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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가야종주] 미친 산행.

올린이 : 이온철    2003/04/21 (올린날)              한국의 산하 | 산행기 게시판

[수도가야종주] 미친 산행.

[수도가야종주-빗속을 둘이서]

1.날자:2003.4.19~20(무박야간종주)

2.산행지:김천 수도암~수도산-가야산~합천 해인사.

3.인원:이온철,백현석(2명)

4.준비물:우중야간산행에 준한 장비일체,식사2끼니분 및 간식,물 총9.5리터

5.비용

-서울역->김천역:@13,100(무궁과 일반실)
-김천역 중식 : @3,500(김치찌게)
-김천역->지례면:@ 1,150(시내좌석버스)
-지례면->수도암:\30,000(갤로퍼,대덕면 세광할인마트 011-510-9151)
(소개자,대덕면 그린다방 011-805-2209)
<위 두 갤로퍼 아저씨들과 미리 연락하면 됨>
대덕면->수도암은 \17,000 이나 작년 수해로 유실된 도로복구공사중.
옆 지방도로로 길게 우회하였으며 위 도로는 03.6월말경 완료예정.
-해인사 상가내 식당조식:@6,000(된장찌게)
-해인사->대구서부터미널:@3,900
-대구서부터미널 부근 도로 ->대구역:\5,300
-대구역->서울역:@20,000(무궁화특실-특별할인?-5%,\800 할인된 금액)

6.코스
수도암 - 15:20 산행출발
-수도산(1316.8)-단지봉(1326)-좌일곡령-목통령-분계령-두리봉(1333)-부박령-가야산(1430)
-해인사- 07:20 산행종료<16시간 소요>

7. 후기

주초 일기예보에 주말에 비내리고 밤늦게나 갠다고 하여 우중산행을 염려하고 있는데 금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려서 심중에 크게 안심하였다. 통상 하루종일 비가 내리면 다음날은 맑게 개이기 때문에 금요일 저녘 퇴근하여 배낭을 꾸리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토요일 오전까지 비 내리고 오후엔 개겠다고 분명히 날씨예보를 해주고 있지 않는가.
그래도 모르니 우중산행 준비는 단단히 해야 한다.

흐리적하고 부슬비가 간간히 내리는 토요일 아침, 간밤에 준비한 배낭에 밥과 김치를 챙겨넣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격주로 노는 회사가 많아서인지 출근시간인데도 전철간은 복잡하지 않아 좋다. 노인네도 아닌데 서두름증이 생겼는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여 티켓팅해놓고 한참을 역사에서 어슬렁 거렸다. 비가 질척거리는데도 역사입구와 주변에 노숙자들이 퍼질러 있는 것은 역사안으로 올라가는 계단위에서 경찰들이 엄하게 그들의 진입을 막고 있는 때문이었다. 산다는게 무엇인지 먹고 잘 곳 없는 이들은 비내리는 밖에서 뱅뱅돌고 당장 먹고 살만한 인간들은 깨끗한 역사안에서 제 볼일들 보느라 바쁘구나.

열차안 심심풀이로 '좋은생각(2000원)' 한 권 사서 열차에 오른다. 영등포역에서 동행할 아우
쌀집(현석)이 차에 합류했다. 날씨는 여전히 흐리적하다.
나는 1호차, 쌀집은 2호차, 추가로 끊었더니 자리가 갈린 것이다. 달포전 어거지로 강권하여
동행을 약속했던 쌀집이 워낙 공사다망한 인간이라 무시하고 내 자리만 끊었다가 역시 간다하여
추가로 매표를 했다.

좋은 생각 5월호에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살아가는 얘기가 가득하다. 어느 과일인가 야채인가를
판매하는 사람이 우체국?택배로 부친 물건이 늦게 도착하여 식품이 상해 열받은 사람이 전화로
클레임을 강하게 늘어놓는데 그만 "그게 어디 내탓인가, 물건 늦게 도착한 것이" -투로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 때문에 일주일 내내 사과하느라 경을 쳤다는 짧막한 한토막 얘기에 절로
눈꼬리에 주름이 잡히며 실금실금 웃음이 났고, 잡다한 살아가는 삶의 편린들이 가슴을 적신다.

천안지나고 나서 그 책을 앞차의 쌀집한테 갖다주고 와서 깜박 잠들었다가 깨었는데 여직 대전도 안 지났다. 멀뚱하니 자는 척하다가 바깥 구경 하다가 김천역 내리면 화장실 가야지 하는데 마냥 차는 가고 있고 방광은 차오르니 어쩔 수 없이 김천역 도착하기 직전에 차내 화장실을 방문한다. 시원해라.

김천역에 내려 버스터미널은 역광장 좌측의 계단을 올라 역구내를 횡단하는 긴 고가보도를 거꾸로 가야 한다. 언뜻보니 농협 하나로마트가 크게 서있어 쌀집 시장 볼 거리 있느냐 했더니 물을 사야 한단다. 큰 도시 못잖게 하나로마트에 사람이 많고 매기가 있어 보인다.
쌀집이 물 4리터와 떡 2봉지를 사 넣고 길 건너 버스터미널에서 행선지(지례)를 확인한다.
터미널 뒷편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게를 시켰는데 부시레한 남자 혼자 금방 뚝딱 얼큰한 찌게를 만들어 낸다. 산행전엔 든든하게 먹어둬야지 하면 반공기씩을 더 먹었는데 마지막 한 수저분을 남겼다. 나중 산행중에 남긴 이 한숟가락이 얼마나 아쉽게 생각이 나던지.

대덕의 그린다방 아저씨가 직접 못오고 다른 분을 보내주겠다고 하여 일단 지례까지 버스로
들어간다. 지례면 정류소에 내려서 약속한 갤로퍼를 기다려 탄다. 김천의 루사 수해가 얼마나 컸었는지 물갈퀴가 지나간 자리가 산끝에서 끝에 이를 정도로 광대하고 복구공사하느라 지금도 정신없다. 원래는 대덕면까지 버스타고 가서 갤로퍼 자가용(택시)을 이용하는 것인데 지례에서 대덕가는 국도가 수해로 끊겨 복구공사중이라 대덕에서 우리를 데려다주러 나온 것이다.
김천에 복구공사 업체가 무려 200여 곳이 들어와 일을 하고 있다니 잠깐동안의 태풍이 남긴 흔적은 대단한 것이었다.

지례에서 우회하는 산길 지방도로를 한참이나 돌아간다. 가는 곳 어디나 평야고 산길이고
몽땅 거덜났던 파편이 널려있다. 수도암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따라가는 계곡이 완전히 파헤쳐져서 너덜지대가 되어버렸다. 작년에 다녀왔던 칠부가 인적 드물고 깨끗하고 예쁜 계곡이라 식구,지인들과 다시 찾았으면 했다던 - 그 참 좋은 계곡 다 버렸다고 갤로퍼 아저씨가 탄식을 더해준다.

수도암에 도착하니 자욱하게 안개가 끼고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기세다. 험한 길 길게 빙 돌아왔으니 3만원정도 달라길래 깎지 않고 그대로 지불했다. 산행전에 할 일 - 화장실 들리니 칸막이만 되었고 문이 없는 트인 공간이다. 볼 일 보고나서 옆에 있는 왕겨를 한 삽 퍼넣는다. 냄새가 훨씬 덜하다. 공사중인 새 화장실 안에도 칸막이만 할 것인지 변기가 주르륵 줄세워져 있어 신기한 구경거리다.

큰 마당 벽 아래에 물자리가 있다. 4리터 물을 병에 채워 담고 배낭을 정비하고 산행 출발이다.
쌀집이 스님들과 코스 문의를 해본다. 스님들은 마을로 통하는 갈림길이 워낙 많으니 까딱하면
엉뚱한 곳으로 내려설 것이니 조심하라고 한다.
잘 걸을 수 있을지 내심 불안한 마음이지만 담담하게 산행로 입구에 발길을 내딛는다.

수도산으로 오르는 길은 크게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이 능선길 따라 이어진다. 쌀집이 민폐를 끼칠 것 같다고 한다. 민폐는 무슨 - 동네가 있고 주민이 있어야 민폐지 - 스리슬쩍 돌려친다.
아닌게 아니라 안개가 짙어지고 부슬비가 축축하게 젖어드니 이런 길을 밤새 걸어야 할지 나도
속으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무 것도 안보이고 그저 앞만 보고 걷는 산행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한시간정도 거리에 수도산 갈림길이 있을 것이라 갈림길이 나타나기만 기다린다. 어지간히 올라
바위위로 직진하는 길과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나타난다. 쌀집이 지도정치를 하더니 직진하여 좌회전하는 길이 맞다고 한다. 바위위에 배낭 내려놓고 수도산 확인을 하러 내려선다. 쌀집은 "난 안가요"다. 우측 갈림길로 내려서자마자 바로 오름길이다. 그야말로 50미터 거리다. 안개속으로 시퍼런 낭떠러지가 느껴진다. 수도산 명패(1316.8)를 확인하고 돌아선다.

쌀집 있는 곳으로 돌아와 "하느님 제발 안개 좀 걷어가 주십시오" 중얼거리며 한 개비 피워문다.
안개 좀 걷어가시오, 날씨 좀 개이게 해주시오 를 산행길 내내 기도문처럼 달고 다녔다.
한시간 반 정도 걸었을 즈음, 쌀집이 어두워지기전에 밥해 먹자 한다. 가면서 자리 찾아보자하고.
나도 오르막에서는 늘상 버벅대고 헤메는데 쌀집이 영 시원찮다. 4달만에 산행을 나왔으니 몸이
적응을 못하는 게다. 오르막마다 쌀집이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많이 힘들어 한다.

어렵사리 단지봉을 통과하여 랜턴을 꺼내 머리위에 붙이고 밥 먹을 자리를 찾는데 아까아까 지났던 소나무 지붕이 근사했던 그런 소나무가 죽어라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솔씨가 이 곳은 왜 날라오지 못하고 이리 한 개도 없단 말이시. 소나무 그늘을 찾느라 걷고 또 걷다가 포기하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능선 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부슬비가 제법 굵어져 진작에 하의 비옷을 입었다.

라면을 끓이고 밥과 김치를 꺼내 놓고, 쇠주 한 병과 작은 골뱅이 한 캔을 땄다. 그나마 주룩주룩
비가 쏟아지지 않는 것이 다행인 셈이다. 찬 밥에 뜨거운 라면을 덮어 먹으며 쇠주병 나발을 불으니 속이 뜨듯해지고 에너지 보충이 되는 것 같다. 산행을 많이 했어도 빗속에서 밥 먹는 것이 간만이다. 밥 다 먹고 남은 골뱅이 국물이 차가우니 입에 넣기 싫어 우짤까 했더니 쌀집이 그대로 버너위에 올린다. 그래 이렇게 먹으면 되겠구나.

조금만 지체해도 한기가 물 젖은 옷 속으로 파고 드니 담배 한 대 피우고 바로 일어선다.
그야말로 한 치 앞 밖에 못보는 이 산행길을 정녕 밤새워 걸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점차 더해진다. 능선 고지가 높고 그런대로 완만한 경사 오르막이라 보통 상태로는 좀 빠르게 진행을 해도 되련만 이런 우중 산길에 아무리 내가 앞서 간들 무엇하랴 싶어 무조건 쌀집을 앞세워 자근자근 따라간다. 하여간 도상에 표시된 구간시간보다 삼십분에서 한시간씩 지체되고 있다.

좌일곡령은 분명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단지봉과 목통령 중간의 오르막 정상이 좌일곡령이었나보다. 완만하고 긴 오르내림과 거의 평탄한 능선길이 목통령까지 이어지는 듯 싶다.
날이 맑다해도 이런 야밤에 무엇이 보일리 없겠지만 능선아래로 넓게 산야가 담겨 있음을 느낀다.

쌀집이 계속 탈출을 얘기한다. 도상으로 능선에서 조금만 내려서면 마을과 통하는 계곡들이 부챗살처럼 뻗어 있다. 목통령 고갯길에는 분명한 등산로가 우측에 나있다. 거리도 짧아 내려서면 바로 마을이다. 목통령까지 열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애타게 탈출을 얘기하는 쌀집의 몸이 확실히 안좋긴 한데 아우를 위해 한 번 꺾어주십사 하는 애원을 일언지하에 일축하고 "지금까지 왼 비 맞으며 걸어왔는데 여기까지 와서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가자", 빗줄기가 감당하기 어렵게 쏟아진다면 나 역시 탈출을 먼저 생각했을 것이지만 이런 부슬비는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통령 지나고 나서 였던가, 능선 오름에서 길옆에 판쵸이 플라이를 치고 쉬기로 한다.
억지로 지붕을 묶어달고 앉으니 추위가 엄습한다. 쇠주 한 모금 물어도 소용이 없다.
쌀집이 불 피울 궁리를 해보지만 온통 젖어 있어서 불가능한데, 아침에 보고 왔던 책이 쌀집
휴대가방안에서 나온다. 우선 좋은생각 한 권을 소진하고 쌀집이 빌려온 책 한 권도 분실로 처리되고 불씨의 재로 변해간다.

배낭속 파일자켓을 꺼내 입었다가 다시 싸넣고 긴팔 남방을 입고 푹 젖은 윈드자켓을 겉에 걸치니 한결 낫다. 결국 불씨는 살리지 못하고 책종이로 잠깐 온기를 느꼈다가 금새 추워지니 다시 출발이다. 한 겹 속에 덧입었다고 든든한데 쌀집은 여전히 젖은 옷인채 떨며 걷는다.

목통령에서 긴 오르막을 올라 도상 분계령을 지나고 다시 피치를 올려놓다보니 어느덧 두리봉에
닿았다. 새벽 두시 약간 넘은 시간이다. 이제는 부박령에서 해인사로 내려가는 길을 얘기하는 쌀집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고민이다.
수도가야산 능선에는 운동장만한 헬기장이 많기도 많다. 아마 부박령도 그 커다란 운동장만한 공터 였을 게다. 일단 부박령에서 쌀집을 내려보내고 혼자 가야산을 올라 해인사에서 만나자로 내심을 굳혔는데 부박령을 비정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빗속에 주저앉아 건빵과 쵸코바를 우걱우걱 집어넣고 물 500밀리 한 병을 털어 넣었다.
보충은 탈진하기 전에 미리미리 해야하는데 이런 우중에 아무데나 앉기가 어렵다.

부박령이 어딜까 하니 쌀집이 아마도 이미 지나쳐 지금 가야산 어택길에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아까 먹은 건빵이 물을 달라고 목을 태우고 쌀집도 쉬여야겠는데 쉴만한 자리가 없다.
숱좋고 넓지막한 소나무 한 그루 만났으면 하지만 그저 생각일 뿐이다.
길 옆 바위밑에 다시 판쵸플라이를 치고 앉았다.

당초 혼자 예정일 때 끊어 두었던 대구역 열차 시간에 한 자리 더 끊은 나중에는 이후 열차표 좌석이 이미 매진된 상태라 대구역에 시간을 맞추자면 너무 늦어지면 안되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어 쌀집 걸음이 좀 더디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대구에 혜숙(시골 친구-대구에서 선생님하고 있음)이 점심 대접하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될지는 돈 노.

휴식을 마치고 힘차게 가야산 정상을 향한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제 말대로 이제는 스틱에 의지를 하고 있지만 술렁술렁 잘가는 쌀집이 대견할 따름이다.
누가 이런 미친 산행을 하겠느냐고 자문자답한들 그저 목표점까지 찍고 가자는 일념이다.

참말 운동장만한 헬기장이 나타나고 바로 머리위에 엄청난 바위더미가 올라서 있다.
날이 새기 시작했고 새벽 다섯시 이십분쯤 되었단다. 저 바위더미 꼭대기가 상왕봉 정상이다.
하산길만 남았지만 속으로 자신과 쌀집에게 큰 박수를 보내본다. 부슬비 맞으며 정상에 올라?. 오 노!
정상까지 10미터는 후일에 맑은 날 오르기로 약조를 하고 방향표지판에 손가락 점을 찍었다.

하산루트를 찾는데 우왕좌왕 헤맸다. 해인사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만이 얼른 길을 알 수 있을 뿐
정상 바로 아래 넓직한 공터위에서 한참을 왔다갔다 하고, 공단사람들 욕을 엄청 해댔다.
험난해 보이는 바위능선 쪽으로는 아닐 것 같았는데 결국은 바위능선 방향 왼쪽 아랫켠 저 밑에
표지판이 서 있었다. 까닦했으면 쌀집 말대로 백운동쪽 상당히 긴 루트로 우회할 뻔 했다.

종주후 하산길은 역시 멀게 느껴진다. 해인사까지 3.8km, 나름에는 꽤 내려섰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만나는 표지판을 보니 겨우 1.4km 내려왔다. 이후 계속해서 거리와의 싱갱이가 벌어진다.
꽤 난코스인 초입 내리막을 마치고 가파름이 덜해졌을 무렵부터 다시 해인사 상가와의 거리표지까지 합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해인사 가까이부터는 거리표시도 엉망이다. 해인사 경내 어디서부터 길을 비정을 했는지 몰라도
표지판만 믿고 걷다가는 제풀에 지치기 쉽상이겠다. 쌀집도 언간히 분해하는 감정이다.

해인사 경내를 통과하다가 첫 화장실을 찍었다. 도착기준으로 아침 일곱시 이십분, 수도암에서
꼬박 열여섯시간을 소요했다. 서로 악수는 안했지만 끝까지 버텨내준 쌀집이 고맙다.
깨끗한 화장실에 들어가 옷 갈아입고 배낭정리하고 제대로 씻지는 못했지만 한 결 개운한 몸으로
경내를 벗어난다.

날씨가 좋아졌으면 정상에서 놀며 기차표 취소하고 느긋하게 상경할 생각이었지만 이런 날씨엔
어불성설이었다. 해인사 상가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잘 가꾸어 놓았지만 지친 몸에는
그저 먼거리가 불만이다.

터미널 가계에서 버스시간등 문의하고 식당 괜찮을 곳 소개하라 해서 화장실 들러 온 쌀집과
아줌마 한 사람을 쫓아 간다. 개천 건너 약간 위에 자리한 향토방식당!?이었던가.
우째 반찬가짓수가 괜스리 많다했더니 계란후라이 하나 얹어주지 않은 된장찌게 값을 인당 6천원이나 받는다. 데려온 주인아줌마가 어리론가 가고 없으니 일하는 아줌마한테 따져봐야 헛 일이라 일단 지불하고 버스티켓 파는 아저씨한테 가서 댓거리를 해버렸다.

아니 백반 한 상이 6천원이 웬 말이며 5천원도 비싸고 우리같은 산꾼한테는 4천원만 받아도
충분한 것 아니냐고 신경질을 냈더니 아저씨도 그말이 맞다고 대신 미안함을 표한다.
바가지 상혼이 아니고 무엇인가.

대구서부터미널까지 1:30 이면 된다길래 시간맞춰 식사 마치고 9:25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니 히터를 틀어놔 노곤한 몸이 금방 퍼져버린다. 자다가 깨다가 아주 잠들었는데
이눔의 버스가 여기서도 한 참 , 저기서도 한 참 도무지 서두는 기색이 전혀 없이 종내는 만석을
채우고서야 제 길로 들어선다.

경상도 노친네 아저씨들은 왜그리 수다스러운지 장난까지 하느라 온통 소란스럽고
버스는 느리적거리며 소위 대목(손없는 날-대구시내에 예식 많은 날)장사하느라 여념 없던 것이다. 두 번이나 기사한테 가서 도착시간을 확인하는데 대구시내 들어서서 아무데나 길거리 세워서 손님들 내려주며 천하태평이니 앞으로 나가서 신경질을 다시 쏟아냈다.

같이 화내며 자기가 더 지체했어도 그만이라고 대들던 기사아저씨가 그래도 기차 놓치지 말라고
길 한가운데에서 문을 열어준다. 도상으로 대구역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하기만 하다.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고 불평을 늘어놓으니 그 대목사정 얘기를 해준다. 주말이 시골다녀오는 버스는 대목이라고.

대구역에 도착해 결제해 놓은 표 받고, 몇 번이나 통화하며 기차표 물리고 우등타고 가라고까지
얘기한 혜숙이 대구역사에 있는 백화점에 볼 일 있다며 나와 도시락을 사서 쥐어 준다.
차 한 잔 못하고 도시락 주머니 받자 바로 악수하고 헤어져 열차 타는 곳으로 나와야 했으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야 말해 무엇하리.
충청도 산골 시골 친구가 대구에서 만나니 의당히 차표를 바꾸고 얘기도 나누었어야 했는데
늦은 아침 먹었고 몸까지 만근이어서 차 한잔 나누지 못하여 참으로 미안하고 고맙기만 한 것이다.

플랫홈 매점에서 참쇠주 두 병을 사서 혜숙이 준비해준 도시락 밥과 후라이드 치킨으로 안주 삼아 쌀집과 산행중 못 나눈 속내 얘기를 하며 한시간여 나누었다.
그리고는 바로 다운되어 언뜻 눈을 뜨니 영등포역을 지나친 상태다.
열심히 자는 쌀집 깨우고 나도 정신을 좀 차려 남들 다 내린 마지막에 서울역에 내렸다.

미친 우중 야간 무박종주산행, 그 지독한 가스속에서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은 것은 쌀집이
방향을 잘 읽어냈고, 바닥난 체력속에서도 끝까지 힘을 낸 덕분이다. 원래대로 혼자였다면
길눈이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절머리나게 고생을 했을 것이다.
이런 미친 우중산행을 언제 또 다시 해볼 수 있으리.....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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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