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킬링필드(killing field)란 1970년대 중반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학살을 의미하는 용어로 '죽음의 들'이란 뜻이라고 한다.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권 때의 악명높은 대학살로 생긴 집단 무덤을 말한다.

크메르루주의 대량학살은 왜곡된 애국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는데 크메르 루주(krmer rouge)'란  크메르는 '캄보디아 민족'를 뜻하며 루주는 캄보디아어로 '붉은'이라는 뜻이다. 합해서 '붉은 크메르'라는 캄보디아의 공산 무장단체의 이름인 것이다.  

1967년에 결성되어 월남전이 거의 끝나는 1975년에 이 단체는 캄보디아 정권을 장악해 
민주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1975~1979) 정부를 세우고 그에 반대하는 지식인들과 고위층 등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하면서부터 ‘킬링필드’란 신조어가 생겨났고, 결국 크메르루주는 학살의 대명사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1975년 4월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함에 따라 약화된 캄보디아의 친미 론놀정권을 몰아낸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 폴포트가 '농민천국'을 건설한다며 1979년 1월 베트남군이 프놈펜을 함락할 때까지 4년간 자국민을 대상으로 대량학살을 자행하였다. 당시 폴포트가 정권을 잡자 론놀정권의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은 환영하였다.

프랑스에 유학하여 정치학을 공부한 폴포트는 당시 캄보디아의 지식인들이 외국자본을 끌어 들이며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는 생각으로 정권을 잡은 뒤 새로운 '농민천국'을 구현한다며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이주 시키고, 화폐와 사유재산, 종교를 폐지했다. 그래서 프놈펜에 남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프놈펜은 진공상태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 론놀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정치인, 군인은 물론 국민을 개조한다는 명분아래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무려 900만 전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만명(50만명~170만명 사이라고도 함)을 살해하였다. 그 당시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뚜얼슬랭 박물관이 현재 프놈펜에 있으며 여행기 사진 중 왔트마이 사원의 해골도 사원을 건립할 당시 발견된 유골이라고 하니 실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확인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그리고 크메르 루주 정권은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에 의해 전복되었다.

캄보디아에서는 1970년대 그 학살과 더불어 미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20만~5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마구 죽어갔다. 그 당시 캄보디아 전역에 투하된 폭탄으로 인해 지금도 폭발물 사고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등으로부터 경제적인 봉쇄를 당해 질병이나 굶주림으로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며 게다가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캄보디아도 현재 고엽제로 인한 피해가 지독하게 남아있다.

한편, 2003년 6월 캄보디아 정부와 유엔은 과거 크메르 루주 정권에 의해 자행된 집단학살에 대한 재판을 하기로 합의하고 집단학살 관련자 처벌을 목표로 국제사회가 지원하는 특별재판소를 설치키로 하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