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지역의 신석기시대(암사동선사유적지) 백제초기(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동백제고분 방이동백제고분) 조선중후기(삼성동수도산봉은사 석촌동삼전도비 석촌호수동호송파나룻터) 현시대(올림픽공원 석촌호수서호매직아일랜드 서울종합운동장 코엑스) 유적지 답사기  2

 

석촌호수 서호 다리위에서

 

서호의 오리

 

서호의 롯데월드어드벤치

 

서호의 매직아일랜드

 

서호뚝위의 서울놀이마당

 

서호 북쪽전망대에서

 

서호에서 도로로 올라와 석촌역으로 가다

석촌역6번출구에서 2분거리의 7일레분앞에서 좌측길로 들어가(도로의 안내문 삼전도비100m)

1분거리의 삼전도비어린이공원뒤의 삼전도비로 가다

 

삼전도비

 

▲삼전도비 三田渡碑 사적 제101호

병자호란때인 조선 인조 17년(1639) 청군(淸軍)의 침입에 패배한 조선이 삼전도에서 강화를 맺은 뒤 청나라 태종(太宗)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새긴 비이다. 원래의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다. 
 

삼전도의 수난기

 

▲삼전도의 수난기

 

삼전도비에서 7일레분옆 도로로 나와 좌측의 석촌동사무소앞 지하차도쪽으로 가다

석촌동사무소앞 지하차도위에서 좌측의 석촌동백제고분지 정문으로 가다

 

남쪽의 제5호분

 

▲석촌동백제초기적석총 石村洞百濟初期積石塚 석촌동백제고분 사적 제243호

백제가 한강 하류역에 위치한 한성(漢城)에 도성을 정한 후 서기 475년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형성된 백제 전기 고분군이다. 
 

동쪽의 제3호토광묘

 

★석촌동 제3호 토광묘(石村洞 第三號 土壙墓)

제3호 토광묘는 표토밑 70㎝에서 드러났고 평면은 네 모서리가 둥그스럼한 장방형이며, 묘광의 크기는 길이 208㎝, 너비 58㎝, 깊이 26㎝이다. 장축은 동북에서 서남으로 두었다. 
 

제1호분 동쪽

 

★석촌동 제1호분

2기의 고분이 합쳐져 이루어진 쌍분이라고 보게 된다. 즉 동서 9.9m, 남북 8.9m 크기의 북분과 동서 9.6m, 남북 9.8m 크기의 남분이 합쳐진 것인데, 합침에 있어 남ㆍ북분 서쪽 기단부는 너비 3.2m의 적석단으로 이어졌다. 
 

내원외방형적석총 동쪽

 

★내원외방형적석총(內圓外方形積石塚)

시기와 고분의 원형은 분명하지 않았으나 발굴 조사에 의하여 고분 기단부의 서남 모서리와 서·북쪽의 석축 기단 일부를 찾아냈다. 그것에 의하여 복원 정비하니 안쪽은 지름 11.4m의 원형을 이루고 바깥쪽은 길이 16m의 방형이 되었기 때문에, 기단부의 모양을 내원외방형이라고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안쪽 원형 석축 바닥에서는 적석 토광묘 2기와 석곽묘 3기가 들어 났는데 이러한 적석 토광묘와 석곽묘 위에 이 적석총이 축조되었다고 보아야 하겠다.

 

중앙인도에서 남쪽

 

중앙인도에서 북쪽

 

제2호토광묘 

 

★석촌동 제2호 토광묘

석촌동 제2호 토광묘는 생토층을 파서 묘광을 만들었는데 평면은 장방형이고, 크기는 길이 223㎝, 너비 76㎝, 깊이 21㎝이다. 
 

제2호분

 

★석촌동 제2호분

제2호분은 복원 정비하기 이전에는 길이 약 25m, 너비 약 20m, 높이 3∼4m 크기의 봉우리 모양을 이루고 남아있었다. 봉우리 모양의 분구 바닥 주위에는 민가가 들어서고 돌담장이 돌려있었으며 파괴된 분구 위에는 약 10∼30㎝ 두께로 흙이 덮여 있었다. 
 

제4호 돌무지무덤

 

★석촌동 제4호 돌무지무덤

4호분은 3호분의 남쪽 약 80m 거리에 있으며, 정방형으로 잔 자갈을 깔아 묘역을 먼저 구성하고 있다. 제일 바깥선은 한 변 약 30m이고, 그 안으로 좁혀 들어가면서 각각 한 변 24m, 17.2m, 13.2m이고, 가장 안쪽 중심부를 이루는 묘곽의 한 변은 4.8m이다.


 제3호 돌무지무덤

 

★석촌동 제3호 돌무지무덤

3호분은 방형(또는 장방형)의 단축적석총(段築積石塚)이고, 3단까지 남아있는 각 단의 높이는 0.7∼0.8m, 폭 4∼4.2m이다. 남북 길이 43.7m, 동서 길이 55.5m, 그리고 높이가 약 4.5m로 추정되고 있다. 
 

중앙인도옆의 보호수 235년된 회화나무

 

석촌역으로 와 석촌역3번출구에서 송파1파출소옆 송파근린공원 도로변에 있는 을축년대홍수기념비로 가다

 

을축년대홍수기념비

 

▲을축년 대홍수 기념비

1925년 을축년에 7월중순부터 9월초에 걸쳐 네 차례의 큰홍수가 일어났는데

2차 홍수때인 7월 16~18일까지 3일간 임진강과 한강유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계속 내린 비의 양은 한강과 임진강 분수령부근에서 650㎜에 이르렀고 이로 말미암아 임진강과 한강이 대범람을 일으켰다.  영등포·용산의 제방이 넘쳐 강변 일대 3만여 정보의 땅이 침수되어 진흙바다를 이루었다. 가장 피해가 심했던 곳은 동부이촌동·뚝섬·송파·잠실리·신천리·풍납리 등이었다. 지금의 서울역부근까지 물이찼다 

당시 4차례에 걸친 홍수로 전국에서 사망자 647명, 가옥유실 6,363호, 가옥붕괴 17,045호, 가옥침수 46,813호에 이르렀다. 그리고 유실된 논이 32,183단보, 밭이 67,554단보 등으로 그 피해액은 1억 300만원이었다. 이 금액은 당시의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해당한 엄청난 피해를 겪은 사상최대의 대홍수였던 것이다.

홍수의 무서움을 체험한 주민들은 다시는 이러한 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후세에 경각심을 주고자 1926년 7월 15일 송파리에 있던 광주군 중대면사무소에 이 기념비를 세웠다

 

을축년대홍수비에서 직진하여 방이4거리에서 우측으로 가 방이동 백제고분4거리를 지나 백제고분에 가다


방이동 백제고분 정문위에서 서북쪽언덕 경사면의 1호분 2호분 3호분 6호분

 

▲방이동백제고분군 芳荑洞百濟古墳群 사적 제270호

서울특별시 방이동 일대에 있는 백제전기(4세기초∼475)의 무덤들이다.

서기 475년에 백제중기의 도읍지인 웅진으로 천도하기 이전 시기까지 축조된 백제 전기의 고분군이다.

 

제1호분

 

제1호분 내부

 

중앙인도에서 동남쪽 낮은언덕 경사면의 7호분 8호분 9호분 10호분

 

제7호분

 

방이동백제고분을 나와 방이육교의 오금4거리를 지나 송파경찰서4거리 건너 오금공원으로 가다

 

송파경찰서앞4거리의 오금공원 인공폭포 1

 

오금공원 인공폭포 2 송파경찰서앞4거리

 

인공폭포위 충민정

 

지압길위 오금산정상의 돌무덤

 

▲오금동梧琴洞유래

오랜 옜날 자생하는 오동나무의 군락을 이룬 이 고장에 거문고를 만드는 상인이 많이 살았다는데서 오동나무오梧자와 거문고금琴자를 따서 오금리梧琴里라 불리어젔다는 설이 있다 
 

다시 방이육교의 오금4거리로 와 좌측으로 가 가락시장4거리를 지나 가락시장에 가다

 

가락시장4거리 버섯분수

 

가락시장입구 북문

 

시장안 서울청과

 

가락시장을 나와 탄천으로 가다

 

탄천교위에서 제7호탄천배수문

 

▲탄천[炭川] 

경기도 용인시·성남시, 서울특별시 강남구·송파구를 흘러 한강에 유입되는 강.

한강의 제1지류이며, 길이는 35㎞이다. 용인시 구성면 청덕리 높이 340m 지점 남서쪽 계곡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며, 성복천·동막천·분당천·운중천·야탑천·여수천·상적천·대원천·단대천·세곡천을 차례로 합류한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부근에서 양재천을 합하고 강남구와 송파구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강남구 청담동과 송파구 신천동 사이에서 한강으로 흘러든다. 조선시대에는 '검내'라고 불렸으며, 지금도 숯내·숫내·탄천이라고 불린다. 삼천갑자 동방삭을 잡으러 온 저승사자가 숯을 씻었다고 하여 탄천이라 부른다는 설화가 전한다.

 

탄천1교위에서 하류

 

삼성교위 종합운동장4거리에서 우측으로 가 종합운동장역2번출구옆의 아시아공원으로 가다

 

아시아공원의 자연과 빛

 

종합운동장역2번출구 아시아공원앞에서 종합운동장입구

 

▲서울종합운동장

부지면적 591,000㎡(170,000평)

공사기간 1977-1984.9.29.(8개년)

공사비 1031억원

수용인원 200,000명

시설명 올림픽주경기장 잠실체육관 잠실수영장 잠실학생체육관 잠실육상연습장 제2수영장 잠실야구장 
 

종합운동장역7번출구로 나와 종합운동장으로 가다

 

종합운동장의 올림픽주경기장

 

주경기장 바로앞

 

 주경기장 안

 

잠실야구장

 

종합운동장안 동물체험학습장의 인도공작 뒤는 염소

 

종합운동장안 조각 웅비

 

웅비 엄태정 작가

 

종합운동장을 나와 삼성교 종합운동장4거리에서 우측으로 가 봉은교3거리에서 지하도를 통과하여 탄천으로 내려가다

 

탄천 청담2교밑 인도교에서 한강 합류점

 

 한강에서 탄천

 

한강건너 뚝섬선착장

 

한강

 

선유도선착장

 

봉은교로 되돌아와 봉은교를 건너 코엑스4거리를 지나 코엑스로 갔다가 코엑스 맞은편의 봉은사로 가다

 

코엑스몰

 

코엑스앞의 분수

 

봉은사 약수

 

봉은사 대웅전

 

대웅전 안

  

★봉은사 [奉恩寺] 

서울 강남구 삼성동(三成洞) 수도산(修道山)에 있는 절.

794년(원성왕 10)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하여 견성사(見性寺)라고 하였다. 1498년(연산군 4)에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선릉(宣陵:成宗陵)을 위하여 중창하고 봉은사로 개칭하였으며, 1562년(명종 17) 현위치로 옮겼다. 중종 때는 이곳에서 승과시(僧科試)를 치르던 곳이며 서산(西山) ·사명(泗溟) 두 대사도 여기서 등과하였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 불탄 것을 숙종 때 중건하고 1825년(순조 25)에 다시 중수하였다.

 

장흥사동종

   

▲장흥사동종長興寺銅鐘 서울시유형문화재 제76호

대웅전안 우측

조선 태조1년(1392)에 주조되었다

명문에 의하면 천녕 상두산(경기도 여주)의 장흥사종으로 주조되었다고 하여 장흥사동종으로 불리는 범종으로 장흥사가 철거되면서 봉은사로 가져왔다고 한다


미륵불

 

판전

  

판전현판

 

▲판전 현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3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철종7년(1856)에 쓴 현판

일설에 의하면 추사는 이 글씨를 쓴 3일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판전안에는 대방광불화엄경(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4호) 금강경(金剛經) 유마경(維摩經)등 13종류 경전의 목판 3749장이 보관되어 있다

 

▲추사 김정희 [金正喜, 1786~1856] 

조선 후기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석학자.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청계산 옥류봉 서쪽의 주암동 돌무께의 과지초당(친부인 김노경이 마련한 별서)에서 부친의 묘를 지켜보며 만년을 지내다 생을 마감하다

 

봉은사를 나와 코엑스4거리에서 좌측으로 가 경기고앞의 청담전철역으로 가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