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산행기 - 한국의 산하 "산행기 게시판"에 올려진 산행기 입니다.

 

  제천시계 12구간-망가진 산하!(가창산-왕박산-무등산)

  올린이 : 썩어도 준치   2003/05/12 (올린날)              한국의 산하 | 산행기 게시판

제천시계 12구간-망가진 산하!(가창산-왕박산-무등산)



제천시계 12구간-망가진 산하!(가창산-왕박산-무등산)

"자작동고개-중치-△650.6m-522번 지방도-가창산-△567.8m-왕박산-무등산-이현-느릅재-장곡리 샘골 "산행기(충북 제천 송학, 단양 어상천, 강원 영월 서면 / 2003년 5월 3일/토요일/날씨 : 맑음/총 산행시간 : 11시간 2분)
◈ 산행코스
자작동 고개-중치-△650.6m-522번 지방도-670m-가창산(△819m)-△567.8m-왕박산(597.5m) -무등산(619.5m)-610m-△696.1-이현-470m-느릅재(320m)-450m-350m-가래골재-△400.2m-390m-장곡리 샘골 (도상거리 약 20km)

참석자 : 벽산, 산사랑, 신가이버, 청북, 썩어도 준치 (이상 5명)

 

 

◈ 개 요
제천 12구간은 단양, 영월과 2도 2군 1시가 접경을 이른 구간으로 석회석 채취로 무참히도 짓밟혀 헐벗어버린 마음 아픈 구간이었다.
석회석이 채취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복구는 뒷전에 밀린 채 방치되어 있는 현실에 아연실색을 할 뿐이다.
개발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 시키기 위한 복구가 선행되어야 할 문제이다.
제천 시내로 접어드는 구간이라서 200m이하를 밑도는 평야와 마을을 평창강을 통과하는 가래골재 지나 능선에서 삽두, 일골 등 시계 일부구간을 변형시켜 산을 타는 것을 목적으로 수정을 한 구간이다.
▶ 중치(中峙) : 이 고개는 제천군 청풍과 영춘의 중간 지점에 있으므로 중재라 한다.(충청북도 제천시 동현동)
▶ 가창산(歌唱山) : 옛날 이 산마루에 못이 있었는데 선녀들이 내려와 이 못에 배를띄우고 노래를 불렀다는 전설이 있어 이 산을 가창산이라 한다.(819.5m/충청북도 제천시 동현동)
▶ 왕박산(王朴山) : 옛날 이 산에 왕박씨가 피난을 하였다 하여 왕박산이라 불림(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 무등산(無騰山) : 옛날 어느 선비가 과거를 보고 즐거움에 춤을 추고 산을 올라갔다 하여 무등산이라 함(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 이현(梨峴)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에 있는 고개
▶ 느릅재 : 느티나무가 많다하여 느릅재라 함(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


◈ 산행일기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이미 모두 다 나오셔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06 : 30 제천행 버스는 좌석표가 있지만 역시 무용지물이 되는 텅빈 버스였다.
청북님의 꼴과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뭔 할 이야기들이 많은지 수다를 떨다보니 차는 금대터널을 지나며 좌측으로 산행이 예정된 곰바위봉과 두 번씩이나 종주를 계획하였다 실패를 한 가파른 수리봉의 암릉과 들머리 치악역을 스쳐 지나간다.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난 버스는 제천으로 접어드러 터미널에 도착을 한다.(08 : 23)
자작동행 버스는 09 : 15분에 버스에서 내려 들머리까지 약 1km를 걸어야 겠기에 콜밴을 부른다.(tel : 011-485-1504)
콜밴기사는 친절하고 이곳의 토백이로 지형을 잘 알아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며 가는 차안에서 아침으로 김밥을 먹었다.
먼저 산행을 끝내고 상경을 하면서 분명히 지나쳤음에도 보지 못했던 장지미못은 많은 비로 맑은 물이 만수위를 이루고 있었다.
기사님 말로는 낚시터라 한다.

 

자작동고개(08 : 50)
지난번 갑산에서 내려온 들머리인 자작동 고개를 넘어서 단양쪽 절개지 끝부분 소나무 있는 곳에서 하차를 한다.
이내 절개지 배수로를 따라서 올라서 절개지 정상부에 올라 지난번 지나온 반쪽만 남은 갑산을 돌아다 보고 북쪽의 숲으로 향하여 올라선다.(08 : 56)
역시 잡목이 많은 울창한 숲에는 갖은 야생화 꽃이 만개되어 있었다.
묘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산행준비를 한다.
묘를 떠나서 올라가는 곳은 등로도 없으며 큰나무가 쓰러져 앞을 막고 있으므로 유격구호를 외치며 넘어서기도 하고 개구멍으로 빠져나가기도 하며 통과를 한다.
능선의 모양이 없는 장방형의 600m에서 지도를 보고 서북쪽으로 내려서니 임도가 보이며 어!방향이 아예 다르다.
능선은 임도 우측으로 보여 트레버스를 하여 능선으로 올라붙고 안부를 지나서 올라선다.
아!
먼저 우리가 내려온 곳이 중치인줄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중치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가져지기 시작한다.
가창산을 바라보며 쌍묘를 지나며 묘가에는 항시 고사리가 많으므로 채취를 하고 능선을 따라서 봉우리를 넘어 내려선다.

 

중치(09 : 39)
고개를 넘나드는 우마차도 다닐 수 있는 길이 획실한 고개 중치다.
이곳에 이르니 지난번 내려온 도로고개는 중치가 아니고 갑산과 600m 안부사이를 새로 뚫고 길을 내어놓은 자작동 고개임이 확실해 지고 모든 의구심이 풀려 버린다.
오늘 가지고 온 지도에도 없는 구간을 지형에만 의존하여 이곳에 이른 것이다.
숨을 몰아쉬며 가파르게 오르니 이내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무지하게 더운 것을 느낀다.
하늘은 맑고 청명하며 햇살은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작렬을 한다.
오늘은 얼마나 더울까------!

△650.6m(09 : 57)
갑산과 가창산 , 가창산, 굴을 뚫고 채석을 하고 있는 640m가 잘 보이는 삼각점이 있는 곳이다.
좌측으로 채석으로 헐벗어진 640m의 흉측한 모습과 산허리에 뚫린 채석용 굴과 바위를 자갈로 만드는 타석 시설과 자갈이 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522번 지방도의 산허리를 따라 도는 모습은 요즈음 도로와는 달리 그래도 정감이 간다.
이곳부터 가창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완만하고 산나물들도 많은 곳이다.
청북님에게서 한 수를 배우며 멱치, 둥글레 꽃도 익히며 내려서니 이내 능선은 석회석 암릉으로 변한다.
앞쪽에는 가창산과 가창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꽃이 만개된 700m의 모습이 비쳐진다.

522번 지방도(10 : 17)
뜨거운 햇살이 뒷통수를 때리는 석회암 절개지 522번 지방도 시계 경계선 고개 마루다.
도로는 비포장으로 자작동 고개 도로가 생기므로 차량의 왕래가 없는 폐도로화 되고 있는 중이다.
체천시의 쓰레기 경고판이 비스듬히 쓰러져 있으며 곡선 도로를 보여주는 반사경 거울도 있다.
도로를 건너 낮은 섯회암 절개지를 올라간다.
완만한 석회암릉을 따라서서 지방도와 나란히 진행을 한다.
석회암 지대를 벗어나며 나물을 채취하며 여유 있는 산행이더니 가팔라지며 올라선다.
600m를 오르고(10 : 28) 완만함이 이어지며 나물들을 채취하기에 여념이 없다.
대개가 취와 고사리였다.
또 다른 것은 아는 것이 없어서 채취를 할 수도 없다.
청북님께서 내게 산을 그렇게 다니시고도 모르는 것이 의아스럽단다.
하기야 산에만 오르면 내빼기에 정신이 없었으니 알 리가 없다.
하지만 산력에 비하여 서는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능선이 없는 원추형의 가파른 오름이 시작된다.
별도 힘이들 것도 아닌데 이넘의 햇살이 문제가 된다.(10:53)
동서로 뻗은 능선 가창산 어깨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준다.
북쪽으로 양지말 마을과 이곳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 사이의 깊은 계곡이 신록과 함께 펼쳐진다.

 

가창산(819.5m/10 : 58)
햇빛을 피할 숲도 없는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우리가 지나온 갑산일대가 잘 보인다.
북쪽으로는 사교리 일대의 모습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햇빛을 피하여 북쪽의 능선으로 돌아서니 아니!
오르며 지금까지 바라다보던 것과 달리 암벽의 절벽을 이룬 순 바위산이다.
북쪽 능선에서 동쪽으로는 전부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과 이곳의 능선 사이에는 깊은 낭떠러지 협곡이 있다.
전방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막걸리를 곁들인 휴식을 끝내고 북쪽의 암능을 내려선다.
주흘산 영봉이 왼쪽은 절벽이고 오른 쪽은 육산인 것과 똑같은 곳이다.
능선을 따라서 완만히 내려서며 능선의 절개지 끝자락에 이른다.
능선은 잘 룩이 잘려져 있고 우측으로는 완전히 파먹은 광산절개지 절벽이다.
우측의 광산은 지금은 폐광이 되어 복구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절개지 좌측의 능선을 따라서 간다.


남쪽으로는 장지미못의 물이 석회석으로 초록색을 띄고 있으며 쌍용쎄멘트 공장이 거대하게 펼쳐보인다.
광석을 나르기 위해 파헤쳐진 능선 안부를 넘나드는 도로를 지나(11 : 21) 산 능선을 따라서 녹슨 철관이 설치되어 있다.
올라가는 곳도 광산으로 파헤쳐진 곳이다.


710m를 내려서는 곳은 등로에 흔적도 없고 우측으로는 순 석회석으로 된 선돌이 그 주위를 파헤침 당하고 홀로 외롭게 솟아 있다.
돌보지 않는 폐허가 된 듯한 묘를 지나서 파헤쳐진 광산에 올라선다.
북동쪽으로 가면 절개된 광산에 이른다.
앞에는 뱀이 구불구불한 것과 같이 갈之자로 한없이 이어지는 도로가 목도된다.
완만히 진행하여 북쪽으로 뻗은 긴 능선 690m에 이르러(11 : 40) 이곳에서 서쪽으로 내려가야 하나 잠시 착각 속에 북쪽의 능선을 따라서 간다.
아니 서쪽으로는 잡목으로 앞도 안보이고 북쪽의 능선은 길이 좋았다.

 


북쪽 능선에 이르니(11 : 48) 능선은 어머 어마하게 거대한 석회석 광산으로 완전히 잘려나간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앞에 펼쳐진 능선은 벌 구멍 모양 사방에 숭숭 구멍이 뚫려 있는 모습이다.
채석광산 아래는 서너 채의 농가가 골짜기에 들어앉아 있다.
절개지 능선을 따라서 내려서는 곳에는 길도 흔적도 없고 다년생 넝쿨들로 우거져 있어 여름에는 언감생심이 될듯하며 녹슨 직경 20cm는 족히 넘는 녹슨 철관이 설치되어 방치되고 있다.
사람다닌 흔적은 없어도 왔다 갔음을 남기려는 듯 음료수 패트병은 버려져 있다.
철관을 따라서 내려서니 임도 절개지로 내려선다.(11 : 58)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다
내색도 없이 임도를 건너서 가파른 사면을 내려선다.
야! 두릅 밭이다.
두릅을 따기에 여념이 없다.
지금까지 산행하면서 금년같이 두릅을 많이 따본 해는 정말로 없었다.
우리 마눌이 좋아하므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채취를 한다.
사면을 내려서니 광산 임도로 떨어지고 임도를 따라서 남쪽으로 보이는 능선을 찾아 임도를 거슬러 올라간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 안부의 가까운 능선으로 치고 올라간다.(12:13)
드디어 690m 능선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상에 오른다.(12 : 21)
시원한 바람이 넘나드는 소나무가 우거진 능선에서 점심을 한다.
비록 알바는 하였지만 두릅이라는 전리품을 노획한 것이다.
항시 두릅이라는 넘은 등로변에 있지를 않고 이렇게 엿물을 먹어 알바하는 곳에 복병 모양을 숨어있다.
김밥에 취나물 쌈, 두릅 삶은 것 막걸리, 거기다 신가이버님의 시원한 아이스커피는 후식으로 아주 입안이 개운하였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서(12 : 55) 안부를 지나는 곳에는 좌측으로는 흑석동으로 내려가는 등로가 희미하며 우측에는 고랭지 밭들이 계곡을 따라서 이어진다.
등로의 흔적도 없는 오름 길은 밥을 먹고 오르니 가파르고 무지하게 힘이 든다.

 

△567.8m(13 : 06)
삼각점이 있는 기다란 능선에 올라선다.
동북쪽으로는 659m가 뻗어 있는 능선 분기점이다.
햇볕은 뜨겁다 못해 따갑게 내려 쬐고 있다.
삼각점을 지나서 아무 생각 없이 억새풀이 우거진 안부를 통과하고 능선을 따라 가다 보니 동북쪽 659m로 향하고 있다.
다시 Back하며 지도를 안 보아도 휘 둘러 보기만 하여도 능선이 보이는 것을 나물 채취하느라 땅만 보고 가니 당연한 귀결이다.
서북쪽으로 완만히 내려서며 510m를 넘어서니(13 : 28) 석제와 조울제를 넘나드는 안부가 나오며 진행방향으로는 530m가 우뚝 솟아서 북쪽으로 꺾으며 왕박산을 일으키고 있다.
우측으로 보이는 왕박산은 시꺼먼게 백호를 민 것 같이 보이며 푸른색은 눈에 띄지를 않는 다.
아래로는 농가가 몇채 보이며 도로로 절개되어 살을 드러낸 산하가 또 보인다.
전에는 당연하게 생각되던 것들이 이제는 부정적으로 보이게 바뀌어졌다.
돌무덤이 있는 안부에서(13 : 33) 시계종주 표시기가 달려 있는 530m를 포기하고 우측의 밭으로 내려서며 트레버스를 하여 530m와 왕박산 사이의 안부로 향한다.
밭은 아무것도 심어 놓지를 않고 농업용 까만 비닐을 심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농로로 내려서고 농로를 따라서 절골과 조울제를 넘나드는 안부에 이른다.(13 : 48)


밭은 능선을 넘어서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농로도 계속 계곡과 왕박산쪽으로 연결이 된다.
송학산과 제천시가지가 보이는 이곳의 절골 쪽 계곡으로는 나물을 캐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내려가고 계시며 계곡에는 절로 생각되는 기와 지붕이 보인다.
10분간의 휴식후 왕박산을 향하여 농로를 따르니 능선의 좌측은 모두 백호를 쳐 놓았고 오르는 능선에는 프라스틱 푸른 원통안에서 상수리나무를 심어 놓은 것이다.
농로는 좌측으로 빠지며 우리는 능선을 치고 오르니 까맣게 백호를 친 것으로 보이던 것은 산불로 인하여 새까맣게 타버린 나무들이다.
능선의 우측 영월쪽 은 그대로 놓아두었고 좌측 제천시 쪽은 다 베어 놓고 새로 상수리나무로 식수를 한 것이다.

 

왕박산(597.5m/14 : 11)
이곳도 역시 충청도 고유의 까만 오석의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넓은 공터가 있는 산불이 난 곳이다.
이쪽의 산들은 성한 곳이 없이 군데군데 파 헤쳐쳐 있는 것이 보인다.
정상을 내려서며 고압선 철탑을 지나서 가는 곳은 등로도 없으며 쓰러진 나무와 잡목과 넝쿨로 무지게 힘든 곳을 내려서는데 그래도 길이 없는 곳에 한마음 산악회의 빨간 표시기가 길을 밝히고 있다.
안부에 이르니(14 : 26) 서쪽으로는 절골이고 동쪽으로는 청림에 이르는 확연한 등로가 나 있으며 무등산을 향하는 길은 우마차 길로 우마차 길을 따라서 가며 길에 있는 취와 고사리를 뜯는다.
우마차 길은 능선을 돌며 광산 쪽으로 향하고 우리는 다시 좌측의 절개 사면을 올려쳐 능선으로 향한다.
능선에 올라서니 등로는 확연하게 잘 나 있다.

 

더운 날씨에 갈증이나 계속 음료수와 물을 마시니 배는 점점 불러오고 힘이 더 들며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하게 난다.
묘를 지나서 오르니 표시기가 많이 달려 있으며 이정표(송불사 1.0km-절골 0.7km)가 있는 곳에 이른다.(14 : 48)

 

무등산(619.5m/14 : 55)
완만한 긴 능선의 정상에는 큰 소나무 외에는 이렇다할 것이 없는 평범한 산이다.
큰 나무에 둘려 쌓여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 곳이다.
무등산을 지나서 가는 등로에는 산사랑, 한마음 제천 시계종주, 영월군계종주도 한 몫을 하며 표시기들이 있다.
동쪽으로 내려서는 등로는 보이지를 않고 모두가 사면으로 된 가파른 곳이다.
정상ㅇ르 조금지나서 우측으로 꺽어 내려서니 무척이나 가파르며 계곡으로 떨어지며 우측40m정도 되는 곳에 능선이 뻗은 것이 보인다.
트레버스를 할 곳도 못되어 난리 부르스를 치며 계곡으로 떨어졌다가 우측의 가파른 사면을 올려쳐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니(15 : 22) 능선을 따라서 등로가 잘 나있는 것이 보인다.
조금 찬찬히 찾아보았으면 잠시라도 고생은 안 했을 텐데----
능선을 따르니 우측으로는 우마차 길이 보이며 철망이 쳐져있다.
우측에 청림광산이 있어서 경계철망일까?!
화랑뜰에서 청림을 넘나드는 안부에 이르고(15 : 27) 철망을 따라서 510m에 오르고(15 : 31)
암릉이 나오며 암릉을 우회하며 가는데 우리에 발자국에 놀란 고라니가 숲속을 헤치며 재빨리 사라져 버린다.
밭을 가로질러 내려선다.

군도(13 : 41)
38번 국도 느릅재 아래 골안에서 사교리를 잇는 군도 1차선 포장도로다.
696.1m가 까맣게 가파르며 높게 보이며 남북으로 뻗은 능선의 북서쪽 사면도 채석은 끝났는데 복구가 되지 않고 헐벗어 버린 곳이다.
도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서다 등로 흔적이 있는 능선으로 올라서니 잔디가 잘 식수된 묘가 나오며 쌍묘있는 곳에는 표시기가 달려 있어 길을 밝힌다.
오르는 길은 가팔라지며 능선이 없어지고 사면을 이루며 덥고 힘이 무척 든다 하기야 표고 300m를 500m 거리를 두고 오르니 각도는 정 45도가 나오는 사면이다.

696.1m(16 : 14)
우측으로 능선 봉에 삼각점이 잇는 곳이나 시계가 아니기에 아니 힘이 들어 삼각점을 포기하고 시계를 따라서 북쪽 능선에 이른다.
잠시 휴식 후 동쪽의 사면을 내려선다.
오를 때도 힘들게 올라오더니 내려 갈 때도 가만히 있어도 미끄러질 정도의 가파른 곳을 힘들게 내려간다.
미끄러지며 나무에 걸리고 칡넝쿨에 걸리고 못살겠다 산을 갈자!
왜 괜시리 제천시계를 시작하여 이토록 등로도 없는 곳에서 고생을 하는 지 모르겠다.
올라올 때와 같이 역순으로 내려서니 골미산이 보이며 골미산에는 송신안테나 시설물이 보이며 출입을 통제한다고 지순환님이 말을 한다.
우측으로 양지말 마을이 들어앉아 있고 이현 아스콘 도로와 밭이 보이며 농로로 내려서고 농로를 따라서 가다 밭을 가로질러서 내려선다.

이현(16 : 36)
골안에서 양지말로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 이현이다.
제천쪽은 세멘 포장이 되어 있으나 가난한 영월 쪽은 비포장이다.
이 또한 지방자치제의 모순이 발견된다.
잠시 쉬며 신발에 가득 찬 낙엽을 털어 내고 460m를 향하여 오르는데 별로 가파르지도 않고 불과 70m 오르는데도 기운이 빠져서 힘이 든다.
460m에 오르니 산불초소가 있고 영월군의 산불조심 깃발이 있다.
동북쪽으로 38번 국도와 쌍용 세멘트 공장과 석회석 채취로 헐벗어 폐허가 된 주위가 잘 조망된다.
460m에서 북쪽으로 진행하는 곳에는 등로는 있지만 잡목으로 항퀴고 힘든 곳이며 묘를 지나는데 이곳은 양지 바른 곳이지만 고사리도 없는 곳이다.
군훈련용 참호를 지나며 하루살이가 쫓아다니며 영 못살게 하고 있다.
능선은 북서쪽으로 휘어지고 시계는 북동쪽 사면을 달리어 가파른 사면을 내려서 느릅재 있는 운주선방 휴게소에 이른다.
낮선 산객들의 출몰에 보신탕용 개들의 시끄러운 울부짖음이 귓전을 찢는다.

 

느릅재(320m/17 : 12)
느릅재 동쪽의운주선방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는 곳이다.
시원한 맥주와 아이스 크림으로 갈중을 달랜다.
아직도 갈 길이 만만치 않게 남아 있다.
도상거리가 약 7km로 2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휴게소를 떠나서 느릅재 경계 표시판을 넘어 두릅재 서쪽의 느릅재 휴게소 옆으로 난 골미산에 이르는 세멘 도로를 따르다 우측의 숲으로 들어가 골미산과 450m의 안부로 향한다.
묘에 이르기까지는 희미한 길이 있었으나 묘를 지나면 서는 아무 길도 없는 잡목과 넝쿨과의 씨름이 또 다시 시작된다.
사람이 다니지 않은 곳이다 보니 고사리가 지천이었으나 이를 뜯을 시간이 이제는 없었다.
능선의 안부에 올라서니 등로의 흔적이 뚜렷하고 등로를 따라서 450m에 오른다.(17 : 49)
450m를 올라설 때는 등로가 있었으나 이제 내려가는 곳에는 또 등로가 없는 곳이다.
고사리가 무척이나 많은 데 채취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이제부터는 완만한 야산으로 특이한 지형도 없는 곳으로 내가 있는 지점을 찍으며 가야 된다.
앞서가는 지순환님을 쫓아 내려서 묘역에 이르러 보니 너무 지나 쳐서 트레버스를 할 요량으로 뒤도 돌아 올라서니 트레버스 등로가 확연하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이렇게 다닌 것 같다.
우회 등로를 따라 완만한 길이 좋은 본 능선에 이른다.
묘를 2개 지나며 350m(18 : 10)에 이르나 시계는 나무숲에 가리고 능선은 보이지를 않는 완만한 곳이다.
현 위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지도대로 동쪽으로 가며 낮은 봉우리를 지나며 능선의 흔적이 나타나고 가파르게 내려서고 320m에 올라서나(18 : 16) 아무것도 안 보이고 등로의 흔적도 없으나 무조건 지도의 방향대로 내려서니 능선에서 10m 벗어난 곳이며 우측으로 능선이 보여 능선으로 올라선다.
고압선 철탑이 있는 350m에 오르고(16 : 23) 철탑에서 좌측 서북쪽으로 내려선다.
종주 표시기가 우리가 정확한 곳을 진행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320m에 이르러(06 : 29) 우리는 서북쪽으로 뻗어 내려가야 할 곳을 북쪽으로 내려서니 넝쿨이 우거진 곳을 지나 능선과 능선 사이의 밭으로 내려선다.
시간이 늦어서 솔미산 지나 사슬치까지는 안 되겠고 장곡리에서 산행을 마감하기로 한다.
밭을 가로질러서 농로 있는 곳에 이르니 농부들이 쉬는 창고가 있는 곳에 이르러 깔판이 있는 곳에서 잠시 쉬며 숨을 돌린다.(18 : 42)
느릅재에서 이곳까지는 가장 힘든 독도구간이다.
동서로 넘나드는 등로가 확연한 곳 태백선이 지나는 가래골 굴 완만한 안부로 올라가는 곳은 암릉이 있는 곳으로 습지모양 물이 축축히 흐르고 있다.
안부에 이르러(18 : 53)북쪽으로 향하며 고사리가 덮여있는 묘를 지나고 완만한 봉우리에 올라서(18 : 58) 동쪽 능선으로 꺽으니 등로가 희미하게 나타나고 앞에 보이는 봉우리로 시계 경계선은 달리고 있으나 시계와 헤어져 우리는 좌측의 등로로 들어서 북쪽으로 향하며 입석리와 삽둔을 넘나드는 등로가 확연한 안부로 내려선다.(19 : 02)
벌써 땅거미는 지고 곧 산속의 어둠이 곳 찾아 들 것이다.
새 잡는 망이 버려져 있는 곳을 지나며 좌측으로 멀리 태백선 기차가 지나가는 것이 운치 있게 보인다.

400.2m(19 : 16)
깃대가 꽂힌 삼각점이 있는 곳이다.
서쪽으로는 아세아 세멘트 공장과 마을의 전기불빛이 보인다.
10여분간의 휴식과 지나온 길을 복도해 보고 400.2m를 내려선다.
돌로 참호를 쌓아 놓은 곳을 지나고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봉우리 390m를 올라선다.(19 : 34)
별로 높지도 않은 곳인데 이것도 이제는 높게 생각된다.
장곡리 일대가 보이며 내려서는 일만 남았다.
내려가는 길도 없는 잡목이 우거진 가파른 곳을 미끄러지며 아예 앉아서 낙엽 미끄럼을 타며 산을 내려서니 지도에도 없는 기차길로 내려선다.(19 : 47)
논을 지나고 시곡천 뚝방길을 따르다 다리를 건너 도로에 펄썩 주저앉는다.(19 :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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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