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9일  여덟째날

  

일찍 일어나 창으로 밖을 보니 밀밭인지? 보리밭 인지 ?

끝없이 펼쳐져 있다.

먼저 내려와 호텔 정문 왼편으로  보리인지,  밀 인지, 보러 가니

호텔의 철망 담장 때문에 더 나갈수가 없어 확인이 안된다.

  

  

그 방향이 동쪽인지 해가 솟아 오르기에,

사진 몇컷 찍는다.

7시에 호텔을 출발 한다.

  

앙카라에서 이스탄불 로 가려면, 5시간은 가야하므로, 

오늘 일정도 일찌감치 시작 한다.

  

이제 부터는 고속도로로 간다.

30분쯤 갔는데, 김선우씨가  전화를 받더니,

  

"여러분!  

우리 운전 기사가 드디어!  사고를 쳤읍니다.

일본팀 가방을 가져 왔 답니다.

가지러 온다니, 좀 기다려야 겠읍니다.  미안합니다." 하면서 

  

"지난번에도, 다른팀이 제 가방을 가져 갔어요.

제 가방  때문에, 손님들을 기다리게 하니, 더~  미안 했는데, 

거기다, 와서 가져 가라고 해서 더 황당 했지요" 한다

  

호텔을 떠날 때 버스 앞에 가방들을 죽 -   갖다놓으면 운전기사가 짐칸에 올려 넣는데,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기 가방이 버스에 실리는 것을 꼭 확인 하는 것이 좋답니다.

  

  

           가방을 꺼내놓고 가지러 오기를 기다린다.

  

    터키의 국부 아타투르크

 

터키는 넓다.

면적이 남한의 여덟배이고 한반도의 세배반이나 된다.


 

이 광대한 나라를 짧은 시간에 비행기 없이 다니기에는 무리 라고 생각 한다. 

터키는 관광지나 유적지가 분산 되어 있어 그 먼 거리를 버스로 이동한다면

약간  지루 할 수도 있다.

(해외 여행을 하게되면, 버스의 이동이 많아서 하루 4~5시간은 기본 이다

그러므로, "화장실가는 것도  중요한 관광일정(?)"   이라고  어느 가이드가  말 했던가?

그런  점에서 아담사이즈 대한민국좋은 점의 하나다.

한나절 이면 못 갈 곳이 없다.

깊기는 얼마나 깊은가 ! )

 

그런데 이번 우리 여행은, 5일간 ,

터키의 진수 만 , 그것도 육로로 하는 것 이다.

  

당연히 버스를 많이 탄다.

파묵칼레 에서 가파도키아 가던 날은, 콘야 를 거쳐서 10시간 이상 탔다. 

  

가파도키아에서 앙카라도 4시간 이상을 갔다.

앙카라에서 이스탄불도 5시간은 간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수시로 비가 왔지만 버스로 이동중에 비가오고

우리가 내리면 날씨가 흐리거나 개어서 관광에 지장은 없었다.

  

                              우리가 가고 있는 여행로 이다

 

 그러나, 어찌!  여행이 유명한 관광지의 엄청난 경치나 유물 만을 보는 재미 뿐이겠는가 ! 


 

차창가에 비치는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풍경들 , 사람들...............


 


 

또 한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똑"소리 나는 우리의 김선우씨는

버스이동 중 반은, 바쁜 일정으로 피로한 우리를 위해 한 잠을 재워주고,

그리고 휴게실 (화장실) 다녀와  생생해 지면,


 

명쾌한 요점 정리 터키사 강의가 시작 된다.


 



               버스에는  비디오자리에 터키지도가 걸려있다.

  

특별 제작한  터키 지도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 중에서도 아타투르크 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에 깊이 남는다.


 

온 국민이 우러러 볼 존경하는 나라의 지도자가 없는 우리나라를

안타갑게 생각하며,

  

터키가이드 김선우씨에게 들은 풍월을 옮겨 볼까 한다.

  

터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공항의 이름이 아타투르크 공항 이다.

다음에 만나는 다리이름, 문예회관, 등등.......         

중심지 마다 여지없이 위엄있게 서있는  국부 무스타파 케말의 동상이 있다.

  

아타투르크 라는 이름은 터키어로 터키의 아버지 라는 뜻이다.

그는 1차세계대전 에서 독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터키가 패전하고

바람 앞의 등불이었던 터키를 구원한 군인이었으며

터키왕정을 종식 시킨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이었다.

  

그의 역사적인 입지와 그가 터키인에 있어서 가지는 의미는 정신적인 지주 그 자체이다.

  

터키의 지폐에는 모두 이사람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온갖 관공서, 분위기 있는 카페, 심지어는 나이트클럽 에서조차

이사람의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외국인에게 있어 이러한 모습들은 매우 생소해서, 이슬람 사람들도 우상숭배를 하나 ?

라는 오해를 불어일으 킬 정도의 존경을 받고 있다.

  

군인으로써의 그의 격정적인 삶.....

인생에 있어서의 단 한번의 결혼.... 그리고 이혼...

당시 최고의 강대국 연합이었던 연합군과의 처절한 전투......

이혼 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삶.......

  

(첫사랑에 실패하고 대통령이 될때까지 미혼이였던 그가,

40세에 신여성과 결혼 했지만,   2년 반 만에 이혼 당 한다. 

일 밖에 모르는사람이 아이조차도  못 낳게 했단다.

권력 이양으로 문제가 생길까 보아서......)

 

존경 하고 싶다!!!

  

그가 한 일을 대충 전해 보면

  

1. 독립전쟁으로 식민지가 되는 것을  방지!

  

2. 정치와 종교의 분리하는 자유 민주 공화국!

  

3.주민등록증에 종교란  결혼란을  표시!

   결과적으로, 99%이스람교 라고 했으나--   다른 이스람교국에 비해 훨씬 자유롭다.

   (종교를 표시해야 하므로, 조상들 대대로 하듯 이스람교 라고 별 뜻(?)없이 표시  해서,

   99%라는 숫자가 나왔다고 함)

 

   결혼란에 표시가 안 된 남녀는 같이 모텔에도 못들어 간다나! ㅋㅋㅋㅋ

  

   글쎄 이 조항은 왜 잘 한 건지 ?  잘 모르겠다.^^

  

4. 수도를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옮김!

  

    앙카라는 중부지방에 있는 밥그릇 형태의 천혜의 요새 이다.

    유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천도 했다.

  

5.  여성의 참정권으로 사회생활 유도!

  

    공공장소에서 차도르 폐지하고, 터번을 완전히 못쓰게함.

    그래서인지, 1994년 여성수상도 나왔다.

  

6 .  터키문자를 만들어 문맹 퇴치!

     고불꼬불한 아랍문자에서 알파벳을 사용해서 발음대로 읽는다.

     다만 x - ks, q - ka로 사용한다.  예를 들면 taxi - taksi 로 쓴다.

  

     그래서 우리나라 세종대왕에 비견 되기도 한다.

  

7. 등등...............

  

조국과 결혼 했던 그는 38년 12월 10일 9시5분에 56세  나이로 간경화로 숨진다.

그가 머물던 돌마바흐체궁  모든 시계는  영원히 9시 5분에 머물러 있다.

 

김선우씨 말에 의하면 해마다, 그 날자, 그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단다.

해마다 그시간이 되면 우리나라 현충일에 추모 사이렌이 울리듯,

전국에서 추모사이렌이 울린단다.

  

다만,  터키에 흡연 인구가 많은 것에 일조를 했는데,... 

멋지게 담배를 피는 아타투르크를 흠모 해서 이란다.

  

여자가 담배를 꺼내면 하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이렇궁 저렇궁 말들이 많았지만

아타투르크는 얼른 담배불을 붙여 드려라 였단다.

  

워낙 애연가 였던 그가 하루에 4갑씩 담배를 피웠는데,

그의 의사가 "하루에 담배를 얼마나 피시오" 하니

눈치는 빨라서 반으로 줄이라 할 테니

"8갑 피웁니다."

"그러면 반으로 줄이시오" 해서

죽는 날 까지 계속 4갑의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

  

재미 있는 터키에 관한 이야기에 취하다 보니 이스탄불이 가까운가 보다.

  

이스탄불 가는 길에 들린 호수 공원 이다.

이름은 잊었는데, 넓어서 바다 같다. 철망 사이로 바라만 보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천막 같은 집에 비해 조명이 야단스럽다. ^^

  

  

이스탄불에서 1시간정도 떨어져 있어서 휴일이면 이스탄불 시민들이 많이 들 나온다고 한다.

  

지붕 있는 그네에 앉아, 쉬었다 간다.

  

드디어!   이스탄불이 가까운가 보다?

집도, 사람도,차 들이 점점 많아지고...

  

어디서나 펄럭이는 터키 깃발을 본다.

  

    이스탄불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 가는 보스포러스대교를 지나서.....

신시가지에서 아타투르크교를 건너 드디어 구시가지에 도착 한다.

  

                     

                                          아래위 사진은 버스 차창으로 찍은 사진.

  

 

 

세계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한 도시, 세계에서 가장 환타스틱한 도시!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쳐 있는 이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글로벌도시!

  

  

 

       다리를 건느면서 블루 모스크 모습이 보인다


 

기원전 8세기경에 그리스인이 이 곳에 식민지를 개척한 후 비잔티움이라 했다.


 

4세기경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제국의 수도를

이 곳으로 옮기면서 콘스탄티노플 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후 정교 문명의 중심지로, 미개한 서유럽에 비해 찬란한 문화를 누리던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다.


 

기독교 세계의 심장부였던 이 도시가 1452년 오스만투르크의 이슬람 군대에게 함락 되었다. 

이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인도 항로 개척,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르네상스 등

근대의 막을 연 결정적인 사건들의 계기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이었다. 


 

그후 수백년간 유럽을 벌벌 떨게하였던 오스만투르크의 수도이었다.


 

이스탄불이 최고의고도 로서,


 

이천년 가까이 동로마제국과 오스만투르크라는 최대의 제국 수도이었던 이유는

천혜의 지리적 여건 때문인 듯 하다.


 

지중해와 흑해 사이의 상업과 군사의 전략 요충지.........

날씨까지 온화한 이 곳에,

구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여러 민족이 명멸하였고, 

숱한 문명들이 이 곳에서 피고 지었다.


 

이스탄불 만큼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니고 ,

그 역사의 흔적들이 이토록 아름답게 조화된 전설같은 도시는 흔치 않다고 한다

.

  

오리엔탈 특급열차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인 이스탄불역이다.

파리까지 간다.

아가사크리스티가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톱카프궁전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최초 왕궁이었다는 톱카프궁전 !


 

이곳이 400년간 세계를 떨게 하였던,

그 유명한 오스만투르크의 핵심이요 중심이 였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골든혼보스포러스, 말마라의 

3면 바다가 만나는 성터에 위치하고 있다.


 

단순한 궁전이라기 보다는 온갖 화려한 보물로 치장된

복합 구조물로 정원, 집, 도서관, 술탄의 후궁과 내시들이 거처하던 할렘까지 갖춘

400년간의 권력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21만평의 방대한 궁전의 내부를  둘러본다


 

 

3

 

 첫번째 정원을 지나서 복지의 문 으로 들어간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두번째 정원 오른쪽으로 길다란 꿀뚝이 있는 부엌이 있다.

  

궁전이 왕실로 사용될 당시는 1000명이 넘는 요리사와 조수들이

궁전 곳곳에 제 될 음식을 요리 하였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부엌의 일부는 그대로 보존 되었으나 일부는 도자기 전시실로 개조되었다.

  

12000여개의 도자기 가운데 2500개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

이스탄불에서 생산 되는 도자기와 유리제품도 이곳에 연대 순으로 진열되어 있다.

  

               

                     당시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들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세번째 정원 남쪽의 보석관

4개의 방에 보석과 의상 등을 모아 놓았다 .

  

오스만 제국 당시 이웃나라에서 온 진상품들을 이곳에 진열해 놓았다.

이스탄불은 오스만 왕조 시대 이후에는 단 한번도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아

수많은 보물들이 약탈 당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세계 최대의 에메랄드가 손잡이 부분에 장식돼있는 톱카프의 단검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86캐럿 다이아몬드.

49개의 작은 다이아몬드로 둘러싼 물방울 모양의 스푼 다이아몬드

6백kg에 달하는 술탄의 황금의자,

  

순금으로 만든 코끼리 뮤직박스,,, 등이 있는

  

보석관은 삼엄한 경비 아래서 전시되어 있다.

사진도 못 찍는다.

  

아래사진은 책에 나온 것을 찍은 것이다.

  

  

                   톱카프 단검                         86캐럿 다이아몬드


워낙 보석이 많다 보니 소장 보석의 일부만이 정기적으로 교체, 전시되고있는데
이 보석관에 있는 보석을 다 팔면
터키 국민 모두가 놀면서 몇 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스푼 다이아몬드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다.

어느 어부가 바닷가에서 주었는데 이게 뭔가?  하다가

시장에 가서 자기가 필요한 스푼 3개 하고 바꾸어 갔다는 데서

유래 된 것이라고 했다.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보석도 평범한 돌에 지나지 않거늘 ........

  

  

 보석관 옆방 으로 가면   바다가 보이는 곳이 있다.

  

  

  

뒤로 파랗게 펼쳐진 보스포러스 해협과 그해협을 따라

이국의 건물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스탄불은 위로는  흑해,

밑으로 지중해, 그사이로 흐르는 골든혼과 보스포러스가 있는 낭만적이 도시이다.

  

보석관에서 86케럿짜리 보석 구경하느라고 제일 늦게 나오니

  

신경자씨가 쬐그만(?)  꽃다발을 만들어서, 처에게 준다.

  

  

  

  

"결혼 36주년 축하해요" ^^

오늘이 6월 9일이네 !!!

1971년 6월 9일 우리 부부는 강릉에서 결혼 했다.

이번 여행중에 그날이 들어 있어서 또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그랜드바자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고 큰 시장,  

그랜드바자르 라는 터키의 재래시장을 둘러 보러 간다.

  

구 시가지 중앙에 있다.

구 시가지는 좁은 길에 세계각국의 관광객, 관광버스에, 온갖 차에... ......

매우 혼잡하다.....

버스가 되 돌아오는 것을 오래 기다려야 했다

  

여기도 프라하처럼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걸어 다니게 하면 어떨까 ?

  

1461년 정복왕 술탄 메흐멧이 섬유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을 유치하기 위해 이시장을 만들었다는 데,

취급 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품들이 있다.

  

  

  

  

                 화려한 문장과, 1461년이 보인다

  

다닥다닥 붙은 상점들과 북적이는 사람들, 떠들썩한 호객행위가

마치 남대문시장을 연상하게 했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정도의 우리말 인사는 기본이다.

  

  

구시가지 중심부에 자리잡은 이 엄청난 규모의 시장은

옛날 부터 동서양 문물이  만나는 무역의 중심지 역활을 했다.

  

그랜드 바자르는 출입하는 통로도 여러개이며,

수천개의 점포가 밀집되어 있어 잘못하면 길을 잃기 쉽다.

  

그래서 입구쪽 번호는 좌측 1번이나 우측 2번 좌측 두번째 점포가 3번 우측 두번째 점포가 4번

이런 식으로 좌측은 홀수 우측은 짝수이다.

가운데로 갈수록 점포번호가 높아진다.

가령 마로와 같은 길을 헤매다 가도, 들어왔을 때 보았던 번호를 기억하면 된다.

  

이곳 사람들은 물건값이 비싸다고, 잘이용하지 않는다.

물건 가격은 고무줄 같이 유동적이니, 상인이 부르는 데로사지말고

능력껏 깍아야 한단다.

  

어떤 사람은 부르는 가격의 1/3에 사기도 했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모양을 만들어 놓은게 아닌가 싶다 ! 

흥정 하다가 가는 시늉 하면 전에는 잡았는데 하도 속아 요즈음은 안 잡는 다네.

 

  

오랫만에 서울정에서 한식을 먹었다.

결혼기념으로 맥주 1병씩을 돌렸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버스 안에서 본 거리의 모습들 이다.

길이 좁으니 전차길로 버스와 일반 차량이 같이 다닌다.

  

  

  

  

  

  

밤중에 우리방에 모여, 여행의 마지막 밤을  남은소주로,

우리의  무사하게 보낸 결혼 36년의 세월을 .....

내일  하루 남은 여행일정도 무사하기 를.....  

  

!   하고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