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을 찾아서(캄보디아 베트남 여행)


띠톱섬 정상에서 바라본 하롱베이




일시 : 2008. 6. 6- 6. 11(5박6일)
일정 : 김해공항-호치민탄손누트공항경유(환승)-캄보디아시엠립국제공항도착-압살라앙코르호텔 (1)-앙코르유적지관광-압살라앙코르호텔(1)-톤레삽호수-민속촌-박물관-캄보디아시엠립국제공항출발-하노이노이바이국제공항도착-사이공하롱호텔(1)-하롱베이유람-수상인형극관람-사이공하롱호텔(1)-하노이-바딘광장-호치민생활관-한기둥사원-박물관-하노이노이바이국제공항출발-호치민탄손누트공항경유(환승)-기내(1)-김해공항
예약 : 모두투어
인솔 : 부산여행사(연합상품)
날씨 : 대체로 맑음


캄보디아

정식국명은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국왕과 수상이 존재하는 입헌군주국이다.
◆ 수 도 : 프놈펜 (1,169천명)
◆ 인 구 : 13,124천명 (인구성장률:1.8%)
◆ 기 후 : 고온다습 (연평균:27℃)
◆ 면 적 : 181,035㎢ (남한의 약 1.8배, 한반도의 4/5)
◆ 주요도시 : Phnompenh, Kratic, Battambong
◆ 언 어 : 크메르(공식어), 프랑스, 영어
◆ 민 족 : 크메르족(90%), 베트남계(5%), 중국계(1%), 기타(4%)
◆ 문맹률 : 69%
◆ 종 교 : 소승불교
◆ 지 리
총면적 181,305㎢ 으로, 북쪽으로 태국, 라오스, 동쪽과 남쪽으로 베트남, 서쪽으로, 캄보디아 만으로 둘러싸여 인도차이나반도에 자리잡고 있다. 서쪽해안을 따라 태국만이 만나는 곳에는 충적토(흙과 모래가 떠내려와 쌓인 평지)가 넓게 자리잡고 있으며, 그 주변은 산과 동쪽은 메콩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평야의 중심에는 메콩이 만들어낸 수장원이 풍부한 똔래삽(Tonle Sap)호수가 있다.
◆ 기 후
북위 10~14°에 걸쳐진 열대기후대로 년평균 섭씨25°로 년중 일정한 기온을 유지한다. 밤의 습도가 매우 높아 90%정도이고, 낮에는 80%를 유지한다. 11월부터 2월까지 이어지는 건기에는 22 - 31°C, 평균 강수량은 47㎜이다. 일조시간이 평균 8시간에 이른다. 3월부터 5월까지는 캄보이아에 매우 무더운 날씨가 찾아온다. 평균 기온 24 - 37˚C, 평균 강수량 70㎜이다.
특히, 4월은 북동 몬순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고, 강수량이 현저히 줄어든다. 5월부터 10월에 이르는 우기에는 남서 몬순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린다. 평균기온 24-32˚C, 평균강수량 193㎜이다. 특히 오후에는 장댓비를 내리면서, 거리가 넘치는 경우가 잦다.
◆ 시 차 -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늦다.
◆ 전 압 - 220-240V, 50Hz
◆ 통 화 - 단위는 리엘(CR :Cambodian riel)이고, 100, 200, 500 리엘이 있다.
US Dollar는 일반적으로 전국걸쳐 통용되고 있다. 프놈펜에서는 제한적으로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하며, 여행자수표도 사용이 가능하다.


캄보디아의 관광거리

◆ 앙코르톰
앙코르톰은 앙코르와트와 함께 앙코르 문화의 쌍벽을 이루는 곳으로 앙코르와트에서 북쪽으로 1.5km떨어져 있다. 한변이 3km의 정사각형 모양인 앙코르톰은 높이 8m의 붉은 흙인 라테라이트 성벽과 너비 약 100m의 수로로 둘러싸여 있다.
앙코르 톰과 중앙 사원인 바욘은 크메르왕조가 붕괴되기 직전인 1,200년 자야 바르만 7세에 의해 지워진 캄보디아 사원중 최후이며 바로크양식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인구 100만의 사방 10km2로 뻗어가던 도시였으나 현재는 돌로 만든 기념비 뿐이 옛날의 상혼을 남겨주고 있다. 이곳에는 미소를 띄고 눈을 감고있는 자야바르만 부처와 남쪽문의 돌 거인상, 나가(Nagas), 코끼리의 테라스, 레퍼왕 사원, 첫번째 복도 내부의 양각조각 등이 있다. 우주와 왕국을 표상하는 거대한 건축물의 배열이 앙코르 톰을 잘 나타내고 있다.
바이욘 사원(Bayon)에서 동서와 남북으로 뚫린 두 개의 도로에 의해 도시가 4등분된다. 앙코르톰의 북쪽에는 왕궁이 자리잡고 있고 그 중앙의 수로에 걸쳐서 바이욘 사원이 건립되었다. 북대문, 서대문, 남대문을 갖추고 동쪽에는 승리의 문과 사자의 문이 있다. 왕궁의 왼편에는 피메아니카스 사원(Pimean Akas)과 바푸욘 신전(Baphuon)이 있고, 그 위쪽으로는 코끼리 테라스(Elephant Terrace)가 있다. 당시 이곳을 여행한 중국인에 의하면 도성 입구의 문지기가 죄인과 개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성 안에 기와를 올린 둥근 지붕의 귀족들 집은 동향이고, 왕은 이곳에서 하루에 두번씩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호화스러운 옷을 입고, 국사를 처리하였다.


◆ 바푸온 사원
바푸욘 사원은 바이욘 사원에서 북서쪽 200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힌두교의 우주관에서 우주중심인 메루(Meru)산을 상징하고 있으며 앙코르 지역에서 세번째로 지어진 사원이다.
또한, 우다야디티야바르만(Udayadityavarman) 2세에 의하여 시바신에게 봉헌된 힌두교 탑이기도 하다. 비록 시바에 봉헌한 사원이지만 많은 비슈누의 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사원의 중심은 약 43m로 바이욘보다 높다. 가로 125m, 세로 425m 크기로 동쪽 입구에서 다리형태로 된 높은 길을 따라 200미터 거리에 피라밋 형태의 탑이 솟아 있다.
사원의 서쪽 벽면에는 열반에 들어 누워있는 부처들로 장식되어 있지만, 일부분은 훼손되어 있어 알아보기 힘들다. 바푸욘 사원은 훼손정도가 심하여 계속하여 복구 중이다.


◆ 코끼리 테라스
왕궁의 정문인 동쪽 입구에 약 350미터 가량 늘어선 단상으로서 왕이 행사나 군인들의 사열을 관장하던 곳이다. 동쪽 광장을 향하고 있는 단상은 3개인데 양옆은 코끼리들이 부조되어 있고 중앙쪽의 단상은 가루다가 받치고 있다. 코끼리 테라스에 올라가면 서쪽 아래 중앙광장이 한눈에 보이게 되는데 과거 이곳의 영광스런 모습들이 금새 떠올려지게 된다. 또한 당대 세계최고의 권력과 기품을 가진 왕의 위용을 느낄수 있게 한다.
광장 앞쪽 맨 끝에는 12개의 탑이 우뚝 서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맹스런 군인들의 모습과도 같아 당시 파수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 탑들 뒤에는 끄레응(Kleangs)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창고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따라서 외국에서 온 사신들을 접대한 곳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큰 곳이다.


◆ 문둥왕 테라스
북쪽 코끼리 테라스와 골목 하나를 두고 위치해 있다. 레프왕 테라스의 높이는 7미터 가량 되며 맨 꼭대기에는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의 진품은 프놈펜 중앙박물관 정원에 위치해 있다. 이 조각상의 모습은 우아한 수염을 가진 온화한 모습으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레퍼(Leper, 문둥이)왕이란 한 승려가 왕 앞에 엎드리기를 거부하자 왕이 승려를 죽였는데 그때 승려의 침이 왕에게 튀어 문둥병이 옮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으로 그 왕이 자야바르만 7세라고 추정되며 이 조각상은 그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곳은 왕의 사후를 위하여 건립되어 왕의 유골이 안치되었을 것이라는 일설도 있다.
단상 외벽의 모퉁이에는 코브라 형태를 가진 나가들이 지키고 있고 벽면에는 압살라들과 가루다들이 빼곡이 부조되어 있다. 또한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 피마나카스
옛 왕궁터인 피미안나카스는 앙크로톰 내부의 바푸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코끼리 테라스 바로 위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측면을 둘러 걸어나오면 문둥왕의 테라스에 도달한다. 승리문의 끝에 연결된 코리리테라스의 계단으로 정면으로 들어가면 된다.
11세기 수르야바르만 1세에 시작되어 유다야디트야바르만 II에 의해 힌두교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피미안나카스 사원(The temple of Phimeanakas)은 왕궁의 벽으로 둘러싼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주달관은 이곳을 황금탑이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원형은 황금의 첨탑들로 올려진 것 같다. 이 사원은 사암벽돌을 쪼개어 올린 것으로 장식이 거의 없다.
전설에 의하면 앙코 대제국의 왕궁 안에 황급탑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머리가 아홉 개 달린 사악한 악령(나가)이 살았다고 한다. 이 악령은 매일밤 탑 속에서 왕비나 상궁과 동침을 하기 전에 크메르왕 앞에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만약 왕이 하루라도 빠지면, 그는 목숨을 잃는다고 믿었다. 이렇게 해서 왕의 크메르는 계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두번째 수도였던 왕궁은 나중에 증축된 두번째 건물에 의해 두배로 올려진 5미터 높이의 라테라이트의 벽 안에 감싸져 있다. 피미안나카스를 둘러싼 벽 중앙에 라테라이트로 된 사각형의 3층 피라미드 형식의 건축물은 왕실 전용 예배당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복합 건물은 전망을 위해 높이를 줄였다. 탑에 올라가보고 싶은 사람은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서쪽 계단을 이용한다.
현재 남아있는 옛 왕궁터의 흔적으로는 외벽을 감싸고 있었던, 코끼리테라스와 문둥왕의 테라스 그리고 중앙의 탑이 있다.


◆ 앙코르왓 사원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칭되는 웅장, 화려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앙코르왓은 앙코르 왕국의 아쇼바르만 1세(889~900)의 시기에 건립되었다. 도읍을 둘러싼 성벽은 한 변이 약 4km나 되었고, 서쪽과 남쪽에는 폭이 넓은 수로가 만들어졌다.
성의 북동쪽에는 길이 7Km, 너비 2Km의 '동바라이'라는 큰 저수지가 만들어졌다. 도읍의 중심인 프놈바켄의 언덕 위에는 5층의 피라미드형 사원이 세워지고, 제일 높은 층에는 주사위의 눈처럼 다섯 신전이 배열되고 중앙의 신전에 링가를 모셨다. 현재 남아 있는 앙코르 톰(큰 도시)은 제4기 공사에 속한다. 각 왕들에 의하여 연속적으로 확대된 도읍은 마지막에는 그 넓이가 1,000km2를 넘었다.
앙코르왓은 크메르의 고대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중의 하나이다. 시엠립시 북쪽 6.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이 사원은 1858년 프랑스의 자연학자 헨리 모호가 이곳을 발견한 이래 이곳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있다. 이곳은 공항에서 버스로 갈 수 있다. 이 사원은 12세기 전반에 수리아바르만 2세가 건립하였으며 힌두교의 비슈누 신과 일체화한 자신의 묘로 사용하기 위해 이 사원을 건립하였다.
앙코르왓은 힌두교의 신들과 그 대리인인 왕에게 바쳐진 장대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곳에 있는 모든 건축물 하나하나에는 크메르인들의 독자적인 문화와 그들의 우주관 및 신앙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그들이 건설한 세련되고 정교한 호수, 운하와 레삽으로부터 연결시킨 관개수로를 이용하여 부유하고 막강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앙코르왓의 구조는 동서로 약 1,500미터, 남북으로 약 1,300미터의 넓이에 중앙에 있는 탑을 기준으로 석조의 대사원이 건설되어졌다. 사원 주변의 운하는 바다를 의미하며 높이 65미터의 중앙탑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나타낸다. 또한 사원의 회랑은 히말라야 산맥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변에는 넓은 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그 외부는 너비가 약 200미터인 수로로 둘러싸여 있다.


※ 앙코르의 저주
과거부터 북쪽 밀림 속의 큰 도시, 앙코르와트에 가면 반드시 큰 저주가 따른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앙리 무오는 5일 동안 이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반쯤 묻힌 유적을 탐험하였다. 무오는 앙코르를 발견한 다음 해인 1861년 9월 여름 열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는데 이는 신들의 건축물을 발견하여 천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베트남

정식 명칭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으로 인도와 지나의 문화가 공존하는 땅 인도차이나에 위치한다. 인도차이나반도 동부에 거꾸로 서있는 용의 모습으로 길게 자리하며 남북으로 길게 뻗은 추옹송 산맥을 국경으로 북으로 중국, 서로는 라오스ㆍ캄보디아, 남서로는 타이만 남동쪽으로 남중국해와 통킨 만에 접하고 있다.
베트남은 인간의 손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나라로 울창한 파파야나무 숲과 끝없는 백사장, 열대과일과 해산물등 즐거움이 넘치는 나라이다.
베트남은 10년간 약 31만명을 파병했던 월남전쟁과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의 아픔을 격었던 나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베트남의 이 아픈 역사는 프랑스의 80여년간의 식민지배로 시작되었고, 그 후 2차 세계대전 일본이 프랑스를 대신 식민지배 하게 된다.
일본이 패한 후 포츠담회담에서의 분단이 결정되어 북쪽은 중국군이 남쪽은 영국군이 주둔하게 된고 프랑스군과의 인도차이나전쟁, 미국과의 베트남 전쟁에 이르는 우리나라 만큼이나 순탄치 않은 운명을 걸어온 나라이다. 1980년 심각한 경제상황으로 민간기업들에 대한 자유화 조치를 단행하는 경제개혁을 감행하였고 현재는 안정된 경제서장과 활발한 국제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수 도 : 하노이 (HANOI)
- 인 구 : 약 7천 600만명 - 베트남계: 90%/ 타이계: 2.2%/ 능족 2.2%/ 화교 1.3%등 약 60여 소수민족
- 면 적 : 약 33.2만㎢ - 한반도의 1.5배, 국토의 3/4이 산악지대
- 종 교 : 불교(북-대승불교, 남-소승불교) : 80% / 카톨릭: 9% / 화아호아교와 카오다이교 등
- 주요언어 : 베트남어 /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는 영어도 통한다.
- 정치형태 : 사회주의 공화국
- 기 후 : 남북으로 긴 지형으로 남북의 기후가 다르다.
- 시 차 : 한국보다 2시간 늦다
- 환 율(화폐단위) : 통화 - 동 (Dong)
※ 환율 - US$ 1 = 15,700 Dong
환율은 은행이 가장 좋으며, 동화에서 다른 화폐로의 환전이 불가능하므로 필요량만 환전
※ 지폐단위 : 1백, 2백, 5백, 1천, 2천, 5천, 5만 동 (동전은 없다)
※ 높은 인플래로 달러를 선호하며 잔돈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작은 돈을 준비하도록한다.
※ 은행이나 고급호텔에서는 여행자수표(US$만)와 신용카드사용이 가능하다.
- 전 압 : 대부분은 220V 사용(110V 도 사용한다)


하노이의 관광거리

� 수상인형극
우리나라의 탈춤과 비슷한 농민들의 애환이 담긴 베트남의 전통 인형극이다. 인형극은 주로 시골생활을 담고 있고 베트남 민요가 짙게 묻어난다. 시골의 일상생활과 조부모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베트남의 민화, 작물을 수확하는 이야기, 고기를 잡는 이야기, 온갖 축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요 하이라이트이다.
수상인형극은 10세기 삼각주의 홍강(Red river)에서 수확을 끝낸 뒤 주변환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인형을 만들어 논둑에서 공연하는 형태로 소박하게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베트남의 전통 오케스트라와 우리나라의 창을 닮은 체오(Cheo), 꼭두각시의 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공연으로 자리잡았다.


� 하롱베이
은하수를 닮은 3천여 개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섬들과 에머랄드빛 바다를 자랑하는 하롱베이 국립공원(Halong Bay National Park)은 묵화를 닮은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다. 호수같이 잔잔한 해면과 그 위에 살포시 떠있는 용섬, 원숭이섬, 거북섬 등의 별명을 갖은 섬들로 인해 '바다의 계림'이라고도 불린다.
하롱이라는 이름은 '하'(降), '롱'(龍)으로 용이 내린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 이름에는 전설이 담겨져 있는데 옛날 외적의 침략이 잦았던 이 지역에 용이 내려와 적을 물리치고 보석을 얻었는데 그것이 기암이 되어 바다로부터 외적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해줬다는 것이다.
푸르고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바다에는 그러한 전설과 잘 어울리는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러한 느낌 때문인지 하롱베이는 '인도차이나'와 '굿모닝 베트남' 등의 영화 속에도 녹아 들어있다. 하롱베이의 유람선에 올라 다소곳한 하롱베이의 전경과 베트남여행에서 볼 수 없었던 침엽수, 곳곳에 산재하는 동굴 등을 바라보며 하롱베이를 가슴 깊숙이 담아볼 수 있다.


� 호안 키암 호수
호안 키암 호수(Hoan Kiam Lake)는'되돌려 준 칼의 호수'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시민들의 안락한 휴식처이다. 이 호수 주위에는 오래된 수목들이 늘어져 있어 하노이의 낭만을 더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북쪽으로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으로는 프랑스식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들어찬 외교공관가를 이룬다.
호안 키암 호수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전설을 지니고 있어 더욱 유명하다. 15세기 중국 명나라 군사가 쳐들어 왔을 때 '레노이'란 어부가 하늘에 이들을 물리쳐 달라고 호소하며 고기를 잡았는데 그물에 걸린 고기의 하나가 번쩍이는 신비로운 칼이었다. '레노이'는 이 칼은 하늘이 내린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람을 조직, 1482년 명군을 물리쳐 영웅이 되었으며 그는 레 왕조를 건설, 스스로 황제에 올랐고, 그 후 이 호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를 올리던 어느 날 천둥이 치면서 호수에서 거북이가 나와 칼집을 나꿔채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리하여 하노이 시민들은 이 호수를 외세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영적 대상으로 여긴다.


� 호치민영묘
베트남 국회의사당 건물 건너편 광장에 세워진 그리스신전 같이 웅장한 대리석 건물이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과업을 이룩해 낸 위대한 지도자 호치민 묘소이다. 1975년에 세워진 이 묘는 모두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외부는 연꽃모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거대한 무덤 내부에는 호치민의 시신이 생전의 모습 그대로 자는 듯 누워있다.
묘소에는 아직도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 호치민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반바지 차림이나 썬글라스를 착용하고는 입장이 불가하며 입장 후에도 수다를 떨거나 팔짱을 끼고 있으면 경비병이 호통을 칠 정도로 그들의 존경심은 대단하다.
호치민의 유체를 구경한 후 나오면 묘 근처에 호치민이 살았었다는 집이 그대로 남아있다. 1958년에 지은 고상식 목조주택으로서 건방진 묘지기 병사들과는 달리 소박하고 서민적이었던 고인의 인품을 그대로 알 수 있게 한다. 작은 나무책상과 보통침대, 읽었던 책과 시계 등이 생전대로 놓여져 있다.
또한 오층집 앞에는 자스민 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연못에는 잉어가 노닐고 있다. 이는 모두 호치민이 몸소 길렀던 것이라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머물렀던 호텔



북한이 운영하는 평양식당에서



앙코르왓

























































1달러를 달라며 따라다니는 아이들



프놈바겡에서 바라본 시엠립










톤레삽 호수의 수상가옥들
























유람선 위에서 본 하롱베이 1













유람선 위에서 본 하롱베이 2













띠톱섬 정상에서 바라본 하롱베이
















바딘광장



베트남 대통령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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