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째 2017년 8월 29 화요일

알베르게 주방에서 아침 요리를 해 먹었다. 등산화의 물기가 다 빠졌으나 아직 축축함이 묻어난다. 양말 위로 발목까지 비닐봉투로 감싼 후 등산화를 착용했다. 습기 머금은 옷가지들을 밤새 여기저기 널어 놓았더니 다 꼬들꼬들 잘 말라서 매우 지오오디하다. 폭우속을 걸었건만 감기는 커녕 밤새 몸이 더욱 가뿐해진 것 같다. 설사도 멎었다. 컨디션이 솔찬히 지오오디하다. 좀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장기간 외지에 나와 있을 경우 대변을 본 후 용변 상태를 살펴봄으로써 건강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 순례 초엽에는 용변상태가 어째 좀 거시기했는데 지금은 똥개들도 아주 좋아할 상태인 것 같다. 자고로 잘 먹고 잘 싸야 건강한 것이다.

이것저것 하느라 8시가 임박해서 알베르게를 나섰다. 비소식은 없지만 구름이 잔뜩 낀 채 춥다. 판초우의를 보온 삼아 뒤집어썼다. 이끼가 낀 우아한 돌담 길을 걸어 마을을 벗어났다. 어떻게 이런 촌구석이 이처럼 정갈하고 아름다울까. 전쟁으로 인해 사람 피가 강물을 이루었다는 역사 기록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은은한 마을 풍경 들이다. 선친께서 살아생전 고향 어귀로 접어들면서 양파, 마늘들이 풍성하게 영글어가는 아름다운 들녘을 가리키 며, 6・25전쟁 때 마을 주민들끼리 두 쪽으로 편이 갈려 서로 죽창으로 찔러 죽여 사람 피가 길위에 선지가 되어 널려 있었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마을이라면 이처럼 크고 작은 피맺힌 통한(痛恨)의 역사들을 가슴에 담은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조정래의 장편 소설을 읽어보면 우리 근대 사의 슬픈 역사를 만나게 된다.

까미노 위가 물구덩이 천지다. 억센 풀들과 작은 관목들이 노변으로 쭉 뻗어 있어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물구덩이를 밟던가 깡총하고 널뛰기를 해야 한다. 앞서가는 순례자들의 이런 모습을 보니 ‘까미노가 좋다’며 춤사위를 하는 것 같아 나혼자 속으로 기분 좋게 웃었다. 한번은 어디 선가 스프링쿨러 물줄기를 피하려고 껑충 뛰다가 발을 헛 딛고 넘어져 무릎에 찰과상을 입고 피를 흘리는 여성 순례자를 보게 되었는데, 비상 약품이 없는지 흐르는 피만 대충 닦아내고 그냥 걸어가려고 했다. 동행 순례자도 약이 없는 것 같고 농부도 놀래서 달려 왔건만 약을 갖고 밭에 나왔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 여인을 불러 세우고 배낭에서 구급낭을 꺼내 처치해 주었다. 미련스러울 정도로 배낭에 항상 구급낭을 넣고 다니는 고지식한 버릇이 모처럼 제 몫을 한 것 같다. 지나가던 다른 순례자들도 주위를 에워싸고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 소독을 한 후 연고를 바르고 흰 붕대 로 감아서 처치를 끝내자 모두가 ‘베스트 닥터’라며 감사인사를 한 아름 안겨준다. 까미노상에서 이렇게 즐거운 일만 있으면 좋으련만 가끔 불쾌한 일도 겪는다. 한번은 일몰이 다 되가는 시간에 지친 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나타난 나홀로 바이크 순례자가 자기가 지나갈 수 있도록 좋은 길을 내주지 않는다고 투덜투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구시렁대며 간다. 참 실망이다. 자네나 나나 명색이 고 매연(高邁然)한 순례자가 아니더냐. 조폭처럼 성깔을 부려서 되겠는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채가 돋보이는 까스뜨로헤리스 마을 을 벗어나면 대평원과 사람을 압도하는 모스뗄라레스 언덕 Alto de Mostelares길이 기다리고 있다. 자녀들을 대동한 부부 순례자,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만만디 걸어가는 독일인 노부부, 힘이 넘쳐나는 바이크 순례자들, 생각에 잠겨 나홀로 걸어가는 여성 순례자, 쉴 새 없이 조잘대며 끼리끼리 걸어가는 여학생들, 덥수룩한 차림으로 만 돌린을 메고 가는 젊은이, 두발 수레를 끌고 가는 부부 순례자, 앞서가는 순례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 어 느 동양인 순례자, 이들 모두가 지금 까미노의 역정(歷程) 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는 직선으로 곧게 뻗은 대각선처럼 보이던 가풀막 길이 부드러운 나선형으로 감돌며 오르고 있다. 어깨를 앞으로 숙이듯 올라야 할 정도로 경사져 있다. 순례를 하면서 감동적인 구간을 몇 군데 꼽아 놓았는데 이 모스뗄라레스 언덕 구간이 그중 하나다. 안부에 올라섰다. 돌탑이 세워져 있고 자그마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메세타평원의 대표적 풍광이다. 사위 360도를 돌아보아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다. 수확이 끝난 밀밭, 경작이 안되고 있는 노지들이 한데 어우러진 그냥 허허벌판이다. 올라온 길 못지 않게 내려갈 길 또한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다. 이 위대한 장관을 경외롭게 바라보며 가족들에게 은혜 내려주시기를 축원하였다.

걷기는 순례의 커리큘럼이기도하다. 순례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하루 평균 30km를 걷는 것이 단련이 되면 육체의 개념 자체가 무화(無化)된다고 한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순례의 전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몸의 단련을 통해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다.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 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고 한다.

실크로드 1만 2000km를 4년에 걸쳐 오로지 두발로 걸어서 여행한 올리비에는 그의 책 '나는 걷는다'에서 말한다. “험난한 길을 갈 때면 나를 탐색하게 하고 나 자신과 겨루 기 위해서 내가 가진 것을 버리고 나를 잃어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 순간이 바로 걷기의 니르바나Nirvana이다.” 좁쌀처럼 보이는 지평선 넘어 마을이 다가 설 듯 잡힐 듯 하다가 다시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기나긴 평원 길을 마치 고 삐수에르가강 Río Pisuerga 위에 구름처럼 걸쳐진 돌다리를 지나며 이제 발렌시아 지방으로 접어든다. 까미노상 에서 유명하지 않은 것이 뭐가 있겠는가마는 발렌시아소파 도 유명하다고 하니 기회가 될 때마다 닥치는 대로 먹자.

앞서간 여행자들이 발렌시아 지방은 감추어진 보물들이 많 은 지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발렌시아의 중심 도시 레온 에서도 2곳에 들려 세요를 받아야 한다. 금요일 오후 7시전에 도착하여야 한다. 이 시간을 넘기면 월요일에 세요를 받아야 한다. 대학인 순례자 여권의 이면에 세요받는 곳이 지도로 잘 안내되어 있다. 그러나 세요해주는 시간대를 확인 하기 위해서는 사이트 CAMPUS-STELLAE.ORG 를 방문해야 한다. 세요 장소마다 근무 시간대가 다르고, 8월 한 달은 아예 근무하지 않는 곳도 있으니 바로 당해서 당황하지 말고 2-3일 전부터 세요 일정을 자주 확인해보자. 순례 초엽에 미리 확인을 하지 않아 까미노 일정을 이틀씩이나 중지해야 했다.

요즈음 들어 배낭을 메지 않고 걸어가는 순례자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아마도 배낭 배달 서비스를 애용 중인 듯하다. 나보다 연배가 더 된 캐나다인 도널드는 배낭 무게 를 줄이기 위해 파리공항에서 일부 짐을 덜어내 집으로 붙 였는데도 불구하고, 오리손 구간을 걷다가 배낭 무게를 여전히 감당하기 힘들었던지, 다시 짐을 줄여야 겠다고 했다. 배낭 속에 이것저것을 고집하는 경우 결국 배낭을 포기하 게 된다. 걸어갈 수록 짐을 줄여라. 보아디야 델 까미노 마을 입구에 아름다운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계속 걷다보면 탄력을 받아 걸음이 멈추지 않는다. 앞을 향해 계속 걷고만 싶어진다. 멋진 쉼터를 보아도 그냥 지나치게 된다. 쉼터를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이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두 바퀴  레를 끌고 가던 부부 순례자가 까미노변 노지에 돗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할아버지 아들 손자 3대가 함께 까스띠야 운하 변을 오가며 물속에서 망태기를 들어올려 물고기를 잡고 있다. 까스띠야 운하의 길이는 장장 200km가 넘는다. 메세타 평원이 옥토로 유지되고 있는 까닭을 알겠다. 2013년도에는 이 운하변을 아침나절에 걸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아침에 낯이 익은 독일인 처자가 뒤를 따라오며 상냥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전날밤 알베르게 주방에서 생고기를 요리하였는데, 1인분으로 한꺼번에 요리하기에는 너무 많아, 남은 고기를 그 처자에게 건네면서 말문이 틔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자기도 좀 남은 요리감을 나에게 권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둘다 어설픈 영어로 어렵게 의사소통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물류 분야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데 여름휴가를 받아서 왔단다. 자기 아버지 나이가 나하고 동갑내기라고 하면서 자기 아버지도 산띠아고를 한번 걸어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역만 리에서도 순례자들이 오고 있다고 아버지에게 말해 반드시 걷도록 하겠노라고 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아침에 다음 마을인 프로미스따Frómista기차역으로 가서 귀국길에 오른 다는 것이다. 이번이 두번째 왔노라고 하면서 내년에 와서는 산띠아고까지 마저 걷겠다고 하였다. 부디 아버지와 함께하는 순례길이 되기를 축원한다. 운하변과 나란히 가는 도로에 내려서서 프로미스따마을로 진입을 하였다. 까미노는 차도변을 따라 이어지며 이내 수페르메르까도와 만나게 된다. 2013년에는 영업시간 전 납품받는 이른 아침시간에 사정을 하여 먹거리를 샀건만 이번에는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 먹거리를 사게 되는 구나. 일몰까지 아직 시간이 있기에 다음 마을에서 일과를 마감코자 한다. 까미노는 석양 노을을 바라보며 차도와 나란히 가고 있다.

저녁 8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에 뽀블라시온 데 깜뽀스에서 오늘의 일정을 마감하였다. 은혜가 충만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구간을 오늘 만났습니다. 이 구간에서 특히 가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은혜 주심에 감사합니다. 걷기의 니르 바나를 느끼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 걸은 거리 37.3km 걸은 시간 12시간 5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