴지는 기분은 나 혼자 만의 느낌일까?
잠시 기웃거리다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둘러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산점이 변경되는 바람에 여러 가지 귀한 국보급과 보물, 명승지들을 두루 살펴보지 못하고 지나쳐야 하는 아쉬움을 내년, 후년을 기약하고 돌아서서 오는 주차장까지의 거리는 3km.
마음을 다잡고 씩씩하게 걷는데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여인이 눈에 잡혔다.
우리 두 여인은 사월 초파일 단 하루를 이렇게 마감하며 작은 성취감을 느꼈던 점을 의견일치하고 즐거운 행진을 했다.
후회 없는 하루였다.
단 하루의 기회가..........



thank you.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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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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