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갔던날 :2013.08.04(일)

 

휴가를 시작되기전 일요일날  보길도에 갔다가 둘러본 세연정 풍경입니다.

너무 더운 날씨라 낙서재, 동천석실등 관련있는 모든 유적지를 다 돌아 보지 못하고

세연정만 다녀왔습니다.

옛날 교과서에서 배웠던 "어부사시사"의 기억이 살아나는 여행이었답니다.

 

 

 

 사진으로 보는 세연정 풍경들 ▼

배롱나무꽃이 활짝 핀 세연정 풍경▲

 

 

 

 

세연정 정보 /국가지정문화재  (완도군청 홈)                       

                                     

                                    

사용자 이미지 보길도윤선도원림1.jpg

☞보길도 윤선도 원림

  • 지정번호 : 명승 제34호
  • 규 모 : 25,268평(83,532㎡)
  • 소재지 :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202 외
  • 소유자/보유자 : 완도군

윤선도 원림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하고 있다. 윤선도 선생이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제주로 향하던 중

이곳의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게 되었으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한시가 이곳에서 창작되었다.

부용동 지역 :
조선시대 국문학계의 거목인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이곳 부용동 격자봉 자락에 정자를 짓고서 유명한 시가와 저서를 집필하였다.

낙서재 :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 선생이 조그마한 세 채의 기와집을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에 각각 짓고서 주자학을 연구하는 등

주로 기거하던 곳이다.

동천석실 :
낙서재 바로 건너 산 중턱 절벽 바위 위에는 동천석실이라는 한 칸 집의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주변의 석문, 석천, 석폭,

석대도 장관이다.

세연정 :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있는 정자로, 정자의 중앙에 세연지, 동편에 호광루, 남쪽에 낙기란, 서편에는 동하각과 칠암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판석보 :
일명 굴뚝다리라고도 하며, 반반한 자연석으로 내부가 비도록 세워 만든 것으로, 한국 정원의 독특한 유적이다.

이것은 세연지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회수담으로 흘려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 고산 윤선도

고산 윤선도 하면 학창시절에 배웠던 어부사시사」를 생각하지만, 조선시대 중기, 후기의 시인·문신·작가·

정치인·음악가로 정철, 박인로, 송순과 함께 조선 시조시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유배지에서 지은 시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로 유명하다.

공재 윤두서의 증조부이며 다산 정약용의 5대 외조부이기도 하다.

 

고산은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나 8세 때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어 해남으로 내려가 살았다.

 당시 금서였던 "소학"을 보고 감명을 받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1616년(광해군 8) 성균관유생으로 이이첨, 박승종, 유희븐 등 당시 집권세력의 죄상을 격렬하게 규탄하는 "변진소"를

올려, 이로인해 이이첨 일파의 모함을 받아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견회요> 5수와 <우후요>1수 등 시조 6수를 지었다.

정치적으로 열세에 있던 남인 가문에 태어나서 집권세력인 서인 일파에 강력하게 맞서 왕권강화를 주장하다가

20여년의 유배생활과 19년의 은거생활을 하였다. 

고산 윤선도는 조선중기 대표적인 시조시인이자 조선조 시조문학을 마지막 장식한 대가로 인정 받고 있다.

 고산은 실사구시적인 학풍을 추구했던 만큼 아름다운 우리말로 시를 노래했다.

자연의 모습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노래한 '어부사시사'와 '오우가' 등은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선비의 생활과

서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선비 시조의 최고봉이자 산수 미학의 절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생애 대부분은 귀양과 은둔이었고 이러한 그의 불운한 삶이 불후의 명작들을 남기게 했다고 한다.

병자호란 이후 주로 완도, 보길도에 은거하며 자연에 원림을 짓고 「산중신곡」「어부사시」등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현종 12년 85세로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한다.

 

찾아오시는 길

 

 

 

 

사진으로 보는 세연정 풍경 ▼

수초 가득한 정원의 연못

 

연못의 특징은 자연스럽게 생긴 바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조성할 당시에도 가능하면 자연미를 훼손하지 않은 배려가 아닐까요?

 

 

혹약암이라고 합니다.

세연지에는 7개의 바위를 칠암이라고 한다네요.

그 중 하나인 이지요.

뛸듯 하면서 아직 뛰고 있지 않고 연못에 있다는 말로 힘차게 뛰어 갈 것 같은 황소의 모습을 닮은 바위라고 설명해 놓고 있네요.

(아래 설명문 참조▼)

 

 

혹약암 바위 안내문

 

 

 

정자와 배롱나무꽃

 

한창 만개한 배롱나무꽃이 있는 풍경

 

 

 

 

 

측면에서 본 멋진 노송과 정자

 

뒤편에는 회수담이라는 인공연못이 있습니다.

회수담뒤편에서 본 세연정

 

 

 

 

 

 

 

 

 

 

 

세연지의 한켠에 원형으로 된 인공물은 하늘을 상징 한다네요.

맞은편에는 축대로 네모난 모습의 땅을 상징한다는

 

 

 

 

동대

회수담의 서대와 함께 행사가 있을때 기생들이 춤을 추고 놀던 일종의 공연무대 

 

 

판석보 안내문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 넘쳐가도록 만들었다는 판석보다리

물이 넘칠때는 폭포, 물이 없을 떄는 다리의 역활을 했다는

일명 굴뚝다리라고도 한답니다.  

 

 

 

 

 

 

 

 

 

 

 

정면에서 본 세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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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울창한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