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름 : "고려산"

위 치 :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내가면,하점면,송해면..

산행일자 : 2004년 4월20일

산행코스 : 청련사입구~청련사~정상(해발436m)~고인돌군~낙조봉(해발350m)~

조망바위~미꾸지고개(산화휴계소) ※횡주산행

산행시간 : 3시간

참가인원 : 70명

차 량 : 율곡관광버스(2대이용)

함께하신분들~강릉산악회 회원여러분


새벽4시.........자명종 소리에 일어나기

싫은 몸을 간신히 추스려 이른 아침을 준비한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이다

아직 깊은 잠에 잠들어 있는 식구들 깰까 봐서 조심조심 서두른다


5시20분

집결지에 나가자 마자 울곡관광 버스는 나를 마중이나 하듯 이내 내 앞에와

멈추어 선다 몇몇 회원분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차는 제2집결지로 향한다


오늘도 대형버스 2대가 움직인다

우리 총무님 인원점검 하시려면 오늘도 하나~둘~셋을 얼마나 혜아려야 하나....


심히 걱정된다

6시를 알리며

대형버스 두 대가 자리 몇 개 남은채 버스는 시가지를 벗어난다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산 자락은 목마름 뒤에 한차례 비를 맏더니만 짙은

청록색이 생동감을 준다


대관령 능선도 산 벛 꽃이 만개하여 산자락 굽이마다 연분홍 빛 갑사 저고리

흩어 놓은듯 옅은 분홍 빛으로 온 통 수를 놓은듯하다

오늘하루 일정을 시작하는 총무님의 오프닝 멘트로 문을 연다

회장님의 인사말씀과 산악대장님......고려산 등반 일정을 상세히 일러주시고 덧붙여서...

고려산 전설에 대한 유례와 애기봉에 담긴 애달픈 사연도 함께.....

어찌 그리 줄줄 잘도 읊조리시는지....


7시10분

횡성(소사)휴게소에 들러15분정차

아침 못드신 분들 식사도 하시고 한다

한산한 고속도로를 질주하듯 달리는 율곡버스.....엑셀레이더 밟으시는


최기사님의 발 끝이 강약으로 부드럽게 엑셀레이더 밟으시며 베테랑

운전 솜씨를 발휘하신다


8시 30분

용인휴계소에 도착하게된다

잠시들러 용무를 보고 다시 출발......8시50분 신갈 분기점을 통과하면서 하행선은

정체가 심하다 다행이도 상행선은 구간구간 약간씩 멈추어 서다를 반복하면서 갈수있었다


9시10분..

반월 터널을 지나 서울 외곽 순환도로 진입하면서 서서울 톨케이트를 통과한다

9시18분

제2경인 고속도로 IC 지나며 시흥 톨케이트를 지나게된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려.........가도가도 목적지는 멀기만한데....


강화 고려산 가는길 멀기도 멀다 몇 시간째 차를타고 있으니 슬슬 온몸이

쑤시고 갑갑증이 나기시작한다


10시40분...

가는도중에 강화 인삼센터에 들러 인삼을 사실분은 사시고 나물도 사시고 하신다


지루한길 뒤틀리는 몸을 비비꼬기도하고 하다보니 11시30분 들머리 청련사입구에도착한다


장장5시간30분을 달린 것이다


시간도 12시가 다가오고있어 우리회장님 정상 오르기전 아예 점심을

먹고 출발을 하자신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하여 점심은 멋있게 먹을수있었다

비온 뒤 개인 파란 하늘이 느티나무 사이로 청명하게 비추고 있다

청련사 경내에 벛꽃잎이 날리는 모양이 눈이 내리듯 흩 날리고 있다

우리 일행은 청련사 경내에 있는 큰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점심을 먹기위해 자리한다



12시15분

점심을 먹자마자 출발이다

청련사 경내에는 잘자란 큰 느티나무가 310년의 역사를

자랑이라도 하듯 우람하게 서있다



(수고:27m 둘레: 4.3m)



청련사 큰 법당 앞에서 신발도 못 벗고 두손 합장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대장님 말씀이 기역난다 정상436m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라던 말씀이..

식사뒤에 오름길을 오르려니 두배는 힘이 드는 것 같다

오늘따라 나에 몸은 리듬을 잃어버린 상태...걷기조차 힘들다



오름길에 피여있는 진달래는 어느새 만개한 뒤 지는 추세다

구름 한점없는 파란 하늘은 좋았지만 습도가 있는 능선은 열기로 힘든

발길에 제동을 건다

휴~~~크게 한번 가뿐 숨을 길게 몰아쉬고 다시 걷고......

오늘같이 해발도 낮은 산인데 힘들긴 처음이다

한발 한발 옮기며 고개숙인 진달래 꽃을 벗으로 위안 삼아 힘겹게

가다보니 정상아래 공터에 도착한다

정상은 군인들 기지가 자리하고있어 정상을 중심으로 옆에 공터가있다



1시10분

공터에 올라서는 순간~~~환호에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저나온다

곱디고운 분홍 빛으로 물든 능선이 그림같이 펼쳐져있다...........

와....이쁘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진달래 군락지)


진달래 축제와 산행시기를 맞추시느라 노심초사 일정 잡으신

산악대장님의 세심한 베려에 다시금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잠시 진달래 꽃에 반해서 피곤도 잊을수있었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꽃송이도 있고 이제 막 피여난 꽃송이도 있고

진달래 군락지는 그야말로 불 꽃을 뿜어내고 있다

해마다 진달래로 유명한 산을 찾았지만 올 같이 만개한 시기를

맞춘적이 없는 것 같다

서서히 지고있었지만 워낙 소담스럽게 핀 진달래 군락지대라

아직까지 볼만하다

이 고려산은 고구려장수왕4년(416년)에 천국스님이 산에 올라

다섯 개의 연꽃이 피여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 세워진 절이 적석사로

낙조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낙조봉에서의 서해 낙조는 강화8경의 하나로 손 꼽힐만큼

뛰어난 명소이다

봄~가을까지도 석모도와 교동도사이의 바다로 해가지고

겨울에는 석모도 위로해가진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사진 찍느라 이쁜 얼굴 활짝핀 진달래에 비교가 되리.....

꽃이 나보다 더 이쁠까 만은..............^^


토박이님 인터뷰하신다고 고려산 진달래 보신 소감이........

느닷없이 마이크 들이대시는데 산악대장님 한 말씀하신다

한참을 진달래 꽃 밭에서 노닐다 아쉬운 발길을 옮겨 하산길로 내려간다



하산길은 간간히 송림욕을 할 수 있는 소나무 군락 지대가있어 분홍 빛

진달래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준다

내려가는 길가에는 보라색을 띈 제비꽃도 지천으로 피여있고 하얀색의

조팝나무 꽃도 향기를 마구 품어내며 나그네들에 코를 벌름 거리게하고 있다

능선따라 곳곳에 고인돌군이 운집해있다 훼손이 되었는지 아니면 오랜

시간속에 자연 훼손인지 많이 훼손되 있다



모두가 이름표를 같고있는 것으로 보아 기념물로 지정된듯하다

지킴이 아무게누구......등등.......!!!


부드러운 능선자락을 콧노래를 불러가며 천천히 산책삼아 걸을수있어

가까운 곳이라면 언제고 오고싶은 그런산이다


봄에는 봄꽃으로 가득한 꽃길을 걸을 수 있고... 가을에는

억새밭도 있어 억새길을 걸으며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사계절

찾아도 계절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는 고려산에 정취를 느낄수있을 것 같다


2시

낙조봉에 도착하여 낙조봉에 올라서니 서해바다와 석모도가 지척에 보인다

산아래 작은호수 내가 저수지의 검푸른 물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 물결로

반짝인다

시원한 서해바다 바람이 불어와 등즐기에 흥건이 흐른 땀을 식혀준다

낙조봉을 지나며 작은 진달래 군락지를 지난다

정상과는 견줄만한 그 런 군락지는 아니라도 꼽게핀 흔적이 남아있다



2시20분

조망바위에 도착하니 우측으로는 바다를 간척한 농경지가

광대한 평야를 이루고 있다

좌우를 둘러 볼 수 있는 조망바위가 말해주듯 서해바다와 강화도

일원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다

저아래....어림잡아 하산 지점이 될듯한 마을이 보이고....있다

내려가는 길 잣나무 숲 길을 지나며 이내 날머리 미꾸지고개에 도착한다


주차공간이 협소하여 다시 버스로 넓직한 장소로 이동 하산주와 곁들인

메밀전.족발...가오리 무침...........지금생각해도 군침이돈다

하산음식 맛있게 먹고 다시 애기봉을 보기위해 이동한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잠시 졸고.........있는데.....애기봉이란다



5시

애기봉에 도착

분위기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에 있는 통일전망대와 흡사하다

애기봉에 유래를 다시생각해 보자



서기1636년, 인조 14년에 청나라 태종이 10만대군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침범해 온 병자호란 때의 일입니다.

호란이 일어나자 당시 평양감사는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애첩 "애기"

라는 기생을 데리고 수도 한양을 향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당시로선 가장 지름길이였던 평양에서 개성을 거쳐, 지금은 우리가 마음대로

갈수 없게된 바로 이 강 건너 개성직할시 판문군 조강리에 이르렀을 때,

감사는 아깝게도 뒤따라오던 청나라 오랑캐에게 붙잡혀 다시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만이 구사일생으로 전방에 흐르는 강을 건너 이산 좌측에 위치한 조강리란

마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후 날마다 애기는 이 봉우리에 올라와 님계신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눈물로서

감사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으나 끝내 님이 돌아오지않자, 애기는 결국

병이들어 죽어가면서, 고향하늘과 님계신 북녘땅이 잘 보이는 이 봉우리에 묻어

달라는 간절한 유언을 남기고 숨지자, 그 유언을 전해들은 조강리 마을사람들은

감사에 대한 일편단심과 애달픈 사랑을 가엷이 여겨, 애기를 이 봉우리에

묻어줌으로서 애기의 평생 한을 달래 주었던 것입니다.



그후, 1966년 10월 7일 지금은 작고하신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곳을

방문하시어, 이 봉우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시고 애기의 한은 강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1천만 이산가족의 한과도 같다고 하시며,

그동안 154고지로 불리던 이 봉우리를 "애기봉"이라고 정식명명하시고,

전망대 밖 우단에 친필휘호로써 "애기봉"이라는 비석을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비석의 아랫부분에 있는 시는 지금은 작고하신 유명한 시인노산

이은상 선생님께서 이곳을 둘러 보고 느끼신 감회를 시로서

표현하여 부대에 헌시하신 것입니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노국장님으로부터 금강산과 흡사하게 닮은

송악산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신다


고려 태조 왕건이 개성에 있는 송악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 고려를

세우고 도읍지를 송악(지금의 개성)에 정하게 되는 바로 개성 시가지

뒤쪽에 있는 산세 험준하고 정기가 빼어난 영산 이라고.



망배단...


선인들이 목숨과 바꾼 조곡이 두 동강나자 고향마저 버리고자유를

찾아 남아한 실향민이 500만에 달한다

"오늘 해도 또 지고마는구나 내일은 틀림없이 돌아갈 수 있겠지"

고향하늘이 바라보이는 산등성이에 올라 똑같은 말을 되뇌이기를

반세기 이제 눈물조차도 말라버렸다

부조를 모시고자하는 자손의 효심이 안간 본연의 성정 일진대 부조의

생사조차 모른 채 한 서린 나날을 보내야하는 실향민들은 피멍든

가슴을 쓸어 내릴뿐이다

몽매에도 그리운 고향 산천을 지척에두고 강건너에 보면서 통일되는

날 한달음에 달려가리라 주먹쥐며 이곳 김포에 눌러앉은 실향민이

2,000여 가구,10,000여명이 명절대면 이곳 애기봉에 올라 개인적으로

망매하며 설단의 필요를 절감하여 이 사업을 발의한 바 탑의 높이는

3.3m로서 민족 전래의 기원을 표상하는 숫자이며 형태는 귀향의

비원을 전체 군민들은 통일에의 서원을 결집하기위해 숭고한 정성을

담아 1억원을 들여 경기도가 지원하고 김포군민이

주관하여 1993년11월12일 이 단을세우다



강하나를 사이에두고 눈앞에 보이는 산천은 의구하기만 한데 지척의 고향은

세상 어디보다 멀기만 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 기슭에서 자맥질을 하면 금방이라도 유도를지나 네고향에

닿을 듯 하고 마근포 조강포에서 배를띄우고 뱃소리 한가락 마칠쯤이면

마중해서 뛰어나오던 혈육들을 볼수있을 듯 한데 닫힌 뱃길 버려진 포구는

50년이 지난 오늘도 잠을깨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향 떠나온지 어언 반세기 감포에 살고있는 1만5천여 실향님들은

평화 통일이 성사되어 덩실덩실 춤을추며 그리운 고향 땅을 밝고 보고

싶은 얼굴을 부등켜 안으며 잊혀지지 안은 이름들을 목놓아 불러볼 수 있는

그날이 하루 빨리오기를 오늘도 변함없이 염원합니다....


애기봉을 둘러 보고....자세한 설명을 끝으로 저녁노을지는

석양을 뒤로하고 강릉으로 향했습니다

길고긴 여정...........강릉 도착하니10시40분...집에 도착하니 11시......

하루에 긴 여정이 피로를 몰고 온다


회장님....수고많으셨습니다

산악대장님...명산기행 일정 잡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두분 총무님 먹거리준비와..

회우 관리에 신경쓰시는 두분총무님 고생많으셨습니다

함께하신 회원여러분 먼길 다녀오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