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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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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여행기 : 로마


답사지 : 이태리 로마 (Roma, Rome)

 

주요 답사 Point :
  -
콜로세움 (Colosseum, Colosseo)
  -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h of Constantine, Arco di Constantino)
  - 포로 로마노,
 포룸 로마눔 (Foro Romano, Forum Romanum)
  - 카라칼라욕장(Terme di Caracalla)
  -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Santa Maria in Cosmedin)
  -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à)
  - 치르코 마시모, 대전차경기장(Circo Massimo, Circus Maximus)
  - 스페인광장(Piazza di Spagna)
  - 트레비분수(Fontana di Trevi)
  - 판테온(Pantheon)
  - 나보나광장(Piazza Navona)
  -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 카타콤(Catacombs)  

 


로마 시내 개념도

(지도 위를 누르면 확대)

 

로마의 휴일 명장면 외부로 링크합니다)

     

(소리가 크면 스피커 볼륨을 조절하세요)

 


답사 메모 및 사진

 

좀 지난 이태리 로마 여행기입니다.

본래 개인적인 소감은 별로 안쓰고 사진 위주로 정리하지만,  
가장 많이 찾는 해외 여행지이고, 눈으로 볼 것이 워낙 많은 로마 여행은 특히 그렇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서 
아마 이 곳을 다녀오신 분들은 저와 함께 당시의 여행를 잠시 회상해보시고
다음에 가볼 계획이 있는 분들은 예습자료로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는 일반 디카로 찍은 사진이라 화질이 별로입니다.
아래의 유적지 설명은 네이버 백과사전, Wikipedia 사전 등 일반인에게 공개된 자료를 참조하여 요약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안들어간 사진이 없는 곳은 하는 수 없이 증명사진을 좀 올렸는데 거슬리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콜로세움 (Colosseum, Colosseo)

 

로마의 콜로세움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네로의 거대한 동상(colossus)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하지만,
정식 명칭은 ‘폴라비우스 원형극장’이다.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레스)의 정원에 있던 인공 호수를 메운 자리에 세워졌다.
공사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72년에 착공되어 8년 동안의 기적적인 역사를 거쳐 완성된다.

물의 외관에는 1층은 도리스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 기둥이 아치를 끼고 들어서 있고,
내부에는 약 60,000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계단식 좌석이 방사상으로 설치되어 있다.

콜로세움은 로마가 4세기경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사용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지진과 무관심 속에 일부 무너지기기도 했다. 
  

 콜로세움의 위용

콜로세움은 높이 48m, 둘레 500m 등 경기장 내부의 길이 87m와 폭 55m라는
로마시대 당시에 건립된 건축물 가운데 최대의 건축물이었다.
콘크리트가 없었던 시절에 돌로 이토록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콜로세움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과연 내가 보아도 2000년 전에 건축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완벽하고 견고한 건축물이다.
그리고
6만명을 수용할수 있다고하니 현재 잠실주경기장의 수용인원과 비슷하다.
대단하지 않은가?
 

콜로세움 외벽의 아치

골로세움 외벽에는 1층은 도리스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 기둥이 아치를 만들고 있다.
외벽의 일부는 중세에 큰 건물과 교회를 짓기 위한 채석장이 되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콜로세움 내부의 관람석

 

콜로세움은 로마 시민의 오락시설로 여기에서 글라디아토르(검투사)의 시합, 맹수 연기 등이 시행되었다.
글라디아토르의 싸움은 많은 영화에서 묘사되었듯이 잔혹하고 피가 난자한 싸움으로 유명하다.
또 맹수와 사람의 싸움, 바닥에 물을 채우고 작은 배로 벌이는 모의 해전 등 다양하고 처참한 싸움들이 이루어졌다.

 

콜로세움 내부 전체모습 (wikipedia 자료)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h of Constantine, Arco di Constantino)

 

312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서로마 통일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건조하여 315년 봉헌하였다.
높이 21 m, 너비 25.7 m, 안길이 7.4 m로,
본체는 백대리석, 아치 등의 일부에는 색채석을 사용하였다.
정면 기둥 위에 8개의 조상(彫像)이나 벽면 부조 등에는
전(前) 시대의 것을 다른 건물에서 옮겨 그대로 사용하였다.

콘스탄티노플에도 비슷한 개선문이 있는데 여기에는 '선량한 양치기의 상(像)'이 놓여 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콘스탄티누스가 312년 로마에 진군할 때,
대낮에 십자가와 "이것으로 이겨라"라는 환상을 전군과 함께 보고
막센티우스군을 티베르 강 근처에서 격파했는데,
황제의 그때 싸움 장면이 이 문의 부조에 그려져 있다.

 


포로 로마노, 포룸 로마눔 (Foro Romano, Forum Romanum)


포룸은 고대 로마 도시의 공공광장을 말하는데 . 카피돌리노언덕 가까이의 이 포룸 로마눔이
수도 로마에 개설된 최초의 포룸이며,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기원전 1세기 후반 줄리어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와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건설하기로 계획한 이후
4세기까지 개조와 증축이 계속되었다.


로마 건국의 전설적인 영웅 로물루스(Romulus)의 무덤과 감옥, 원로원,
그리고 여러 신전이 그 안이나 주변에 펼쳐져 있고,
원로원 의사당과 신전 등 공공기구와 함께 일상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부터는 그대로 방치하다가 토사 아래에 묻혀 버렸다.
포로 로마노 발굴작업은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재의 유적들은 대부분 제정 시대 이후의 것이다..

 

콜로세움에서 본 포로 로마노 방향
포룸 로마눔(포로 로마노)은 베네치아 광장과 콜로세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 로마의 중심부의 유적지이다.

 

포로 로마노 유적 
왼쪽에 보이는 거대한 기둥은 가장 먼저 발굴된 새턴 신전의 유적... 

이 외에도 로마 건국의 전설적인 영웅 로물루스(Romulus)의 무덤과
감옥, 원로원, 그리고 여러 신전이 그 안이나 주변에 펼쳐져 있고,
공공기관과 함께 일상에 필요한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카라칼라 욕장(Terme di Caracalla)

 

로마시 첼리오 구릉의 남쪽에 있다.
수많은 목욕탕 중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것으로 216년에 개장하였는데, 내장공사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주건축물은 너비 220m, 길이 114m로서 열기욕장 ·온탕 ·냉탕 외에,
각종 집회장 ·오락실 ·도서관 등을 갖추었고 1000명을 수용하였다.
바닥의 모자이크 등이 일부 남아 있을 뿐이지만, 당시는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벽면을 장식하였고,
곳곳에 조상(彫像)과 분천(噴泉)이 있어 지극히 호화로웠다고 한다.

 

카라칼라 욕장 유적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Santa Maria in Cosmedin)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이 있는 교회이다.
진실의 입은 BC 4세기에 만들어졌으며 하수구 뚜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판에 해신 트리톤의 얼굴을 새긴 커다란 원반 형태이며
거짓말쟁이가 트리톤의 입에 손을 넣으면 트리톤의 입이 다물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이 교회는 6세기에 고대 로마의 시장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현재 볼 수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루는
12세기경에 만든 것이다.

 

진실의 입 광장( Piazza della Bocca della Verità)

  

진실의 입

로마의 휴일에도 나온 명소.

손을 넣어보려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어 잠시 기다리다가 눈으로만 보고 포기...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

종루는 12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로마네스크 양식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 내부 

 


치르코 마시모, 대전차경기장(Circo Massimo, Circus Maximus)

 

아벤티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 있었던 로마 최대의 전차경기장이자 대규모 집단 오락시설이다.
"치르코 마시모" 또는"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라틴어로 '대형 경기장(또는 광장)'이라는 뜻이다.
본래 로마의 에트루리아 왕들이 경기와 오락을 위해 건설하였으며 목재로만 지었다.

 

치르코 마시모, 대전차경기장 모습

 

BC 50년경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약 2만 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증축했는데

당시 크기는 길이 621m, 너비 150m로 넓고 당시 로마 주민의 1/4 이상이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더욱 확장되어 약 27만 명을 수용할 정도까지 커졌다. 549년에 마지막 전차경기가 벌어졌다.

 

거대한 규모의 경기장

 기원 전에 건설되었다고 하니 입이 다물어진다.

 

덕에서 내려다 본 모습

 

경기장은 U자형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세 면에 좌석이 있고
경기장 한가운데에서 전차경기뿐 아니라 축제, 공연 등이 열렸다.
현재는 이전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경기장 자리에 조성된 공원에서 콘서트나 대형 집회 같은 행사가 열린다.

팔라티노 언덕이나 아벤티노 언덕에 올라가면 치르코 마시모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  

잔디밭 아래를 파면 과거 경기장 형태의 고대 유적이 있을 것이나

보존을 위해 발굴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세페 마치니 (Giuseppe Mazzini)동상

치르코 마시모가 내려다 보이는 길위쪽 언덕에는
이태리 통일에 기여한 정치가인 주세페 마치니의 동상이 있다. 

  


트레비분수(Fontana di Trevi)

 

로마 폴리 대공의 궁전 정면에 있는 분수로서, 분수의 도시로 알려진 로마의 분수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하다.
G.L.베르니니의 원안에 따랐다고 하는 N.살비 설계의 대표작으로,
1732년 착수하여 살비 사후인 1762년에 완성하였다.
흰 대리석 작품으로 개선문을 본뜬 벽화를 배경으로
거대한 1쌍의 반인반수의 해신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해신 넵투누스상이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서 있으며,
주위의 거암거석 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와 연못을 이룬다.
이 연못을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를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

 

 트레비분수

분수라기 보다 주변 전체가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조각작품이다.

 

로마 관광 필수코스 트레비분수

일년 사시사철 늘 이렇게 많은 솬광객들이 찾으니 관광수입도 얼마나 많을까?

 

반인반수의 해신 트리톤과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서있는 해신 넵투누스

 

 뒤로 서서 동전을 던져넣으면 다시 로마를 방문한다고 한다.

  


스페인광장(Piazza di Spagna)

 

17세기에 교황청 스페인 대사가 이곳에 본부를 두면서 스페인 광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여 유명해졌으며 이탈리아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계단에 철쭉꽃이 심어져 꽃이 피는 시기에는 적색, 분홍색 꽃들이 만발한다.
계단을 올라가면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Chiesa della Trinita dei Monti)가 있다.


스페인 계단은 17세기에 트리니타 데이 몬티의 프랑스인 주민들이 교회와 스페인 광장을 계단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광장 중앙에는 베르니니와 그의 아버지가 설계한 바르카치아 분수가 있다.
물에 반쯤 잠겨 있는 물이 새는 배는 베르니니가 만든 것이다. 바르카치아는 '쓸모 없는 오래된 배'를 의미한다.

  

스페인광장과 바르카치아 분수

 


판테온(Pantheon)

 

118∼128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건축되었으며 다신교였던 로마의 모든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이다.
판테온이라는 명칭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의 합성어이다.
처음 건축된 판테온은 로마에서 발생한 대화재로 소실되었고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를 재건하기 위한 계획으로 다시 건축되었다. 
처음 만들어진 건축의 흔적으로는 석판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한다.
원형 본당의 안지름과 천장의 높이 43.2m, 벽의 두께 6.2m.
북측 입구에 코린트식 8주 전주식(前柱式)의 돌출랑(突出廊)이 있으며, 기둥 높이는 12.5m이다.

  

 

 

 

판테온

로마 시대의 건축물인데 규모나 기술 모든 면에서 현대 건축물 못지 않아 보인다.

 

판테온 뒷편 외벽

  

판테온 내부

 

내부에는 7개의 벽감(壁龕:神像을 안치한 작은 방)이 설치되어,
제우스·아폴론·아르테미스·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 등 다신교였던 로마에서 중요 신들이 모셔졌다.
이후, 609년 판테온은 교황 보나파시오 4세에 의해
가톨릭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ad Martyres)으로 개축되어 사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중세를 거치면서 건축물이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현재 판테온은 가톨릭 성당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미사가 집전되거나 가톨릭 종교 행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돔의 내측은 원개 천창(天窓) 부분을 제외하고는 28열의 방사상 격간(格間)으로 덮여 있고,
각각의 격간은 5단으로 되어 있다.
채광은 돔 정상에 설치된 지름 9m의 천창뿐이며,
벽면에는 창문이 없고, 거대한 본당의 외형에는 전혀 장식이 없다.
그 수적 비례의 미와 강대한 내부 공감의 창조라는 당시의 경이적인 토목기술로서
서양건축사상 불후의 명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판테온 내부 천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무덤

 

르네상스 시대에는 판테온이 무덤으로 사용되었는데
이탈리아의 거장 화가였던 라파엘로와 카라치,
그리고 이탈리아의 왕 빅토리오 임마누엘레 2세도 판테온에 묻혀져 있다. 
 

판테온 외부의 로톤다 광장 

그레고리 13세때 착공하여, 클레멘스 11세때 오벨리스크를 추가하여 완성하였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고대 로마시대에 전차경기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좁고 길게 뻗은 형태로 되어 있다.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1세기의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세운 도미티아누스 스타디움의 관람석 자리를 토대로 건설되었다.
광장 일대 건축물의 대표적 양식은 바로크 양식으로 넵튠분수, 모로분수, 피우미분수(Fontana Dei Fiumi)와
주변 건물들이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나보나광장 모로 분수

광장 남쪽의 모로분수는 돌고래와 싸우는 이디오피아인의 모습을 조각했다.,

 

 나보나광장 오벨리스크와 파우미 분수

 

광장 중앙에 있는 피우미분수는 베르니니가 디자인했다.
피우미분수에 조각되어 있는 4명의 거인은 갠지스강·나일강·도나우강·라플라타강을 나타낸다.

마침 공사중이어서 자세히 볼수 없었다.

 

 나보나광장 냅튠분수 

북쪽의 넵튠분수는 넵튠이 문어와 싸우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

 

카피톨리네 언덕(Capitoline Hill)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바로 옆에 위치한 베네치아궁(Palazzo Venezia)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
베네치아궁은 피에트로 바르보 추기경이 자신의 저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웠으며,
16세기 중엽에는 베네치아 공화국 대사관으로 쓰였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장 정면에 1911년 완공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기념관(Monumento di Vittorio Emmanuele)이 있다.
로마 교통의 중심지이며, 영화 "시네마 천국"에도 잠시 등장했다.

 

베네치아 광장

뒷쪽의 건물이 베네치아궁(Palazzo Venezia)이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기념관(Monumento di Vittorio Emmanuele)

 

베네치아 광장 정면에 있으며 1911년 완공되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룩한 이탈리아 초대 국왕이다.
건물 제일 높은 층의 상부에는 이탈리아 주요 도시의 상징이 있고
양측에 위치한 커다란 2개의 문 위에는 4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있다.
기념관 내에 이탈리아 통일에 기여한 무명용사들의 묘와 통일운동에 관한 자료를 소장한 박물관이 있다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마상과 기념관 

 


콜로나 광장(Piazza Colonna)

 

높이 42m의 커다란 원기둥이란 뜻의 꼴로냐가 세워져 있는 광장이다.
이 커다란 원기둥(안토니나 기둥)은 176년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으로
기둥 아래에서부터 달팽이 모양으로 전쟁하는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기둥 꼭대기에는 본래 아우렐리우스의 동상이 놓여있었으나, 지금은 사도 바울의 동상으로 교체되었다
.

 

 

 


아피아 가도 변에 있는 카타콤으로 가면서 

 

고대 로마 시대부터 축성한 로마성벽 

 

 

 

가는 길에 만난 살바로르 성당  

 

 

카타콤, 카타콤베 (Catacombs)

 

로마 아피아 가도에 면한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로서
카타콤은 원래 그리스어 ‘카타콤베’로 ‘낮은 지대의 모퉁이’를 뜻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하에 묘지를 두는 풍습은 동방에서 전래되었으나
그리스도 교도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지하묘지 풍습이 성행하였다.

 

 Catacombs of San Callisto

  

카타콤베의 내부 모습 설명도

 

구조는 지하 10∼15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m 미만, 높이 2m 정도의 통랑(通廊)을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내부에는 비명(碑銘)과 초대 그리스도 교도들이 예술의 상징으로서 그린 물고기 그림 등이 남아 있다.
로마제국의 박해시대에는 그리스도 교도들의 피난을 겸한 예배장소로도 이용되었다.