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산행기 - 한국의 산하 "산행기 게시판"에 올려진 산행기 입니다.


 거제 망산 산행기

올린이 : 김응기  2003/05/06 (올린날)              한국의 산하 | 산행기 게시판

 거제 망산 산행기

올 봄은 유난히도 봄비가 잦다. 매년 괴롭히던 황사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봄철 산불발생빈도도 현저히 줄어 금년에는 국립공원내 산불 발생이 한 건도 없다는 경이적이라는 신문기사가 눈에 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봄비가 반갑지 않다. 왜냐하면 열흘 전에 일정을 잡은 철길산우회 정기산행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치는 날씨가 연이틀 계속된다는 보도에 목메기 송아지처럼 내키지 않는 거제도 섬산행의 장도에 올랐다.

서울역에서 오전 10시 30분에 출발하는 마산행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 거침없이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에 심란한 마음이 앞서지만 이왕지사 내친 걸음인지라 정 안되면 거제 앞바다나 구경하는 셈치고 산행자료를 넘겨받아 읽어 내려갔다. '정보의 바다'라 일컫는 인터넷에도 나와있지 않은 거제의 숨은 비경이란 찬사에 더욱 더 조바심이 나서 비가 개이기만을 고대하며 눈을 감았다. 간밤의 철야근무가 고단했던 터라 금새 깊은 잠에 빠져 한참 꿈길을 헤메는데 옆좌석에 앉았던 홍총각이 어깨를 흔들며 음료수를 건네는 바람에 잠이 깨니 더 이상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차창 밖을 두드리는 봄비는 조금도 누그러질 기세가 없어 이문열의 『삼국지』 마지막 권을 펼쳐들었다. 한(漢)에서 갈라선 위·촉·오의 삼국이 다시 하나로 통일되는 과정의 대단원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반복되는 역사의 단순한 진리마저 외면한 채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위정자의 작금의 세태와 연관지어 생각하노라니 입맛이 씁쓸하다.

밀양을 지난 열차는 어느새 경전선으로 접어들었다. 빗줄기는 여전히 가늘어질 줄 모르고 세차게 흩뿌리고 있다. 마산역 광장을 나서며 우산을 받쳐들자 맥없이 비바람에 뒤집어진다. 시내버스로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여 거제행 버스편을 알아본 후 해장국으로 뒤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버스에 올랐다. 고성을 지날 무렵부터 어두운 하늘이 훤하게 벗어지면서 빗줄기가 멈추는 기색이어서 반색을 하는데 거제대교를 지나 고현터미널에 도착하자 멈추었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며 비를 흩뿌린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터미널은 철 지난 바닷가처럼 인적이 드물다. 때마침 월간 『산』에 소개되었던 횟집이 눈에 띄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마음이 흡족하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기대와 실망은 정비례한다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시키듯이 보기 좋게 어긋나 허탈한 마음으로 '가라파크'에 여장을 풀었다.

몽돌해변에서 해조음을 들으며 '경·철·회의 밤'을 멋지게 보낼 생각에 잔뜩 부풀었던 마음도 질그릇 깨지듯 산산조각이 나 일찌감치 잠이나 청하려고 누우니 후덥지근하여 잠을 통 못이루는데 밖에 나갔던 노총각 둘이 맥주를 사가지고 들어와서는 훼방을 놓는 바람에 밤이 이슥하도록 사춘기 소녀처럼 깔깔대며 웃다가 뒤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산행에 긴장을 했던 탓인지 일찌감치 눈을 뜬 채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다 알람소리에 모두들 일어나 산행채비를 서둘렀다. 정확히 다섯 시가 되어 어젯밤에 약속했던 대로 횟집 주인의 테라칸을 이용하여 산행 들머리인 '명사마을'에 도착했다. 다행히 날씨는 개어서 희끄무레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산을 오르는 기분은 '상쾌' 그 자체다. 명사마을에서 망산 정상까지는 1.8㎞, 횟집주인의 말 대로라면 우리가 계획한 산행코스는 네 시간 가량 걸린단다.

가파른 산길을 20여분 오르자 여지없이 첫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간밤을 설친 탓도 있겠지만 매번 산행 때마다 겪는 통과의례다. 비오듯 샘솟는 땀방울에 가벼운 현기증…. 때마침 일망무제로 탁 트인 바위전망대가 있어 다도해의 황홀경에 힘든 줄을 모르고 잠시 고통을 잊는다. 후미에 쳐진 일행은 갈림길에서 산길을 잘못 들었는지 인기척도 없다. 모든 산길은 정상으로 이어져 있게 마련이고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력의 산꾼들인지라 오르는 길은 다를지라도 정상에서 만나면 될 터, 이제는 워밍업이 되었는지 그리 힘든 기색없이 산을 오르다가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에 오르자 산 아래 다도해의 풍광이 동화 속의 마을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망산 정상의 표지석 꼭대기에는 영역을 침범한 두 발 달린 짐승을 경계하는 까마귀가 어지러이 울어제끼고, 우리가 다리쉼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던 바위전망대에는 후미에 쳐졌던 일행이 열심히 산을 오르고 있다. 산길이 잘못되었음을 뒤늦게 인식하고 되돌아왔던 것이다. 반갑게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어대자 홍총각이 답례한다. 후발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지척에 있는 망산 정상을 향해 전망대를 내려선 지 10분만에 정상에 다다랐다. 정상 표지석에 앉아 어지러이 울어제끼던 까마귀는 좀 전에 우리 일행이 머물렀던 바위봉우리에 올라앉아 경계를 늦추질 않고, 비 개인 초록의 산야와 점점이 떠있는 다도해의 한려해상은 아무리 둔감한 사람일지라도 외마디 감탄사 한마디 정도는 절로 내뱉을 만한 경관이다. 대병대도, 소병대도, 매물도, 소매물도, 장사도, 욕지도, 비진도, 한산도….

2003. 1. 15일에 세웠다는 망산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빵과 우유로 아침을 대신하고 산을 내려섰다. 등산로 주변에 유난히 많은 천연분재 소사나무는 탐이 날 정도로 아름답고 이따금 눈에 띄는 후박나무(남도가 고향인 강역장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음) 새순은 얼핏 꽃인지 나뭇잎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색깔이 확연히 달라서 뭍산객의 총기를 여지없이 흐리게하고 만다. 산을 내려선 지 10분이 채 못되어 '해미장골등'에 내려섰다. 왼쪽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무지개 마을, 당초 산행들머리로 생각했던 마을인데 횟집주인을 만난 덕분에 '명사마을'에서 곧바로 '칼바위등'을 타고 오를 수 있었으니 엊저녁 술안주를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어쨓든 만남의 축복을 고마워할 따름이다.

망산 제2봉인 359봉에 연이어 수려한 다도해의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탁 트인 조망터에 이르렀다. 지도를 펼쳐보니 까만 돌이 쫘악 깔려있는 곳은 바로 '여차몽돌밭'이다. 왜구의 침입이 있을 때 맨 처음 봉화를 올렸다는 천장산은 지척이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이근용님은 엊저녁 매운탕에서 맛보았던 향내 짙은 '지피'라는 나뭇잎을 한움큼 뜯어 보이며 횟집 사장의 얘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즉 산초나무 잎이 곧 '지피'라던 얘기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며 동의를 구하는 눈치다. 그러고 보니 비슷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원주지방에선 추어탕에 산초가루를 쓰기 때문에 산초나무에 대해 알고 있었다) 315m봉과 269m봉을 지나 산을 내려오면서 비 개인 초록의 망산(望山) 산행을 만끽하고 SK남부주유소에 다다르자 아홉 시를 조금 넘은 시각, 망산의 유래에 대한 안내문을 읽고나니 입맛이 씁쓸하다. 한가롭게 조망을 즐기기 위하여 지어진 이름이 아니라 조선조 말엽,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이를 감시하기 위하여 망을 보았던 데서 유래했다나?

어찌됐든 망산은 거제도 최남단에 위치한 관계로 맑은 날이면 대마도가 보인다고 하니 이름값은 제대로 하는 셈이다.

귀로에 마산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엊저녁 못다 푼 한(?)이라도 씻을 듯이 이구동성으로 마산어시장을 찾는 일행에 섞여 또다시 설레이기 시작했다.(2003. 4. 29-30)

홈으로 | 가나다순 | 지역별 | 산행기 게시판

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