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여행기 02. 씨엠립의 앙코르 왕국 유적을 찾아서


 

여 행 일 :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날    씨 : 대체로 맑고 한때 소나기


 


                                                                    호텔 앞에 대기 중인 툭툭이


 


 

                                                                     앙코르 유적지로 이어진 도로


 

호텔내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여러 대의 툭툭이들이 대기하고 있다.

전에는 앙코르 유적지를 버스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매표소 입구까지만 허용되기 때문에 1인당 US$ 20 씩으로 대절한 툭툭이를 이용해야 한다.

도로 폭이 좁고 스콜로 인하여 옆에는 물이고인 구덩이들이 있어 조금은 불안했으나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거리풍경을 살펴볼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매표소


 

10여분을 달린 툭툭이가 08시 05분경 매표소에 도달했다.

입장료(1일권 US$ 20)는 여행비에 포함되었기에 안내도 등을 살펴보고 있는데 가이드가 불러 모으더니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매표소 옆에서 사진을 촬영하면 사진이 인쇄된 입장권이 나온다.

앙코르 유적지를 살펴보려면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이들은 한 달 이상을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코끼리를 타고 가는 관광객도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낮뿐이므로 오전에 앙코르 톰(Angkor Thom)과 타 프롬(Ta Prom)을 둘러보기로 했다.

다시 툭툭이에 올라타고 해자에 둘러싸인 앙코르 왓(Angkor Wat) 남쪽과 서쪽을 바라보며 돌아 앙코르 톰 남대문 앞에서 내렸다.

한 곳이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심에 가이드의 설명이 길게 느껴지고 짜증이 나려고도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후회가 된다.


 

앙코르왕조는 1177년 참족의 침략을 받아 왕도가 함락되고 그들의 지배를 받았다.

얼마 후 나타난 자야바르만 7세(재위 1181∼1201)는 참족을 격퇴시키고 단번에 전성기를 맞았으며 불교도로서 처음 왕위에 오른 그는 한층 굳건한 도성 재건에 착수했다.

성은 한 변이 3km인 정사각형을 하고 있으며 8m의 성벽과 너비 113m의 해자로 둘러싸였고 동서남북 네 개의 대문이 있는데 동대문을 사자(死者)의 문이라고도 하며 그 북쪽에 바깥세계와 연결되는 승리의 문이 있다.

지금 우리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남대문 앞이다.


 


                                                        남대문의 데바(좌측)와 아수라(우측)


 


                                                                           남대문의 4면 관음보살


 

남대문(南大門)

높이는 25m로, 3m의 관음보살의 얼굴이 동서남북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각각의 표정에는 희로애락이 나타나 있으며 빛이 비추는데 따라 표정이 바뀐다고 한다.

다리 좌측 난간의 선을 상징하는 27명의 데바(Deva)와 우측의 악을 상징하는 27명의 아수라(Asura) 들이 나가의 몸통을 끌어안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 문으로 들어서면 드디어 신들의 세계로, 곧장 북쪽으로 1.5km를 가면 바이욘이다.

작은 자동차가 들어가고 코끼리를 이용한 관광객도 들어가고 있다.

우리들은 바로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툭툭이에 다시 올랐다.

 


 


                                                                 툭툭이를 타고 가면서 본 바이욘


 

바이욘(Bayon)

남대문에서 바이욘까지 1.5km라고 했으니 사자의 문이나 승리의 문에서도 같은 거리일 것으로 여겨졌지만 해자는 물론 그 문들을 통과하지 않고 불과 수 십m 거리의 작은 광장에 도착했다.

유적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듯이 훼손된 모양이고 관광도로는 그 가운데로 나 있는 것 같다

 


 


                                                                            바이욘 동쪽 입구


 


 

                                                                      벽은 부조로 장식되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새로운 왕도 중심에 수미산을 상징하는 바이욘(Bayon) 사원을 지어 자신의 얼굴을 본 뜬 관음보살상을 조각했다.

중앙에 42m 높이의 본전이 솟아있고 사면체의 관음보살상이 49체, 다섯 성문에 한 체씩 모두 54체가 있었으며 곳곳에서 신비의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

전쟁을 겪기도 하고 또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대부분이 부서졌고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흔적도 있지만 머리 위에서 돌이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도 없지 안했다.


 


                                                                            동쪽에서 본 모습


 


                                                             진군하는 크메르 군 - 귀가 크다.


 


                                                                                  회랑 복도


 


                                                           전쟁터의 바다 속의 물고기와 군인 시체


 

1회랑을 좌측, 남쪽으로 돌아가면서 벽화를 설명하는 가이드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이웃나라 참파군과의 지상전투와 군부대 행렬, 수상전투가 새겨졌는데 물속에 빠진 군인 시체를 먹는 물고기도 보였다.

밥을 짓는 여인들, 시장풍경, 뱃놀이, 무술시범, 레슬링, 투견과 닭싸움에 열 올리고 있는 남자들을 비롯한 당시의 관습을 엿볼 수 있으며 크메르인은 귀를 크게 새겼고 중국인들은 상투를 틀고 턱수염을 길러 구분했다.

2회랑에는 힌두교 신화와 전설, 라이왕의 전설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지만 아는 것이 없으니 ‘장님 코끼리 다리 만져보는 격’이다.

 


 


                                                                남쪽 회랑 밖에서 본 중앙 탑


 


 

                                                              탑 밑에는 수많은 방들이 있었다.


 


                                                                                   탑 아래


 


                                                                          신비로운 미소


 

순전히 돌로 만들어진 계단을 타고 오르고 작은 방들이 있는 어둠침침한 복도도 지나며 어떤 곳에서는 미끄러운 이끼를 조심해야 했다.

중앙 탑 가까이 올라 관음보살의 신비한 모습에 빠져들었다.

아쉽게도 7세 왕이 죽은 뒤 힌두교 사원으로 개종되면서 불상을 제거한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오를 때와는 반대로 북쪽 계단을 타고 내렸다.

 


 


                                                                           북쪽에서 본 바이욘


 


 

                                                                                      바푸온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바푸온(Baphuon)은 밖에서 바라만 보았다.

바푸온은 11세기 중엽 앙코르 톰 이전에 지어진 힌두교 사원으로 시바 신에게 바쳐졌다.

샴의 왕이 크메르 정벌에 나섰을 때 크메르 왕비가 이 사원에 왕자를 숨겼다고 하여 숨긴 아이라는 뜻의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그저 마른침만 삼키며 바라봤다.


 

이름 모를 유적들을 스쳐 나오면 기념품과 먹거리를 팔고 있는 허름한 가게들이 있다.

바이욘을 나서면서부터 목걸이, 열쇠고리, 스카프, 책자 등을 들고 짓궂게 따라붙는 아이들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앙코르 사진첩 작은 것을 내밀며 “오 딸라. 오 딸라” 귀찮게 하더니 결국에는 “이 딸라. 좋아?” 웃음이 절로 나오고 필요할 것도 같아 한 권 샀더니 입이 벌어진다. 

두 사람 앞에 한 개의 코코넛을 배급받아(?) 물을 마시고 주인에게 건네주면 속살을 긁어먹으라고 반으로 쪼개 준다.

 


 


                                                                           피미아나까스 사원


 


 

                                                                       왕궁 터에 남아 있는 유적


 

지금은 빈터로 남아있는 왕궁(목조 건축물로 13세기 후반부터 샴군과의 전쟁으로 거의 소실되고 말았다) 터 숲 사이를 걸어 피미아나까스(Phimianakas)를 지난다.

이곳은 앙코르 톰이 건설되기 전인 11세기 초반 왕궁의 중심부에 세워진 힌두교 사원으로 천상의 궁전이라는 의미의 별칭을 가졌다.

 


 


                                                                               코끼리 테라스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하여 새로 조성된 왕궁은 2중 방어벽이 설치되었고 광장과 접한 동쪽에 열병식을 할 때 쓰인 테라스가 신설 되었다.

머리가 셋 달린 코끼리 신인 에라완이 조각돼 있어 코끼리 테라스라고 불린다.

군인들이 도열해 있었을 광장으로 이동해온 툭툭이가 기다리고 있다.

우기여서 염려했으나 지금까지 날씨가 크게 도와주고 있었는데 낮은 구름이 없는데 빗방울이 들리기 시작한다. 

 


 


                                       타 프롬으로 가는 길목의 화장실 - 화장실이 거의 없으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


 

다행히 다시 툭툭이로 이동하여 타 프롬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비가 그친다.

“팁은 안줘도 됩니다”

가이드의 말을 알아들은 기사가 쓴 웃음을 흘리더니 말없이 떠났다.

어제 왓 프놈 사원에서 아내가 두 손이 없는 구걸하던 아이에게 1달러를 쥐어주자 다른 사람들도 주변의 비슷한 아이들에게 돈을 주었었는데 프놈펜에서 씨엠립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가이드로부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타 프롬 입구


 


 

                                                               이 늪지대에 외나무다리가 있었다.


 

입구에서 관람권을 내보이고 숲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갑자기 아리랑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숲을 빠져나가니 대 여섯 사람이 둘러앉아 연주하고 있었는데 ‘지뢰 피해자’라고 한글로 쓴 팻말이 보인다.

관광객 겉모습만 보고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금방 알아채는 모양이다.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지만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하고 먼 곳을 바라보고 지나치고 말았다.

 


 


                                                                       보수하는 흔적이 보였다.


 


 

                                                 뽕나무 뿌리보다 지금껏 버티어 온 건축물이 놀라게 만들었다.


 

타 프롬(Ta Prom)

타 프롬이란 조상(祖上) 브라만(Brahman)이라는 뜻이다.

이 사원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프레아 칸(Preah Khan)을 지었던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불교사원이다.

동서 1km, 남북 0.6km의 주벽으로 둘러싸인 사원 안에는 승려가 5천명 압사라가 615명, 그 외에도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가옥은 목조였기에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다.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


 


 

                                                                  커다란 뱀이 휘감고 있는 것 같다.


 


                                                      할리우드의 영화 툼레이더 촬영무대였다고 한다.


 


                                                                       나무 밑동 크기와 아내

 

13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샴군의 침략과 내분 등으로 방치되었으며 자연에 의한 침식과 무성한 밀림 특히 용수(溶樹 : 열대아시아에 분포하는 뽕나무 과의 상록 교목. 가이드는 산뽕나무라고 했다)가 유적 전체를 뒤집어버릴 기세로 자라났다.

붕괴 위험으로 인하여 출입을 통제하는 곳도 있었고 보수하려는 모습도 더러 보였다.

하지만 대자연의 위력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다면...?


 


 

                                                                     그래도 버티고 있는 건축물

 

한 작은방.

높은 천장은 뻥 뚫렸는데 가이드가 북쪽 벽에 등을 대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자 마치 북을 두들기듯 퉁 퉁 소리가 울렸다.

신기한 것은 다른 세 방향 벽에서는 그냥 툭 툭 소리만 들렸다.

 


 


                                                                    점심식사를 했던 한국인 식당


 

습한 무더위도 아랑곳없이 바위 하나 조각품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욕망에 시간가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미리와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로 옮겨 타고 매표소를 나가 시내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