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근로자의 날이다. 구름 한점 없는 화창한 날이다. 이 좋은 날에
산에 있지도 않고 컴컴한 골방에서 산행기 쓰느라 구닥다리 컴과 씨름을 하고 있다. 술 많이 먹은 날은 죽어도 산에 가지 않기로 맹세
했기에 이제 그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그러나 가고픈 몸살이 이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10년지기 직장 동료가 어제 탈 회사를
선언하고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동료란 밤새 퍼 마셨다....
지난주 토요일 (4월 26일) 언양 처가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혼자 소슬히 지내는 장모님도 뵐겸 봄빛의 영남 알프스도 구경할 겸 겸사겸사해서 내달았는데 웬걸 저녁 식사때 반주로
들인 술이 12시넘어 1시까지 이어져 엉망 진창이 되도록 마셨다. 아내의 만류와 강권으로 겨우 잠자리에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가당찮은 일이다.
타는 갈증으로 눈을 떠니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시계를 흘낏 보니 어라 벌써 5시네. 부랴 부랴 짐
챙겨들고 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이용해 운문령까지 올라갔다. 보따리 짊어지고 임도따라 천천히 오르니 초장부터 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재작년엔 임도 옆의 등로를 이용해 올랐길레 이번엔 임도로 가지산까지 오르기로 했다.
임도 양켠엔
이제 막 신록이 싱그런 연초록 치마를 부드럽게 저어 산뜻한 골바람이 지끈거리는 머리에 건들거린다. 간혹 철늦은 진달래가 끝물을
아쉬워하는 꽃잎을 한두개씩 달고 나그네의 마음까지 스산하게 한다. 갑자기 욕지기가 치솟아 길 한켠에 머릴 처박고 엑엑 그리며 쓴물을
게워낸다. 진짜 죽을 지경이다.....
곁에 아내가 있다면 헌화가
한자락에 참꽃 한송이 바치오련만 ... 귀바위를 지나니 그저께 비로 맑은 물이 제법 수량도 그럴싸하게 흘러간다. 씨에라 컵으로
석잔이나 마셨다. 표지판이있는 공터에서 쌀바위까지는 지난번 에는 임도로 갔기에 이번엔 능선을 타고 진행했다.나뭇사이로 난 오솔길의
아름다움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기자기하게 예쁘다.
저기 쌀바위 아래로 매점이 보인다. 가까이 가니 "숙취
확" 칩즙 2000원이란 메뉴가 보인다. 생각 하고 자시고 할것도 없이 두잔을 시켜 거푸 들이킨다. 알싸한 긑맛이 좋은것 같다.
쌀바위를 지나 가지산을 바라고 천천히오르니 아까 먹은 칩즙이 자꾸만 부글거린다. 결국 20분도 내 속에 있지도 못하고 다시 사바
세계로 되돌아 나온다.
능선 왼편의 아찔한 절벽 구간을 구경하며 욕지기와 싸우며 오르다보니 어느새 정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보다 먼저 선등한 분이 쉬고있다 . 운문사에서 올라왔단다. 조금 있으려니 석남 터널 쪽에서 한무리의 산꾼 들이
기운차게 올라온다. 옅은 이내로 인해 조망이 그리 쾌활하지가 못하다. 조금 쉬고 곧바로 석남터널로 하산을
서두른다.
정상부엔 이제 막 잎눈이 트일려고 하는데 아래로 갈 수록 초록빛 녹음이 장해진다. 봄에만 볼 수 있는 절묘한
광경이다. 석남터널 위의 매점은 아직 주인이 도착하지 않았다. 얼마간 쌀바위의 장쾌함을 구경하며 기다리니 호리 호리한 아저씨가 장화를
신고 올라온다. 여기 대피소 겸 간이매점의 총책임자인 사장님이시다. 커피 한잔으로 속을 달랜다.
차량의 굉음이
지척인것으로 보아 석남 터널이 바로 아래인가보다. 석남 터널을 지나면서 가장 아름다운 능선이 능동산까지 이어진다. 가지산의 험한
돌길이 아내의 가슴처럼 편하고 폭신폭신한 흙길로 바뀐다. 기복도 거의 없어 별로 힘이 들지도 않고 가지산이나 신불산처럼 사람이
붐비지도 않아 호젖하게 산행을 이어 갈 수 있어 좋다. 능선중 쉼터 역할을 하는 기이한 소나무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산까마귀가 멀리 가지도 않고 내 주변을 돌며 깍깍 거린다.
결국 내 입안의 사탕을 차지하고서야 사라진다. 능동산
오르막 길을 오르는데 억 소리가 절로난다. 어찌나 힘이 들던지 그냥 배냇골로 하산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난다. 멀리 천황봉
갈림길을 지나 배냇골로 내려서니 머리는 어질어질 속은 메슥메슥 거리고 그런 곡경이 없다.
간이 매점에서 라면을 하나
시켜 헛헛한 속을 달래려는데 국물만 조금 들어갈뿐 건데기는 아예 넘어가지도 않는다. 젖가락으로 휘휘 젖고만 있으니 주인이 맛이
없느냐며 넌지시 묻는다. 손사래까지 치면서 아니라고 분주를 떨고는 계산하고 곧바로 일어섰다. 배내봉으로 올라서는 길이 진짜 장난이
아니다. 등에 보따리는 천근의 무게로 짓누른다. 길 중간의 샘의 맑은물은 속이 시릴만큼 차고 풍성하게 흐른다. 원없이
퍼마셨다.
힘들게 배내봉을 올라서니 시원하게 바람이 불어와 노고를 달랜다. 평소에는 그리 높아 뵈지도 않던 간월산이 왜
저리도 도도해 뵈는지.... 혹시라도 탈진이 될까봐 천천히 간월산으로 향한다. 왼편의 깎아지른 절벽을 구경하며 자주 쉬면서 안부까지
도달하니 웬일인지 조금씩 컨디션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간월산 오르막길은 생각보다 쉽게오른다. 배내봉 오를때까지
죽을 지경이였는데 그참 신기하다. 간월산 정상엔 시원한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친다. 한참을 달게 쉬고 아내에게 전화하니 제발 부탁이니
간월재로 그만 하산을 하랜다. 합천까지 가야 할길이 남았으니 휴가때 통도사까지 종주하고 오늘은 우리 가족을 위해
하산하랜다.
솔직히 통도사까지는 좀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간밤에 퍼마신 술로 인해 여기까지 오는데만 8시간 가까이
걸렸다. 정상적인 체력이라면 6시간이면 족하리라. 간월재에서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그만 하산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제 다시는
산행 전날은 음주를 하지 않을겄이며 했다면 산행도 않을겄이다. 많이 반성했다.
어제 새벽 같이 퍼마신 술로인해 주작산
덕룡산 종주를 포기하고 오늘 고리타분하게 산행기나 쓰고있다. 내심 고생해도 산에서 고생하는게 더좋은데 하는 생각이 들지않는건
아니였으나 산이 어디 갈겄도 아닌데 하며 애써 자위했다. 오늘따라 날은 째지게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