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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어리목에서 영실로(2003.4.24)

올린이 : 산순이   2003/04/29 (올린날)              한국의 산하 | 산행기 게시판

한라산 어리목에서 영실로(2003.4.24)

통영에서 제주도에 무사히 도착하긴 했는데 계속되는 비가 발목을 잡는다. 오늘은
한라산 등반을 계획했는데 호우주의보까지 내렸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민박집 창
문을 열어보니 눈앞에 있어야 할 성산일출봉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가보는
데까지는 가보기로 하고 8시경 제주시행 버스를 탔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하여 성판악등로를 물어보니 표파는 아가씨가 입산이 가능할 것이라 한다. 준비한
산행지도와 안내정보는 비로 모두 젖어버려 민박집에 두고 온 상태라 아가씨 말만
믿고 버스에 올랐다. 약 40분 정도 걸려 10시경 성판악 매표소에 도착하니 입산은
9시 반에 이미 끝났다며 입산은 절대 안된다고 잘라 말한다. 아무리 사정해도 안된
다. 나의 준비 부족도 있었지만 엉터리 안내로 이곳까지 헛걸음하게한 매표소 아가
씨도 원망이 되었다. 엄연히 관광안내라고 붙어 있었는데.

할 수없이 1시까지 입산이 가능하다는 어리목이나 영실코스로 가기위해 다시 제주
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쪽 버스는 11:50분에야 있다며 아까 안내한
아가씨가 매우 미안해했다. 할 수 없지 뭐. 아점을 먹기로 하고 식당을 찾았다.

11:50 어리목행 버스를 타니 손님이 나를 포함해 두사람 뿐이다. 기사 아저씨가 몇
시에 어디로 하산할 것인지 꼼꼼히 물어보신다. 서귀포에서 넘어오는 버스가 별로
없다며 영실에서 오후4시40분 아니면 6시 막차를 놓치지 말라고 하신다.

12:40 드디어 한라산이다. 어리목매표소에 도착하여 다시 한 번 배낭을 점검하고 등
로에 들어섰다. 지금까지 비는 계속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 정도의 날씨라면 괜찮을
듯 하다. 안개에 촉촉해진 숲이 매우 정갈하다. 입에서는 '안개비가 하얗게...'노래가
절로 나오고. 조금 걷자 계곡이 나왔다. 여느 곳이라면 다리하나 있을 법한데 계곡을
바로 가르지르게 되어있다. 빗물이 불어나면 바로 통제될 것 같다. 계곡을 건너자 돌
계단 나무계단이 연이어졌다. 계단 계단 계단....... 계단이 끝이 없다. 어느 중학교에
서 수학여행을 왔는지 학생들의 하산이 이어진다.

계단은 한 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무릎이 뻐근할 즈음 갑자기 시야가 트였다. 그리고
는 깨끗한 나무길이 펼쳐졌다. 주변의 풍광이 아름다울 것이라 상상만 될 뿐, 안개 때
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왼편으로
샘터가 있어 맛을 보니 찬게 너무 좋다. 계속되는 비로 마땅히 쉴 수도 없어 앞만 보
고 진행했다. 갑자기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급하게 구입한 일
회용 우비는 완전히 무용지물이었다. 어떻게 나는 우비와 배낭커버만 빠뜨리고 오면
이렇게 비가 오는지 모르겠다. 몇 년동안 제대로 써 본적이 없는데 챙길땐 안오고 꼭
이렇게 챙기지 않으면 비가 온다. 완전히 물에 빠진 쥐 꼴이 되었지만 걸음을 멈출 수
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제일 불편한 것은 안경을 쓸 수 없어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제일 조심스러웠다. 비 때문에 메모도 할 수 없어 그냔 묵묵히 걷기만 했다.

14:30 눈 앞에 갑자기 건물이 나타났다. 윗새오름 대피소였다. 살았다 싶어 안으로
들어가니 어서 옵쎄하며 젊은 청년이 맞이한다. 춥지 않느냐며 난로도 피워주고 여러
가지로 배려해 준다. 등산화를 벗으니 물이 주루룩 흘렀다. 양말을 벗어 짜 난로 곁에
걸고 등산화는 난로위에 매달았다. 따뜻한 대추차 한잔을 건네 받으니 마음까지 훈훈
해졌다. 간식을 하며 한라산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시간이 지나려
하고 있었다. 버스 시간이 염려되어 다시 재무장한 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빗길을
나섰다. 이미 젖어버린 배낭이었지만 큰 비닐로 커버를 만들어 주셔서 더 이상 안까지
젖는 것은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

15:30 영실로의 하산은 비와 바람과의 싸움이었다. 특히 벼랑을 치고 오르는 바람은 너
무 거세어 난간의 로프를 잡아도 날아갈 듯 했다. 어느 정도의 구간을 지나니 평온한 숲
길이 이어지며 비도 가랑비로 바뀌었다. 성질 급한 철쭉이 몇군데 꽃을 피우고 있다. 잘
정비된 등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영실휴게소가 보였다.

17:00 영실휴게소로 들어서자 가게분들이 이 비에 왠 일이냐는 얼굴을 하신다. 따뜻한
오미자차 한잔을 시켜서 마시니 살 것 같았다. 버스편을 물어보니 여기서도 포장길을
40분은 걸어 내려가야 한단다.

17:15 휴게소를 출발. 도로를 따라 걷고 있자니 1톤 트럭이 한 대 올라간다. 조금 뒤 다시
내려온 차가 버스타는데 까지 태워 주겠다고 하신다. 차 시간도 있고해서 그냥보내고
조금 걷자니 아까 휴게소 분들이 퇴근하시는지 차를 세우며 제주시까지 태워 주겠다고
하신다. 보니 자리도 넉넉지 않고 내 옷이 젖어있어 고마운 마음으로 사양했다.

17:50 영실관리사무소 도착. 마침 직원이 나와 있어 버스편을 물으니 안 올수도 있단다.
아니. 이럴수가. 정해진 시간은 손님이 있던 없던 돌아야 하는 것 아닌감. 난감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 소리가 들리더니 눈 앞에 나타났다. 너무 반가워 힘차게 인사하고
오르니 오전에 어리목까지 태워주신 기사님이시다. 내가 하산할 시간에 맞추어 오셨다
는 것이다. 정말 믿거나 말거나다. 아무튼 너무 고마웠고 제주시 도착까지 나외엔 한사
람의 손님도 없어 더욱 미안해졌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는 산행이었고 비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지만 제주도 분들의
따뜻한 인심을 푸근히 느낄 수 있는 고마운 산행이 되었다. 5월 중순지나면 아름다운
철쭉이 핀다하는데 꼭 다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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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