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째 2017년 8월 17일 목요일

7시 37분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아직은 대부분 반팔 반바 지 차림이다. 아침부터 까미노가 부지런한 순례자들의 발 걸음으로 왁자지껄하다. 쌍스틱을 조작하다 손가락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가 흐른다. 잔 상처가 나지 않도록 좀더 조 심하자. 뒤에서 한국인이 인사하며 다가선다. 제주도에서 카페를 운영하다 때려치우고 유럽 여행 왔다가 이 까미노 를 걷노라고 말을 한다. 배낭 상단에 단 태극 마크를 보고 외국인들도 알아보며 말을 건넨다.

어느 여행가의 말이 떠 오른다. 세상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자살하겠다는 사람에게 인도여행을 권했다. 여행을 다녀와 서 죽든지 말든지 하라고 했다. 마지막 여행으로 생각하고 떠났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이 사람은 자살하겠다는 마음을 접고 새로운 삶을 살았다고 전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도 별 볼일 없던 시절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이런 이력들 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여행도 중독성이 있으니 절제하라는 말을 덧붙인다. 부디 까미노 순례를 마치고 더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기를 축원한다.

정갈하고 아름다운 마을로 접어 들었다. 마을 중심 도로변 의 양옆 배수로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돌로 모자이크 된 배수로 바닥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훤히 다 비 친다. 활짝 핀 원색의 꽃들이 가옥들 벽면에 걸려 있다. 참 으로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식당이 있다. 이 나 라는 식당 상호를 바엔레스토랑Bar & Restaurante으로 표 기하고 있다. 술집 같기도하고 밥집 같기도 하다. 첫 집은 사람들로 너무 붐비기에 그냥 지나쳤다.

아니 저기 앞에 낯익은 바엔레스토랑이 나타난다. 2013년 그때 점심을 먹었던 그 식당이다. 이 거리가 이제 보니 얼 마 전 상영된 산띠아고 영화에서도 나오는 거리이다. 바게 트빵에 우유 한 잔 시켰다. 가는 도중에 먹기 위해 스페인 샌드위치 하몽 보카디요는 포장을 부탁했다. 노숙녀와 의 사소통이 안되어 구글 번역기에 ‘도시락 포장’을 입력하여 스피커로 들려주니 무표정했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고 개를 끄덕인다. 알고 보니 이 마을 이름이 부르게떼다. 빅 토르 위고, 헤밍웨이 등이 집필 활동을 했던 곳으로 많은 명사가 머물렀던 장소란다.

카톡이 되어 아내와 보이스톡으로 통화를 했다. 아이들하 고도 통화를 했다. 출국 전 온라인으로 유럽 유심 2개를 사 서 순례 중 잘 사용했다. 덕분에 가족들과는 계속 연락을 유지할 수 있었고 국내외 속보 및 이메일 확인을 매일 할 수 있었다. 가족들을 생각한다. 몸은 나홀로 걷지만 마음은 항상 나를 걱정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낀다. 첫 손주 호호가 곧 태어나니 이번 순례길의 콘셉트를 우리 손 주의 순산을 기원하고 열심히 커서 나라와 민족의 동량이 되게 축원하는 순례길로 잡아 보았다. 부모들이 자식들 수 능시험 잘 보라고 100일 기도 드리듯이 말이다.

어머니

'나무는 고요하게 있고 싶어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 이 어버이를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이미 돌아가시어 이 세상에 안 계신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아들은 교문을 들어서서 교정으로 통하는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철제 교문 창살 틈 으로 아들이 시험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 다. 칼날 같은 찬 바람이 북악산 정상에서 휘몰아치고 있었 습니다. 어머니는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아들 모습이 다시 보일 때까지 그 자리 그대로 서 계셨습니다. 교문 창살에다 엿을 붙였습니다. 아들이 이 엿처럼 철썩 합격하기를 기원 하면서. 아들 몰래 시험보는 날 입을 잠바 내피안에 아들의 배내옷을 넣어 두었습니다. 오늘을 기다리기라도 하신 듯 어머니는 그렇게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셨습니다. 그 아들 은 마침내 합격하였습니다.

아들이 합격한 학교는 13도의 정수를 뽑고 수재를 모아 놓 은 곳 경기고등학교였습니다. 42년 전 일입니다. 어느 시인 은 사모곡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머니로부터 여 덟 섬 세 말의 젖을 먹고서야 비로소 사람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합니다. 여든 세 말을 리터로 환산해보니 1,494 리 터가 됩니다. 0.5리터짜리 생수 페트병 3천 병 정도의 젖을 어머니로부터 받아먹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들 은 우리들을 출산하면서 세 말 석 되의 피를 흘린다고 합니다. 서른 세 되의 피는 60여 리터의 양입니다. 나를 인간으 로 만들기 위해 0.5리터짜리 페트병 120병만큼의 피를 흘 리셨던 것입니다. 비행기 타고 캐나다에 사는 딸네 집도 다 녀오시고 목사님이 운전하는 봉고차 타고 전국을 다니셨 건만 제주도를 한번 못 가셨습니다. 살아 생전 아들아 제주 도 한번 가보자 하셨는데 그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했습니 다. 어머니가 소천하신 지 이태가 되었습니다. 고향 땅 선 산에 아버지 옆에 나란히 안장을 했습니다. 왕복 하룻길입 니다. 먹고살기 바쁜다는 핑계로 성묘를 자주 가지 못하는 불효를 자책합니다. 굽은 외솔과 못난 자식이 고향 땅을 지 킨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구구절절 옳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가슴 뭉클해지고 자꾸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20130721)

어린 자녀들을 동반하고 부부가 까미노를 가고 있다. 마 을을 벗어나니 비포장 숲터널길이 이어진다. 아침에 출발 할 때는 쌀쌀하더니 지금은 햇볕이 내리비춰 살결이 따갑 다. 까미노는 구간구간 고속도로와 나란히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이 도로를 지나면서 나에게 멘토 같은 분의 부음 소식을 접했었다. 뭉그적거리다 출국 인사를 미쳐 못하고 출국하였었다. 귀국해서 인사드려야지 했었는데 참으로 통 탄스런 마음 가눌 길이 없었다. 우리나라 종자 산업계에 있 어서 입지전적 인물로 존경을 받아오고 있었다.

당신의 전 재산을 노인 복지를 위해 쓰겠다는 포부를 밝히 신 바 있었다. 어렵게 자식 키우며 이 나라를 이만큼 살게 하느라, 정작 자신들의 노후 준비를 못한 노인들이, 겨우겨 우 끼니를 때우다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들에 분노하 며, 최소한 존엄하게 죽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바 있었다. 입각 물망에도 자주 오르내렸건만 어찌 이렇게 허망하게 가셨는지. 부디 영면 하시길 축원한다. 양쪽 새 끼 발가락이 좀 이상하다. 쿠션이 좋다고 해서 라텍스 깔창 을 깔았더니 꽉 끼어 어째 불편하다. 등산화를 벗고 살펴보 니 피부가 빨갛게 부어 오르고 있다. 물집 방지 패드를 붙 이고 밴드로 동여맸다. 한쪽 깔창을 벗겨냈다. 관광 안내소 의 문이 열려 있기에 세요를 받았다. 나무숲터널 내리막을 벗어나니 수리비 마을이 인사를 한다. 해가 중천인데 좀더 걷자. 까미노는 마을 바깥 길로 이어지고 있으나 세요를 받 기 위해 마을 진입 다리를 건넜다. 아르가강의 지천이 흐르 고 있다. 2013년 숙박했던 알베르게와 그 인근에 있는 관 광 안내소를 방문해 세요를 받았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가 게에 들려 과일 몇 개와 아구아Agua를 한 병 샀다. 마을을 다시 벗어나 까미노에 들어섰다.

오리손 만찬에서 보았던 프랑스 여인 두 명이 옆을 지나치 며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좋은 길 되세요라는 인사말) 를 외친다. 한 여인이 앞서가다 되돌아와서 나이가 몇이냐 고 묻는다. 나이들어 보이는 나홀로 동양인 순례자에게 호 기심을 느낀 모양이다. 63세라고 알려주며 너희는 몇 살이 냐 물어보려다 우리 딸 또래보다 서너 살 더 먹어보여 그만 두었다. 내친 김에 빰쁠로나까지 주파를 할까 생각해 본다. 세장피드포르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은 프랑스길 '알베르게 리스트'를 보니 19.3km 거리다. 일몰 시간까지 5시간 30분 정도 남았다. 글쎄 일몰 전에 빰쁠로나에 진입할 수 있을 까. 밤 10시에 알베르게는 문을 닫아버린다. 이 곳은 시간 개념이 엄격하다. 슈퍼, 약국, 도시 지역 식당 등은 문 여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알베르게도 마찬가지다. 10시가 넘으 면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에 호스텔 등 일반 숙박업소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 숙박비가 알베르게의 3-7배 정도 비싸다. 호텔은 더 비싸다. 그래 일단 걸어보자. 마음이 다시 바빠진다. 검은색 시보리 바지 차림의 프랑스 여인들은 저 멀리 앞서 사라지고 있다. 산사에서 보살님들 걸어가듯 멀어져 간다.

움푹 파인 고랑 너덜길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자전거 벨소 리가 들린다. 무거운 배낭을 멘 채 뒤뚱뛰뚱 내려가던 순례 자들이 놀라 모두 걸음을 멈추고 고랑 옆으로 비켜선다. 무 리진 바이커들이 질주하며 내리닫는다. 일부 구간은 까미 노싸인을 도보길과 바이크길로 각각 구분해 놓은 지역도 있다. 집채 만한 차들이 총알처럼 질주하는 차도변인 경우 도 있다. 까미노싸인을 놓친 경우 본의 아니게 차도를 걸어 야 하는 경우가 있다. 까미노싸인을 놓친 경우 현지인들에 게 물어볼 수 있으나 주변을 둘러보아도 나홀로인 경우, 오 던 길을 되돌아가서 마지막 확인했던 까미노싸인을 재확 인하는편이좋다.몇시간동안 당황스럽게알바하는것 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을 초입에 묘원을 만들어 그 마을 조상들을 안치해 놓았다. 어느 마을이나 한결같다. 죽 은 자와 산 자가 가까이서 공존하고 있다. 우리처럼 조상들 의 유해가 깊고 깊은 두메산골에 매장되는 것과 비교된다.

동네 청년 및 꼬마들이 한 묶음이 되어 아르가지천 위해 세 워진 운치 있는 돌다리 위에서 지천 강물 아래로 다이빙을 한다. 어떤 아이는 몸을 뒤틀며 입수한다. 강가에는 형형색 색의 비키니 수영복 차림으로 마을 주민 남녀노소들이 바 캉스를 즐기고 있다. 볼륨이 좋은 구릿빛 피부에서 건강미 들을 내뿜고 있다. 배낭을 부려 놓고 강으로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다. 까미노를 한 마장 정도 걸어가다 목장이 나타나 길래 울타리 그늘에서 배낭을 벗어놓고 하몽샌드위치를 먹 었다. 뒤에서 식식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뒤를 돌아보니 송아지만 한 개가 다가오고 있다. 놀래라. 내 코앞까지 다가와 뒷다리를 들고 영역 표시를 할듯 말듯하며 나를 힐끔 힐끔 쳐다본다. 뒤에서 한 남성이 뛰어오더니 웃음 지으며 손을 젓는다. 2013년도에도 어느 구간에선가 송아지만 한 개가 한 시간 가까이 뒤를 졸졸 따라오다 어느 순간 사라진 적이 있었다. 잠시후에는 마을 주민인듯한 노부인 3명이 송아지만 한 개 한 마리를 앞세우고 산책로를 내려오고 있 다. 목줄을 풀어놓은 상태다. 부딪히지 않으려고 길가로 비 켜서서 걸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내쪽으로 방향을 바꿔 꼬 리를 흔들면서 킁킁거리며 다가온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 보니 순한 눈매다. 스틱을 뒤로 누이고 쪼그리고 앉아 손목 에 스틱끈을 건 채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청 커다란 혓바닥으로 손등을 핥는다. 송곳니가 손등을 스치듯 지나 가는데 성질나서 한 번 물었다 하면 손모가지를 아작내서 쥐포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노부 인들이 미소지어 보인다. 저 미소의 의미를 혼자 생각해 보 았다. 오늘 유난히 송아지만 한 개들을 많이 만난다.

차도와 나란히 가는 까미노안부에 이정표가 서 있다. 후아 르떼와 빌라바 마을로 갈라지는 길목이다. 저녁 9시를 넘 겨 후아르떼 마을에 들어섰다. 슈퍼가 보이기에 저녁거리 및 과일을 좀 살까 했더니 셔터문을 닫고 있다. 좀 들어가 자고 손짓을 했더니 처음에는 고개를 흔들더니, 외국인 순 례자 차림을 알아보았는지 이내 마음을 바꿔 셔터문을 열어준다. 요리거리와 과일, 아구아 큰 것 하나를 샀더니 한 보따리다. 이 마을 유일한 알베르게를 찾으니 내부 수리 중 이다. 다음 마을 알베르게까지는 2km여 더 가야 한다. 어 떻게 해냐 하나 저녁 10시면 알베르게가 문을 닫는다. 10 시 전에 당도하려면 차로 이동해야 할 것 같다.

공원 벤치에 앉아 환담 중인 마담들이 보이길래 염치 불고 하고 택시 한 대 콜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노 프러블럼 하 며 전화를 한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온다. 가게 문 여는 시 간이나 일하는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나라니 택시 기사인 들 이 시간까지 일하겠는가. 그냥 걸어가기로 마음을 정하 고 떠나려 했더니 마담이 전화를 했는지 남편이 나타나서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여기 호텔을 하나 알아봐 주던지 자 기 차로 다음 알베르게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오로지 두발로 걸어서 순례하고자 다짐했는데 택시다 승용차다 이 건 아닌 것 같다. 또한 호사스럽게 호텔은 무슨 호텔. 부상 을 당했다든지 하면 몰라도. 잠시 생각하다가 정중히 사양 했다. 본인들의 호의가 거절당하자 인상 좋고 키가 나보다 더 큰 모델같이 어여쁜 마담 얼굴 표정이 좀 험악하게 굳 어져 보인다.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다시 까미노 로 향했다. 먼저 허기진 뱃속을 물과 과일로 채웠다. 과일은 물로 씻지 못해 그냥 슈퍼에서 산 그대로 입에다 밀어 넣었다. 돌멩이를 삼켜도 녹일 정도의 허기가 졌는데 설마 배탈이야 나겠는가. 헤드램프를 머리에 둘러썼다. 마을 어 귀의 짧은 구간에 가로등이 있다. 이내 헤드램프 불빛을 비 추며 걸었다. 지도상 거리와 다르다. 밤이 깊어가고 있다. 내일도 계속 걸어야 하니 일단 숙소를 정하자. 가는 길목에 있는 호스텔에 들려 알아보니 풀이란다. 인근 지역 부를라 다 소재 호스텔도 마지막 침실 하나 남았는데 37유로란다. 호텔급 시설인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숙박비가 12유로였 다. 순례자들에게는 가급적 비싼 숙소보다는 저렴한 숙소 를 추천하는 것 같다. 내 의사를 묻는다. 투숙할 거면 전화 로 예약을 해주겠다고 한다.

시간이 밤 11시를 향하고 있다. 전화 예약을 부탁하고 30 여분 걸어서 그 곳 호스텔에 당도하였다. 샤워하고 침낭 속 으로 몸을 구겨넣으며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 넘었다. 남은 순례 일정에서는 이런 우여곡절이 없도록 해야 겠다.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 한밤중이라도 계속 걷자. 졸리면 그 냥 걷던 자리에서 비박(Biwak 야영)을 하던지 하자. 오늘 걸은 거리 38.6km 걸은 시간 14시간 1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