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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종주에 한달걸려

올린이 : 성철중    2003/05/07 (올린날)              한국의 산하 | 산행기 게시판

지리산 종주에 한달걸려

작년에,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번에  걸쳐서 지리산 종주를 마칠수 있었다. 지리산의  여름날씨란 워낙 예측불허이고 지리산 주변에도 볼만한 사적지가 많이 있다는것을 참조하시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제라도 올리는점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미완의 지리산 종주 등반기(1)

 지리산의 서남쪽 봉우리 노고단에서 동쪽 끝 천왕봉까지 26Km  국내에서는 가장 긴 종주등산코스이기 때문일까?  "지리산을 종주 해야 진정한 산사람" 이라는 말에 매료되어 산사람도 아닌 내가 지리산을 종주하기로 결심을 하고 인터넷과 등산서적 등을 통하여 날씨와 도로교통상황 현지사정 전화확인, 3개 대피소예약, 등산코스 선택 등 자료조사를 마쳤다.
국립공원 지리산날씨의 주간예보에 의하면 7.19(금) 비가 오고, 그 다음날엔 흐린 후 맑음이므로 우비와 랜턴, 속옷 그리고 여분옷가지를 챙겼다.
우리 일행 6명이 3박4일 동안 먹고 자고 등산할 쌀과 밑반찬 버너 코펠 등은 다른 사람들이 준비하였다.
7.17(수) 새벽6시 원주에서 출발하여 동 서울 만남의 광장에서 최동인씨 일행을 만났다.
장기무료주차장에(1만원 줌) 내 차를 주차시키고 일행과 함께 봉고 차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에 소재 한 겁외사(성철스님 생가복원)에 도착하였다.
성철스님이 생전에 본인을 수련하는 지침 12가지 중 "아녀자에게 눈길을 주지 마라" 와
장좌불와, 그리고 영어로 씌어진 메모지 등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지리산 동남쪽 중산리 두류동 천왕봉 용궁산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2시경.
각자가 준비해온 배낭을 서로 나누고 정리한 후 산장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는 우리 차를
산장에 주차시키고, 산장에서 소개해준 봉고 차로 산청, 함양 인월 뱀사골을 거쳐 성삼재 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30분.  9만원이나 주기로 하고 봉고 차를 빌렸지만 운전기사가 길을 잘 몰라 아마도 한시간은 헤맨 것 같았다. 기왕 늦은 김에 만원을 더 주기로 하고 신라 흥덕왕(828년)때 창건한 실상사 를 관람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 선불교가 처음을 뿌리를 내린 실상사 에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불상이 보물로 보존되고 있었다.
성삼재 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2.7Km.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잘 정비된 등산로를 40분만에 우리의 첫 번째 숙소인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 모두가 3박4일 동안 먹고 생활할 배낭이 너무 무거웠지만(약30Kg은 족히 될 듯) 그래도 거리가 짧아서 다행이었다.
노고단 대피소는 지하1층 지상2층 목조건물로서 공중전화와 공동취사장. 화장실이 별동 으로 있고, 세면장이 따로 있는 등 대피시설로는 최고급 수준이었다.
우리는 2층 반야봉 실에서 1인당 30Cm 정도 넓이의 칼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좁은 면적을 배치 받고(숙박 1인당 5천원, 담요 1장에 1천원) 배낭을 정리하였다.
공동취사장에서는 오늘 저녁과 내일아침 식사준비에 서로 자기배낭에 있는 무거운 것들을 처분하려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10시 소등.  고단한 몸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새벽5시에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 반에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었다.
임걸령, 토끼봉, 형제봉 등을 지나 벽소령 대피소까지는 약14Km 정도,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지리산 준령은 과연 골이 깊고도 웅장한 느낌이었다.
등산길에서 맞이하는  수십 가지 이름 모를 아름다운 산 꽃들이 청초하고 순수해 보였다.

성철 스님이 지리산 동쪽끝 자락에 있는 대원사에서 출가하여 잠시동안 금강산에서 수련한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지리산 주변에 있는 산사와 암자에서 수행을 하여서 그런지 지리산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했다. 성철스님이 지리산을, 아니 지리산이 성철스님을 닮은 듯 했다.
노고단과 천왕봉의 중간에 위치한 벽소령 대피소는 노고단 대피소와는 사정이 사뭇 달랐다.
대피소 건물은 훌륭한데 전화도 불통이고 샘물이 멀어서 불편한데다가 비누와 세제를 일절 사용할 수 없었다. 산은 세제를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밤늦게 부터 비가 왔다. 주룩 주룩 좍 좍 좍! 걱정이 되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비를 맞으며 식사와 출발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이게 왠 일인가!  새벽 일찍 천왕봉으로 출발한 등산객도 일부 있었으나 7시부터 모든 산행을 중단시키고 하산명령이다.
우리 일행 모두가 피곤한 몸이었지만 비를 맞으며 완주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98년 지리산 뱀사골에서 많은 인명피해로 인해 좀더 통제가 심해진 것 같았다.
명령 불이행이면 벌금이문제 라기 보다는 지도, 단속에 따르고, 일행이 안전하게 하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음정으로 하산하는 길은 처음에는 험했지만 평탄할 길이었다. 약3시간동안 비를 맞으며 음정 버스정류소에 도착하였다. 함양 가는 버스 시간은 12시 정각, 그동안 가지고온 식량을 모두 먹어치웠다. 음정-함양-원지-중산리까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오후 3시경에 우리차를 주차해 놓은 천왕봉 용궁산장에 도착하였다.
부산말씨의 친절한 주인댁에 감사의 표시로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식사를 다시 하였다.
오는 길에는 조선시대에 유명한 유학자이신 남명 조식선생(1501-1572년)의 유적지(사적 305호, 산청군 시천면 원리 소재)와 고려 말 공민왕 12년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 귀국 길에 목화씨를 처음 전파하여 우리나라 의생활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신 문익점 기념관에서(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소재) 어린 시절 어머니가 타시던  여러 가지 길쌈 도구가 정겨웠다.
우리 일행은 다짐했다. 미완의 지리산종주를 기필코 달성할 것이라고!         2002.     7.     25

                                
지리산 종주기(Ⅱ)

일요일 (8월18일) 새벽3시반 원주를 출발하면서부터 지리산 종주는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일행(6명)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계곡에 8시반에 도착하여 한양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무쏘택시(12천원)로 지난번 하산지점인 음정에 도착하였다.
시간단축을 위하여 정식등산로가 아닌 자연휴양림을 통과하여 10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경사가 급하고 길이 험한데다가 키가 큰 山竹(신우대)이 앞을 가로막아
처음부터 힘든 코스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였다.
벽소령 능선 길에 도달해서부터는 등산로가 평탄하고 경치가 수려하고 아름다웠다.       
선비샘 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5시까지 멀고도 지루한 산행이 계속되었다.
우리일행의 숙소로 예약한 細石 대피소가 저 멀리 보이는 세석 평원의 언덕을 넘어서는
순간 아 ! 해발 1545m 고산지대에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평원이 펼쳐 질 줄이야 !
세석 대피소 (세석산장)는 노고단에서 20.4Km 천왕봉까지 5.1Km 지점에 위치하는
아름다운 목재건물이며, 세석 평원(세석평전)은 마치 솥뚜껑을 거꾸로 놓은 듯
40만평의 넓고 아름다운 평원에 5월 중순부터 6월말까지 철죽 꽃이 장관을 이룬다.
亞高山地帶는 喬木의 한계선으로서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는 이곳 지리산 종주 등산길에
95년부터 대형 대피소를 건축하고 일체의 야영을 금지하고 세제사용은 물론이고 비누와
치약사용도 불가능하다. 관리공단측의  생태계 복원사업과 등산객의 의식수준이  상당히
향상되어 자연생태계 복원이 상당부분 이루워 진 것 같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너무나도 피곤하여 일찍(9시) 잠자리에 들었으나 자다 깨다 하기를
여러 번, 숙면을 취할 수는 없었다.
새벽 4시 잠자리에서 일어나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밖으로 나왔다.
어제 저녁만 해도 세수하면서 소낙비를 흠뻑 맞았는데....
밤하늘은 온통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하다. 북쪽 하늘에서 카시오페아 (별자리)를 찾았으나 그 이등변 삼각형 지점에 있는 북두칠성과 북극성은 구름에 가려 찼을 수가 없었다.
검은 지리산 남쪽 멀리에는 광양제철소의 불빛이 아스라이 반짝거린다.
性徹스님이 지리산의 암자에서 스스로에게 다짐한  十二銘 에는 『좋고 나쁜 기회에 따라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라』라고 하였거늘 우리는 지리산을 걸으면서 그 뜻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부터 이틀째 산행이 시작되었다. 촛대봉을 지나 장터목 대피소, 제석봉, 천왕봉이 가까워 질 수록 산은 점점 높고 기암절벽과 바위와 나무들이 아름다워 진다.
11시 정각 드디어 천왕봉(해발 1915m)에 도착하였다. 천왕봉의 표지석 에는 『한국인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산은 永劫의 세월을 그 자리에 있건만 인간들은 모두 산을 정복했다고 기념사진을 찍고 야단들이다. 날씨가 맑아 남쪽 멀리에는 다도해 서쪽에는 노고단 반야봉 실상사 등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 기회에는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를 이 아버지와 함께 하자고 !
장터목 대피소에 와서 점심식사를 하고는 백무동계곡으로 내려오니 오후5시,
한양식당에서 동동주 한 사발과 함께 이른 저녁 식사를 하니 온몸이 천근이나 되는 듯 그 자리에 눕고만 싶었다.
오는 길에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에 있는 實相寺의 소속 암자인 百丈庵 에 들렸다.
백장암 에는 신라말기에 만들어진 3층 석탑(국보 10호)과 석등(보물 40호)이 있고 원광대학교 문화재 발굴단에서 옛 절터를 복원하고 있었다. 국보인 3층석탑은 기단이 얕고 가늘은 몸체에는 보살과 선녀 천왕 등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다.
지난 7월17일부터 8월19일 사이에 두 번에 걸쳐서 지리산 종주 산행은 3박4일간 완주하게 되었다.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추억으로 새기면서 우리는 야간 고속도로를 원주로 향해 달렸다. 우리들의 내일을 위하여!

                                           2002년 8월 27일      成      喆     重

 

십이명十二銘

성철스님이 수행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 12가지 항목으로서 철저한 수행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평생을 이 원칙에 거슬리지 않고 사신 삶에서 경외감마저 일어난다. 일부 항목은 스님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도 반드시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생각해도 좋을 만한 내용도 있어 철저한 수행이라는 것이 꼭 우리 생활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目不注 簪裳之儀  아녀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으리라.
耳不傾 塵俗之談  속세의 헛된 이야기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으리라.
手不捉 錢幣之   돈이나 재물에는 손도 대지 않으리라.
肌不接 絹帛之   좋은 옷에는 닿지도 않으리라.
身不近 檀家之施  신도의 시주물에는 몸도 가까이 않으리라.
影不過 尼寺之垣  비구니 절에는 그림자도 지나가지 않으리라.
鼻不  辛 之菜  냄새 독한 채소는 냄새도 맡지 않으리라.
齒不齧 生靈之肉  고기는 이빨로 씹지도 않으리라.
心不繫 是非之端  시시비비에는 마음도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意不轉 逆順之機  좋고 나쁜 기회에 따라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라.
禮不揀 童女之足  절을 하는 데는 여자 아이라도 가리지 않으리라.
舌不弄 他人之咎  다른 이의 허물은 농담도 않으리라.

瞿曇後末 性徹  부처님의 후예 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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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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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