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중랑천 한강서울숲 답사기

 

답사지 청계천 중랑천 한강서울숲

답사일 2007.6.27.수.맑은후흐림

이동로 시청역-서울시청-청계광장-청계천-살곶이공원-중랑천-한강-서울숲-뚝섬역

 

서울시청앞 서울광장 분수

 

서울특별시청

 

▲ 서울특별시청  

1946년 9월 28일 서울시청으로 출범해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청으로 승격

서울특별시의 자치행정을 총괄하는 행정기관.

25개 자치구와 522개 행정동이 있다

 

 서울시청역4번출구와 광화문역5번출구사이 청계광장

청계광장 스프링

 

▲청계광장 스프링 

스웨덴출신의 조각가 클애스올덴버그와 코샤반브루군부부의 공동작품 
 

청계광장 분수 폭포 팔석담

   

▲청계광장

청계천이 시작되는 세종로에 조성된 청계광장.

삼색 조명이 어우러진 캔들 분수와 4m 아래로 떨어지는 2단 폭포

폭포 양 옆에는 전국에서 돌을 가져온 8도석으로 제작된 ‘팔석담’을 깔았다. 
 

▲팔석담(八石潭)

팔석담八石潭은 모전교까지 폭 21m, 길이 60m의 구간

과거의 조선 8도와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에 흐르는 물의 의미를 담기 위한 각 도를 상징하는 석재조형물인 8도 저수호안석으로 구성하였다

 

자하문고개에 있는 청계천발원지석(2007.3.20.사진)

 

▲청계천 [淸溪川] 길이 10.84km 

북악산 남서쪽에서 발원하여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와의 경계를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공원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합쳐 한강으로 빠진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

 

청계광장서쪽에 스프링조각물 남쪽에 캔들분수와 2단폭포와 팔석담

 

팔석담다음에 모전교(서울시청에서)

 

▲모전교 : 모전(隅廛)부근에 있었으므로 모전교라고 하였다. 모전은 각종 과일을 파는 가게를 말하는데, 큰 길 모퉁이에 설치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현재 중구 서린동 무교동 사거리 지점이다.

 

모전교다음에 광통교

  

▲광통교 : 광통교는 육조거리-운종가-숭례문으로 이어지는 도성 안 중심통로였으며, 주변에 시전이 위치 하고 있어 도성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다리였다. 1958년 청계천 복개와 함께 도로 밑에 묻혔다. 현재 광교네거리 지하에 남아 있다. 
 

광통교다음에 광교

광교옆 청계천안내도

 

광교밑에서 하류쪽

 

광교다음에 장통교(서울시청에서)

 

▲장통교 : 중부 장통방에 있었으므로 장통교라고 하였다. 현재 장교동 한화빌딩 앞에 위치하였다. 장통교는 청계천 본류와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다.

 

장통교밑의 정조반차도

 

▲정조반차도(정식명칭 정조대왕 화성행행반차도正祖大王華城幸行班次圖)  

 1795년(22대 정조19년)에 어머니 혜경궁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이하여 화성과 현륭원에 다녀와서 만든 8일간의 행차보고서이다. 1,779명의 인물과 779필의 말이 행진하는 모습을 담은 63쪽의 반차도는 궁중화원 김홍도 지휘 아래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이명규 등 화원들이 합작으로 그린 작품으로 문화적 예술성이 매우 높다.

청계천에 재현된 벽화는 가로 30cm X 세로 30cm의 세라믹 자기타일 5,120장으로 구성된 길이 192m의 도자벽화로 역사적인 행차를 현대적인 기법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반차도 첫부분

 

정가교

 

▲정조대왕이 타는 가마 정가교(正駕轎).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 정조대왕은 (자식은 어버이 그림자도 밟지 않는 법인데 어찌 어머니보다 먼저 가느냐며) 가마를 타지 않고 혜경궁 홍씨 가마 뒤에서 말을 타고 간다. 정가교 뒤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독기와 용기(龍旗)가 뒤따른다. 
 

수리가자

 

▲ 수라가자. 행차도중 임금이 먹을 음식을 실은 수레다.   
 

자궁가교

 

▲ 자궁가교.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홍씨가 탄 가마. 

행차의 중심인물 혜경궁 홍씨가 타고 가는 자궁가교(慈宮駕轎) 
 

좌마

 

▲ 좌마. 정조대왕이 탄 말. 하지만 얼굴이 없다.  

정조는 군졸이 양산을 떠받치고 있는 좌마위에 올라 혜경궁 홍씨를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좌마위에 앉아 있어야 할 대왕의 얼굴이 없다. 만백성의 어버이인 임금님의 얼굴은 함부로  그릴 수 없는 게 당시의 풍속이었다.

 

장통교옆 정조반차도앞분수

 

장통교다음에 삼일교 다음에 수표교 

수표교

 

▲수표교

수표교는 1420년(세종2)에 세운 돌다리로서 처음에는 소와 말을 거래하던 우마전(牛馬廛) 앞에 있어 마전교(馬廛橋)라 했다. 1441년(세종 23) 다리 서쪽에 수표석을 세우면서 수표교라 부르게 됐고, 이 수표로 청계천의 수심을 측정했다. 수표교는 1959년 청계천을 복개할 때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

보물 제 838호인 수표는 수표교(서울유형문화재 제18호)와 함께 장충단 공원으로 이전 됐다가 1973년 세종대왕기념관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장충단공원에 있는 수표교(2007.3.23.사진)

 

 수표교다음에 관수교 다음에 세운교

세운교옆분수

 

세운교다음에 배오개다리 다음에 새벽다리 다음에 마전교

마전교(서울시청에서)

 

▲마전교 : 다리 부근에 우마를 매매하는 마전 (馬廛)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청계 5가 사거리 동쪽 방산시장 앞으로 추정된다.

 

마전교옆 옥류천

 

▲옥류천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을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옥류천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개울을 가리킨다.

인조 14년(1636년)에 커다란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옥과 같이 맑은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여기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

 

마전교다음에 나래교 다음에 버들다리

버들다리위 전태일동상

 

▲전태일

전태일 [全泰壹, 1948.8.26~1970.11.13] 

젊은 나이에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의 의류제조 회사에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하였으나, 사회의 무반응과 개혁의 불가함을 느껴 의분 분신자살한 노동운동가.

 

버들다리다음에 오간수교

오간수교위 가산터

 

▲가산터

청계천을 준설할 때 파낸 흙을 쌓아 만든 가산이 있었던 터

 

오간수교밑 오간수문터


 

▲오간수문터

오간수문이 있던 자리로서 오간수문이란 조선초기 도성을 쌓을 때 청계천의 물줄기가 도성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지점에 있었던 다섯개의 수문을 말한다. 수문은 동대문(흥인지문)과 광희문을 잇던 성곽의 하부에 설치돼 있었다. 처음에는 3칸이었으나 5칸으로 증축되었다. 1908년, 동대문 주변 성곽을 헐면서 오간수문도 같이 헐었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 다리를 놓았다. 이 마저도 이후에 헐려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오간수옆 분수 패션광장과 문화의벽

 

▲패션광장

인간과 자연의 상생과 조화를 주제로 제작한 '문화의 벽'과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하천분수, 자그마한 문화공간인 수변무대가 어우러진 휴식공간이다.

▲문화의 벽

자연ㆍ환경을 주제로 한 현대 미술가 5인의 작품으로 오간수문 상류에 설치되어 있고 각각의 작품 크기는 가로 10m, 세로 2.5m이다.

 

오간수교다음에 다산교

다산교옆 청계천빨래터

 

▲청계천빨래터

 청계천은 아낙네들의 빨래터이자 아이들의 놀이터로 서민들의 생활터전이었다. 옛 아낙네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빨래터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다산교다음에 영도교(서울시청에서)

 

▲영도교 : 조선 성종 때 승려가 놓았다고 전한다. 흥인지문 밖에 있는 동묘(東廟)와 왕십리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고종초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헐어다가 석재로 사용하였으며, 일제강점기 콘크리트 다리로 개축되었다. 현재 성동기계공고 옆 영미교길 부근에 있었다.


영도교다음에 황학교

황학교옆 돌하루방다리

 

황학교옆 소망의벽

 

▲소망의벽

 20,000여명의 시민이 참가하여 그들의 소망과 염원을 직접 쓰고 그려 넣었다. 청계천 복원사업에 서울시민은 물론, 지방 광역시ㆍ도ㆍ이북5도민, 해외동포 등 온 국민의 참여를 유도한 기념물이다. 가로, 세로 10cm의 도자기질 타일에 각자의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의 양쪽 벽에 50m씩 설치되어 있다. 
 

황학교옆 물허벅여인상과  리듬벽천

 

▲리듬벽천

 고수벽면에 리듬폭포처럼 유지용수를 흐르도록 하고 색색의 조명이 조화로운 수경시설과 저수변에 목재 데크를 설치하여 친수공간을 조성한 높이 5m, 넓이 20m의 대리석 벽으로, 검은 타원형의 돌을 박아 물고기가 물위에 있는 형상을 만들었다.


 황학교다음에 비우당교

비우당교옆 터널분수

 

▲터널분수

 하늘로 솟아오르는 분수와 달리 5m 높이의 석축 위에서 뿜어 나온 물줄기가 조명화 함께 화려한 터널을 이루면서 하천으로 떨어진다.

폭이 50m인 비우당 터널분수는 총 42개의 노즐이 설치돼 있으며, 물줄기의 분사 거리는 16m에 이른다. 분수에서 뿜어 나온 물줄기가 조명과 함께 화려한 터널을 이룬다.

 

비우당교옆 존치교각

 

▲존치교각

 청계고가도로의 교각 중 일부를 2003년 8월 당시 철거하지 않고 남겨둔 것으로 비우당교와 무학교 사이에 있으며, 청계고가도로를 걷어낼 당시 철거하지 않은 3개의 교각이 남아있다.

 

비우당교다음에 무학교 다음에 두물다리

두물다리

 

청계천문화관앞 청둥오리

 

두물다리다음에 마지막 고산자교

고산자교옆의 시민광장에서 하류의 철새보호구역

 

시민광장에

 

 ▲버들습지 철새보호구역

 어류, 양서류, 조류 등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공간 확보를 위해 갯버들ㆍ매자기ㆍ꽃창포 등 수생식물을 식재한 습지를 조성한 곳 이다.

청계천 중 가장 자연적·생태적 공간이다. 청둥오리 · 흰뺨검둥오리나 중대백로 ·황조롱이 등 조류를 포함, 메기 ·버들치 ·잉어 ·피라미 ·송사리 ·미꾸라지 등 어류들을 만나는 흥분도 느낄 수 있다.

 

시민광장위 뚝가의 사과나무

  

한양대후문 살곶이체육공원에서 청계천과 중랑천

 

▲중랑천(中浪川) 길이 20km.

중랑천은 경기도 양주시 주내면 산북리 불국산 청량골(찬우물계곡)에서 발원하여 양주의 유양천 광사천 어둔천등과 합류 의정부의 부용천 백석천등과 합류 서울의 우이천 청계천등과 합류하여 한강 본류에 유입한다.

옛날 중랑천은 도봉동 부근에서는 서원천(書院川), 상계동 부근에서는 샛강, 한천(漢川), 한내라고도 불렸다. 
 

살곶이공원에

 

살곶이공원에

 

 

 살곶이다리

  

▲전곶교 [箭串橋]  살곶이다리 사적 제160호

조선시대의 석조 다리.

한천(漢川:현재의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 한강을 약 2km 앞둔 곳에 놓여졌으며, 현재의 서울 성동구 행당동과 성수동의 경계에 있다. 조선시대의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하며 원래 이름은 제반교(濟盤橋)였고 일명 살곶이다리라고 한다. 
 

살곶이정

 

행당배수문

 

용비교옆 인도교에서 한강

 

▲한강 [漢江] 

한국의 중부인 강원 충북 경기 서울을 거쳐 서해로 유입하는 강으로 남한에서 낙동강에 이어 두번째로 큰 강이다.

강의 발원지에서 하구까지의 거리는 514.5km로 한강의 상류는 남한강과 북한강으로 나뉘며 남한강을 본류로 한다.

남한강은 394.25km, 북한강은 325.5km으로 남한강이 북한강보다 68.75km 더 길다.

남한강(南漢江)은 강원도 태백시의 대덕산(大德山:1,307m)의 북쪽계곡에서 발원하여 골지천(骨只川)으로 강원의 오대천(조양강)과 합류하여 동강(한강)으로 강원의 평창강(平昌江서강)과 합류하여 남한강으로 충북의 달천(達川) 강원의 섬강(蟾江) 경기의 청미천(淸渼川) 복하천(福河川) 흑천(黑川)등을 합류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양수리(兩水里)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이 된다.

북한강은 강원도 금강군(북한)의 옥밭봉(玉田峰1,240m)에서 발원해 금강산(金剛山)의 비로봉에서 발원하는 강원의 금강천(金剛川) 사동천(泗東川)등과 합류하여 북한강으로 강원의 서천(西川) 소양강(昭陽江) 홍천강(洪川江)등과 합류하여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양수리에서 시작하는 한강은 경기의 경안천(慶安川) 서울의 탄천 중랑천(中浪川) 안양천(安養川)등과 합류하여 하구에서 경기의 임진강(臨津江)과 합류하여 강화만(江華灣)에서 황해로 들어간다.

한강은 한사군(漢四郡)시대나 삼국시대 초기에는 대수(帶水)라 불렸고, 광개토대왕비(碑)에는 아리수(阿利水)로 기록되었으며 삼국사기에는 욱리하(郁利河)로 나타나 있는데, 백제가 동진(東晉)과 교류하고 중국 문화를 수입하면서부터 중국식 명칭인 ‘한수(漢水)’가 되었다.

 

한강 유람선선착장

 

유람선선착장위 서울숲 육교전망대

 

육교전망대에서 한강

  

육교위에서 꽃사슴

 

육교위에서 호수 앞은 응봉산

 

거인의나라

 

공간속으로

 

바닥분수 남쪽에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