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_ 프롤로그

‘우리 나라 좋은 나라’ 이런 저런 일로 외국방문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입국할 때 마다 느끼는 한결 같은 소감입니다. 2012년 3월 13일부터 17일까지 13명의 연수단을 이끌고 새마을해외협력사업추진을 위해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왔습니다. 경기도새마을회는 지난 2008년도부터 4년간에 걸쳐 경기도의 지원금 118,054천원을 받아 야싸비마을을 우즈베키스탄의 새마을시범마을로 조성하여 왔습니다. 금번 추진한 협력사업은 경기도새마을회가 경기도로부터 지원받은 2010년도 사업비 2,000만원 및 2011년도 사업비 2,000만원 등 총 4,000만원으로 유코리치르칙군(郡) 야싸비 마을에 노인회관 겸 마을회관을 건립하여 기증하는 것이었습니다. 2008년도 사업으로 마을 진입로 아스팔트공사, 도로환경 및 승하차장 시설 개선 등 2개 사업 45,275천원을 지원하였으며, 2009년도 사업으로 공동묘지건물 개보수, 마을진입로 포장공사, 영구차 수리 등 3개 사업 32,779천원을 지원하였습니다.


02 _ 우즈베키스탄

대륙의 오아시스라 불리는 우즈베키스탄 공화국(o’zbekiston respublikasi)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합니다. 스탄은 땅(l)뜻합니다. 우즈벡은 15세기말 징기스칸의 후손이 건설한 유목국가의 이름으로 우즈는 중심을, 벡은 백부장을 뜻한다고 합니다. 수도 타슈켄트는 중앙아시아의 심장이라 불리며, 사막을 건너온 대상들이 여독을 풀고 동서양의 문물이 거래되던 실크로드의 오아시스라 불려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에 의해 침략을 받아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었고 소련이 탄생한 직후인 1920년에 완전히 합병되었습니다. 소련 지배 기간 동안 유목민과 무슬림들은 스탈린의 집단 농장 체제에 강력하게 반대하였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8월 31일 독립선언(1991년 9월 1일 독립기념일)을 하고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 하였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1991년 12월 26일 붕괴하였습니다. 이에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공상당 제1서기를 대통령으로 직선 선출(1991년 12월 29일) 하였으며, 두번의 개헌과 임기연장 국민투표(99.6 지지), 재선(91.9) 을 통해 장기집권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였으며, 국회 양원제를 도입 상하원을 구성하였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면적은 44만 7,400㎢(한국의 약 4.5배)이며, 12개의 주(viloyat)와 1개의 자치공화국(respublika), 1개의 특별시(shahar)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구는 2,760만 6007명(2009년 추정치)이며, 130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입니다. 현재 우즈벡민족의 이슬람운동및 민족운동으로 인해 러시아인들과 다른 소수 민족들은 입지에 대한 불안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고, 반면 옛 소련의 다른 나라에서 살던 우주벡인들이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오고 있어서, 소수 민족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89년 통계에서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35였으나, 2005년에는 3.7로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인구 구성에 특이한 점은 고려인 입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한 고려인이 인구의 1에 해당하는 22만명이 1990년대까지 거주하였으나, 상당수가 러시아로 이주하여 현재는 약 15만 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2005년에 전체 인구 중 우즈벡족(族)이 차지하는 비율은 80로 가장 많으며 그 밖에 타지크인(5), 러시아인(3.7), 카자흐족(3.6), 타타르족(0.61), 고려인(0.6) 입니다.


03 _ 인천공항

2012년 3월 13일(화) 오후3시에 인천공항 3층 12번 게이트 앞에 연수단원들이 집결하였습니다. 상호 인사를 갖고 연수개요를 설명을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해외연수를 할 경우 참석자들의 사전미팅을 미리 가졌습니다만 요즈음은 통상 출발직전 공항에서 간단하게 갖는 것이 통례화 된 것 같습니다. 80년대 초만하더라도 해외여행을 하려면 반공교육을 받고 그 이수증을 제출하여야 했으며 대부분 참석자 해외연수소양 숙박교육을 받아야 했으며, 여권발급도 몇 달 걸린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리고 발대식 및 해단식도 가졌었지요. 많이 변했습니다. 해외나들이가 일반화되었습니다. 인천공항에 대한 통계를 찾아보았습니다. 2001년 3월 개항한 인천공항은 세계공항서비스 평가 7년 연속 1위를 기록 중이며 누적여객이 3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2011년 한해 동안 하루 평균 96,061명이 인천공항을 이용하여 연간 3,506만명이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캐리어 등 짐을 소화물로 붙이고 출국 심사대를 빠져 나갔습니다. 면세점이 즐비한데 특히 화장품점이 왁자지껄합니다. 20-30가 싸다는 군요. 탑승구 앞으로 이동하여 탑승절차를 밟았습니다. 우리 비행기는 좌석이 300여석에 이르고 여승무원 11인, 이중 우즈베키스탄 여승무원 1인이 포함되어 있더군요. 5시 20분 이룩하기 위해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비행기 뒷좌석이 많이 남아 일행 몇 분은 좌석을 옮겨 앉아 널널하게 갔습니다. 간단한 주류음료 및 기내식이 제공됩니다. 인천공항에서 타슈켄트공항까지는 7시간여 소요됩니다. 우리 나라 표준시보다 4시간 늦습니다. 좌석 등받이에 설치된 모니터상으로 정상 비행 중에 나타난 비행정보화면입니다. 비행고도(altitude) 36000ft, 10972m, 대지(對地)속도(ground speed) 시속 763 마일(mph), 외부온도 섭씨 영하 66도 입니다. 전화기는 자동 해외로밍이 되며 간단히 조작을 하면 스마트폰에는 현지시간과 서울시간이 같이 화면에 표시됩니다. 주의할 점은 데이터로밍은 출국전 서비스센터에 문의하여 꼭 차단하시기 바랍니다. 자칫 하다 요금폭탄 얻어 맞습니다.


04 _ 타슈켄트공항

7시간 여 비행하는 동안 착륙 30분전의 예고 방송이 나올 때까지 좌석에 꼼짝하지 않은 채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보니 보통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착륙시각이 현지시간으로 저녁 9시가 조금 지났습니다. 외부 온도 섭씨 영상 3도라고 모니터 정보창이 가르키고 있습니다. 비가 추적거리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기후는 대체적으로 고온 건조한 사막성 기후입니다. 적어도 우리 연수단이 체류했던 3월 중순 동안은 대체적으로 한국과 비스름했습니다. 연중 300여일이 비가 안 온다는 데 우리 연수단 체류 3일중 이틀을 비가 추적거렸습니다. 여름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다가 미쳐 땅에 도달하기도 전에 말라버리는 마른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공항시설은 우리나라 지방공항시설에도 못 미치는 것 같더군요. 캐리어 등 짐 찾는 콘베어벨트가 조그마하여 짐 찾으려는 사람들이 서너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형상이다. 짐 찾고 10시 16분에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였습니다. 통상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공항 청사 울타리 문밖에는 출영객인지 손님호객하려는 것인지 구분이 안되게 사람들이 ‘택시, 택시’ 라고 손들고 외치면서 잔뜩 모여 있습니다. 자기 택시 이용하라는 소리 같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도 영업용 택시가 있지만 정부의 묵인하에 개인승용차로 택시영업을 하는 차가 더 많다고 합니다. 다만 타기 전에 어디까지 얼마라고 흥정을 한 후 탑승해야 바가지요금을 안 당한다고 합니다. 고려인 4세라는 여성 관광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네요. 어눌한 한국어 발음이지만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현지 교포 사업파트너는 안보였습니다. 그간 해외협력사업을 많이 해온 바 있는 이번 참석 회장단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의아해 했습니다. 2011년 몽골 해외협력사업 때는 부군수와 현지 관계자들이 공항으로 출영 나와 회장단을 영접한 바 있는데 비교가 되었습니다.


05 _ 팰리스 호텔(tashkent palace hotel)

타슈켄트의 개략적인 모습은 우리나라의 70, 80년대와 엇비슷하고, 건물들은 고층은 드물고 4-5층 정도로 그 외관은 양각이 돋보입니다. 도로는 왕복 6차선으로 넓게 뻥 뚫린 느낌을 갖게 하며 지하도는 투박하고 썰렁한 느낌입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대부분의 차가 대우차더군요. 그 중에서도 마티즈가 도로를 점령이라도 한 듯 여기를 봐도 마티즈 저기를 보아도 마티즈 입니다. 마티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조립하여 출고되고 있습니다. 현지인 말로는 구형의 부품들은 한국에서 들여온 부품으로 품질이 우수하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신형은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는데 그 품질이 구형에 못 미쳐서 중고자동차 매장에서 구형 중고차가 신형 새 차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10여분을 달려 이번 우즈베키스탄 체류 3일 동안 머무르게 될 타슈켄트 팰리스 호텔(tashkent palace hotel)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호텔은 브라질 체인점이었다가 지금은 바뀌었다고 합니다. 2인 1실 숙소를 배정받았습니다. 슬리퍼가 없어 롬 서비스에 문의하니 서투른 영어로 ‘파이브 달러(five dollars)’ 라고 하기에 그냥 포기하고 3일 간 슬리퍼 없이 침실을 사용했습니다. 취침 전 잠시 한 방에 다들 모여 간단히 도착인사를 나누고 내일 일정을 공지하였습니다. 다들 피곤하지만 이국적인 호기심으로 밤잠을 설칠 듯 합니다. 그리고 한국 출발 하루 전 우즈베키스탄 현지로부터 폭설 등 기상악화로 인해 공식일정을 2일차에서 4일차로 변경할 수 밖에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번 회관건립 기증사업은 몇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2009년도에 지원했던 사업비 2,000만원을 현지사정으로 착수를 못한 관계로 전액 회수 조치하였습니다. 2010년도 사업비 2,000만원을 합한 4,000만원으로 마을회관을 건립 기증하게 된 것입니다. 영상보도를 위해 tv기자단 2명을 대동시켰습니다.


06 _ 1 달러 팁

제2일차 새벽이 밝았습니다. 5시 30분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호텔 5층 창문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어스름한 6차선 도로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차량통행은 아주 뜸합니다. 한국시간은 오전 9시 30분. 호텔 1층 정원에는 실내수영장이 보입니다. 욕실의 샤워시설은 양호한 편입니다. 더운 물로 샤워를 하고 7시에 1층 호텔부속 서양 뷔폐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체류하는 3일간 아침식사를 이곳에서 하였습니다. 어제보다는 조금 편한 복장을 하고 침실을 나서며 침실을 청소하는 미화원들의 팁으로 두 사람이 침실을 이용하니 이 달러를 탁자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영어를 배우던 시절 영어선생님께서 팁에 대해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영어선생님께서 외국생활 하는 동안 한 번은 영화를 보러 갔는데 마침 방금 시작한 관계로 실내전등이 타 꺼져 장내가 어두컴컴한 상태라 두 손으로 더듬거리며 좌석을 찾으려 하자 안내원이 손전등을 켜고 좌석까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안내원은 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선채로 잠시 무언가를 기다리듯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하고 그 선생님은 눈을 스크린으로 돌려 영화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안내원이 다가와 귀에다 대고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야기를 한 후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팁을 안주자 몽니를 부린 것입니다. 즐거운 여행이나 유쾌한 시간 잡치지 않으려면 작은 팁, 일 달러 팁에 인색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07 _ 1 달러 철학

이야기가 나왔기에 한 말씀 더 드립니다. 한 신사가 낡은 승용차에서 내리다 일 달러짜리 동전을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이 동전은 줍기 어렵게 차 밑으로 굴러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동전을 줍기 위해 이 신사는 허리를 굽혀 차 밑에 손을 넣어 보았지만 손이 닿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호텔 직원이 차 밑으로 기어 들어가서 간신히 그 동전을 집어서 이 신사에게 건넸습니다. 이 신사는 그 직원에게 답례로 이백 달러를 주었습니다. 그 직원에게 한마디 말을 남깁니다. ‘내 돈이라면 일 달러를 떨어뜨려서도 안 됩니다. 내 돈이라면 일 달러라도 반드시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 돈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내 집 앞에 천 달러를 떨어뜨렸다 하더라도 나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아시아의 최고갑부인 홍콩의 창장(長江)그룹 리자청(李嘉誠)회장의 말입니다. 리회장은 갑부일 뿐만 아니라 많이 베푸는 자로서 세계를 놀라게 한 사람이였습니다. 자기에 대해서는 일 달러를 버리지 않는 그런 인색한 사람처럼 보이나 남을 위해서는 아주 후하게, 미래를 위해서는 거침없이 많은 재산을 내놓은 그런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08 _ 아무르 티무르(amir temur)

9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타슈켄트 내 문화유적지 탐방에 나셨습니다. 추적되던 빗줄기가 이내 우산을 바쳐 들어야 할 정도로 굵어졌습니다. 첫 번째 찾은 유적지는 타슈켄트 티브 타워(the tv tower of tashkent) 였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문이 아직 안 열려 오후에 관람하기로 하고 발길을 지진기념비 공원으로 돌렸습니다. 비를 맞으며 전체 기념사진을 촬영. 이곳은 1966년 4월 26일 새벽 타슈켄트에서 발생한 대지진의 진원지라고 합니다. 기념비는 자연재앙으로부터 아이들과 여자들을 지켜냈다는 의미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정사각형 돌 뭉치에 시계를 새겨 넣었는데 시계바늘이 5시 23분경으로 새겨져 있는바 아마 지진 발생시간인 것 같습니다. 우즈베키스탄 공식문서상에는 사망자 8명, 부상자 1만명, 이재민 35만명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이 다민족 국가라고 했는데 지진발생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자원 봉사하러 왔던 많은 민족 국가 사람들이 봉사활동을 마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눌러 앉아 버린 탓도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을 하네요. 비가 추적거리는 가운데 아무르 티무르 박물관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차창 밖 타머란 광장(tamerlan square)에는 말을 탄 아무르 티무르 동상이 있는데 의외로 평범한 크기였습니다. 사방에서 동상 전체 모습이 잘 보이도록 주위의 아름드리 나무를 다 베어 버렸답니다. 가뜩이나 숲과 나무가 귀한 나라에서 말입니다. 가로수 마다 보통 사람 허리 높이까지 흰 페인트 칠을 해 놓았는데 벌레들이 오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어떤 이는 벌레들이 미끄러지라고 그랬다고 농담하네요. 아무르 티무르(1336-1405)는 몽골계 혼혈 유목민 출신으로 징기스칸의 유업을 이어받아 유라시아에 걸쳐 티무르제국(1369-1508)을 건설하였으며 군사적 정복뿐만 아니라 문화창달에도 기여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르 티무르는 다민족 국가로 복잡한 역사 때문에 민족적 정체성이 약한 나라를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이라고 합니다. 티무르는 푸른색을 좋아하여 사마르칸트를 푸른색의 도시로 건설을 하게 됩니다. 사실 체류하는 동안 인조물 들이 대개 푸른색 풍이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가이드 설명으로는 티무르는 군사적 정복시 수많은 적군포로들을 의도적으로 인정사정 보지 않고 처형함으로써 권력자의 위엄을 과시하고 절대 복종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우즈베키스탄 화폐 단위는 숨(sum)인데요 미화 1 달러(usd)에 1850 숨(sum)정도 입니다. 최고액 지폐가 1,000 숨짜리 인데요 이 지폐에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 그림이 있습니다. 상품 구매시 특급호텔 등을 제외하고는 미화 달러를 안받기 때문에 숨화(貨)로 환전을 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관광가이드는 가방에 숨화(貨) 지폐뭉치를 잔뜩 담고 다니면서 관광객들에게 환전해주더군요. 이 박물관은 티무르 탄생 660주년을 기념하여 유네스코 지원으로 1996년 9월 개관을 하였습니다. 1층에는 7세기 칼리프 오스만 자이트의 개인비서에 의해 쓰여진 코란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소 보안이 허술해 보입니다. 2층에는 13-14세기의 동전, 15세기 히바의 조각된 나무기둥, 19세기 부하라 통치자의 금관복, 갑옷, 울루그벡 천문대 모형, 비비하늠 모스크의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중앙홀 천장 중앙 동근 돔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샹드리제등(燈)이 매달려 있습니다. 1층 기념품 매점에서 3,500숨화(貨)를 주고 지도 한 점을 구입했습니다.


09 _ 한중아시아교류진흥회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일행은 압둘카심세이흐공원으로 이동을 하고 사무처장, 사업과장, tv기자팀은 16일 행사진행과 관련 미팅을 위해 중간에서 내려 현지 사업파트너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참고로 압둘카심세이흐공원은 정재영, 유준상, 수애가 출연하는 영화 ‘나의결혼원정기’ 촬영장소인데 영화가 재미있어 tv로 본 후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다가 두세 번 본 적이 있는 영화입니다. 어린 시절 중국영화 ‘스잔나’를 보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몸살을 앓았던 기억이 있는데 바로 이 ‘나의결혼원정기’는 애잔한 옛 기억을 더듬게 했던 영화입니다. 현지 파트너 사무실은 주택가 골목길을 돌고 돌아 위치해 있어 자주 찾지 않는 사람은 사무실 찾는데 꽤나 헷갈릴 것 같았습니다. 이 예측은 그 다음날 제대로 실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경기도새마을회가 마을회관을 건립기증을 함에 있어 예산사정으로 인해 내부 집기류 등에 전혀 여의치가 못했는데 유수한 현지 진출 한국기업으로부터 의자, 탁자 간단한 마이크, 스피커 장비를 지원받았다고 파트너가 설명을 해줍니다. 파트너께서 현지 사정으로 인해 2010년 사업비를 반납하게 된 데 대해 사과를 하였습니다. 아직은 정치경제체제가 우리와 다른 관계로 회관부지 확보나 회관 명의 관계, 기타 사유 등으로 인해 사업비 미집행 및 반납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모처럼 경기도새마을회에서 회관 기증식을 위해 오셨으니 300-400명 정도의 주민을 불러 마을 큰 잔치를 벌려야 도리인데 예산이 없어 의식행사만 단출하게 치루게 됨에 대해 파트너는 거듭 양해를 구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진출하는 한국의 많은 기업이나 사회단체와 파트너쉽을 갖고 현지 고려인의 생활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 및 경제 체제가 다른 가운데 그 동안 많은 한우즈 협력사업을 추진해 오는 과정에서 중간 파트너역할을 함에 있어 예기치 않은 많은 애로와 난관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번 우리 경기도새마을회와의 협력사업을 함에 있어서도 현지인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실토를 하면서 이번 회관 건설업자하고는 정말 깨끗하게 거래했다고 몇 번이나 강조를 하더이다. 이 번 사업비를 집행함에 있어 경기도새마을회가 직접 건설업자에게 몇 차례에 걸쳐 송금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파트너를 통해서든 아니면 업자와의 직접 거래 든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건설업자는 러시아 모스크바 출장 중이라 이번 체류기간 동안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회관건물 감리 및 준공검사를 제대로 했으리라 그냥 믿는 수 밖에 없습니다. 파트너와 16일에 있을 회관 기증식 의식행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회관은 고려인협회에 기증을 하고 그 곳으로부터 인수증을 받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이 곳 사무실로 파견 나온 지 두 달이 채 아직 안된 여직원이 사회를 맡고 현지 고려인 4세가 통역을 맡는 것으로 의견 합일을 하였습니다. tv보도팀은 취재관련 협의를 잘 마쳤습니다. 한국 출발 직전 일방적인 행사일정 변경 등으로 인해 속이 상했는데 의외로 가능한 여건 속에서 나름대로 준비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파트너를 오늘 점심식사에 초대를 했습니다. 기념사진을 한방 찍은 후 대로변으로 나와 압둘카심세이흐공원 관람을 마친 일행과 다시 합류하여 점심 식사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식당 이름이 명가(名家) 입니다. 도심 번화가인 오보지 거리(ovozi street)에 위치한 그랜드 프라자 호텔내에 있는 한국 식당입니다. 50도가 넘는 보드카를 반주로 맛있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중간에 사업 파트너가 식탁에 합류하였습니다. 고려인 손녀와 젊은 우즈벡 아씨가 식사 시중을 들어 일행 한 분이 각각에게 몇 달러 팁을 건넸습니다. 기분 좋은 점심 자리였습니다. 식당 계산대 벽면에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지 재외투표’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전문(全文)은 이렇습니다. <기간 및 시간은 3월 28일부터 4월 2일 08시부터 17시까지(주말에도 투표가능). 장소는 타슈켄트 한국교육원(1층 교육실 100호). 지참물 신분증(한국 또는 우즈벡 정부 발행)으로 성명, 사진, 생년월일 드이 포함되어 본인임을 알 수 있는 신분증> 선거열풍이 해외 교포들에게 까지 번지고 있는 현장입니다. 현재의 아수라장 같은 정치판을 타파하고 정치인이 존경 받는 그런 세상이 정착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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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_ 세종 한글 학교(sejong hangul school)

파트너가 tv취재팀에게 내일 잡힌 세종학당 취재를 하루 앞당겨 소개한 관계로 일행 전부가 오후에 세종학당을 견학하기로 즉석 결정을 하였습니다. 세종학당은 주택가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교무실로 안내 받아 세종학당에 대해 개략적인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세종 한글학교라 칭하다 지금은 세종학당인 이곳은 한국에서 이주해 온 40대 후반 한국인 교장이 처음 한국어 어학원을 운영하면서 발전되었는데 고려인 4-5세대 후손뿐만 아니라 우즈벡인 등도 등록하고 한국어 배우기에 열심이었습니다. 30대 전후의 여교사 7-8명이 합동으로 인사를 건네는데 전부 한국말을 사용하네요. 전부 미인 일색입니다. 1991년도에 건물을 지었고 1992년부터 운영을 하여 처음에는 30명으로 시작하여 한 때 한국어 인기를 타고 욕심을 부려 500명까지 운영을 하였는데, 지금은 질적 교육을 표방하며 250-300명 정도로 제한을 하고 있다 합니다. 국립대학은 물론 지방의 대부분의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려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대한민국에 유학가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인회사에 취업을 하면 자기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강한 믿음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브리핑을 마친 후 아직 강의가 시작될 시간이 아니어서 강의실 등 시설을 여기 저기 둘러 보았습니다. 20-30명 동시 수용할 정도의 강의실이 5-6개 있고 자그마한 화단을 포함한 열 평 남짓한 마당이 있습니다. 산뜻한 2층 건물이 손님들을 반기는데 2011년도 경기도에서 건립해준 2층짜리 건물 벽면에는 동판에 김문수 도지사가 직접 방문하여 기증했다는 친필서명 문구를 담아 부착해 놓았습니다. 2층에는 20여석의 열람석과 1000권 정도의 장서가 비치 되어 있습니다. 열람실 삼사 분의 일 크기의 옆방에는 최신형 컴퓨터 10여대로 컴퓨터 교육장을 꾸며 놓았습니다. 벽면에는 김문수 지사 방문사진, 어학원생들과 최불암 배우와 찍은 사진들이 여러 장 게시 되어 있습니다. 3시부터 강의가 있어 학생들이 등원하여 등급에 따라 강의실로 들어가 강의시작을 기다립니다. 한 중급반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 서니 20여명의 선남선녀들이 일제히 기립해서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하며 굴신(屈身) 경례를 합니다.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강의를 맡은 선생님이 아직 입장하기 전 자기들끼리 조용히 있는 가운데 낯선 이방인이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깍듯이 인사를 하니 뭐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교장선생님이 예의범절교육도 철저히 시키고 있음을 실감하였습니다. 강의시작전이라서 내친 김에 몇몇 강의실을 들여다 보고 사진도 찍고 간단한 방문소감인사로 삼분 스피치도 건넸습니다. 한국어 필사 공책도 들쳐 보며 아무쪼록 한국어 수강을 통해 세바시가 되시기 바란다는 격려의 말을 던졌습니다. 세바시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의 약칭입니다. tv취재팀은 강의시간을 마친 후 10대들의 한류 및 케이팝에 대한 관심도 취재를 위해 학생집을 직접 방문취재하기로 하였습니다.


11 _ 타슈켄트 티브 타워(the tv tower of tashkent) 및 무스따낄릭 광장(mustakillik square)

아침에 못 본 타슈켄트 티브 타워에 도착하였습니다. 타워 관람객은 우리 일행뿐인 것 같습니다. 입장시 검색대에서 혁대까지 검사를 한 후 들여 보냅니다. 375미터의 높이인데 3대의 엘리베이터가 97미터 상공의 전망대까지 관람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전망대는 1시간에 1회전 한다 네요. 밑으로 아쿠아공원(aquapark)이 조망됩니다. 탸슈켄트 도심을 가로지르는 안크호르 강(ankh canal) 줄기가 굴곡을 지어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10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거의 없는 타슈켄트에서는 높게 느껴지는 건축물이기도 합니다만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라고 시티 맵(city map)이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다시 무스따낄릭 광장(mustakillik square)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과거 레닌 광장으로 불리었으며, 독립 이후 현재 명칭으로 개칭을 하였다고 합니다. 광장 앞에는 1991개의 물줄기를 뿜어내는 대형분수가 장관이랍니다. 앞서 말했듯 이 나라는 1991년도에 독립을 하였습니다. 1999년 전물기념비가 조성되고 기념비 중앙 어머니 상 좌우에는 ‘당신은 항상 우리들의 가슴속에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조각되어 있고 통로 좌우편 회랑(回廊)에는 전사자들의 이름이 금속 책자에 출신 주 (viloyat)별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2차 대전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150만명이 참전, 42만명 전사, 64만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곳 전몰기념비는 내외국의 주요인사 방문시 헌화 행사 장소이기도 하답니다. 전물기념비를 지나 안쪽 광장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소녀 두 명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지나 가는 우리 일행을 향해 반가운 미소를 던지기에 인사 말을 건네자 한국말로 반갑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사진을 찍고 명함을 건네면서 명함전화로 이메일을 알려주면 사진을 보내주겠노라 약속을 하였습니다. 시내 도로 폭 너비로 펼쳐진 널따란 광장을 걸어서 독립기념비 앞에 섰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행복한 어머니 상(happy mother monument)이 기념비 앞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곳을 매우 신성시 한답니다. 군복을 입은 젊은이 및 소저(小姐), 노부부가 함께 있기에 관심을 표했더니 아들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함께 이곳에 들였다고 가족 소개를 합니다. 그들은 우즈벡어로, 우리는 한국말로 했는데도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 듣겠더군요. 외국인과의 대화를 주저할 필요가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주위를 둘러 보니 이들 가족처럼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오늘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장소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차이나 타운 건너편에 있는 한식당이네요. 식당 이름이 해들이(hae dri)입니다. 50대 중반 정도의 여주인이 한국인입니다. 경기도 양평댁이라네요. 가이드 안내를 받아 세종학당과 현지 마을 취재를 마친 tv취재팀도 식당으로 합류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여독을 풀 겸 한국관광객 전용 노래방으로 가서 1인당 1-2개 곡씩 열창을 한 후 숙소로 돌아와 오늘의 공식 일정을 마감하고 각자 자유시간을 갖도록 했습니다. 내일 아침 식사 7시. 호텔 출발 9시. 저녁 외출시 나홀로 행동하지 말고 2인 이상 복수로 다니고 호텔 내에서나 호텔 인근에서 시간 보내도록 공지를 하였습니다.


12 _ 티엔산맥(mountains of western tien-shan)

제3일차 새벽이 밝았습니다. 호텔 창문 밖을 내다 보니 비는 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제 아침과 마찬가지로 7시에 1층 호텔부속 서양 뷔폐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9시에 호텔 앞에 대기중인 이스타냐 차량 2대에 분승을 하였습니다. 모처럼 타슈켄트 하늘에 햇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선그라스를 지참케 하였습니다. 오늘은 티엔산맥(mountains of western tien-shan)의 산자락 침간산(chimgan mountains)을 견학할 계획입니다. 침간산은 타슈켄트에서 90킬로미터 떨어졌으며 여름은 피서휴양지로 겨울은 스키나 스노보드 휴양지로 유명하답니다. 침간산 가는 길에 내일 회관 기증식에 사용할 한국에서 가져간 현수막 등 의식용품 및 마을주민에게 줄 기념 타월을 파트너사무실에 넘기기 위해 차를 사무실 근처 골목으로 진입을 하였는데 어제 우려했던 대로 찾지를 못해 헤매다 결국은 가이드가 핸드폰으로 현재 위치를 한참을 설명을 한 후에야 사무실 직원이 나와 용품들을 인수 하였습니다.이스타냐 2대가 앞뒤 나란히 침간산을 향해 달립니다. 도로를 달리는 동안 제복 경찰들이 교통 위반을 한 차들을 도로변에 세우고 운전자에게 스티커를 배부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이 되었습니다. 귀국을 하면서 뒤 늦게 아쉬움을 느꼈습니다만 어차피 하루 일정이라면 침간산보다는 그 유명한 사마르칸드(samark)를 다녀올 것을 그랬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기도 했지만 여행사에서 짠 일정을 세밀히 살피지 못하고 그대로 수용한데 대해 아쉬움과 함께 반성을 합니다. 앞으로는 일정을 정함에 있어 컨셉이 다른 2-3개 일정 안을 제출 받아 검토 확정짓는 노력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침간산 가는 도중 도로변 노점상들이 현지에서 생산된 무공해 자연산 아몬드와 야생차류를 팔고 있습니다. 침긴산 산골 아낙네들이 아몬드를 서비스로 이방인 입에다 넣어주면서 사가라고 합니다. 미화 5달라 주고 b5크기의 떡판 아몬드를 삽습니다.


13 _ 한국 자동차

침간산 정상을 오르는 도로는 온통 눈으로 덮여 중간 중간 승용차들이 오르지 못하고 체인들을 감고 있습니다. 눈길 도로 위에 퍼질러 앉아 있는 다른 차와는 달리 대우마크의 누비라 한대가 우리 차가 다가 갈 때까지 앞서서 참으로 잘도 달립니다. 이 상황을 보고 얼마 전에 어느 한 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사 내용입니다. < 이명박 대통령이 국빈 방문한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세계적인 프리미엄 자동차 메이커인 메르세데스 벤츠가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지난 7일 현지사간 오전 9시. 터키에서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친 이 대통령은 다음 방문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로 떠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터키 정부가 이 대통령에게 내어준 차는 벤츠의 최고급 세단 승용차였다. 하지만 앙카라에 때아닌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고 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눈으로 덮였다. 이 대통령을 태운 벤츠 차량은 후륜구동인 탓에 눈길에서 제 속도를 내지 못해 시속 20킬로미터 이하로 `엉금엉금` 기었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의 차량은 도저히 눈길을 이기지 못해 다른 차량으로 교체하는 해프닝도 빚었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이 대통령 일행의 차량을 앞질러 달려가는 차량이 한 대 있었다. 다름 아닌 현대차 `액센트`. 국내에서 `베르나`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차량이었다. 대통령을 태운 벤츠를 앞질러가는 현대의 승용차를 보고 이 대통령은 "현대차가 빠르긴 빠르구먼"이라고 말했다고 한 청와대 참모가 전했다. > 미안하지만 앞차를 오이코시(追い越し)하였습니다.


14 _ 침간산 스키장

드디어 해발 3309미터의 침간산 스키 리프트 앞에서 내렸습니다. 시계가 13시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호텔출발 후 4시간이 소요된 것입니다. 우리 일행 뒤차는 20-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중간에 체인을 다느라고 늦었다고 합니다. 헬기 스키장에서 헬기가 요란한 플로펠라 굉음소리를 내며 정상 꼭대기로 스키어들을 나르고 있습니다. 잠시 지켜보니 정상에서 이동을 잠시 멈춘 헬기에서 스키어들이 뛰어 내리는데 아쉽게도 반대편 사면 쪽으로 사라집니다. 그 이후로도 우리가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헬기는 두 번 더 정상을 왕복 하네요. 리프트를 타고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우리 일행을 한국인으로 알아 보았는지 리프트 종사자들이 도착하자마자 손을 잡아주며 빨리 빨리 하고 외칩니다. 거참 거시기 하네요. 우리와 함께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오른 독일 등 유럽에서 온 젊은 스키어 및 스노보드어들은 정상에 도착하자 마자 지체 없이 아직 자국이 나지 않은 새하얀 사면길을 내려 닫습니다. 우리 나라 평창 스키장의 고급코스보다 더 난이 한 코스 같아 보였습니다. 아프니깐 청춘이다 했듯이 세계 어디를 가나 젊음이 좋긴 합니다. 현지인 사진사들에게 우리 일행 전체의 기념 사진을 찍게 했습니다. 현장에서 사진을 출력하여 a4크기 사진에 1인 1달라 주었습니다. 리프트를 내려와 흰말 타고 한 컷 찍었습니다. 말 타는 값 1달러 출력 사진 값 1달러를 지불하였습니다. 리프트 왕복 1인 이용료는 6000숨화(貨)이고 10인 이상 단체 이용시 4000숨(미화 2달러 정도)입니다. 우리 나라 보다 매우 싼 것 같습니다. 조금 밑으로 이동하면 초급용(flat easy) 스키장이 있는데 우리 차량이 지나칠 때 두 사람이 타고 있더군요. 소시(少時)적 스키 배울 때 많고 많은 사람들에 체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곳에서 겨울 한 철을 보내면 전문 스키어가 될 것 같은 호기(豪氣)가 듭니다. 체력이 허(許)하면 해외 골프 여행도 좋지만 해외 스키 여행을 이곳 침간산으로 와서 진을 한번 빼볼까도 생각해 봅니다.


15 _ 차르박 호수(charavak lake)

침간산을 관통하는 내리막 길은 눈이 덜 쌓였습니다. 점심 식사 장소인 차르박 호수변 식당까지 40분을 달렸습니다. 차르박 호수는 인기 있는 여름 휴양지이자 타슈켄트의 식수원이며 여름에는 윈드셔핑 및 바나나보트 족들이 간혹 나타난다고 합니다. 차르박 호수변에는 대통령별장이 있고 이 식당은 대통령 영애가 운영을 한다네요. 호수는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식당 창문으로 실내수영장이 보이는데 그 곳도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식으로 양고기 요리를 먹었습니다. 옆 좌석에는 유럽에서 온 듯한 단체 여행객들이 음료수로 채운 잔으로 건배제의를 하며 식사 중입니다. 우리는 보드카로 채운 잔으로 건배제의를 하며 식사를 마쳤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 역사문화에 흠뻑 젖어보고 음식도 그 나라 음식을 이것 저것 경험해보면 좋을 듯 한데 참가자들의 의견은 반드시 그렇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이 한국으로 여행을 와서 자기 나라 음식인 치즈나 덜 익은 스테이크를 안 먹고 김치에 된장찌개, 불고기 백반을 먹는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은근히 친근감을 느낍니다. 우리도 우즈베키스탄에 왔으니 체류하는 동안 김치다 고추장이다 깻잎이다 잠시 잊고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음식인 쁠로프(중앙아시아식 볶음밥) 뚤습(양의 혀로 만든 수프) 하늠(만두 맛 나는 피자형태 음식) 등 우즈벡 음식을 먹는다면 그들이 우리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새마을해외연수부터 이런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전기밥통에다 우리나라 쌀까지 싸 들고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재고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이 날 저녁 잠자리 들기 전 뱃속이 편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침간산 오르기 전 노점에서 시식을 한 야생 아몬드 및 차르박 호수 식당 점심식사 양고기 현지식, 그리고 저녁식사였던 양고기 현지 음식 들이 뱃속에 들어오자 한국 음식에 익숙한 위장들이 일제히 보이코트라도 하는 듯 했습니다.


16 _ 소련 노동영웅 김병화

늦은 점심을 마친 후 차를 달려 김병화(1905-1974) 농장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김병화 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해줄 60-70세 들어 보이는 고려인 2세 여인을 마을 어귀에서 픽업했습니다. 아들이 내일 한국에 간다고 하네요. 박물관 앞뜰 김병화 동상 앞에 서서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김병화 농장은 1937년 고려인이 강제이주 당시 정착하였던 지역의 하나로 당시엔 갈대밭이었으며, 김병화는 1940년부터 1974년까지 이 농장 대표를 역임하였으며 우즈벡 고려인 중 유일하게 두 차례나 1급 노동영웅훈장을 수여 받았다고 합니다. 이 농장에는 김병화 박물관과 공원이 있는 바, 김병화 박물관은 1976년 설립되어, 2005년 김병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단장 하였다고 합니다. 이 박물관에는 1937년 강제 이주 당시 한인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김병화 농장의 발전 과정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서명하였습니다. <경기도새마을會 위대한 대한민국의 민족의 혼을 느끼고 갑니다. 20120315 > 저녁 식사장소로 이동하여 양고기를 곁들인 현지식을 먹었습니다. 밤길을 달려 숙소에 도착하여 내일의 일정을 다시 상기시키고 각자 침실로 돌아가 오늘의 공식 일정을 마감했습니다. 우리 일행을 안내 했던 가이드(bella lee)가 내일은 다른 팀을 안내하고 우리는 여행사 사장이 직접 가이드 한답니다. 고려인 4세 40대 여인인 벨라 리 가이드가 알려준 자기 아들과 어느 한가한 토요일 오후 거실 쇼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나눈 대화 한 토막입니다.

아들 : 엄마 나는 누구야?
엄마 : 누군 누구야 엄마 아들이지.
아들 : 아니 나는 누구냐구?
엄마 : ?
아들 : 내 친구들은 밖에서는 러시아말로 이야기하고 집에서는 우즈벡말을 하는데,
왜 우리 집에서는 고려말(한국말)로 이야기 안 하고 러시아말로 해
엄마 : ?
아들 : 우리 고려인 맞아?
엄마 : (거시기!) ?


17 _ 야싸비 마을

제3일차 타슈켄트의 아침이 밝아 옵니다. 오늘은 이번 연수의 본 행사 날입니다. 또한 오늘 늦은 밤 비행기로 귀국을 합니다. 그런데 비가 추적거리고 있네요. 어제 아침과 마찬가지로 7시에 1층 호텔부속 서양 뷔폐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3일 동안 아침 식사 때마다 뜨거운 물을 데워 한국에서 가지고 간 보온 통에 담아준 젊은이에게 1달라를 건네니 고맙다고 목례를 합니다. 지금 생각하니 몇 달라 더 줄 걸 그랬습니다. 각자 캐리어에 짐을 챙겨 호텔 체크 아웃 한 후 9시 호텔을 나섰습니다. 오늘 하루는 여행사 사장이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2005년에 현지에 정착하여 활동중이라는데 여러 가지 경험담과 애로사항을 설명해줍니다. 첫날부터 사장이 직접 가이드했더라면 더 많은 정보를 익힐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듭니다. 빗줄기를 헤치고 1시간 여 정도를 달려 타슈켄트 외각에 있는 유코르치르칙 군 야싸비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비가 멎질 않고 있습니다. 첫 눈에 보아도 신축 건물이 아담하게 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앉아 있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회관 내부에서 기증식 행사를 가져야 될 것 같아 밖에 걸어 놓은 현수막을 회관 내부로 옮겨 걸었다. 단상을 정리하고 기념품과 선물 꾸러미를 단상에다 진열을 하였습니다. 행사시간을 11시로 정하였기에 시간이 좀 여유로워서 신축 회관 주변과 내부를 꼼꼼히 살펴 보았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어 다행히 회관의 방수 상태를 확인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비가 새는 곳은 없습니다. 간판을 아직 부착하지 않고 문 앞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제 사무실 미팅시 간판 사양을 확정했는데 간판에다 경기도새마을회를 비롯해 관련 단체 및 협찬기관 등의 명칭을 함께 표기하다 보니 납품을 늦게 받아 부착을 못한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회관 앞에는 마을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신축 회관에는 급수시설이나 화장실 시설이 안되어 있어 어린이집 시설을 사용하였습니다. 조금 아쉽습니다. 이번에 기부 받은 나무 긴의자와 1인용 의자가 50-60석 가량 정돈되었습니다. 간이 마이크 및 스피커 시설을 점검을 하고 tv기자단도 스탠바이 완료. 고려인 4세인 야싸비 마을 최 게오르기 노인회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 30-40여명과 새마을조끼를 착용한 우리 일행 15여명이 의자에 착석을 하였습니다. 당초 참석이 어렵다던 유코리치르칙 군수가 참석하기 위해 이 곳으로 오고 있다고 하여 잠시 대기하였습니다. ngo단체 장도 참석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 내빈들이 도착하기 전 tv인터뷰는 먼저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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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_ 새마을회관 준공 및 기증식

내빈 도착이 되어 의식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사회는 한중앙아시아교류진흥회 직원이 통역은 고려인 4세 현지한국어교사가 맡았습니다. 내빈 소개를 하였습니다. 먼저 한국 참석자 다음은 우즈베키스탄 참석자 순으로 소개를 하였습니다. 국민의례는 생략하였습니다. 경과보고, 새마을회관 기증서 및 새마을회관 인수증 교환, <새마을회관 기증서 дарственная общества новой деревни 경기도와 경기도 새마을회는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통한 우즈베키스탄 타시켄트주 유코리치르치크군 야사비마을 주민들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시온고 새마을회관을 건립 기증 합니다. ассоциация корейских культурных центров узбекистана, провинция кенгидо и совет новой деревни провинции кенгидо передает общество новой деревни поселка имени ахмада яссавий для дальнейшего содействия благосостоянию жителей поселка имени ахмада яссавий юкоричирчикского района, ташкентской области. 2012. 3. 14 대한민국경기도새마을회장 이도형 14 марта 2012 года председатель совета новой деревни провинции кенгидо республики корея и донг хенг>, <새마을회관 인수증 semail qurilshi e’loni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시 유코리치르칙군 야싸비 마을 주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건립된 새마을회관을 정이 인수하였음. o’zbekistan respublikasi toshkent viloyati yuqi chirchiq tumani a. yassaviy posyo’lkasida istiqomat qiluvchilarning yanada farovon yashashlari uchun qurilgan semailni rasman qabul qilinshi. 2012. 3.6 우즈베키스탄 고려문화 협회장 o’zbekistan kea madaniyati bosh uyushmasi 대한민국경기도새마을회 귀중 kea respublikkasi provinsiyasi semail bosh tashkilloti> 새마을회장 인사말씀, 고려문화 협회장 인사말씀, 유코리치르칙 군수 인사말씀, 우즈벡측 ngo대표 축사말씀, 새마을회장에 대한 감사장 수여, 마을주민들에 대한 기념품 전달, 야싸비마을회장 등 다섯 분의 주요인사들에게 선물 전달, 새마을운동40년 역사책을 마을회장에게 전달하고 주요인사 기념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회관 현관 앞으로 이동하여 테이프 케팅식을 가졌습니다. 12시를 조금 지나 모든 행사를 마쳤습니다. 간판을 부착하고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아직도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가운데 기증식에 참석했던 내빈들 및 마을 주민들이 각자 돌아 갔습니다.


19 _ 새마을 시범사업현장

우리도 버스에 탑승하여 마을 입구에 자리한 2008-2009년도 사업 현장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비가 내리기에 차중에서 우리가 지원한 진입도로 및 승하차장 시설을 둘러 보면서 마을 어귀에 위치한 공동묘지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비 내리는 대낮에 공동묘지를 둘러 보았습니다. 주민간 합의에 따라 공동묘지 묘역을 고려인 묘역과 우즈벡인 묘역으로 구분을 하였다고 합니다. 경기도새마을회에서 고려인 묘역과 우즈벡인 묘역에 각각 지어준 장례식장을 둘러 보았습니다. 계속 보수관리를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공동묘지 도로변 배수로 공사 현장도 둘러 보았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공동묘지 답사에 맞추어 을씨년스럽게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산도 충분히 준비가 안된 상태라 차에서 다 내리지 않고 일부만 내려서 공동묘지를 이곳 저곳 둘러 보았습니다. 야싸비마을 행사 및 현장 답사를 마치고 점심식사장소인 명가식당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순두부찌게, 삼겹살로 잘 먹었습니다.


20 _ 쿠켈다쉬 사원(kukeldash madrassah)과 초르슈 재래시장(chsu bazaar) 및 줌 백화점(jum department)

오후 일정은 쿠켈다쉬 사원(16-19cc)과 전통 재래시장 및 백화점을 견학하였습니다. 이슬람사원을 보면 대부분 굴뚝 같은 높은 전망대건물이 있는데 살인, 강간 등 못된 범죄를 저질은 사람을 자루 속에 처넣어서 밑으로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사원 안쪽으로 들어서니 옛날 수도사들이 묶었음직한 작은 방들은 기념품 점 일색입니다. 같은 기념품을 이 방에서도 팔고 저 방에서도 팔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관광 명소의 기념품 매장들도 천편일율적으로 전국 어디를 가나 한결 같이 똑 같은 물건을 팔고 있듯이 이 곳도 역시 그러하네요. 비가 아직도 추적거립니다. 사원을 떠나 우리 일행은 재래시장(bazaar)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타슈켄트에는 약 16개의 재래시장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40분 정도 쇼핑자유시간을 주었습니다. 과일매장, 건과류매장, 향식료 매장을 둘러 보았습니다. 아이 주먹만한 사과를 몇 개 사서 나누어 먹으면서 아이쇼핑을 하였습니다. 길거리 자판상에게 10달러 주고 우즈벡 및 러시아 음악cd를 2개 구입을 했습니다. 귀국해서 들어보니 자동차에서는 재생이 안되고 컴퓨터 본체에서만 재생이 되는데 사이키풍의 음조로 경쾌하고 빠릅니다. 줌 백화점을 둘러보았습니다. 소련연방시절 대단히 고급 백화점으로 당 고위직이나 이용하는 곳 이였다고 가이드는 소개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들린 시각이 오후 4-5시 경인데 손님이 없이 너무 한산했습니다.


21 _ 뮤직댄스 레스토랑

재래시장 및 백화점 관람을 마친고 인근에 있는 우리 호텔 숙소 커피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 식사장소로 이동을 하여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마지막 현지식을 먹었습니다.시내 레스토랑인데 식사를 하면서 뮤직댄스를 관람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인어 같은 차림의 댄서들이 발리 댄스풍의 춤을 추며 우리 식탁으로 와서 온몸을 흔들어 대서 1달러 팀을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다민족 국가라서 많은 나라의 민속 춤이 저녁 마다 식당에서 이렇게 공연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다고 합니다. 무대를 안 갖춘 식당이 없다네요



22 _ 집으로

출국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식사를 마치자 마자 식당을 나서 타슈켄트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출국수속이 까다롭네요. 입출국시의 소지하고 있는 화폐의 변동상황을 기재하여 제출을 해야 합니다. 영어로 50(fifty)을 15(fifteen)으로 잘못 기재했더니 다시 작성하라고 하네요. 50이라고 숫자(figure)로도 fifty라고 문자(character)로도 쓰라고 하네요. 혁대와 신발 검사를 마치고 검색대를 통과하여 출국 게이트 앞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현지시간 밤 10시 30분, 한국시간 17일 새벽 2시 30분에 타슈켄트 공항을 출발하여 인천국제공항에는 아침 8시 45분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짐을 찾고 아무 탈없이 건강한 가운데 입국장을 빠져나와 로비에 잠시 모여 서로 격려 덕담을 나눈 후 작별을 고하고 각자 즐거운 나의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집을 향하며 느낍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23 _ 에필로그

해발 8,481미터의 세계5위 고봉 마칼루(makalu)를 초등한 프랑스 원정대의 대장 장프랑코(jean franco)는 귀국해서 질문 공세를 퍼붓는 기자들 앞에서 ‘완벽한 계획대로 등반이 이루어져 아무런 할말이 없다’고 해 한껏 기대하며 운집해 있던 기자들을 실망시켰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업을 수립하고 추진함에 있어 ‘완벽한 계획 차질 없는 진행’을 해야 되나 대부분 시행과정에서 에러를 범합니다. 그런데 그 에러는 추후에도 되풀이 됩니다. 마치 그 에러도 계획의 일부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에서 배웁니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삶을 반복한다(산티야나)고. 결과를 접하면서 과연 이 것이 최선이었는지 자문해봅니다. 계획한 바의 결과대로 발현되도록 개선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연체의 산만한 기행문을 여기까지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알토란 같은 도민들의 혈세로 집행한 사업이기에 이에 보답 코자 장문으로 기행 소회를 옮겼음을 해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