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카프 궁전의 여인 조각상, 보스포루스 해협 풍경-



 

튀르키예(터키) 8박9일 여덟째 날 & 여행 제 7일째: 이스탄불 복귀 <마지막 날>


11:03 (목) : 이스탄불(İstanbul)-피에로 로티(Pierre Loti) 언덕-톱카프 궁전(Topkapı Sarayı)

-아침에 찾았는데도 피에르 로티 언덕 풍경은 활기 있다-
  
피에르 로티(Pierre Loti) 언덕  :
 에윱 술탄 자미에서 도보 20분, 케이블카로 5분 거리의 골든 혼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언덕이다. 1800년대 후반에 주로 활동했던 프랑스 작가로, 이스탄불이나 중국, 일본 등을 두루 돌아다니며 이국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이 언덕은 피에르 로티가 자주 찾았다는 이유로 피에르 로티라고 불리게 되었고, 2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찻집이 있다. 이곳에서 골든 혼을 바라보면 그 전망이 정말 아름답다. 특히 석양이 질 때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에 오후에 방문하는 것이 좋음을 알고 있으나 우리는 일정상 아침시간에 찾았다.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들려다 볼 수 있는 톱카프 궁전-

톱카프 궁전(Topkapı Sarayı)  : 보스포루스 해협, 골든 혼, 마르마라 해가 만나는 곳에 있는 궁전으로, 1467년 메흐메트 2세 때 완공되었다. ‘톱카프’라는 말은 터키어로 ‘대포의 문’이라는 뜻인데, 당시에는 보스포루스 해협 쪽에 대포가 놓여 있어서 붙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 때에는 술탄들이 거주하였으며, 19세기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술탄이 이주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특히 톱카프 궁전에는 여러 궁정이 있는데, 고고학 박물관이 있는 제1정원은 귈하네 정원 안에 있고, 제2정원은 톱카프 궁전 입장료 내는 곳을 지나면 바로 위치해 있으며, 침엽수와 플라타너스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제3정원에는 시청각관과 도서관 등 각종 전시관이 있다.
-지하 궁전의 돌기둥, 도로를 달리는 전차- 

한국과 튀르키예(터키)는 왜? 형제국가인가?

세계가 우리나라를 코리아(고구려 또는 고려)’라고 하는 것처럼, 튀르키예(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투르크’라고 부른다고 한다. 중고등 학교 때 우리들은 역사를 배웠고, 삼국시대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突厥)나라를 간단하게라도 공부해 알고 있다.
​서기 220년에 수립된‘테오만 야브구’(Teoman Yabgu)왕국은 몽골과 함께 중국에선 흉노(匈奴)라 불리던 민족으로 6세기중엽~8세기중엽까지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우리한민족과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으로 고구려 전성기엔 글안, 여진, 숙신과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돌궐인이 고구려의 기층(基層)민중에 속했으며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668년) 돌궐은 고구려의 유민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우리민족과 특별히 긴밀해졌고, 고구려가 멸망하자, 서민 대부분은 초기엔 당(唐), 후엔 신라의 지배를 받으며 한반도에서 살아왔고, 상류층이나 귀족계급 가운데 일부는 당에 포로로 잡혀갔고 나머지 고구려 유민은 몽골, 글안, 돌궐 등의 타민족에 섞여 살다가 682년에 동돌궐이 울란바토르(현 몽고의 수도)에 돌궐 제2제국 수립에 20만 명이 넘는 많은 인원이 참여 돌궐2제국 인구의 절반이 넘었다니 고구려의 후예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돌궐과 고구려는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나라로 불렀다. 
-화려한 궁전에서 가족들과 함께한 풍경이 아름답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터키에 자리한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고 부르는 까닭은 고구려 국민이었고, 제2 돌궐제국 건국의 기층 민중으로 오랫동안 형제관계를 유지해왔던 전통에 근거한다.
6·25때 북한이 남침하자,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1만 4,936명 참전, 전사 721명, 부상 2,147명)를 파견해 우리를 도왔다.  파병이 늦어지자, 터키의 고등학생들이 '왜 형제나라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느냐' 데모를 벌였다고 한다. 6·25 참전과 올림픽 등에서 보여준 그들의 한국 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었고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에서 자국에도 본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양국 한국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경기는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감동하며, 한국과 터키의 굳건한 ‘형제애’를 확인했다. 우리의 경제성장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느낀 튀르키예에선,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와 호텔비도 받지 않았고, 경기 후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가 인상적이다.
-궁전에서 만난 돌 조각상들-

8박9일간의 튀르키예 여행을 갈무리하며 

시차에 완전히 적응해 컨디션이 회복됐다 했는데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날이라 이스탄불로 복귀해 고대도의 유물들을 돌아보며 사람은 사랑과 인생을 중요시하기에 서로가 공감이 필요함은 어떤 방식이던 사랑을 표현하는 근간이 되는 문화가 필수이기 때문이며 문화는 겉모습과 피부색이 달라도 닮은꼴 인간으로써 함께 공감해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마음속의 파동에 귀 기울이고, 혼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튀르키예의 역사와 유물들을 감상했는데 귀국하자 바쁜 일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던 현실 때문에 시간에 쫓겨 금년에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불투명해 걱정했는데 부족하나마 2023년이 저물기 전에 정리할 수 있음은 분명축복으로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날 첫 번째 행선지는 석양이 질 때가 가장 아름다운 곳임을 알고 있으나 우리는 일정상 아침에 피에르 로티 언덕을 찾았다 튀르키예에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돈 아끼지 않고 가능한 많은 곳의 선택 관광지도 빠트리지 않으려고 마음은 먹었으나 상대적이라 흡족하지는 않더라도 불만 없이 8박9일간의 여행 마지막 일정은 주요 고고학시리즈(유로관광지)인 톱카프 궁전까지 예정된 일정을 소화해내고 어둠이 짙게 깔려 레온사인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야경이 아름다운 시각 이스탄불시내에서 국제공항으로 이어진 도로의 교통체증은 대단했다 탑승수속을 끝냈으니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아이들입막음용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공항면세점을 찾았는데 면세점이 시장보다도 무려 250%나 비싼 가격이나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여행을 갈무리하려면 필요충분 조건인 것을............       -끝-.

-화려한 장식과 당시의 국력이 비례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3-12-24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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