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3.23 (수)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임진강변 '화석정'
조금 멀어도 임진강을 조망하는 유명한 조선 중기 율곡이이선생께서 앞날을 내다보시고 화석정을
지으시고 하인에게 기둥에 기름은 잔뜩 발라놓으라고 하였는데 나중에 돌아가신후 ,
임진왜란이 일어나 비오는 깜깜한 선조가 평양으로 도망하느라 한양땅을 지나 이곳 임진강에 도착하였지만
깜깜하여 아무것도 안보이니 나룻배를 찾을수가 없었는데 마침 정자가있어 불을질러 환하게 한후 나룻배를
구하여 무사히 임진강을 건넜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화석정이니 임진강 조망도 좋고 ,.
하류방향
화석정 현판글씨가 박정희 대통령께서..
뒷쪽 마을풍경
본문 |
1974년 9월 26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다. 임진강가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겹처마의 초익공(初翼工)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른 건물이다. 원래 고려 말 대유학자인 길재(吉再)의 유지(遺址)였던 자리라고 전해지나 자세한 문헌 기록은 없다. 그후 1443년(세종 25) 율곡 이이(李珥)의 5대 조부인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이 세운 것을 1478년(성종 9) 율곡의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보수하고 몽암(夢庵)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 후 이이(李珥)가 다시 중수하여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이곳을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의 정자는 1966년 경기도 파주시 유림들이 다시 복원하고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단청되고 주위도 정화되었다. 건물의 정면에는 정치가 박정희가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에는 이이가 8세 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가 걸려 있다. [출처] 화석정 [花石亭 ] | 네이버 백과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