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2구간 산행기

1.산행일정 : 2002. 1.12~1.13(1박2일)
2.산행구간 : 성삼재-여원재-복성이재(31.5Km)
3.산행동지 : 나홀로
4.산행여정
•2002. 1.12(제3소구간 : 성삼재-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수정봉-입망치-여원재)
02:00 기상
02:45 울산출발
05:30 함양 도착
06:15 함양출발(전주행버스)
07:20 남원도착(조식)
08:45 성삼재(남원-구례-성삼재)도착 및 산행시작
09:30 작은고리봉
11:35 만복대
12:42 정령치(13:17 출발)
13:52 큰고리봉
15:10 고기리 삼거리
15:53 가재마을
16:48 수정봉
18:06 여원재

•2002. 1.13(제4소구간 : 여원재-고남산-매요마을-사치재-복성이재)
07:15 기상 및 조식(라면)
08:00 여원재
10:08 고남산
11:40 매요마을(11:55 출발)
12:50 사치재
15:55 복성이재

5.산행기

• 성삼재 가는 길

며칠전부터 감기 기운이 돈다. 지난해 11월 지리산에서 추위 때문에 얻은 감기의 초기 증상이라 지레 겁을 먹고 병원부터 갔다. 잘못하면 2구간 산행을 못할 것 같아서 이다. 의사는 힘든 운동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한 이틀 다니니 괜찮은 것 같다. 두번째 병원 가서는 아예 이틀분 약을 달라고 했다. 약효과를 봤는지 좀 나은 것 같다. 2시에 맞춰 놓은 시계가 정확하게 울린다. 앞으로 격주휴무 토요일 새벽은 매번 이렇게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할 것 같다. 지난번 보다는 잠을 많이 잔것 같아 기분이 개운하다.

새벽 공기를 가려며 함양에 도착하여 차안에서 잠깐 눈을 붙힌다. 6시 15분에 있다는 전주행 버스는 6시 14분이 돼서야 기사가 나타나 시동을 건다. 출발 시간이 지나도 출발을 않는다. 손님은 나 혼자 뿐이다. 눈을 잠깐 붙여 둔다. 남원에 도착하여 백반 한 그릇을 시켰다. 아침밥 치고는 반찬이 너무 많다. 돼지김치찌개에다 계란찜까지...4천원짜리 치고는 정말 많다. 나오다 간판을 보았다. 털보식당이라...
택시를 잡아 성삼재까지 흥정을 한다. 정령치는 폐쇄되어 구례로 돌아가야 하니 3만5천원을 달란다. 천은사 매표소에서도 성삼재까지만 운행한다고 일러 준다. 눈이 많이 왔었나 보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운전을 하면서도 계속 손을 바지에 문지런다. 손에 땀이 나는가 보다. 제설작업한 흔적이 군데 군데 있다. 성삼재는 하얀눈이 제법 쌓여 있다. 조심해서 내려 가라하고는 오늘의 산행준비를 위해 지난번 하산한 장소로 갔다. 대간의 이음새도 연결할겸....

- 제3소구간(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수정봉-입망치-여원재)

날씨는 제법 포근한 것 같아 발라클라바 대신 그냥 방한모를 그대로 쓰고 출발한다. 대간 마루금으로 올라서자 눈이 제법 쌓여 있다. 헬기장에서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한다. 작은고리봉과 묘봉치까지는 잡목들이 제법있어 눈과 함께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날씨는 맑은데 가스가 많이 끼어 시야는 제법 좋지 않다. 역광에다 가스까지 있어 반야봉과 노고단, 종석대가 윤곽만 보인다. 만복대는 햇볕을 받아 전신을 다 드러내 놓고 있다. 기온 때문에 등산로 일부는 눈이 녹아 밑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만복대 오르는 목책 계단은 눈으로 덮여 있다.
만복대를 지나 정령치로 가는 북사면은 완전 눈으로 덮여 있다. 나무위의 눈은 따뜻한 햇볕을 받아 녹아 떨어지지만 바닥의 눈은 무릅까지 빠진다. 저 아래 정령치로 오르는 횡단로는 하얀 융단을 꼬불고불 깔아 놓은 듯 하다. 정령치는 첫눈이 오면 폐쇄하여 통행을 금지한단다. 정령치에 내려서자 온통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듯 하다. 휴게소 지붕만 눈이 없고 온통 눈이다. 여기서 점심을 해먹어야 하는데 정령천이라는 샘터에 물이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로 갔다. 문앞에 눈이 쌓여 있어 문을 열 수 조차 없다. 할수 없이 행동식으로 가져온 백설기 떡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지난번 1구간때 먹다가 남은 것을 그대로 냉동시켜 또 가져온 것이다. 비닐포장 두겹을 풀고 나니 주먹밥 같다. 계단을 올라 마루금으로 향한다. 장승들이 줄지어 있고 모델료는 천원이란다. 500원은 불우소년소녀가장을 돕고 나머지 500원은 장승 제작 및 관리비로 쓴단다. 공짜 사진 한판을 찍는다. 큰고리봉으로 오르다 아래를 보니 정령치로 향하던 짚차 한대가 눈속에 그대로 서 있다. 눈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가? 큰고리봉 오르막길은 힘이 많이 든다. 바위길과 산죽길이다. 큰고리봉 정상 못미쳐 길 좌측 저쪽에 무덤없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아마 무슨 사연이 있으리. 눈속으로 나아가 비석앞에 섰다. 역시...

' 긴 겨울에
한쪽 끝 양지바른 이곳에
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
젊은 청춘의 혼이여
가슴속 크나큰 야망을
이 높은 곳에서
영원의 나래를 펼치거라.

친구 강XX 죽음에 묻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죽음에 그 친구들이 죽은자를 생각하며 만들어 놓은 비석이다. 사연이야 어떻든 이렇게 높은 산기슭에 만들어 놓은 걸로 보아 아마 산에서 죽었는가 보다. 고개 숙여 친구들이 바라는 영원의 나래를 펼치도록 기도해 주었다.

큰고리봉에서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면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이 나온다. 고기리로 내려가는 급사면은 온통눈이다. 산죽밭인듯 산죽잎이 눈위로 뾰쪽뾰쪽 파란 잎을 드러내 놓고 있다. 눈은 엄청 쌓여 녹지 않고 그대로 있다. 발을 내 디디면 쭉쭉 미끄러 내린다. 엉덩이를 깔다시피 내려 온다. 아이젠도 있으나 마나 한 무용지물이다. 한참을 내려와 고기리삼거리에 도착한다. 포장도로를 따라 수정봉 오르는 초입으로 간다. 시간도 제법되었다. 배도 고프다. 가재 마을을 지나다 유리문에 대간꾼들의 낙서가 적힌 집을 발견한다. 라면과 커피를 판단다. 뭐 ‘백두대간 자유인’이니 ‘탈출왕’이라느니하는 닉네임들의 낙서가 눈에 뛴다. 물통에 물도 채울겸 배낭을 내려 놓는다. 수정봉을 넘어 여원재까지 갈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일단 라면을 하나 시켰다. 아궁이가 두개 있는 옛날식 부엌에 가스랜지가 있는 싱크대가 높게 설치되어 있다. 밥을 좀 준다는 것을 사양하고 퍼뜩 먹어 치운다. 지금 마음이 너무 급하다. 산을 제법 넘어 가야 하는데.... 머리에 땀을 훔치는둥 마는둥하며 라면값을 계산해 준다. 천오백원이란다. 이천원을 주며 잔돈 없으면 그냥두라고 했지만 오백원을 거슬러 준다. 나오면서 유리문에 'donkey 정욱근 2002. 1.12'이라고 적고는 수정봉을 향한다. 시간은 4시가 다 되었다. 여원재 까지는 도상 거리 6킬로에 산 정상이 두 세개 있는 산길이다. 오늘 여원재까지 못가면 내일이 걱정이다. 내일은 복성이재까지 빨리 마치고 울산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 반드시 여원재까지 가야 한다. 수정봉 오른는 산길로 접어 들어 조금가니 털모자를 쓴 사람이 산에서 내려 온다. 스님인가? 내가 먼저 인사를 한다. 그러자 여원재 까지 가느냐고 물어 그렇다고 했다. 너무 늦은 것 같다고 한다. 저 만치 지나쳐 뒤에서 뭐라고 한다. 후레쉬가 있냐고 물었다. 있다고 하니 여원재 까지는 2시간 40분은 걸릴 거라고 했다. '그러면 3시간이면 되겠네요'하면서 갈길을 재촉한다. 속으로 7시가 되어야 여원재에 도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곧 해가 질텐데... 수정봉 오르는 길은 죽을 맛이다. 이미 나도 지쳐 있다. 오늘 날씨가 제법 따뜻하여 땀으로 온 몸이 젖는다. 달도 없는 밤에 야간산행이라. 겁이 난다. 해는 이미 나의 그림자를 길게 만들어 놓고 있다. 수정봉에 올라도 해는 아직도 산위에 걸려 있다. 수정봉 북사면은 아직도 눈길이다. 남쪽의 오르막과 북쪽의 내리막은 완전히 상황이 틀린다. 미리 아이젠을 꺼내 다시 착용한다. 헤드렌턴은 모자위에 착용하고 손전등은 호주머니에 넣는다. 눈길 위에는 개 발자국인지 뭔지 동물 발자국이 길따라 계속된다. 금방 지나갔는지 선명하다. 걸음이 계속 빨라진다. 땀은 모자를 타고 흘러 내린다. 온몸이 거의 젖은 것 같다. 산길은 오르락 내리락 끝이 없다. 오르막은 숨이 목구멍 끝까지 차 오르고, 내리막은 거의 뛰다시피 걷는다. 이런 산에 목 좋은 곳은 어디든지 묘지다. 묘지 주위의 눈은 그대로이다. 그 위로 그놈의 개발자국인지 뭔지 하는 것은 길 찾아 잘도 간다. 여원재의 농로에 접어들자 발자국도 사라졌다. 가재마을에서 산길 6킬로를 두시간만에 달려왔다. 온몸이 젖었다. 배낭을 내려 놓고 남아 있는 물은 다 마셔 버렸다. 오늘 10시간의 산행은 정말 힘들었다. 여원재에서 민박을 구할 수 없어 버스를 타고 운봉으로 나가 하룻밤을 묵는다.

• 제4소구간(여원재-고남산-매요마을-사치재-복성이재)

손목시계로 5시에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눈을 뜨니 7시 15분이다. 오늘은 늦으면 안 되는데... 떡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택시로 여원재에 도착하니 8시다. 여원재란 이름은 이성계가 지었다고 한다. 고려말 우왕때 황산싸움에서 적장 아지발도를 활로 쏘아 죽였단다. 팔랑치를 넘어 온 아지발도를 향하여 태조 이성계가 이 여원재를 넘어 올 적에 백발의 여인이 나타나 승리를 점쳐 주었다고 해서 여원재란 이름을 붙혀 주었단다.
어제 저녁에 봐 두었던 대간 마루금으로 올라가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소나무 숲길이 상큼하다. 숲속의 비둘기며 꿩들이 놀라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간다. 고남산으로 이어 지는 산길은 소나무 숲의 야산이라 아침의 산행을 즐겁게 해준다. 약간씩의 오르막을 오를 때는 몸을 풀 듯이 숨이 차도록 올라 본다. 응달의 그늘은 역시 눈이 물먹은 솜처럼 되어 질퍽하다. 소나무 숲길은 고남산 정상 못 미친 부분에서 끝이 난다. 소나무가 온통 시커멓게 타 서있다. 산불로 온통 다 타 버린 것이다. 그 타 죽은 소나무에 갓 달아 놓은 산행리본들이 울긋불긋 달려 있다. 죽은 고목에서 꽃이 핀 듯 하다. 고남산을 지나 한 시간 반 만에 마을로 내려 왔다. 매요마을이다. 대간 길목에 자리 잡은 매요휴게실이라는 가게에서 잠시 쉴려고 배낭을 내려 놓자 할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사이다를 하나 시켜 시원하게 들이킨다.
할머니는 사투리로
"추워 얼어 죽어 야~, 추운디 나서지 말아야지.... 꽃 필때 와....."
"들기경 산기경 댕기고 잡고 혀도 서발만 나서면 집 생각 나는디...."
"요즘은 통 사람이 없어. 단체로 올때는 관광버스가 여기서 풀어 놓고 또 어디로 가서 태워 가고 하는디, 앞에 온 사람은 끓여 놓고, 고기도 뜯고 그래 사터니만..."
할머니는 묻지 않았는 데도 계속한다.
"혼자 동무도 없이...어디꺼정 간다요?" 복성이재까지라고 하자,
복생이골은 날이 따서운 고장이고 여기 운봉은 서울 날씨와 같아 춥다고 한다. 전에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산에 댕기는 사람들은 설도 없는가 설에도 산에 많이 왔단다. 오늘은 날씨가 따스워 두세명 올것 같단다. 나보고 여기서 라면 끓여 먹고 가란다. 아니면 사치재가서 끓여 먹어란다. 할머니도 제법 백두대간이 뭔지 아는 것 같아 보인다. 버스가 한대 지나가자 저 버스가 지나가면 열두시라고 한다. 시계를 보니 거의 열두시가 다 되었다.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사이다 하나 더 사서 일어 선다. 할머닌 다음에 또 오란다. 뵐 날이 있겠지요라며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한다. 사치재까지는 거의 한시간 산길이 계속된다. 산길을 내려서니 88고속도로다. 차들이 쌩쌩 달려 간다. 길옆 안부에 앉아 목을 축인다. 복사해간 산행안내문을 꺼내 읽어 보니 이곳에서 왼쪽으로 1킬로 지점에 고가도로가 있단다. 1킬로면 왕복 2킬로아닌가. 20미터 저쪽에 대간 마루금이 있는데 2킬로 돌아 오라고... 어쨌거나 배낭을 지고 일어났다. 왼쪽으로 가는데 고속도로 저쪽 철조망에 산행리본들이 수도 없이 펄럭인다. 빨리 이쪽으로 오란듯이 손짓을 하는 것 같다. 2차선 88고속도로는 중앙분리대도 없다. 이 곳에서 무단 횡단하자. 좀 미안하지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좌우를 살피고 배낭을 맨채 힘껏 저쪽으로 달려 갔다. 그리곤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산으로 숨어 버렸다. 고속도로 차량들의 질주소리를 뒤로 한 채 오르막을 또 오른다. 시간은 거의 오후 1시다. 사치재에서 697고지로 오르는 길은 숨이 턱턱 멎는다. 오르다 선채로 쉬고 오르다 또 쉬고를 반복한다. 고개를 쳐 박고 오르는 데 모자에서 땀이 계속 뚝뚝 떨어진다. 비오는 날 초가지붕에서 낙숫물 흐르듯 한다. 고지로 이어지는 능선길 헬리포트에 오르니 저쪽에서 대간꾼인듯한 사람들이 걸어 온다. 4명이다. 어제 오늘 대간길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다. 내가 먼저 길을 비켜 주자 "혼자 하세요?"한다. 반갑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해 주었다. 697봉 주위는 온통 폐허로 변해 있다. 아마 몇년전에 산불이 난듯하다. 타서 쓰러진 소나무 덩걸이 어지럽게 나 뒹굴고 있어 보기에도 안타깝다. 그러나 폐허속의 억새의 색깔은 더욱 빛나 운치를 더해준다. 697고지 능선에 있는 바위에 잠깐 쉰다. 오른쪽 아래에 88고속도로지리산 휴게소가 깨끗한 모습으로 보인다.
84년 6월이었던가. 88고속도로 개통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의 전대통령의 고속도로 개통기념 주행이 이곳을 통과 한단다. 나도 6월말이면 제대를 하는데 장마비는 연일 내리고 개통 날짜는 계속 늦어졌다. 우리 대대는 인근 인월에 CP를 두고 이곳 사치재며 모래재 일대 외곽경호를 위해 밤낮 수색과 매복을 한적이 있다. 제대를 앞두고 그놈의 비가 얼마나 밉던지...

고지를 지나자 또 길은 눈이다. 내리막 사면의 눈길은 정말 죽을 지경이다. 미끄러워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한다. 무심코 던진 걸음에 몸이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자빠진 김에 아예 쉬고 가자. 손목에 뭔가 낀것 같다. 시계줄 사이로 나무 가지가 들어가 분질러져 있다. 긁히긴 했지만 큰 상처는 아니다. 아마 터면 큰일 날 뻔 했구먼...
새맥이재에서 송편으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물도 얼마 남지 않아 아껴 먹는다. 복성이재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시리봉을 지나자 저 아래 아막산성터가 보인다. 오늘의 종착지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키작은 철쭉과 싸리나무들이 미끄런 눈길과 함께 진행을 방해한다. 배낭과 모자를 성가시게 끌어 당긴다. 배낭밑에 달고 간 막영용 매트는 나뭇가지에 긁혀 누더기가 된지 오래다. 아막산성터의 돌무더기를 지나니 밤나무 단지가 옆으로 보이며 질퍽한 흙길이 나타난다. 복성이재다. 매요휴게실 할머니하테서 사온 사이다를 삼페인삼아 혼자 터뜨려 자축하면서 시원하게 들이킨다. 오후 3시 35분이다. 흥부마을인 하성마을에서 택시를 불러 인월로 향한다.

6.접근로 및 복귀로
•접근로 : 울산-함양(승용차), 함양-남원(버스, 6:15 전주행@3,200)
남원-성삼재(택시, @35,000)
•복귀로 : 복성이재-하성마을(도보), 하성마을-인월(택시, @8,000)
인월-함양(버스, @1,200), 함양-울산(승용차)

7.3차 구간종주 계획
•기간 : 2002. 1.26~1.27(1박2일)
•구간 : 복성이재-무령고개-육십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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