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jpg
img.jpg-마니사 톱하네 파크 공원, 유난히 검은색물의 마르마라해-

튀르키예(터키) 89일 일곱째 날 여행 제 6일째이스탄불(İstanbul)

11:02(목) : 마니사(Manisa)-부르사(Bursa)-이스탄불(İstanbul)

마니사(Manisa)  : 튀르키예 서부의 도시이즈미르에서 동북쪽으로 20km, 데니즐리에서 서북쪽으로 100km 떨어진 평지에 위치 인구는 약 30만으로튀르키예에서 24번째로 큰 도시이자 마니사 도의 주도이다옛 지명은 마그네시아로게디즈강을 따라 동쪽으로 늘어선 협곡 분지의 생산력 덕에 역사가 매우 깊다고대에는 헬레니즘 종말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마그네시아 전투의 장이었고중세 14세기에는 아나톨리아 베이국 중 하나인 사루한 왕조의 수도였다. 15~16세기 마니사는 오스만 제국의 황자들이 총독으로 파견되어 정치 경험을 쌓았는데그중에는 쉴레이만 1세와 무라트 3세 등이 있다튀르키예 독립 전쟁 중 3년간 그리스 왕국령이 되었는데, 1922년 튀르키예 대국민의회군의 탈환이 임박하자 그리스군이 방화하여 시가지 대부분이 전소되었다.
img.jpg
img.jpg
img.jpg-술탄 오스만 가지가 잠든 영묘 공원에서 만난 풍경-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후 재건된 마니사는 이즈미르의 이웃 도시로서 일대의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가공과 가전제품 및 건설 자재 생산 등을 기반으로 한 산업 도시로 성장하였고유럽의 여러 기업이 투자하고 있다스필 산의 북쪽 기슭에 동서로 길게 펼쳐진 시가지는 서부의 산업 단지와 동부의 구도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볼거리로 시내의 술탄 모스크무라디예 모스크 고고학 박물관울로 재미와 산 중턱의 마니사 성채 등이 있다동쪽 데니즐리 방면에는 사르데스 유적과 옛 필라델피아(알라셰히르)가 있다서북쪽 5km 지점에는 1959년 튀르키예 최초의 체육 전문 대학으로 설립된 젤랄바야르 대학교가 있다또한 마니사는 튀르키예 쉬페르리그에 소속된 축구팀 마니사스포르의 연고지이다그외에 마니사 지역은 산악지대를 근거로 튀르크멘 유목민 출신의 알레비파 신자들이 집단거주하는 촌락들이 자리잡아 튀르키예 서부에서 몇 안 되는 알레비파 다수동네이기도 하다.
img.jpg
img.jpg-1399년 셀주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슬람 사원 울루 자미-

부르사
(Bursa)  : 아나톨리아 북서부 마르마라 지역에 있는 튀르키예 내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가장 산업화가 이뤄진 대도시권 도시 중 한 곳이며부르사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1335년에서 1363년 사이 오스만 제국의 첫 주요 도시이자 두 번째 수도였다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페르시아어로 "신의 선물"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명칭인 휘다벤디가르(튀르키예어: Hüdavendigar, 오스만 튀르크어خداوندگار)라고 일컬어지었고좀더 현대적인 별칭은 부르사의 도심 곳곳에 있는 공원들과 정원들과 더불어 도시 주변의 넓고 다양한 숲들을 나타내는 예실 부르사(튀르키예어: Yeşil Bursa, "초록색 부르사")이다고대에는 미시아의 올림포스산이라고 불렸던 울루산이 우뚝 서있으며스키 리조트로 유명하다부르사는 다소 정돈된 도시 성장을 하고 있으며 비옥한 평원에 접하고 있다.
img.jpg
img.jpg
img.jpg
-해안선 따라 길게 뻗어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

초기 오스만 왕조의 술탄들의 마우솔레움들이 부르사에 있고 부르사의 주요 랜드마크에는 오스만 제국 시대에 지어진 여러 대규모 건축물들이 있다또한 스파와 고고학 박물관을 포함한 몇몇 박물관들도 있다터키의 그림자극의 등장인물인 카라괴즈와 하지바트는 부르사에서 살고 죽은 역사적 인물들을 배경으로 하였다부르사는 또한 이스켄데르 케밥이곳의 밤을 절여 만든 마롱 글라세복숭아로쿰 등의 튀르키예 요리로도 알려져있다부르사는 울루산 대학교가 있으며부르사 거주민들은 튀르키예에서 가장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지역중 한 곳이라 할 수 있다이즈니크(니카이아), 무다니아제이틴바으 등의 옛 도시들이 부르사주에 있고, 2015년 기준 인구가 1,854,285명이며부르사주는 2,842,000명이었다.

이스탄불(İstanbul)  : 흑해에서 마르마라해로 향하는 보스포루스해협의 양쪽인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는 마르마라주의 도(, İl)이자 그에 속한 동명의 시로수도인 앙카라보다 거대하고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튀르키예의 최대도시이다.
기원전 7세기 그리스의 도시국가 메가라의 왕자에 의해 식민지로 개척되어 왕자의 이름을 따서 '비잔티온(Byzántion)'이라고 명명되었다서기 73년 로마의 소유가 된 뒤 '비잔티움(Byzantium)'으로 불렸다가 330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선포하면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지명이 변경되었다오스만제국 시대에는 '코스탄티니예(Kostantiniyye), 데르사테트(Dersaadet), 이스탄불(Istanbul)'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이스탄불이라는 명칭은 '도시로(to the city)'라는 의미의 중세 그리스어의 발음인 '이스 팀 볼린(is tim bolin)'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을 거쳐 1922년까지 아나톨리아반도를 지배한 국가의 수도였으나,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과 함께 수도가 앙카라로 이전되었고 '이스탄불(Istanbul)'로 지명이 변경되었다이스탄불을 구성하는 유럽 지구와 아시아 지구는 2㎞ 길이의 유라시아 해저터널(Eurasia Tunnel)로 연결되어 있으며과거 1882년부터 1977년까지 운행한 파리~이스탄불을 연결하는 오리엔트특급 열차의 종착역으로 유명하다그리스 정교의 본산으로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의 소재지이기도 하다약 2,576의 면적에 1,5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며튀르키예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규모가 큰 도시이자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1985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img.jpg
img.jpg-공부가 부족해 이슬람 첨탑을 이해하지 못하나 아름답다-

MANISA DOUBLE TREE BY HILTON HOTEL
에서 여장을 꾸려 295km에 달하는 거리를 3시간이상 달려 오스만제국의 수도였던 부르사(Bursa)는 마르마라해 연안에서 30km 내륙 북쪽 산기슭이 번화가로 융단견직물 등 섬유공업과 온천 휴양지로 알려진 고대도시에 도착했다. 부르사(BURSA)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는 톱하네 공원(TOPHANE PARKI)을 돌아봤는데 이곳은 야경이 아름다운 관광명소로도 알려진 대로 언덕에  올라서 바라본 조망이 훌륭했다. 산책하기 좋고 사방이 트인 지리적 특성으로 한때는 군사요충지였다. 6층으로 높이 65m 너비 4.65m 공원의 색다른 상징이며 또한 랜드마크인 시계탑 전망대가 공사중으로 일반인에게 개방이 되지 않아 아쉽다.
물리학자들 중에는 시간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없지는 않고 있지만, 기초과학에도 무지한 일반인의 짧은 생각일지라도 시간의 흐름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는 생각이다. 세월이 흘러감과 온도변화에 따라 무릇 생명체라면 모두는 태어나고 죽음을 반복하며 흙으로 돌아가는 사실을 믿으며, 세대별로 자신들의 취향이나 취지에 맞는 여행(영어 ‘travel’은 라틴어 고통고난을 뜻하는 ‘travail’에서 나왔다)지를 찾아 나설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개적인 기록하는 습관으로 메모해두었던 글귀를 뒤적거려 찾아보니 공유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대로 옮겨 본다.
img.jpg
img.jpg-어둠속에서 조명이 아름다운 까닭을 생각해 본다-

10
대는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한 여행,
20대는 학습과 체험을 하기 위한 여행,
30대는 꿈과 희망을 갖기 위한 여행,
40대는 향후의 삶을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쌓는 여행,
50대는 살면서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것을 보기 위한 여행,
60대는 열심히 살아온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는 여행,
70대는 삶의 짐을 내려놓는 여행, 이라 했으니 나 자신을 꼭 짚어서 지적하는 말이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현대인들의 여행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주마간산(走馬看山)<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을 본다는 뜻으로사물을 자세히 보지 못하고 겉만 건성으로 살펴보고 지나가는 수박겉핥기식 여행이 적합 할 것이다>  나의 소견으론 여행지를 사전에 깊이 있는 탐구와 문화와 종교등의 특성을 이해하고 떠나야 무언가를 얻어오는 소득 있는 여행이인데 이번 튀르키예 여행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고대유적지에 대한 공부시간이 터무니 없이 부족했었다는 자책감에 부끄러움이 느껴져 얼굴이 붉어짐을 숨기려고 고새를 숙인다. 강행으로 인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이스탄불로 향하는 전세버스에 몸을 의지하고 PARK INN BY RADISSON HOTEL에 들어서 11월 둘째 날을 마감한다.                      --.

계백 (배상)

클릭하시면 저에 관한 조금 더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