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8일. 일곱째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열기구 투어 하러 간다.

 

전날 버스로 이동중에 열기구 안내 하며  " 원하는 사람! " 하자

처가 제일 먼저 손 들며, 나 보고도 같이 하잔다.

놀래라 겁도 없나!   올 때 부터 하리라 작정을 하고 온 모양이다

9명이 신청했다.

 

1인당 190달라, 

 카드는  200달라,  돈 쓸 일이 별로 없다며  환전을 적게 해 왔으니 

카드로 결제 할수 밖에, 그 나마 카드 가져오기 잘했구나.

400달라.  카드 수수료로 20달라를 더 낸 셈이다.

 

나는, 남겨 오더라도 넉넉히, 처는 재단을 잘 하여 되도록이면 알맞게,

이러니 돌발 상항에서는 부족 할 수 도 있다.

자기는 쇼핑을 안 할거라나, 어쨋거라나 하면서........

 

조막손 때문에 20 달라 더 쓴다고 한마디 하고.

처가 좋아하고 원하니 할수 밖에........

 

미니 버스가 우리를 데리러 왔는데

친정부모 모시고 온,치과의사 새댁이 모닝콜 소리도 못 듣고 늦는 바람에

20분 정도 늦었다. 

스페인사람 몇 명과 같이, 30분 정도 달려 열기구장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이 와 있고, 한편에서는 열기구에 바람 넣는 작업이 한참이다.

 

 

열기구 투어는, 해가 떠오르는  아침에 한다 -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곳도, 세계에서 그랜드캐년과  이곳, 몇군데 뿐이란다.

장비들이 대단하다-

불 붙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또 한켠에는  따뜻한 음료와 케익 과 과자등이 준비 되어 있다.

 

 

 

불은 가스를 점화 하여 공기를 덥혀 풍선(?)을 부풀린다.

오늘 18개(?)기구가 뜬다고 했던가 ?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나왔던  열기구--  그것 보다야 進 일보 했겠지 !

같이 따라온 터키 가아드가 열심히 타는 방법과 내릴때의 자세 를 열심히 설명해 준다.

 

 

 

바구니 한칸에 3명씩 4칸이 있고 가운데 열기구 기사가 탄다.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기사가 내려다 보이는 여러지역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하나보다!

(유감스럽게도 잘 알아 듣지 못하지만......)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며 가파도키아 지역을 돌아본다.

가스로 "확" 하며 불을 붙이면 기구가 올라 간다.

 

전날 가이드 말이 "불을 때서 춥지 않을 거예요"  하더니

머리에 후끈후끈 열기가 전해 온다.

이곳은 해발 1000m 이상 지역이고

거기다 고도를 1000 피트 이상 높였으니 추울 터인데 말이다.

 

 

 

이 지역은 화산 폭발후 흘러 내린 화산재가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 작용으로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버섯처럼 생긴특이한 바위들이 황량한 대지위에 끝없이 펼쳐저 있는가 하면,

암석을 파고 만든 주거지가 펼쳐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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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해가 떠오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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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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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방을 여행하던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가파도키아지역을 극찬 했다고 한다.

 

스필버그 감독은 스타워즈를 이곳에서 찍었다니 어느 우주의 한 혹성 같이

황량 하기도 하고 뾰족뾰족 한 것이  기기묘묘 하다.

 

 

 

버섯처럼 생긴특이한 바위들이 황량한 대지위에 끝없이 펼쳐저 있는가 하면,

암석을 파고 만든 주거지가 펼쳐저 있다.

 

그 주거지에는 박해 받던 기독교인과 성직자들이 살았다고 한다.

 

 

 

 

 

 아! 행복해 !!!        하는 표정이네. .........

 

날으는지도 1시간이 넘어 가고 있다.

이제는 내려야 한다.

내리는것이, 기술이 필요 한가 보다!

 

내리는 곳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러기 때문에 할 수있는 곳이 많지 않단다.

 

 

 

우리가 내릴 장소를 물색하며 가는 동안

아래에서는  트럭과 인부들이  우리를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

 

몇번의 시도끝에 드디어 쫓아온 트럭 적재함 위에 옆의 나무를 쓰치며

바구니를 살짝 내려놓는다.

나무의 이슬 머금은 물방울로 옷을 적신다.

 

바구니에 닿는 순간 충격을 줄이기위해 바구니를 꼭붙들고

무릎을 굽히고 있어야 한다.

출발 할때 터키가이드가 열심히 설명 하던 것이, 이해가 된다.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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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님 수고 하셨어요" 하며 악수 청한다.

 

 풍선의 바람을 빼서 줄이기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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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사가 샴페인을 터 트린다.  그것도 두병씩이나.....

기사와 처 뒤로 잘 생긴 우리 터키가이드가 보인다.(빨간 두건)

축하한다"  고    샴페인 한잔씩 따라 준다.

 

 

 

 

   증명서도 준다.

 

   200불 낼 만 하다

 

                   데린구유

 

베라 호텔로 돌아와,

오랫 만에 늦잠을 즐긴 다른 일행들과, 함께 아침을 먹는다.

 

 

 

이 호텔 음식은 최고 였다. 

주방장이 나와  일일이 손님에게 인사 하는 것 부터가 품격이 있었다.

 

가파도키아지역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여전히 발굴 되는

지하도시들 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카이막클르데린 구유 이다.

 

데린 구유란 깊은 우물 이란 뜻으로

1960년 닭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발견 하였다고 한다.

 

 

 

왜?  인위적인 지하 도시군이 만들어졌는지는,  풀지 못할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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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120m 까지 내려가는 대형 지하도시는 현재 8층까지 내려갈 수 있다.

 피난민들이 늘어날수록 더 큰 공간의 넓이가 필요하게 되자

 옆으로 혹은 지하로 계속 파 들어가 복잡한 미로를 형성하고 있다.

 

지하도시안에는 평상시에 밖에서 사료를 날라다가 저장해둘 뿐 아니라,

추수한 곡식들이 서늘한 이곳에 보관되고,

비상시 음료수를 위해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포도주를 놓아둔 흔적이 있다.

 

땅속 깊이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고

또한 이것을 지하공기를 맑게 해 주는 통풍 장치로 원용하였다.

 

 동굴 중간 중간에는 외적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둥근 맷돌 모양의 큰 석물도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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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명 정도 수용 가능한 이 지하도시는

주거지로 사용하던 방들, 부엌, 교회, 곡물저장소, 동물 사육장, 포도주 저장실, 성찬 및 세례식을 행한 장소, 신학교, 지하매장지 등

완전히 도시 기능을 갖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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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시 다른 지하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지하터널이 9km 뚫려져 있다.

 

이 지하도시에는 괴뢰메 계곡과는

달리 일체의 성화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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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구로  까마득한 하늘을 쳐다 보니 밝은 하늘이 

해나 달 같이도 보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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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만드는 곳도 보인다.

 

미로 같이 길이 복잡하여 가이드를  잘 따라 다녀야 한다.

아니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단다.

 

이 같은 지하도시가 이 지역에 36개 정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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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밖으로 나오니-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곳이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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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있다.

카파도키아지역을 소개하는 책 -한권 샀다.

 

  가파도키아 -괴레메

 

가파도키아 는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카파도키아는 하나의 지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터키 중앙 아나톨리아에 위치한 지역의 총괄적인 이름으로, 

괴레메, 카이세리, 네브쉐히르,  등이 있는 곳이다.

 

새벽에 열기구를 타고 내려다 본 곳을 버스를 타고 보러간다.

그 넓은 곳을 다 볼수는 없고,........

 

먼저 괴레메로 간다.

괴레메  마을은 자연과 인간이 가장 잘 조화를 이룬곳이다.

 

화산지형과 역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곳에서

사람이 여전히 살거나, 또는 그 암굴을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모두가 사진사가 되어 사진 찍기에 바쁘고

모델이 되어 사진 찍히기에 바쁘다.

 

나는 배탈이 여전 하여 먹는것 신경 쓰며 다니지만

이곳 아이스크림이 맛있다 하여, 사 먹었는데 맛은 좋았다.

 

 

 

 

 개가 어찌나 침을 흘리며 쳐다보는지 ?!

 이곳은 개를 묶어놓고 키우지 않아 어디나, 개판 이다.

 

 버스를 타고 버섯바위를 볼 수 있는 파샤바로 간다.

 

 

 

 

우선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올라 가 본다

올라 가면 내려다 볼 수 있고  밑에서는 못보는 넓은 시야가 확보 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버섯바위는 화산 폭발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높이가 40m나 되는 것도 있고,

꼭대기에 현무암 모자를 쓰고 있는데,

모자 밑 목부분은 침식작용으로 가늘어 졌다.

이로 인해 모자가 밑으로 떨어진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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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안에는 성화가 그려져 있는데,

많이 훼손 되었다.

 

 

 

버섯 모양도 가지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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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키아지역에서 앙카라로

 

앙카라 가는 길에 카페트 매장에 들린다.

화장실도 무료로 사용하고, 버스에서 내려 다리도 펴준다

(터키는 휴계실이 대개 유료 화장실이다

3~4인 사용에 1불 받는다, 그래서  뭉쳐서 들 간다.) 

 

우리가 흔히 보는 모직 카페트는 저급 한 것이고.

비단실로 1 입방cm에 500개,700개 .....   많이  엮어 넣을 수록  급수가 올라  간다.

 

 

한국에서도 잠깐  살았다는,  터키직원이 유창한 우리말로

자기 딴에는 웃기느라 애를 쓰며......

 

 

 

누에고치에서 실을 뽐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저급에서 고급까지, 다른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가며 좍  좍~~~       펼쳐보인다.

 

 

비싼 것은 2억 하는 것도 있단다.

시원한 차를 한 잔 얻어 마시며 구경 한번 잘 했다 ^^

 

땀을 뻘뻘 흘리며 직원들이 펼쳐 보이느라고 애를 썼지만 ,

아무도 안 샀다.

아무래도 이번 우리 일행들은 너무 세련 된것 같다.

 

가파도키아를 떠나, 4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 앙카라에 도착한다.

중앙 아나톨리아의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는

앙카라는 터키의 행정수도 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술탄제를 폐지하고 터키 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urk)가

전까지 터키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수도를 옮겼다.

 

시내에 있는 한국공원에 간다

 

 

 

마치 경주의 석가탑을 옮겨놓은 것 같은 추모탑이 보인다.

 

'한국참전토이기기념탑‘ 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는 탑 옆으로

수백명의 전사자 명단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묵념을 올렸다

 

전투병 5190명이 파병 됐는 데 

그중, 721명전사, 168명실종, 2111명이 부상했다.

아직도 참전용사중 100 여명이 살아 있단다.

 

1973년 한국에서 건국 50주년 기념으로 만들었다

 

공원은 아주 조그마 하며, 화장실도 없다.

볼 일 볼 사람은 건너편 주유소로 가란다.

 

웬만하면, 곧 도착할 호텔까지 참기로 한다.

하지만 퇴근시간이 되여, 차가 많아서 30분이나 걸린다

 

터키는 1차대전때, 독일에 지금 돈으로 5000억 진 빚 때문에

독일편에 섯다가

패전의 굴레를 쓰고 그 넓던 영토를 빼앗겨

주변국들이 분리 독립하여, 국토는 오그라 들고

국제 사회에 끼일 데가 없던 차에 한국 전쟁은 기회라 보고,

미국도 냉전 시대에 소련을 포위하는데 터키가 필요 하여, 

터키가 한국전에 참전 하였다지만

어찌되었던 우리로서는 고마운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