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산' 발행 백두대간 지도.  구룡령~ 조침령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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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밭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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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전곡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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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누군가가 정상석을 갖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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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正6년 (1917)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1/50000 지도.  '현리' 도엽

 

葛田谷峰(갈전곡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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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葛田谷峰이라 적고 카다가나로  チ バツ コル ポン 으로 부기했다.

 

카다가나를 읽으면 "치밭골봉"이 된다.

 

갈전곡봉.....  칡葛,  밭田, 골谷, 봉우리峰

 

원래 이름 치밭골봉을 한자로 맞춰 넣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지도를 근거로 우리 지형도를 만들면서 한자 표기를 그대로 베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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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일본이 만든지도)                                  (2005년 발행  대한민국 지형도)

 

 

베끼기라도 제대로 하려면,  葛田谷峰 옆에 작은글씨로 '치밭골봉'이라 표기해야 되는거 아닌가.

 

이렇게 말이다.

 

葛田谷峰 チバツコルポン  ⇒     葛田谷峰 치밭골봉

 

 

치밭골봉은 졸지에 갈전곡봉으로 개명이 되고 말았다.

 

누가 왜곡한 것인가?

 

일본인가 한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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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安山 (개안산)이   開仁山(개인산)으로,  砥石鳳(지석봉)은  砧石峰(침석봉)으로

이름이 바뀐 연유를 알 수 없다.

 

 

우리나라 지형도는 1914년 부터 1918년까지 일본인(조선총독부)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대동여지도에서 보듯이 나무뿌리 형태의 산줄기 그림의 지도에서, 현대 지형도에서처럼 등고선을 넣어 작성된 최초의 지도다.


 

당시 작성된 지도들은 종로도서관 고문헌검색서비스를 통해 볼 수 있고 내려받을 수도 있다.

http://jongnolib.koreanhistory.or.kr/dirservice/main.do


 

일본이 우리나라 지형도를 작성한 목적은 주지하다시피 우리조선을 지배하고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서였다. 바꾸어 말하자면 조선사람들에게 편익을 제공하거나 새로운 문명을 선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지도는 실제의 지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창작이나 예술성이 들어갈 수가 없고 들어가서도 안된다. 사실과 동일하고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어야 지도로써의 가치가 인정된다.


 

혹, 지도를 남에게 줄 목적이었다면, 거짓정보를 담아 혼란을 줌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수도 있겠지만 이 지도는 그들 자신들의 목적(남의 땅을 점령하고 자원을 수탈) 달성을 위해서 작성된 것이므로 가능한 한 정확한 사실이 표시되어야 했을 것이다. 다시말해 지도를 조작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추측해 볼 때, 이 지도는 일본군부의 주도하에 아주 은밀하게 작성되어 일반에 공개되지도 않는 고급비밀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당시 일반 시중에는 교통지도라도 제대로 제작보급이 되었을까?


 

그러므로 그들의 취향이나 어떤 의도에 따라 산 이름을 바꾸었을 거라는 생각은, 오히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의 불순한 의도이거나, 아니면 어리석음으로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는 당시 발행된 지도를 보면 볼수록 더욱 확연해 진다. 일본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있어온 우리나라 고지도의 지명들은 모두 한자로 표기되었다. 조선초기에 한글이 만들어졌지만 일부 소설 등의 창작물에만 한글이 쓰였을 뿐 지도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발행하는 모든 문서(公簿)의 표기는 한자를 사용했다.


 

일본 역시 한자를 쓰는 나라이고, 조선지도 역시 그들의 문서이므로 한자를 사용한게 당연했다. 당시 조선시대의 지도나 산에 관한 기록들을 참조했을 것이고, 기록에 없는 이름들은 현지 주민들에게 탐문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자표기없이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지명은 이를 한자로 바꾸어 표기하면서 소리나 뜻에 맞는(훈차나 음차) 한자를 썼을 것이다. 우리가 쓰는 한자와 일본이 쓰는 한자의 뜻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번역이 필요했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유식하다는 조선인들을 보조로 썼을 것이다.


 

지도제작이 3~4년에 걸쳐 급하게 작성되면서 심도있는 고증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수집과정에서도 착오나 오류는 얼마든지 발생했을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작성된 지도들을 서로 비교해 보더라도 동일산의 이름이 다르게 표기된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고, 산경표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점은 현대의 지도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일제 지형도는 지명을 한자로 표기를 하고 조선인들이 읽는 소리를, 그들의 카타카나로 발음기호를 그 옆에 부기(附記)했는데, 원래 지명이 있는 한자는 지명을 쓰고 발음기호를 달았겠지만, 한자 지명이 없는 산은 현지에서 부르는 소리에 따라 맞는 한자를 찾아 표기했다.

 

여기서, 한자를 그들이 읽는 소리가 아닌 조선인들이 읽는 소리로 적은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산은 ‘야마(山)’ 아니면 ‘다께(岳)’다. 고유명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하물며 일반명사인 山을 ‘산’이라 표기했지 ‘야마’로 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山을 ‘さん(산)’으로 읽는 경우도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야마나 다께가 일반적이다.


 

智異山을 ‘지리야마’로 발음 할 수도 있었을텐테 ‘지리산’이라 한 연유는 무엇일까. 일본인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지리야마’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연구과제다.

 

 

위 지도의 갈전곡봉을 보면,

현지에서 ‘치밭골봉’으로 불리는 것을 한자로 바꾸면서 葛田谷峰으로 표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葛田谷峰을 그들 방식대로 읽지않고 치밭골봉이란 발음 기호를 표기한 것이다. 그 덕분에 현재의 우리는 그 예전의 이름을 미루어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오히려 고마운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조금만 더 살폈더라면 이런 내력을 얼마든지 눈치 챌 수가 있는데 우리 존경하는 대한민국 관리들은 그들이 억지로 만든 한자표기를 그대로 베껴, 법절차란 형식을 빌어 지명고시를 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이래놓고 그들이 산이름을 왜곡했다고 소리친다.

 

 

 

 

 

원문 : http://blog.daum.net/hansemm/811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