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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포항으로 이어지는 28번국도. 영천 고경면과 경주 안강읍의 경계에 ‘시티재’가 있다. 낙동정맥 종주 중에 넘게 되는데, 그 때 넘으면서 City, 도시를 생각했다. 도시로 들어가는 고개라 시티재라 칭한다... 나름의 유래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만, 어디가 촌이고 어디가 도시인가. 둘 다 촌 이그마는... 까짓꺼 더 크게 보아서, 포항서 대구광역시로 간다고 시티재가 아니겠나, 해몽도 좋았다.


 


 

1918년 일제가 발행한 지형도를 보면

한자로 ‘柴嶺峴’(시령현)이라 적고 그 옆에 가다카나로 “シテ-チ-”라 부기해 놓았다.

당시에도 사람들이 시티재라 했던 모양이라. 소리나는대로 표기를 한 것이다.

그네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생산하는 문서에 한글 표기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그네들은 현지에서 불리는대로 한자로 맞추어 표기하고 그 소리를 부기해 놓은 것만으로도 현재의 우리는 우리 조상님들이 실제로 사용한 옛지명을 찾아 낼 수가 있는 것이다.


 

柴嶺峴

시령현의 ‘시’는 柴(섶 시)字로 ‘왜소한 잡목. 거칠다. 꾸임이 없다’는 뜻인 바, 나름의 고개에 해당하는 고유한 지명으로 보여지고, 嶺(령)이나 峴(현)은 같은 말인데, 시티재의 峙(티)나 ‘재’ 역시 동일한 뜻이다.

  

‘시티’나 ‘시재’로 충분한 이름임에도, 마치 역전앞이 된 꼴이다. 이런 이름이야 우리 일상에 널리 쓰이므로 굳이 맞춤법을 갖다댈 일은 아니고 그냥 그런대로 받아들이는 밖에 도리가 없어 보인다. 물론 국어학자의 입장에서는 용서가 안될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상상해 보건데,

지도제작자의 입장에서 현지조사를 했을 것이다. 마을 이장으로부터 ‘시티재’ 라는 이름이 들어왔고, 이를 한자로 맞춰 적는 과정에서... 지도상 지명표기는 본국(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자로 표기를 해야하니, 시령현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놓고 보니 현지의 소리와는 달라지니, 그 옆에다 발음기호를 달아준 것이다.

 

柴嶺峴 을 일본식으로 그대로 읽으면 'さいれいけん' (사이레-켄) 정도가 될것이다.  'シテ-チ-'(시티재)라는 부기가 없었다면 일제 때 내도록 (사이레-켄)으로 불리다가,  오늘날 혹시나 (사이레고개)가 되었을지도 모를일 이다.


 

 

나 같으면, ‘시티재’라는 이름을 접수 했을 때, 티나 재나 같은 뜻이므로 -어린 백셩들을 어엿비녀겨- 이를 바로잡아 柴嶺(시령)으로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의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柴嶺峴으로 번역한 이의 의도가 오히려 기특하게 여겨진다.


 

지도에는 작자의 생각이나 어떤 기술도 들어가면 안된다. ‘일출봉’을 미국사람이 본다고 ‘sunrize mountain’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나라 사람이 보더라도 일출봉은 "Eelchulbong"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유달리 이름에서 의미를 강하게 갖는다. 집착하다 못해 목숨까지 거는(!) 경우 또한 없지 않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다소 생각이 누그러들긴 했지만, 아직도 작명소는 호황을 누리고 개명을 위해 법정에 서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천황봉이나 인왕, 가리왕... 등에서 ‘일제의 잔재’를 외치며 “빼앗긴 이름 되찾기”에 혈안인 사람들이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그들의 표적이 된 ‘일제’는 내가 아는 한    -산 이름에 관한 한-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우리처럼 이름에 집착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문화가 그러하다. 눈 오는 날 낳았으면 유끼꼬(雪子), 밭 근처에 산다고 다나까(田中)이다. 야구스타 이치로는 ‘一郞’인데, 해석하면 ‘맏이’ 또는 ‘장남’이다. 더 우리식으로 부르면 ‘큰놈’이다. 물론 현대에 와서 일본의 젊은 부부들은 보다 세련된 아기이름을 짓느라 신경을 더 쓰긴 하지만, 본래는 그런게 아니라는 말씀이다.

  


 

시티재를 시령현으로 기재하고, 현지의 소리를 발음기호로 표시한  지도제작자라면 천왕봉을 천황봉으로, 임금왕(王)을 일본왕(旺)으로 바꿔 적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은 것이다.  빼앗아 간 사람은 없는데 빼앗긴 사람만 있는 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